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Management

관습에 젖은 어제의 나를 잊어라

303호 (2020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현상학의 시조인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판단 중지(epoche´)와 현상학적 환원(pha..nomenologische Reduktion)을 제시한다. 후설이 볼 때 존재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를 금과옥조로 삼는 자연과학적 태도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기성 가치와 관습적 생각, 이론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판단 중지) 초연한 순수 주관성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현상학적 환원)는 주장이다. 장자 역시 사람의 눈에 나타나는 현상은 존재의 본질과 다르다며 비본질적인 존재의 모습을 망량(罔兩, 그림자의 그림자)이라고 불렀다. 진재(眞宰), 즉 존재의 본질에 접근하려면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을 중지하고 판명(判明)한 정신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편집자주
Fable Management의 연재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지름이 1㎝인 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평면을 상상해보자. 두 원 사이의 간격은 3㎝다. 간격이 그다지 넓지 않으므로 두 원은 동시에 일별할 수 있고, 정상 시각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같은 크기로 지각된다.

만약 왼쪽 원의 둘레에 지름이 0.5㎝인 원을 빙 둘러 가면서 그려 넣고, 오른쪽 원의 둘레에는 지름이 2㎝인 원을 그려놓을 경우 두 원의 크기는 어떻게 보일까? 이번에는 왼쪽의 원이 더 크게 보인다. 큰 원에 의해 둘러싸인 원보다 작은 원에 의해 둘러싸인 원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지각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올바른 지각이 아니라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주변 환경이 변화됨에 따라 본질적인 원의 모습은 사라지고 본질과는 동떨어진 변형된 원이 인간의 시야에 새롭게 현상된다. 철학의 한 분파인 현상학은 이러한 점에 착안, 존재의 본질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사회문화적 조건들을 찾아내 심문한 후 존재가 가진 원래의 제 모습을 찾으려는 학문적 시도다.

판단 중지와 현상학적 환원

진리에서 멀어진 존재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방법은 뭘까? 현상학의 시조인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판단 중지(epoche´)와 현상학적 환원(pha..nomenologische Reduktion)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후설이 볼 때 존재의 본질을 왜곡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를 금과옥조로 삼는 자연과학적 태도다. 개인의 경험에는 편차가 있으며 필연적으로 오류가 따른다. 경험을 기준으로 삼으면 어떠한 보편적 진리도 정초할 수 없다. 존재의 본질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성 가치와 관습적 생각, 이론들을 머릿속에서 싹 지워야 한다. 후설은 이를 판단 중지라고 한다. 그런 후 이런 것들로부터 초연한 순수 주관성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현상학적 환원)고 주장한다. 그곳에서 선험적으로 주어진 순수한 자아(주체)를 통해 의식과 지각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 현상학의 학문적 목표다.

『장자』 ‘소요유’ 편에서는 존재의 본질, 진리의 본질을 진재(眞宰)라고 표현한다. 장자에 따르면 이러한 진재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다만 우매한 인간들이 진재를 추구하는 방법론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실마리를 찾지 못할 뿐이다.

“참된 진리를 주관하는 실체가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작동 방식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若有眞宰 是亦近矣 而不知所爲使 而特不得其朕, 약유진재 시역근의 이부지소위사 이특부득기짐)”

- 『장자』 ‘소요유’ 편

『장자』 ‘제물론’ 편에 나오는 다음 우화에서도 사람의 눈에 나타나는 현상(감각적 경험)은 존재의 본질과 다름을 드러낸다.

“꿈속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이 아침에는 통곡한다. 꿈속에서 통곡을 하던 사람이 아침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사냥을 나가기도 한다.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그러면서 꿈속에서 그 꿈이 길몽인지, 흉몽인지 점을 치기도 한다. 꿈을 깨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꿈인 것을 깨닫는다. 마찬가지 이치로 확고하게 진리를 깨우친 후에야 눈에 보이는 세계가 커다란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깨달음을 얻을 줄로 착각하고 잘난 체한다. 그러면서 ‘군주’니, ‘목동’이니 하면서 신분으로 사람을 구별하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공자와 그대는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꿈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꿈이다. 이와 같은 말은 무척 기이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대성인을 만나서 그 의미를 깨우치게 되면 아침저녁으로 참된 진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장자』 ‘제물론’ 편

우화의 화자(話者)는 장오자(長梧子)이고 청자(廳者)는 구작자(瞿鵲子)이다. 장오자는 장자를 의인화한 인물이고, 구작자는 공자의 제자를 의인화한 인물이다. 장자는 꿈을 꾸는 주체를 공자와 그 제자로 설정함으로써 유교를 존재의 본질에서 벗어난 학문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자신 또한 꿈을 꾸는 주체에 포함함으로써 현상적 존재의 비본질성을 일반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장자는 이러한 비본질적인 존재의 모습을 망량(罔兩, 그림자의 그림자)이라고 부른다. 사물에 부가된 직접적인 그림자가 아니고 그림자의 그림자이니 존재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곁가지라는 의미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장자의 진단은 후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후설 역시 『논리연구』라는 책에서 본질에서 벗어난 존재의 모습을 그림자에 비유하고 있다. 장자는 존재의 본질에 접근하려면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을 중지하고 판명(判明)한 정신을 통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눈으로 보지 말라.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을 중단하고 순수한 정신으로 추구하라. (不以目視 官知止 以神欲行, 불이목시 관지지 이신욕행)”

- 『장자』 ‘양생주’ 편

여기서 ‘止(지)’는 후설이 말하는 판단 중지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고, ‘神(신)’은 현상학에서 말하는 선험적 자아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제물론’ 편의 또 다른 우화를 보자.

남곽자기가 책상에 기대앉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는데 마치 자신의 육체를 잊은 듯했다. 곁에 있던 안성자유가 물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선생님의 육체는 죽은 나무(槁木)와 같고 마음은 불 꺼진 재(死灰)와 같습니다.” 남곽자기가 말했다. “네가 제대로 보았구나. 지금 나는 나를 잊었다. (今者吾喪我, 금자오상아)”

- 『장자』 ‘제물론’ 편

한자에서 ‘吾(오)’는 객관적인 나를 뜻하고 ‘我(아)’는 주관적인 나를 뜻한다. ‘내(吾)가 나(我)를 잊었다’는 것은 보편적 진리,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주관적인 편견과 오류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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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탐구하고 혁신을 지향하는 U-프로세싱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정신은 혁신이다. 혁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부터 구분해야 한다. 본질적인 것은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미래의 핵심 가치고 비본질적인 것은 혁신을 위해 버려야 하는 과거의 낡은 가치다.

둘을 구분한 후 낡은 것을 끊어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코닥은 필름 시장의 최강자였다. 일본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도 휩쓸었다. 한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을 정도로 매출 규모가 컸고, 필름 하면 코닥, 코닥 하면 필름으로 통했다. 디지털 시대가 다가오자 코닥의 젊은 연구원들은 디지털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디지털 필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을 제때 출시했더라면 코닥은 제2의 도약기를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경영진이 오판했다. 혁신을 위한 본질적 가치는 디지털에 있었지만 경영진은 비본질적인 과거의 필름을 고집했다. 판단 중지에 실패한 코닥은 혹독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기업은 조직의 본질을 탐구하고 미래의 혁신 가치를 탐구하는 작업을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미국 MIT대의 오토 샤머 교수는 본질을 탐구하고 혁신을 지향하는 인간의 모습을 ‘U-프로세싱’이라고 부른다. 본질을 탐구하는 사람은 먼저 U자의 왼쪽 벽면을 타고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한 후 본질적인 것만 남기고 비본질적인 것들은 과감하게 바닥에 버린다. 그런 후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U자의 오른쪽 벽면을 타고 위를 향해, 미래를 향해 힘차게 솟구쳐 오른다.

U-프로세싱은 개인에게만 필요한 절차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기업에도 필요한 절차다. 기업은 미래 사회에 적합한 경영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 조직의 현주소와 좌표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적 트렌드에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은 깨끗이 잊고 본질적인 미래 가치에 시간과 자산을 집중 투자해야 한다. 『장자』에 나오는 다음 경구를 새기면서 혹시 거꾸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자.

“사람은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는다(人不忘其所忘 而忘其所不忘, 인불망기소망 이망기소불망)”

- 『장자』 ‘덕충부’ 편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