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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 제대로 듣는 것도 기술이다

이종혁 | 31호 (2009년 4월 Issue 2)
프레젠테이션 제대로 듣는 법
설득의 기술이 집약적으로 표현되는 활동이 프레젠테이션이다.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주체보다도 듣는 쪽(주로 고객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수사(rhetoric)에서 기본이 되는 3가지 설득의 수단 개념을 응용해보겠다.
 
①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 파토스(pathos)
프레젠테이션은 ‘말하기’다. 무엇보다 수사의 기법이 중요하고, 수사의 대부분은 사실을 근거로 한다. 프레젠테이션 사안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을 때 자칫하면 감성에 호소하게 된다. 따라서 듣는 사람은 발표자가 사실을 말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②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 로고스(logos)
발표자는 내용을 사실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논거와 자료를 활용하려 한다. 이때 발표자가 알맹이 있는 자료를 갖고 현실적으로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③ 발표자를 정말 믿을 수 있는가? - 에토스(ethos)
발표하는 회사가 정말 경험이 있고 전문성을 갖췄는지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보면 대략 나타난다. 발표자가 논의하고 있는 내용이 정말 믿을 만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 신뢰성 있는 정보원의 자료를 사용하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발표 내용은 뒷전이고, 자신들의 신뢰도를 강조하기 위해 자사가 국내에서 혹은 세계에서 몇 위 회사인지를 알리는 데만 치중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프레젠테이션 잘 듣는 태도를 종합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파토스에 냉정하고, 로고스에 집중하고, 에토스에 주목하라!’ 뒤집어 말하면 ‘파토스에 현혹되고, 로고스에 졸고, 에토스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PR 프레젠테이션에서는 광고의 그것과 달리 발표자로부터 임팩트(impact)를 기대하기 전에 반드시 로고스, 즉 논리적으로 잘 설득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볼 때,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려면 도입부에서 뭔가 관심을 끌기 위한 호소로 시작해(파토스)→본론에서 논리적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로고스)→실제로 자신들이 정말 잘할 수 있는 능력과 인력, 각종 자원이 있는지 사실 그대로 밝히며(에토스)→최종적으로 호소하고(파토스) 발표를 마쳐야 한다. 그런데 파토스와 로고스를 모두 잘 다루는 발표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결론을 보자.
1. 도입부만 화려하고 결말이 없다면→실망
2. 논리적인 본론이 빠지고, 도입부와 결론부에 감성적 호소로 눈길 끄는 데만 집중하면→쇼(show)
3. 처음부터 끝까지 평이한 프레젠테이션은→졸음
4. 등락을 거듭하는 프레젠테이션은→가벼움
 
그런데 인하우스 입장에서는 빅 아이디어(big idea)도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성적 요소가 더 크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광고라면 몰라도 PR에서는 어떤 상황이기에 어떤 메시지로 어디에 조직이 위치해 공중을 설득해 나가야 하는지 그 논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 장소는 이러한 논쟁의 장이 돼야 한다. “오늘부터 이 브랜드의 마니아가 되겠다”고 외치는 감성적 호소보다는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이런 논쟁의 장이라면 필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프레젠테이션 심사에 들어갈 것 같다.
 
프레젠테이션 제대로 하는 법
PR 입찰의 중심에는 늘 프레젠테이션 이야기가 있다. 제안서의 평가도 결국 지나고 보면 열정과 정성이 관건이다. 술수와 기교는 언젠가 바닥을 드러내게 돼 있다. 관리자들이 정성을 들여 충분한 인풋(input)을 주고 실무자들의 손발로 만들어낸 소중한 자료라면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이 될 수 있다.
 
필자가 광고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참고할 만한 몇 가지 팁을 정리해봤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프레젠테이션이라도 원칙만 지키면 승리할 수 있다.
 
1. 너무 잘 알려진 사례는 인용하지 마라(요즘으로 치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이야기).
2. 발표자의 복장 등 외형적 이미지와 명성이 신뢰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3. ‘시간이 짧다’는 말을 할 시간에 ‘효과적으로 시간을 잘 배분해 발표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진행하라.
4. ‘그냥 넘어가죠’ ‘책자 참조하세요’ 같은 말들은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데, 사람들은 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프레젠테이션에 활용할 페이지만으로 깔끔하게 프레젠테이션 하라.
5. 리모컨이나 포인터는 지휘봉이 아니다. 보이지 않게 써라.
6. 너무 전문적으로 말하거나 심지어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말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자신만의 색깔이 더 경쟁력 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자신의 색깔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지, 절대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좋은 프레젠터란 가르치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육성해야 한다.
7. 누구나 알고 있는 회사라면 아까운 시간에 회사 소개로 시간 낭비하지 마라. 회사 이름만으로는 절대 프레젠테이션에서 승리할 수 없다.
8. 속어 사용은 자제하라.
9. 어려운 이론이나 복잡한 조사 데이터는 쉽게 풀어 써라.
10. 그 자리에 참석하지도 않은 전문가나 유명인에 의존하려 하지 말고, 실제 자기 인력으로 승부하라.
11. 프레젠테이션 장소는 OJT(교육 훈련) 장소가 아니다.
12. 도입부나 서론은 임팩트를 극대화하되, 시간은 최소화하라.
13. 프레젠테이션 과정에서 정치적 쟁점을 섣부르게 사례로 활용하지 마라.
14.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인원 참석은 자제하라.
15. 프레젠테이션 전후에 겸손과 겸양의 덕을 보여주라. 팔짱을 끼고 뒷짐 진 채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는 관리자는 참석하면 안 된다.
16. 너무 화려한 포장이나 이미지는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입찰을 따기 위한 술수를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필자는 수많은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해봤으며, 경쟁에서 승리도 했고 그만큼 떨어져보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프레젠테이션을 평가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보자면, 프레젠테이션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만큼 어색한 일도 없다.
 
프레젠테이션은 기획서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개발하는 것이지, 백지 위에 스토리를 써가는 것이 아니다. 전략 기획이 없는 프레젠테이션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렇게 일을 가져와봐야 실행에서 딱 막히게 된다. 프레젠테이션은 일을 따기 위한 게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강한 프레젠터는 햇살뿐 아니라 비바람과 추위도 경험하고 열리는 열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현재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PR 연구와 경험을 나누기 위해 블로그 ‘Affirmation_www.jonghyuk.org’를 운영하고 있다. PR을 통해 현실 비판적 사고에 근거한 대안 있는 토론이 활성화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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