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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혁명적 세상, 지금 코앞에

박영규 | 267호 (2019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설파했던 고전역학의 세계에서는 우연성이 배제된 인과법칙이 성립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정론적 세계관은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산산조각 났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원인과 결과는 확률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그마저도 불확실하다. 음과 양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기운으로 만물의 존재 양식과 변화를 설명하는 주역의 세계관이 양자역학과 일맥상통한다. 음과 양은 상보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이들의 상호작용 속에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 변화와 발전이 되풀이된다.

편집자주
몇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읽혀 온 고전에는 강렬한 통찰과 풍성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삶에 적용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인문학자 박영규 교수가 고전에서 길어 올린 옹골진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세상은 양자역학적으로 존재한다. 덕수궁 돌담길의 낙엽 속에 존재하는 전자는 브루클린 다리 위를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 속에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는 달나라의 분화구 곁을 떠도는 먼지 속에도 존재할 수 있다. 양자 중첩(superposition)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현상은 상식적으로 볼 때 매우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물리법칙에 따르면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과학적인 사실이다. 엄밀한 가설을 동원한 각종 양자역학 실험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중 슬릿(직사각형 모양의 구멍) 실험이 대표적이다. 두 개의 슬릿을 향해 전자를 임의로 발사할 때 전자는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한다. 서로 다른 전자가 시차를 두고 두 곳을 교대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전자가 동시적으로 같은 구멍을 통과하는 것이다. 슬릿 뒤편에 설치된 스크린 위에 형성되는 물결 모양의 파동을 통해 이러한 현상이 마법이 아니라 실제적인 물리 현상임을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뉴턴의 결정론적 세계관에 따르면 사물은 일대일로만 작용한다. 하나의 원인은 하나의 결과만 가져올 뿐 복수의 결과를 초래할 수 없다. 하얀 당구공에 맞은 빨간 당구공은 힘을 전달받은 한쪽 방향으로만 움직일 뿐 두 곳으로 동시에 움직일 수 없다.

양자역학은 이런 결정론을 무너뜨렸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물질은 그 존재의 위치와 운동량이 결정돼 있는 게 아니라 확률로 공간에 흩뿌려져 있다. 특정 시점에 특정인의 눈으로 관찰되기 전까지는 존재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과학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의 말처럼 우주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들이 무한히 춤을 추는 댄싱장이다. 만물은 원자의 운동과 조합이 무작위로 우연히 만들어낸 부산물일 뿐이다. 그것에는 목적도 지향성도 없다. 비결정성, 우연성이 세상과 우주 만물의 궁극적인 존재 방식이며 짜임이고 실재다. 막스 플랑크가 전자의 무작위적 행동을 처음으로 발견했고, 닐스보어는 양자도약(Quantum Leap)이라는 가설로 이를 입증했다. 원자핵 주위를 띄엄띄엄 돌고 있는 전자는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할 때 그 사이의 공간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지나간다. 덕수궁 돌담길 낙엽 속의 전자가 브루클린 다리 위 돌멩이 속에서도 동시에 발견될 수 있는 것은 닐스 보어가 말하는 양자도약 때문이다.

전자의 또 다른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하이젠베르크에 따르면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두 속성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측정하는 순간 교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위치나 운동량 중 어느 한 쪽을 줄이면 한 쪽은 늘어난다. 위치가 정확해지면 운동량이 부정확해지고 운동량이 정확해지면 위치가 부정확해진다. 이른바 불확정성의 원리다.



장자의 세계관은 양자역학의 세계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장자에 따르면 딱 부러지게 하나로 결정돼 있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물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으며 서로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다. 낙엽은 돌멩이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며, 돌멩이는 낙엽의 원인이면서 결과다. 이런 인식을 우주로 확장하면 낙엽이 곧 돌멩이다. 작은 입자인 전자뿐만 아니라 전자의 덩어리인 사물 그 자체가 동시성을 갖는 존재인 것이다. ‘제물론’ 편에서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것은 이것에서 생기고, 이것은 저것에서 생긴다. 만물은 저것이 아닌 것이 없고, 이것이 아닌 것이 없다. 이것이 곧 저것이고, 저것이 곧 이것이다. 彼出於是(피출어시) 是亦因彼(시역인피) 物無非彼(물무비피) 物無非是(물무비시) 是亦彼也(시역피야) 彼亦是也(피역시야)” 장자는 생활 세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을 끌어들여 이런 양자역학적 인식론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동곽자라는 사람이 장자에게 물었다. “이른바 도(道)라는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없는 곳이 없습니다. 만물 어느 곳이든 도가 존재합니다.” 동곽자가 다시 물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장자가 다시 말했다.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있소이다.” “어찌 그리 낮고 미천한 것에 있을 수 있습니까?” “돌피나 피에도 있소이다.” “어찌 그리 점점 더 아래로 가십니까?” “기왓장에나 벽돌에도 있소이다.” “도통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똥이나 오줌에도 있소이다.”
- 『장자』 지북유편.

이 우화에 나오는 도(道)를 양자역학적으로 표현하면 전자나 원자, 양자, 미립자 등으로 바꿀 수 있다. 사물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원리)인 전자나 도는 특정 사물에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에 무차별적,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낙엽 속의 전자나 돌멩이 속의 전자는 기왓장 속의 도나 똥오줌 속의 도와 존재 형태나 존재 양식 면에서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 전자나 도 둘 다 정해진 존재의 이유나 목적은 없다. 그저 우연히 존재할 뿐이다. 존재의 우연적 속성을 장자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한다. “도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가운데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물도 말을 하다 보니 존재하게 된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가? 그렇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어째서 그렇지 않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보니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 物謂之而然(물위지이연) 惡乎然(오호연) 然於然(연어연) 惡乎不然(오호불연) 不然於不然(불연어불연)”
- 『장자』 제물론편.



『주역』의 세계관도 양자역학의 세계관과 일치한다. 『주역』에서는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에너지(기운) 덩어리를 기초로 만물의 존재 양식과 변화를 설명한다. 양은 팽창하려는 속성을 가진 에너지 형태고, 음은 이러한 양의 기운을 수축시켜 균형을 맞추려는 에너지의 또 다른 존재 양식이다. 음양은 2진법 체계에 따라 존재의 네 가지 기본 속성인 사상(四象, 태양, 태음, 소양, 소음)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만물의 여덟 가지 존재 양태인 팔괘(八卦, 하늘, 땅, 물, 불, 바람, 벼락, 연못, 산)로 확장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음양이나 사상, 팔괘가 고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상보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그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우주 만물은 생성, 소멸, 변화, 발전을 되풀이한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닐스 보어는 1937년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태극문양을 보고 동양의 직관적 사고에 감탄했다. 그리고 1947년 덴마크 정부가 그에게 귀족 직위를 내렸을 때 예복 중앙에 태극문양을 그린 후 그 주변에 둥글게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겨 넣었다. CONTRARIA SUNT COMPLEMENTA. ‘대립물들은 상호보완적’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를 둘러싼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학문이 양자역학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사물이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믿음을 부인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사후에 진행된 다양한 실험은 아인슈타인의 생각이 틀렸음을 속속 입증하고 있다. 사물의 상보성, 이중성, 불확정성은 부인할 수 없는 우주 만물의 실재다. 양자역학이 바꿔놓을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양자역학의 이론 자체가 상식을 뛰어넘기 때문에 그것이 미치는 파장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세상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이 공언하고 있는 것처럼 양자역학을 적용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될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 9개와 22개의 큐비트(Qbit, Quantum bit)를 가진 양자컴퓨터를 구글이 이미 개발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양자컴퓨터가 현실화하면 연산속도나 데이터 저장 능력 등에서 슈퍼컴퓨터를 수천 배 능가하는 컴퓨터가 탄생하게 된다. 그에 따라 기존의 정치, 경제, 금융, 보안, 의학 등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이론적으로 볼 때 양자비트의 수가 300개를 돌파하면 온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신의 영역에 도달한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의 예측은 단순한 예측만으로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자만이 제2의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엄청난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필자소개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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