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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가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법 -2

업무 우선순위 정해 일맛을 느껴라

구본형 | 15호 (2008년 8월 Issue 2)
나는 중개업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손님을 접대하고, 전화를 받아 연결하고, 문건을 타이핑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찮은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고,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것도 흥미로웠다. 상사에게 사람을 제대로 뽑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나는 내게 거듭 말했다. 다음 업무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 지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라.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라. 각 업무의 한계가 아니라 그 가능성에 집중하라. 내게 기회를 줄 사람을 찾아라.”
 
나는 이 경쾌하고 깔끔하며 역동적인 문장이 좋다. 이 글은 휴렛패커드(HP)의 전 회장인 칼리 피오리나가 첫 번째 직장을 가졌을 때의 태도를 묘사한 글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직장인들의 자세가 모두 이와 같기를 바란다. 세상을 배우려는 사람, 그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을 남김없이 떨치고 싶어 하는 사람, 날마다 젊음의 근육을 떨며 달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한다.
 
직업인은 일에서 밀리면 설 자리가 없다. 나는 조직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관계에서든 일에 대한 능력이 항상 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은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주어진 일에서 밀리면 좋은 부하 직원도, 좋은 팀원도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일은 좋은 관계의 기본이며 바탕이라는 명료한 직업의식을 가져야 한다.
 
모든 직장인은 ‘일은 곧 태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피오리나의 태도는 일을 잘하기 위한 기본 중 기본이다. ‘그 일이 무엇이든 의미를 따지지 않고 나의 관심, 나의 하루를 다 걸겠다’는 전투력이 일에 입문하는 사람의 자세다. 나는 이것을 ‘부엌데기 정신’이라고 부른다.
 
신데렐라의 구두를 신기 전에는 누구든 재투성이로 바닥에서 일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일에 대한 자세와 태도다. 무협 소설에서 스승은 제자에게 본격적인 비법을 전수하기 전에 불 때고 밥 하고 물 긷는 허드렛일만 시킨다. 얼핏 보면 비전이 없어 보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 반드시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은 곧 밥이다. 이 지루한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제자들은 스승의 진전을 이어받지 못하고 하산한다. 스승은 오직 이 입문의 단계를 묵묵히 이겨 낸 제자만 거두어 비법을 전수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영웅 설화의 기본 모형이다. 직업인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일은 곧 태도’라는 깨달음을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

 

일은 곧 경영… 일 맛을 알아야 한다
조직에 입문해 시간이 흐르면 맡은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일의 중요도도 높아지고, 해야 할 일의 양도 늘고, 져야 할 책임도 커진다. 조직 속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맡아 정신없이 뛰어다닐 때가 온다. 이때가 되면 ‘일에 모든 것을 거는 태도’만으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바쁘다는 것은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정신없이 바쁜 것은 맡은 일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사람이 겪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때는 ‘일은 곧 태도’가 아니라 ‘일은 곧 경영’이라는 경지로 옮겨 가야 한다. 일이라고 다 같은 일이 아니다. 일 맛을 어느 정도 보면 맛있는 일과 맛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 때고 밥하는 일보다 훨씬 재미있으며 또한 나에게 어울리는 일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 맛을 알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맛있는 일을 찾아 집중해야 함을 알게 된다.
 
일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내가 맡은 일들을 분명한 기준에 따라 분류할 필요가 있다. 나는 두 가지 기준을 활용할 것을 권한다. 부가가치의 크기와 기질적 특성의 어울림이다.
 
우선 내가 맡은 일을 15개 안팎의 최소 단위로 세분화하자. 이 최소 단위의 과제를 임무(task)라 불러 보자. 15개 안팎으로 잘게 세분화한 임무들을 4개 바구니 안에 넣어 보자. 첫 번째 바구니에는 부가가치가 높고 나의 기질적 특성에도 잘 맞는 일들이 있다. 두 번째 바구니에는 부가가치는 높지만 나의 기질적 특성과는 잘 맞지 않는 일들이 담겨진다. 세 번째 바구니에는 부가가치는 낮지만 기질적 특성과 잘 맞는 일들이 들어간다. 당연히 네 번째 바구니에는 부가가치도 낮고 나와 기질적으로 잘 맞지도 않는 일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 바구니의 일은 ‘My Project’라고 부르자. 즉 가장 공들여서 수행해야 하는 초점 과업이다. 내가 맡은 일 중 가장 중요하고 내 기질에도 잘 어울리는 과업이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에 가장 적합한 투자처다. 당연히 여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두 번째 바구니의 과업은 ‘My Challen-ge’라고 불러 보자. 부가가치가 높아 중요하지만 내 기질과는 잘 맞지 않아 가장 힘든 과업이기도 하다. 이 바구니에 담긴 일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세 번째 바구니의 일은 ‘My Hobby’라고 부르자. 일의 성격상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내 적성에 잘 들어맞기 때문에 부가가치 측면에서 앞으로 대단히 유망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유심히 봐둬야 한다.
 
네 번째 바구니에 담긴 과제들은 중요하지도 않고 내 기질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를 ‘Junk’라고 부르자. 이 쓰레기 일들이 종종 쓸데없이 일의 흐름을 끊고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업무는 효율적으로 분리해 관리하라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 내게 주어진 직무들을 다 나열한 다음 4개의 바구니 속에 분류해 보자. 경계가 모호해 어떤 바구니에 넣어야 할 지 망설이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일단 잠정적으로 가장 적합한 바구니를 찾아 넣어 두자.
 
이제 당신이 경영자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어떤 바구니의 일들에 자원을 집중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집중도는 5:3:2:0이다. 일단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시간의 절반은 My Project에 쏟아 부어야 한다. 이때 목표를 분명히 정해 두자. My Project에 해당하는 분야에서는 우리 회사에서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가장 높은 목표를 정해 23년 정도를 집중적으로 투자하라. 재능이 받쳐 주는 분야에서 엄청난 시간과 역량을 집중 투자하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결국 이 분야에서는 동종 업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전문가로 입문할 수 있다.
 
My Challenge 분야의 일은 직장을 다니는 한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30%의 시간만 투자해 다른 사람이 하는 정도의 평균적 수준으로 끝내도록 목표를 정하는 것이 좋다. 더 시간을 투자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더 잘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30%의 시간은 적당하다. My Hobby에 속하는 일은 20% 정도 투자하면 괜찮다. 적절한 기회에 사업화할 수 있는 포석이어서 손을 놓아서는 안 되며, 꾸준히 연구하고 탐험하는 편이 좋다.
 
Junk에서는 손을 떼는 것이 좋다. 이 일 때문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으므로 커다란 문제는 없을 것이다. 관리자와 잘 논의해 Junk에 속하는 일은 ‘시키지도 말고 하지도 않는’ 일로 확정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개인에게나 회사에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주 간단한 우선순위의 설정을 통해 그동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일들에 대해 고삐를 쥔 기분이 들 것이다. 전략적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알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기본은 갖춘 것이다.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월급쟁이의 마음이 일상을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일이 나를 끌고 다니는 것에 대해 수치스럽게 여겨야 한다. 일이 나를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경영하는 ‘1인 기업가’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세월과 함께 업적과 성취를 쌓고, 내 인생에 대한 자부심의 탑도 쌓자.
 
어떤 상사도 자신의 일을 경영할 줄 알고 중요한 일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부하 직원은 만만하게 보지 못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늘 좋은 관계의 초석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자. 일에서 밀리면 관계에서 비굴해 질 수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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