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생방송을 하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고, 가족 여행이나 지인들과의 편안한 술자리도 희생해야 할 때가 많다. 사고가 나거나 몸이 아파도 마이크 앞에 서야 한다는 중압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진행자 배철수 씨는 20년째 마이크 앞에 서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생겨나는 방송가에서 ‘음악캠프’는 팝 음악 전문 프로그램으로는 유일하게 20년을 살아남았다. 1990년 3월 19일 첫 방송을 시작한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5월 17일 방송 7000회를 넘겼다. 청취자의 기호와 취향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만, 내일모레 예순을 바라보는 그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MBC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얼마 전 방송 7000회를 넘겼습니다. 20년째 단 한 번의 지각이나 펑크도 없었고, 방송을 위해 술 약속도 안 잡는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자기 관리가 철저하셨나요?
“제가 서른아홉에 결혼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년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산 편이죠. 특히 군대 가기 전에는 정말 히피처럼 살았어요. 눈 떠지면 일어나고, 졸리면 자고, 수업 듣다 날씨 좋으면 그냥 밖으로 나가고.(웃음) 사실 1990년 DJ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도 제가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오래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이고, 어떤 것에도 길들여지지 않으며, 구속받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굉장히 소심하고, 체제 순응적이고, 현실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더군요, 제가.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답이 나오더군요. 제가 달라진 게 아니라, 제가 제 자신을 잘 몰랐던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잘 모르면서 부모님한테 들은 대로, 학교에서 교육받은 대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살잖아요. 사실 다를 때가 더 많은데도 말이죠. 괜히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겠어요.
사람들이 젊은 시절에 더욱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젊었을 때 이것저것 해보다가 ‘나한테 이 일이 딱 맞네. 내가 이런 걸 좋아했네’라고 느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결국 저도 여러 일을 하다가 음악보다는 DJ가 제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안 셈이죠. DJ 하기 전에 전문 음악인으로 10년 넘게 일했는데, 마지막 5년 동안은 음악 하는 일이 행복하지 않았어요.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할 때면 호구지책으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어 괴로웠고요. DJ를 시작하고 나니 하루에 두 시간 동안 남의 음악을 듣는 일 자체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원래 사람들하고 커피숍이나 벤치에서 얘기하기를 좋아했거든요. 전국에 있는 청취자들과 얘기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일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습니다.”
작가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던데,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호칭의 격식도 없애신 건가요?
“연예계는 군기가 세고, 위계질서도 꽤 엄격합니다. 제가 1953년생인데, 이제는 어디를 가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그 호칭이 너무 싫습니다. 같이 일하는 스태프가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동료가 아니라 그 친구가 저를 모시는 상황이 되잖아요. 그게 싫어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오빠’가 좋지만 그건 그 친구들이 너무 어색해할 거고.(웃음)
방송하다 보면 프로듀서, 작가 등과 의견이 다를 때가 많죠. 그래서 저는 제가 젊은 친구들의 의견을 더 많이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우리 방송의 주 청취자들에게 맞추기 위해서만이 아니에요. 사실 라디오국 전체에서 저보다 나이 많은 분이 딱 한 명뿐입니다. 젊은 친구들에게는 제가 좀 어렵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제 주장만 내세우면 그 친구들이 ‘그건 아닌데요’라고 얘기하기가 어려워지죠. 그러다 보면 방송이 독선적으로 흐를 수 있어요. 모두에게 나쁜 결과죠.”
젊은 층의 행동 중 마음에 안 드는 점도 분명히 있을 텐데…
“세대 차이를 거의 못 느낍니다. 마음에 안 드는 행동도 별로 없고요. 제가 라디오를 20년째 합니다만, 제 방송의 주 청취 층은 언제나 20∼30대예요.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점심을 먹어도 주로 젊은 친구들과 먹고, TV도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굉장히 재미있어요.
가끔 제 또래들과 만나면, 친구들이 ‘요즘 TV 프로그램이 왜 그러냐. 애들이 나와서 밥 짓고 노는 게 뭐가 재미있다고. 그런 걸 왜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요. 저는 너무 답답하죠. 그 프로그램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얼핏 보고 나서 그런 말 하는 게 뻔히 보이니까요. 자세히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그 안에 인간관계의 역학이 다 담겨 있잖아요.
나이 드신 분들은 대체로 젊은 친구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요. 자신들도 분명히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말이죠.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 하지만 언제는 안 그랬나요. 오죽하면 그 옛날에도 벽에 그런 말을 써놨겠어요. 젊음의 본질은 똑같아요. 연애 방식만 해도 과거에는 편지를 썼고, 지금은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동일하잖습니까. 주변 환경만 좀 변했을 뿐이지, 사람의 사고 방식이나 생활 방식은 똑같아요.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 말도 똑같잖아요. 옛날 노인이나, 지금 노인이나.
문제는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거죠. 젊은 친구들하고 제대로 얘기해보면,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저는 이해가 되던데요.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에게 다가가야지, 저희가 가만히 있는데 그 친구들이 오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