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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현자, 허유와 소부

박태일 | 6호 (2008년 4월 Issue 1)
요임금이 이상적인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덕치로 이룬 태평성세의 치적 이외에 선양(禪讓)때문이기도 하다. 선양이란 임금이 생존시 자신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준다는 뜻으로 가장 현명한 사람에게 천하를 맡긴다는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를 맨 먼저 실천한 왕이 바로 요임금이었다.
 
요임금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약해지자 천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마음먹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 단주를 사랑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잘 다스릴 재목감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사로운 부자 관계보다는 천하를 다스리는 공적인 대의가 먼저였다. 후계자를 물색하던 요임금은 허유(許由)라는 현명한 은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 허유는 의(義)를 존중해 바른 자리가 아니면 앉지 않았고, 당치 않은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는 인물이었다.
 
요임금이 허유를 찾아가 부탁했다.
태양이 떴는데도 아직 횃불을 끄지 않는 것은 헛된 일이오. 선생 같은 현자가 있는데 덕 없는 내가 임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옳지 않소. 청컨대 천자의 자리를 받아주시오.”
 
허유가 사양하며 말했다.
뱁새는 넓은 숲 속에 집을 짓고 살지만 나뭇가지 몇 개면 충분하고, 두더지는 황하의 물을 마셔도 배만 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포인(疱人·음식 만드는 사람)이 제사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시축(尸祝·제사를 주관하는 제주)이 부엌으로 들어가지는 않는 법입니다.”
 
허유는 요임금을 피해 기산(箕山)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요임금은 다시 그를 찾아가 구주(九州)라도 맡아달라고 청했다. 허유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세상의 권세와 재물에 욕심이 없었던 허유는 그런 말을 들은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고 생각해 흐르는 영천(潁川) 강물에 귀를 씻었다. 때마침 소 한 마리를 앞세우고 지나가던 소부(巢父)가 이 모습을 보고 허유에게 물었다.
왜 강물에 귀를 씻고 계시오?”
요임금이 나를 찾아와 천하를 맡아 달라는구려. 이 말을 들은 내 귀가 더렵혀졌을까 하여 씻는 중이오.”
이 말을 듣자 소부는 큰소리로 껄껄 웃으며 허유를 나무랐다.
당신이 숨어산다는 소문이 퍼졌으니 그런 구질구질한 말을 듣는 게 아니오. 모름지기 은자란 애당초부터 은자라는 이름조차 밖에 알려지게 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오. 한데 당신은 은자라는 이름을 은근히 퍼뜨려 명성을 얻은 게 아니오?”
소부는 소를 몰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소부 영감, 소에게 물은 안 먹이고 어딜 올라가시오?”
그대의 귀를 씻은 구정물을 소에게 먹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그래서 상류로 가는 것이라오.”
 
천자의 자리를 자식이 아닌 최고의 현자에게 물려주려 했던 요임금, 요임금의 제의를 듣고 귀가 더러워졌다고 강물에 귀를 씻고 끝까지 천자가 되기를 거부했던 고결한 선비 허유, 이름을 슬며시 퍼뜨렸다고 허유를 꾸짖은 현자 소부. 이들의 전설은 물욕과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한치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한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필자는 연세대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대경제연구원 컨설팅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비즈니스 리더들이 알아야 할 교양 및 경제 경영 지식을 정리해 저서 <비즈니스 교양>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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