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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인류의 미래 밝히는 여성의 감수성

강신주 | 54호 (2010년 4월 Issue 1)


페미니즘에 새로운 깊이를 부여했다는 여성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 1932년 출생)를 아는가? 페미니즘(Feminism)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이겠지만 대부분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순종적인 여성과 달리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자기 입장을 피력하는 여성, 남자처럼 당당하게 음주와 흡연을 즐기며 중성적인 패션을 선호하는 여성, 혹은 결코 귀갓길을 서두르지 않고 자기 감정과 느낌에 솔직한 여성 등을 떠올릴 것 같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남성적 사회로부터 부당한 차별을 받는 여성의 삶을 폭로하며, 여성들에게도 남성과 마찬가지의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뤼스 이리가레이는 이러한 통상적인 페미니즘 이미지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다’고 보는 견해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리가레이는 여성이 남성과는 구별되는 존재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평등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폭력성에 주목한다. 평등이란 단어에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부정하는 논리를 숨기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리가레이에 따르면 남녀평등이라는 이념 속에서 평등이라는 잣대는 여전히 남성적일 수밖에 없다. 남성적인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여성이 자신을 만들어가면,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남성적 정체성을 내면화하게 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이리가레이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가 희미해지는 상황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여성의 몸은 병이나 거부 반응, 생체 조직의 죽음을 유발하지 않고 자기 안에 생명이 자라도록 관용하는 특수성을 지닌다. 불행히도 문화는 타자에 대해 존중하는 이 구조의 의미를 거의 뒤바꾸어놓았다. 문화는 모자(母子) 관계를 종교적 우상으로까지 맹목적으로 숭배하였으나, 이 관계가 나타내는 자기 안에서 타자를 관용하는 모델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 남성 위주 문화는 다른 성이 가져온 것을 사회에서 배제해버린다. 여성의 몸은 차이를 존중하는 반면, 가부장제 사회라는 거대한 몸은 차이를 배제하고 계급 서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 <나, 너, 우리: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
 
이물질이 들어오면, 유기체로서 우리 몸은 온갖 면역 체계를 동원해 그것을 제거하려고 한다. 감기 바이러스와 같은 작은 생명체가 침입해도 온몸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이리가레이가 주목한 것처럼 여성만이 겪을 수 있는 임신이라는 경험이다. 자궁 속 태아는 여성에게 우리 몸에 침입한 이물질과 유사하게 자신이 아닌 것, 즉 타자로 경험된다. 태아는 자신만의 고유한 체계를 가진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이런 타자와 10개월이나 공존한다. 타자와의 공존이 생물학적으로 확인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이 10개월 정도를 배 속에서 꿈틀대는 태아를 견디어내는 경험을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 혹은 차이를 견디어낼 수 있는 여성적 감수성이 길러진다고 이리가레이는 주장한다.
 
이리가레이는 여성적 몸, 그리고 여성적 감수성을 토대로 여성적 문화라는 새로운 이념을 모색하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 여성적 문화는 남성적 문화, 혹은 가부장적 문화가 차이를 배제하고 억압하려는 경향의 가장 반대편에 있다. 이리가레이가 확신하는 것처럼 여성적 문화란 차이를 견디는 문화, 타자를 포용하는 문화이다. 그래서 여성적 문화는 인류 문명의 희망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문화란 언어를 대표로 하는 상징 체계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여성적 문화를 추구했던 이리가레이는 심각한 난점에 직면한다. 그것은 여성에게는 자신의 감수성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부재하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언어는 남성의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가 차이를 배제하려는 남성적 몸으로부터 유래한 언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여성은 남성의 언어라는 외국어를 학습해 그것을 통해 자신을 표현해왔다.
 
여성의 담화는 남성을 주체로 지시하며 구체적인 무생물의 대상으로서의 세계는 타자의 우주에 속한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여성은 실제 환경과의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주체화하지는 못한다. 여성은 구체적인 현실의 체험을 위한 장소에 남아 있으나, 그것을 조직하는 문제는 타자에게 맡긴다.
- <나, 너, 우리: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
 
이리가레이는 여성의 담화가 자신의 경험과는 이질적인 남성의 담화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이 점에서 “여성은 구체적인 현실의 체험을 위한 장소에 남아 있으나, 그것을 조직하는 문제는 타자에게 맡긴다”는 그녀의 지적은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타자와 차이를 포용하는 여성적 경험이야말로 구체적인 현실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와 차이가 우글거리는 곳이 바로 현실이자 구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체험을 표현하는 데 있어, 여성은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남성의 담화를 통해서만 표현하도록 강제되어 있는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성의 담화가 논리적이고, 그래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삶의 중요한 대목은 대부분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애매한 것 아닐까?
 
탄생은 태어나지 않음과 태어남이 공존하는 경계를 거쳐야만 하고, 사랑도 사랑하지 않음과 사랑함이 공존하는 경계를 넘어서야만 하고, 죽음도 살아 있음과 살아 있지 않음이 공존하는 경계를 통과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성의 담화는 사랑에 망설이는 상대방에게 요구한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여성의 감수성은 현실이란 모순된 것의 공존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것은 여성이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 즉 타자와의 공존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리가레이가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담화, 혹은 여성적 언어를 만들려고 집요하게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노력을 단순히 여성만을 위한 언어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리가레이의 여성적 문화는 인류의 소망스러운 미래를 위한 문화, 그러니까 남성과 여성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보통 여성은 남성보다 수다스럽고, 혹은 잔소리를 많이 한다는 통념이 있다. 옳은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다 보면, 여성은 언어의 부적절함을 통감하게 된다. 그러니 다시 혹은 자세하게 자신의 말을 다듬어 표현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타자와의 차이를 포용하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상대방이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면 반복적으로 새로운 표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남자의 시선에서는 여성의 언어적 표현이 수다스러움이나 잔소리로 보일 수 있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잊지 말자. 타자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이 없다면, 새로운 단어를 찾아 집요하게 표현하려는 노력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타자와의 공존과 소통이 가능한 사회나 문명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소망이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의 감수성을 배워야만 하고, 여성이 자신의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윤리적 요구만은 아니다. 타자와의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연세대 철학과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망각과 자유: 장자 읽기의 즐거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장자 철학을 조명하고, 철학을 대중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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