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中有訓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 ‘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승흥이래, 흥진이반”
왕자유(王子猷)는 산음에 살고 있었다. 밤에 큰 눈이 내렸다. 깨어나 방을 열어 술을 올리라 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새하얗기만 했다. 좌사의 초은시를 읊조리다 홀연히 섬계에 사는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생각났다. 곧 작은 배에 올라 그곳으로 향했다. 장차 문에 이르렀는데 앞으로 가지 않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왕자유는 말했다.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왔노라. 반드시 대안도를 보아야만 했는가?”
- 세설신어(世說新語)
그림 왼쪽 면에 적힌 글이다. 왕자유의 답 “승흥이래 흥진이반(乘興而行 興盡而反,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온다)”은 이후 유명한 구절로 널리 알려졌다. 그림은 눈이 가득 쌓인 섬계의 물가 대안도의 집 앞을 그리고 있다. 왕자유의 작은 배가 도달했지만 다시 돌아오려는 순간이다.
양기성(梁箕星), ‘섬계회도(剡溪回棹, 섬계에서 배를 돌리다)’,
조선시대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x29.4cm, 일본 야마토분가칸
욕심의 경계
시작할 때의 마음이 순수하고 신선했더라도 그 마음에 집착이 생기면 그것은 욕심이 되고 모든 상황이 사뭇 달라져간다. 어디부터 욕심인지 내 마음이 알아서 선을 그을 수 있으면 문제가 없을 테지만 그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눈 오는 밤 강을 홀로 가는 왕자유의 마음은 친구 대안도를 만나고 싶은 그리움뿐이며 그것은 밤에 배를 띄울 만큼 강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의 흥분이 눈 내리는 배 위에서 사무치다 사라졌는지, 감정으로 나섰지만 이성으로 판단해 흥을 가라앉혔는지 정밀한 내면은 알 수 없다. 다만 누구라도 ‘승흥이래 흥진이반’이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어안이 잠시 벙벙해지다가 왕자유의 대답에 감탄하게 된다. 왕자유는 자신의 마음이 욕심으로 넘어서는 그 지점에서 경계선을 그었고 그 너머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마음을 신선한 상태로 지켰다.
왕자유는 누구이고, 대안도는 누구인가
왕자유의 본명은 왕휘지(王徽之, ?∼387), 자유(子猷)는 그의 자(字)다. 동진(東晉)시대, 서예로 이름을 드날리고 서성(書聖)이라 불린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이다. 왕휘지도 글씨를 잘 썼으며 많은 일화를 남겼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는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출전을 둔 대나무 일화다. 왕자유가 남의 집에 잠시 거하게 됐을 때, 그 집 뜨락에 곧장 대나무를 옮겨 심게 했다. 사람들이 까닭을 물었더니 왕자유가 답했다. “어찌 하루인들 군자(此君)가 없을 수 있겠는가?” 왕자유의 답으로 중국뿐 아니라 조선시대에서 ‘차군(此君)’은 대나무의 별칭 혹은 애칭으로 통용됐다. 이 단어를 모르고서는 대나무와 관련된 어떤 시문도 해석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그렇지, 남의 집 뜰에 나무를 옮겨 심다니! 한갓 외물에 집착하는 그 모습을 의아하게 여겼다는 조선의 문인도 있다. 왕자유에게 대나무가 필요했던 것은 속(俗)된 마음을 단속하기 위해서라고 왕자유 자신이 설명했다.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왕자유는 알고 있었다. 수시로 일어나는 속된 생각과 과한 감정, 분노 혹은 욕심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나무는 그를 붙들어 주는 상징적인 무엇이었다.
대안도의 본명은 대규(戴逵, 326∼396), 안도(安道)는 그의 자다. 박식하고 문장에 능하며 서화를 모두 잘했다. 특별히 금(琴)을 잘 타서 당시 성명이 자자했고 성격이 곧았다. 늘그막에 섬계에 살았으며 저서로 <대규집> 9권이 전한다.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왕자유는
알고 있었다. 수시로 일어나는
속된 생각과 과한 감정, 분노 혹은
욕심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나무는 그를 붙들어 주는
상징적인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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