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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ential Cases in Books

“책을 그냥 읽기만 하면 천백번 읽더라도 읽지 않은 것과 같다”

서진영 | 164호 (2014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자기계발

 수원 화성을 축조한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는 후세가 다시 수원 화성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성곽의 설계도와 축조 과정 등을 기록해 책으로 남겼다. 그뿐만 아니다. 귀양지에서까지 부단히 책을 썼다. 그가 남긴 책만 모두 182 503권에 달한다. 매우 방대한 양이다. 그는 왜 이렇게 많은 책을 남겼을까. 다산은 배움을 좋아했다. 그래서 부단히 책을 읽었고 나름의 공부법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의 독특한 공부법은 중요한 내용을 찾아 베끼고 어원을 정확하게 파악하며 깊이 생각해서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다. 여기에다 한 가지 사항이 추가된다. 공부에는 근면함이 필요하다. 학업에서는 머리가 우수하고 민첩하며 재빠른 사람만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묵묵히 성실하게 배우기를 지속하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될 때가 더 많다. 급변하는 21세기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독서 등으로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다산의 공부법은 한번 되새겨볼 만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을 만든 사람.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을 집대성한 사람. 6 3녀의 자녀에서 4 2녀를 천연두로 잃은 후 더 이상 자신처럼 천연두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종두를 직접 실험하고 관찰해 의술서 <마과회통(麻科會通)>을 지은 사람. 바로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다.

 

기록하는 사람정약용

먼저 정약용의 작품인 수원 화성을 보면 3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아름답다. 이 성이 전쟁을 위한 성인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인지 헷갈릴 정도로 구석구석 자태를 자랑한다. 정약용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둘째, 조선 실학의 정수라고 볼 만큼 수원 화성()은 실용적이다. 정약용은 수원성을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만들고 싶었다. 화성 설계의 핵심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견고한 성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시설물과 장치를 설치했다. 성문 앞의 둥근 시설물인 옹성(瓮城)은 성문 앞에 세우는 둥근 구조의 이중성벽으로, 적이 곧바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 문을 직접 공격하지 못하도록 문 앞을 에워싼 벽을 세우고 한쪽 면만 뚫려 있으니 문 앞에 서는 순간 성 위의 3면에서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성곽에 설치된 총안인 총포 구멍도 매우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다. 3개의 총포 구멍 중 가운데 구멍은 아래쪽 사선으로 뚫려 있고 양쪽 구멍은 반듯하게 뚫려 있다. 사선으로 뚫려 있는 구멍은 성벽 가까이 있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고, 반듯하게 뚫려 있는 구멍은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총안이다. 당시 군주였던 정조는 화성 축조에 10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약용은 예상을 깨고 2 9개월 만에 성을 완공했다. 일손을 8분의 1로 줄이는 거중기(擧重機) 등 건설장비를 이용한 탁월한 공법으로 공사비를 4만 냥이나 아꼈다. 덕분에 정조는 화성 축조를 반대하는 무리의 공격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정약용이화성성역의궤를 남겼다는 점이다. 수원 화성의 박물관에 소장된 화성성역의궤는 수원 화성 축성에 대한 모든 과정을 기록한 정부의 공식 기록물이다. 축성에 대한 방대하고 세밀한 정보가 들어 있어 그 자체로 세계적인 기록물이다. 1794∼1796 2년에 걸친 축성 기간에 어떤 사람이 어느 부분을 만들고 인건비는 얼마를 받았으며 건축에 필요한 돌과 나무는 어디서 가져왔으며 못은 얼마나 쓰였는지까지 모두 세밀하게 기록돼 있다. 화성을 다시 만든다고 해도 화성성역의궤를 기본 자료로 삼아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자료다. 앞서 정약용이 종두를 직접 실험하고 관찰해 의술서 <마과회통(麻科會通)>을 썼다고 소개했다. 다산은 완전한 지식경영과 매뉴얼 경영을 18세기에 완성했다.지금 우리 조직에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제품에 대해 얼마만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가? 18세기 정약용을 보면 우리가 체질적으로 기록에 약하다고 하는 말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배움을 좋아한정약용

정약용은 아름다움의 심미안과 실용의 실학, 지식경영의 학문적 소양을 완전히 갖춘 조선의 르네상스맨이다. 그렇다면 궁금증은 오늘의 주제로 향한다. 과연 무엇이 이런 정약용을 만들었을까? 그 비결을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김병완 지음, 이랑, 2013)>에서 찾는다면배움을 좋아한 것인 호학(好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약용은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에서 공부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다 간 보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정약용이 쓴 책은 경집 88 250, 문집 30 87, 잡찬 64 166권 등 총 182 503권이다. 방대한 지적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정약용을 진심으로 아낀 이가 정조다. 정조와 정약용의 관계는 바람직한 군신관계이며 사제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정조가 정약용의 사부라는 점이다. 정약용은 경연에 참석해서 정조에게 주역을 배우고 싶었는데, ‘부친이 세상을 떠나 여묘살이를 하느라 주역 강의를 못 들은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정조를 학문적인 스승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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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진영sirh@centerworld.com

    - (현)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
    -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운영 - OBS 경인TV ‘서진영 박사의 CEO와 책’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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