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는 시(詩)가 한 수 있는가? 멋져 보인다. 시 한 수 그윽이 읊어 내리며 우리는 많은 것을 얻는다. 시에는 힘이 있다. 그 중에서도 옛 시는 한 겹 더한 힘을 발휘한다. 상징과 은유, 비유와 응축의 묘미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굳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거창함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 옛것에서 배우는 새로움의 미학, 진실로 푸른빛은 벽공(碧空)의 깊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 ‘옛 시 읽는 CEO’에서 옛 시의 힘 가운데 창의력, 호연지기, 풍류를 통해 삶의 깊이와 기쁨을 느껴보도록 하자.
옛 시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배운다
먼저 시 하나를 읽어보자.
초승달 - 곽말약(郭沫若)
초승달이 낫 같아
산마루의 나무를 베는데
땅 위에 넘어져도 소리 나지 않고
곁가지가 길 위에 가로 걸리네
어떤가. 다시 한 번 천천히 이 글을 읽자. 이것은 시다! 초승달의 생김새가 낫과 같아서 산마루의 나무를 벤다는 발상이 참 신선하다. 그렇게 베어진 나무는 넘어져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니. 곁가지가 길 위에 가로 걸린다는 표현은 또 얼마나 기발한가!
똑같은 사물이나 환경도 어떤 감각으로 재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발명도 마찬가지다. 전문지식이 뛰어나야 발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의 세심한 관찰과 아이디어가 결합해 놀라운 발명품이 나온다.
곽말약의 ‘초승달’과 황진이의 ‘반달’을 비교하며 읽어봐도 재미있다.
반달(詠半月) - 황진이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었나
견우가 떠나간 뒤
수심 겨워 저 하늘에 던져버린 것
곽말약은 초승달을 낫에 비유했고, 황진이는 반달을 머리빗에 비유했다. 두 사람의 상상력은 낫이나 머리빗이라는 상징물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한다. 초승달과 일본의 낫, 반달과 곤륜산의 옥을 연결 짓는 방식이 매우 참신하다. 아름다운 옥이 많이 나는 곤륜산을 끌어오더니 그것으로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고, 견우와 헤어지고 난 뒤 상심해서 허허로운 하늘에 던진 것이 반달이라니…. 이처럼 상상력의 경계는 끝이 없다.
상상력은 초승달로 나무를 베게 하고 반달로 빗을 만든다. 이것이 시(詩)다! 지금 내 앞에 무엇이 보이는가. 그것을 난 어떻게 상상하여 바꿀 수 있을까. 마음에 여유를 갖고 내 앞에 보이는 것들을 지금과 다른 방법으로 바라보자.
긍정의 힘이 통찰을 낳는다
두 번째 시는 긍정의 힘, 호연지기의 시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시라고 한다.
술잔을 들며 - 백거이(白居易)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에 사는 몸
풍족하나 부족하나 그래도 즐겁거늘
하하 크게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이 시를 지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이백이 죽은 지 10년, 두보가 죽은 지 2년 뒤에 태어났으며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불렸다.
달팽이는 머리 위에 두 개의 촉수를 지니고 있다. 한 몸에 난 촉수끼리 서로 싸우는 게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사소한 분쟁을 의미하는 말이 곧 ‘와각지쟁(蝸角之爭)’이다.
정 전 명예회장은 걱정으로 마음이 졸아들 때 이 시를 암송하며 용기를 냈다고 한다. 눈앞의 작은 분쟁을 경계하고 호방하게 큰일을 도모하는 지침으로 삼기도 했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게 대수인가! 우린 해낼 수 있다. 호탕하게 한번 웃고 이겨내면 되는 것이다.
창조도 풍류에서 나온다
역시 시는 풍류이다.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는 극치를 이룬다.
한 잔 먹세 그려 - 정철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 무진 먹세 그려
(중략)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쓸쓸히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정철의 술 사랑은 유별났다. 임금이 술 좀 줄이라고 준 은잔을 얇게 펴서 큰 사발로 만든 기행도 유명하다. 술과 자연을 벗 삼아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과 같은 불후의 문장을 남긴 그는 신선처럼 삶을 살았다.
곧 연말연시가 다가온다. 잦아지는 술자리에서 그 어떤 건배사보다 ‘한 잔 먹세 그려’의 한 구절을 읊으며 풍류를 즐겨보는 것은 어떤가.
이번 서평에서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옛 시들을 살펴보았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통한 마음의 여유와 긍정의 힘을 통한 통찰력과 풍류를…. 아니, 시를 외우기가 어렵다고? 그럴 때 필자가 시처럼 읊는 것이 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내일은 해가 뜬다.’
노래 ‘사노라면’의 가사다. 시에서, 글에서 우리는 힘을 찾는다. 바로 지금 움츠리지 말고 가슴을 활짝 펴자! 좋은 일이 우리를 찾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