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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헛된 판단을 하지 않는 것

한근태 | 221호 (2017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모든 고민은 바라는 마음에서 유래한다. 바라는 마음은 생존욕, 수면욕, 식욕, 성욕, 나태욕, 감각욕, 인정욕구 등 7가지 욕구로 나뉜다. 때로는 욕구를 채울 수 있어 기쁘고, 때로는 욕구가 이뤄지지 않아 불만이다. 그런 순환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이런 인생에서 ‘깨달은 자’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자다. 자기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신 판단이나 견해를 없애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인정욕구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그 욕구에 반응해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지 망상한다. 망상이 넘치면 선입견이 된다.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이 있을까? 갓난아이와 죽은 사람을 제외하곤 없을 것이다. 아니 갓난아이도 말을 못해서 그렇지 나름 고민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고민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 중 하나가 ‘쓸데없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란 주장을 펼치는 책이 있다. 부처의 가르침을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8가지 고통이란

인간에게는 8가지 고통이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와 구부득고(求不得苦),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오음성고(五陰盛苦)가 그것이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민, 싫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고통,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 등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없애고 싶으면 우선 그 고민이 무언지 이해해야 한다. 어떤 고민이든 다 원인이 있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를 알면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우리 삶은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족함, 괴로움, 우울함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삶이 곧 고민의 바다인 셈이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삶은 고민의 연속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고민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런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다음은 문제의 원인을 봐야 한다. 고민은 어디에서 나올까? 모든 고민은 바라는 마음에서 유래하는데 바라는 마음은 7가지 욕구로 나뉜다. 생존욕, 수면욕, 식욕, 성욕, 나태욕, 감각욕, 인정욕구 등이다. 먼저 바라는 마음이 있고, 그것이 일곱 가지 욕구를 낳고, 그 욕구로 인해 인간은 반응하게 된다. 때로는 욕구를 채울 수 있어 기쁘고, 때로는 욕구가 이뤄지지 않아 불만이다. 그런 순환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고민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마음 상태를 살피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말로 확인하는 것, 감각을 의식하는 것, 분류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말로 마음을 확인하는 것을 ‘라벨링’이라 부른다. 마음상태에 이름을 붙여서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자기 상태를 말로 확인하는 작업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다음은 감각을 의식하는 것이다. 평소 무심하게 움직이던 몸을 제대로 의식하는 것이다. 마음상태를 잘 살펴보고 의식하면 헛된 반응이 멈춘다. 마음이 가라앉으며 깊은 안정과 집중이 가능해진다.

머릿속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탐욕, 분노, 망상이다. 탐욕은 욕구과잉에 사로잡힌 상태다. 너무 많이 바라고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이다. 초초함이나 인간관계를 둘러싼 불만은 대부분 너무 많이 바라는 마음에서 온다. 너무 많이 바라면 번뇌에 무릎을 꿇고 온갖 고뇌를 떠안게 된다. 분노는 불만과 불쾌를 느끼는 상태이다. 짜증이 나고 화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것이 분노상태라고 이해해야 한다. 분노를 그대로 두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분노는 씻어 보내야 한다. 망상은 상상하거나, 생각하거나, 떠올리는 등 머릿속에서 막연하게 뭔가를 그리는 상태를 말한다. 헛된 망상을 버리기 위해서는 망상을 하고 있다고 말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걷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걸으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을 청소할 수 있다. 예민하지 않게, 적당히 반응해야 한다. 망상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체감각을 의식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고민은 마음속에서 생긴다. 고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의식을 바깥쪽 신체감각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붓다는 올바른 이해의 궁극에 이른 자를 뜻한다. 우리말로 깨달은 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깨달은 자의 정의는 무엇일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자가 깨달은 자다. 자기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신 판단이나 견해를 없애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매사를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에게 반응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응이란 자기 생각에 따라 일어나는 화학적 현상이다. 자기와 생각이 같으면 기쁘고 다르면 화가 나는 것이 반응이다.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는 연습

쓸데없는 판단이 고민을 키운다. 헛된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한결 개운하고 가벼워질 것이다. 판단은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래야 한다는 맹신은 결벽증, 완벽주의, 지나치게 노력하는 성격을 만든다. 그 결과 ‘나는 안 된다’는 자기부정의 딱지를 붙이기도 하고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깨달은 자는 다른 이의 견해, 의견, 지식이나 결정에 구애받지 않는다.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에 의해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마음을 흔드는 원인도 만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자기주장을 확신하고 그 주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에 참견한다. 또 참견에 일희일비한다. 왜 그럴까? 판단 자체가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판단하는 마음속 깊이에는 모든 것을 안다는 기분 좋음과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한 쾌락이 존재한다. 단정짓기, 선입견, 일방적 기대와 요구 같은 판단은 일종의 집착이다. 마음의 병이다. 괴로움은 판단이나 집착에서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늘 변한다.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한다. 그 사람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 자기 판단을 갖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 나도 괴롭고 상대도 괴롭다.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판단하는 마음 때문이다. 판단이란 이 일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인생은 살 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뛰어나고 뒤처지는지 등 단정을 짓거나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나를 학대하는 자학도 판단이다. 실망이나 낙담도 판단이다. 잘 안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나 망설임도 판단이다. 이 사람은 싫고 저 사람은 좋다는 것 역시 판단이다. 이런 판단은 불만, 우울, 걱정 등 많은 고민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판단은 힘들고 비용이 드는 행위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판단한다. 판단하는 걸 좋아한다. 왜 그럴까? 판단 뒤에는 나는 훌륭하다, 나는 옳다, 나는 뛰어나다라는 교만이 숨어 있다. 교만의 만(慢)은 자신의 가치에 집착하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뭔 말을 할 때는 늘 ‘이게 진실인가’ ‘이게 그에게 도움이 되는가’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눈이 먼 자에게 코끼리를 부위별로 더듬게 하고 어떤 동물인지 말해보라고 하면 이들은 자신이 만진 부분을 전체인 양 얘기한다. 전체를 본 사람 입장에서는 딱한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처한 상황이나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당연히 삶의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다. 어떤 판단도, 상념도 망상에 불과하다. 올바른 이해란 스스로 옳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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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
저자 구사나기 류 , 번역 류두진,
위즈덤하우스, 2016

세상에는 비교하기, 평가하기, 여기저기 파고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떠도는 소문은 그런 판단들의 집합체이다. 이런 쓸데없는 판단이야말로 괴로움을 낳는 원인이다. 내 판단도 조심해야 하지만 남들의 판단과도 거리를 둬야 한다. 타인과 나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 남이 나를 판단한다고 나까지 남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 그럴 자격도 없다. 내 마음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헛된 반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신이 훌륭하고 옳다고 믿는 교만이 굳어지면 나와 주변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긴다. 소통이 어려워진다. 소통이 안 되면 괴롭다.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다. 계속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지, 옳고 그름에 구애받지 않고 솔직한 자신을 지향하고 싶은지? 자신이 옳다는 생각 따위는 사소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런 생각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자신이 옳다고 고집부리는 모습보다 솔직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심 넘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화상대가 되는 편이 더 행복하다. 분노는 남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확실히 존재하는 것은 내 감각이다. 이럴 때는 걷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런 판단을 없애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산책이다. 산책을 하면 판단을 멈출 수 있고, 판단을 멈추는 순간 자신감이 높아진다.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버리는 연습

사람은 모두 다른 뇌를 갖고 있다. 다른 뇌로 각각 다른 생각을 한다. 당연히 사고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대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기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기대나 선입견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의견과 충돌하면 자신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어 분노하게 된다. 그건 잘못이다. 이럴 때 상대가 다른 건 당연하다, ‘상대의 반응은 상대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다’란 생각을 하면 고민이 사라진다. 분노라는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붓다에게 온갖 욕을 다 퍼부었다. 하지만 붓다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욕을 하던 사람은 그게 이상해서 붓다에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묻는다.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잔칫집에 가서 음식으로 가득 찬 상을 받았다. 근데 난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면 그게 누구 음식이냐”라고 거꾸로 묻는다. 욕한 사람은 “그건 주인의 음식이다”라고 답한다. 그러자 붓다는 “그대가 내게 한 말을 난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럼으로 그 말들은 다 당신 것이다”라고 말한다. 붓다는 보통 사람이라면 화를 낼 법한 말을 들어도 무반응으로 응수했다. 쓸데없이 반응해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응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승리이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승리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반응해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그걸 풀어보면 상대와 나를 구분하는 것이다. 욕을 하는 것은 상대의 몫이고 거기에 대해 반응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나의 몫이다. 내 과제와 너의 과제를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대인관계의 고민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특히 벅찬 상대, 귀찮은 상대와 만날 때는 이 방법이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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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사람과 관계하는 법은 어떨까? 이 역시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는 잊고 상대를 새로운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서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고민의 대부분은 상대에 대한 판단에서 출발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생각에 대한 집착을 그저 집착으로 이해하고, 타인이 범한 과오를 과오라 이해하며,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언쟁한 후 기분이 좋은 사람은 없다. 상황이 끝난 후에도 계속 기분이 안 좋다. 근데 그건 누구 때문일까? 그 원인은 상대가 아닌 내 자신 때문이다. 과거를 떠올리고 기분이 안 좋다면 그 분노는 상대와는 관계가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 결론지으면 마음이 개운하다. 내 반응은 상대와는 관계가 없다. 언제나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기억은 기억일 뿐이다. 지난 일을 떠올려도 반응하지 않는다. 이것이 불교 최고의 지혜다. 우리 마음은 시시각각 변한다. 상대 마음도 마찬가지다. 나도 새로운 나고, 상대도 새로운 상대다.



타인의 시선에서 홀가분해지는 연습

사람은 남과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근데 왜 그럴까? 비교하는 이유는 인정욕구 때문이다. 나도 괜찮은 사람이다. 나 정도면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욕구에 반응해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지 망상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미움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 평가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망상이다. 망상이 넘치면 선입견이 된다.

비교의 목적은 인정욕구를 채워 안심하고 싶은 것이다. 비교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망상이다. 실감할 수도 없다. 비교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비교를 통해 안도감만을 갖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불만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에서 벗어나 내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게 방법이다. 자기 일에 집중하기 위한 순서가 있다. 먼저 눈을 감는다. 우리는 지나치게 바깥 세계에 신경을 쓴다. 마음은 뭔가를 보면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깥 대신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게 출발점이다. 다음에는 마음상태를 보아야 한다. 붓다의 팔정도가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한 8항목이다. 정념, 정정, 정정진…. 정념은 제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티(붓다가 생존할 당시 사용했던 고대 인도 언어인 팔리어(Pali)로 ‘알아차림’이라는 의미)다. 감각을 의식하고 언어로 확인하는 것이다. 정정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정진은 올바른 노력이다. 알아차리기와 집중을 계속하는 것이다. 먼저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시작한다고 선언한 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다. 집중하면 성과는 나온다. 몰두 자체가 가치가 있다.

과거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제대로 알아차리고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감각을 의식하는 것이다. 애들은 울다가 사탕을 주면 그친다. 어른도 그렇다. 불쾌한 생각이 들 때는 걷거나 목욕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응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이다. 기분 나쁜 사람과는 가급적 관계를 멀리하는 것이다.

경쟁이란 무엇일까? 경쟁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경쟁 역시 바라는 마음에서 생긴다. 경쟁은 단순한 쟁탈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더 우월하고 나아지고 싶은 탐욕이 있다. 인생의 발목을 잡는 요주의 리스트가 있다. 첫째는 쾌락으로 흘러가는 마음이고 둘째는 분노다. 분노가 있으면 머리가 복잡하고, 짜증이 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분노는 반응이다. 셋째, 무기력한 마음이다. 넷째,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이다. 마지막은 의심이다. 내가 졌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질투는 현재진행형이고 콤플렉스는 과거형이다. 세 가지 집착이 있다. 바라는 것을 얻고자 하는 집착,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손에 넣은 것을 계속 갖고 싶어 하는 집착, 하지만 잃어버린다. 고통 주는 것을 없애고 싶은 집착,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질투의 원인은 상대가 아니다. 자신이 잘났다면 질투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상대와 관련이 없다.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깨달음의 정의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도 사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그것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반응하지 말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반응이 일어날 때는 눈을 감고 호흡을 느끼면서 명상을 하든지 걸으라는 것이다. 난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가능한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줄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반응은 보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다.
  • 한근태 한근태 | - (현) 한스컨설팅 대표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 교수
    - 대우자동차 이사 IBS 컨설팅 그룹 상무
    -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kthan@ass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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