12, 13, 14
너무 쉬운 문제였다.
그럼 다음 글자는 한번 읽어보자.
A, B, C
여전히 쉽다.
하지만 가운데 있는 글자는 모양이 똑같다. 13으로도 보이고, B로도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최인철 지음, 21세기 북스, 2007)에서 저자인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이렇게 완벽하게 동일한 시각 자극이지만, 세로로 보면 철자 프레임이 활성화되고, 가로로 보면 숫자 프레임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이렇게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만드는 프레임(frame)이란 무엇일까? 먼저 사전부터 찾아보자.
1. 창틀, 테두리;(사진)틀; (안경)테
2. (건조물의) 뼈대
3. (추상적인) 구조, 만듦새(make), ……
여기서 보듯 프레임은 창틀이다. 프레임의 가장 흔한 정의는 창문이나 액자의 틀, 혹은 안경테다. 이렇게 볼 때,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향한 마인드 셋, 세상에 대한 은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모두 프레임의 범주에 포함되는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건물 어느 곳에 창을 내더라도 그 창만큼의 세상을 보게 되듯이, 우리도 프레임이라는 마음의 창을 통해서 보게 되는 세상을 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프레임을 잘 만들어내면, 개인과 기업이 행복해진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개인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프레임
어떤 프레임을 갖느냐에 따라서 같은 글자가 다르게 보이듯이, 같은 인생도 행복한 삶 또는 불행한 삶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청소부의 일을 생각해보자. 청소부가 “저는 더러운 길을 쓸고 있어요. 밥 먹고 살려니 참 힘드네요”라는 하위 프레임으로 말한다면, 그 자신도 불행할뿐더러 듣는 사람도 불편해진다.
하지만 청소부가 “저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함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습니다”라는 상위 프레임을 갖고 일한다면, 그 자신도 일을 통해 행복을 느낄뿐더러 주위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해 질 것이다.
여기서 지구를 청소하고 있다는 프레임은 단순한 돈벌이나 거리 청소의 프레임보다는 훨씬 상위 수준이고 의미 중심의 프레임이다. 여기서 상위 수준의 프레임이야말로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견지해야 할 삶의 태도이며, 자손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는 중요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자녀들이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게 할 수만 있다면, 거액의 재산을 남겨주지 않아도 험한 세상을 거뜬히 이기고도 남을 훌륭한 유산을 물려주는 것과 같다.
또 다른 멋진 프레임 몇 개를 보자.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내일이다.”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것처럼 사랑하라.”
“늘 마지막 만나는 것처럼 사람을 대하라.”
가슴을 벅차게 하는 말들이다. 이런 말들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들고 이제까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주어진 시간과 사람을 대하게 한다.
행복의 프레임을 가진 사람과 불행의 프레임을 가진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일을 잘 할까. 물론 두말할 필요 없이 행복의 프레임을 가진 사람이다.
벽돌을 옮기던 막노동꾼에게 물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아니 이 사람 보면 몰라, 벽돌 옮기고 있잖아.”, “예, 저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3층짜리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누가 행복한지, 누가 일의 성과가 높은지는 자명하다. 따라서 리더가 기업을 잘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그 자신도 행복 프레임을 가져야 하겠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도 행복 프레임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