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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겸의 Sports Review

NBA 3점슈터 커리에게서 배우는 경영학

김유겸 | 273호 (2019년 5월 Issue 2)
한국은 농구 못하는 나라다. 한국 남자 농구는 세계 정상권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996년 이후 올림픽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국 농구는 가망 없는 종목인 걸까? 과거의 성과와 현재 위치를 보면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농구팬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합리적 비관과 무관하지 않다. 국제대회 성적이 전부는 아니지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스포츠는 팬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사실 아쉽게도 한국 농구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스티븐 커리(Stephen Curry)는 한국 선수들은 보지 못했던 이 가능성을 실현해 NBA 슈퍼스타가 됐다. 커리는 훌륭한 드리블 기술과 패스 능력도 갖추고 있지만 역시 결정적 무기는 3점슛이다. 한 시즌 최다 3점슛 성공(402개), 연속 경기 3점 슛 성공 1위(157경기), 3점슛 10개 이상 성공 경기 역대 1위 등 NBA의 3점슛 관련 기록은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만년 하위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Golden State Warriors)를 3번이나 우승으로 이끌었고, NBA 역사상 유일하게 만장일치 MVP 선정과 2년 연속 정규리그 MVP상을 수상했다.

커리의 성공이 특별한 것은 단지 자신이 뛰어난 3점슈터라서가 아니다. 그는 3점슛을 현대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로 만들었다. 커리는 3점슛 때문에 성공한 선수이기도 하지만 3점슛을 성공(?)시킨 선수이기도 하다. 커리 출현 이후, 현대 농구에서 3점슛 능력은 포지션에 관계없이 좋은 선수라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고급 기술이 됐다. 이제는 NBA에서도 3점슛이 덩크슛과 더불어 가장 화려한 개인기로 여겨진다.

3점슛은 NBA의 전신 ABA(American Basketball League)에서 1967년 처음 도입했다. 이로부터 40년이 넘게 2000년대까지만 해도 3점슛은 전략적 가치가 매우 제한적인 기술이었다. 대부분의 농구 지도자는 3점슛을 관중에게 볼거리를 주기 위한 잔재주(gimmick) 정도로 생각했으며 경기 후반 많은 점수 차로 지고 있거나 종료 직전에 역전하기 위해서나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성공 확률이 낮은, 비효율적인 선택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했다. 좋은 외곽 슛 능력이 있어도 3점슛을 자주 시도하는 선수는 성질이 급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3점슛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팀은 우승을 포기한 팀 취급을 받았다. 11번이나 NBA 우승을 했던 명장 필 잭슨(Phil Jackson) 감독은 3점슛에 의존하는 팀들을 보고 멍청하다고 SNS상에서 원색적인 표현으로 조롱하기도 했다.

커리는 그런 3점슛 능력밖에 없다고 과소평가 받는 선수였다. 그는 가드 포지션의 선수인데 1 득점 능력이 중요한 슈팅가드를 하기엔 키가 작고(190㎝) 드리블 돌파도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남는 포지션은 포인트가드뿐이지만 엘리트급 포인트가드들과 비교하면 볼을 다루는 솜씨나 코트 전체를 보는 시야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3점슛 의존도가 높은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NBA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가 세계적 스타가 되리라는 기대는 누구도 하지 않았다.

단점도 많고, 장기라곤 쓸데없는 3점슛 잘 쏘는 것밖에 없던 커리. 그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라 볼핸들링과 드리블링을 연습해서 전형적인 포인트가드가 되는 길을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 강점인 3점슛에 더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는 대성공. 커리는 3점슛 기술을 가지고 최고 선수가 됐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구의 흐름 자체를 바꿔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커리는 3점슛을 단지 잘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전엔 상상도 못 했던 수준으로 이 기술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3점슛은 많이 시도하면 성공 확률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는 게임당 평균 12개씩 쏘고 성공 확률은 44%나 된다. 보통 NBA 선수의 2점슛 확률(평균 45%)과 비슷하다. 성공 확률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2점슛보다 3점슛을 쏘는 게 낫다. 슛 거리도 어마어마하다. 3점슛 라인 두세 발짝 뒤에서 던져도 잘 넣는다. 드리블하다가도 쏘고(풀업), 한 발 뒤로 점프하면서도 쏘는(스텝백) 등 3점슛 관련 기술도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게다가 슛 동작도 일반 선수들보다 30% 이상 빨라서 커리가 맘먹고 쏘는 3점슛은 수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커리의 성공은 현대 농구판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제는 3점슛이 비효율적인 공격이라고 보는 사람이 없다. 이제는 슈팅가드든 포인트가드든 관계없이 3점슛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 즉, 가드 포지션의 ‘커리화’ 현상이 나타났다. 진화한 3점슈터들의 등장으로 현대 농구는 더욱 빠르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NBA 상위권 팀들은 이제 3점슛 공격 비중이 하위권 팀들보다 월등히 높다. NBA가 3점슛을 처음 도입했던 1980년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3점슛 비중이 1400% 이상 증가했다.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는 기업 경영 분야에서도 많은 전문가가 해왔다. 피터 드러커는 저서 『효과적 경영자(The Effective Executive)』에서 최고 성과를 올리려면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00만 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작가 짐 콜린스는 자신만의 강점을 독보적으로 키운 기업만이 월등하게 높은 성과를 수십 년 이상 지속하는 위대함을 이룰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경영 생산성 및 리더십 권위자 마커스 버킹엄은 갤럽과 함께 20여 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 직원들의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을 발전시키는 것이 개인의 성장과 동시에 기업의 효율을 높이는 데 현격히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강점 혁명(strength revolution)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창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사회문화적, 심리적 어려움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심리학적 관점으로 보면 강점을 살리기보다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손실회피 편향(Loss Aversion)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을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 느끼는 고통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또한 성취에 대한 기대감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강하다. 따라서 불확실한 선택을 해야 할 때 기회를 추구하기보다는 실패를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손실회피 편향 때문에 경영자들은 강점을 키워 기회를 추구하기보다는 약점을 보완해 실패를 피하려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강점에 집중하는 것은 선택이 필요하고 선택은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포기하는 것, 즉 손실을 의미한다. 모든 손실을 회피하고 가진 것을 지키려는 현상 유지 심리가 오히려 기업의 미래 가치를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평균의 오류와 완벽주의도 문제다. 한국의 각종 학교 입시, 자격고시, 입사 시험에서는 특정 과목에 월등하게 점수가 높은 것보다는 전 과목을 골고루 잘하는 것이 합격에 유리하다. 평균 점수가 높은 사람이 합격도 하고 인재로 대우받는다. 또한 1등을 목표로 한다면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한 과목을 제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받을 수 있는 점수는 말 그대로 만점이 한계다. 그 때문에 못 하는 과목에서 잃은 점수를 잘하는 과목에서 만회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식의 경쟁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경영자들은 이미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자신의 강점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는 만점을 받지 못한 다른 약점을 보완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나 능력을 개발하는, 혁신(innovation)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연구(Greg Stevens & James Burley)에 의하면 새로운 아이디어 3000개당 1개, 즉 0.03%만이 상업적으로 성공한다고 한다. 사회 전체로 보면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이 나와 사회 발전에 공헌하면 좋은 일이지만 개별 기업이나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기적이나 요행에 가깝다. 아무리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해 확률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혁신의 성공은 합리적 리스크 관리 영역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불가지 영역에 가깝다. 확률을 알 수 없는 혁신을 꿈꾸기보다는 자신의 확실한 장점을 계발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성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위기분석 전문가 나심 탈레브(Nassim Taleb)는 말한다.

농구 붐이 일었던 1990년대의 한국 농구는 분명 3점슛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등 농구 강국과 비교하면 한국 선수들은 체격 조건, 운동 능력, 기술 등 모든 면이 뒤떨어진 것 같았고 3점슛을 잘 넣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한국은 다른 능력이 안 되니 3점슛을 쏠 뿐이라 여겼다. 강해지려면 미국처럼 돼야 한다고 믿고, 그렇게 노력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은 세계 수준과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한국이 뒤에서 쫓아가는 동안 세계 강국들이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만약 그때 3점슛 기량을 더욱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모든 포지션 선수들이, 더 먼 곳에서, 창의적 기술로 수비를 피해서 3점슛을 넣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면? 물론 그렇게 했다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미국을 이기는 팀은 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지금처럼 3점슛 능력에서마저도 세계 수준에 크게 미달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팀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스티븐 커리는 이류들이나 쓰는 기술이라던 3점슛을 주 무기로 갈고 닦아 세계 최고 선수가 됐다. 약점을 고치는 데 급급했던 선수들은 NBA에서 사라진다. 약점을 성공적으로 보완한 선수도 평범한 선수 생활을 이어갈 뿐이다. 한국 농구의 실력 정체와 커리의 성공은 기업이 왜 강점에 집중해야 하는지 스포츠를 통해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스포츠에서도, 기업 경영에서도, 약점을 없애는 것으로 실패를 막을 순 있지만 성공할 수는 없다.

필자소개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
필자는 서울대 체육교육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플로리다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7년간 재직하며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과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논문 80여 편을 발표했다.
  • 김유겸 | -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
    -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
    - 플로리다주립대 7년간 재직, 종신교수직(tenure)
    -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 80여 편의 논문 발표
    ykim2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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