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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삶을 이해하는 원천

이태진 | 3호 (2008년 2월 Issue 2)
지난해 여름, ‘인문학의 위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 경영대 학장단과 만났다. 그 때 그분들은 위기는 정작 경영대학 쪽에 있다고 말해 인문대 학장단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경영대학 4년제를 졸업한 한국 최고경영자(CEO)들이 일반대학 4년을 마치고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거친 선진국 CEO를 당할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MBA 과정 육성의 시급성을 일깨우는 화두였지만 최고 인기 대학인 경영대학 측이 이런 고민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인문대학 교수들은 인문학 위기란 표현에 동의하기를 꺼린다. 인문학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을지언정 인문학 자체가 위기란 말은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세상이 인문학을 푸대접해 위기가 초래되었을지언정 인문학 자체는 존망의 위기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비판도 경청할 가치가 충분한 것이지만, 인문학자들이 그동안 세상과의 대화가 소홀했던 점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시쳇말로 인문학자들이 자가 선전을 제대로 하지 않아 활용도가 떨어져 인문대학 출신이 취직이 잘 안 되는 ‘위기’는 부정하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인문학은 세상을 상대로 조금만 홍보해도 인기를 끌 수 있을뿐더러 세상에 대한 기여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필자는 그것을 서울대학교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AFP)을 통해 직접 경험했다.
 
2007년 9월에 이 과정을 처음 열 때 나는 두 가지 상념 사이에서 마음 조렸다. 하나는 광복 후 지금까지 부지런히 역량을 축적한 한국 인문학이 왜 세상에 대해 할 얘기가 없겠느냐? 다른 하나는 과연 준비한 강의들이 세속에 시달린 경영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다행히 전자의 자신감이 후자의 조바심을 이겨냈다. 40명의 수강생들은 17주간 30개의 강의를 모두 경청했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우리에게 끝없이 고마워했다. 강사들이 수강생들의 구미에 맞게 내용을 꾸민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순수한 인문학 강의에 더 많은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칸트 순수이성 비판에서, 인상파와 큐비즘의 내력에서, 조선 성리학의 자연주의에서, 알파벳의 기원에서, 박지원의 열하의 감흥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그들은 인문학을 연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인문학 체험의 시간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각기의 경영의 세계에서 한껏 음미하는 체험의 시간이었다. 밤낮 간부회의에서 관리와 실적을 따져온 그들이었던 만큼 순수 학문 세계의 화두와 해석의 방식을 접하며 가을 날씨 같은 청량감을 율섦� 것이 아닌가 싶다.
 
어느 수료생은 아침 간부회의 때, 어제 들은 강의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회의를 대신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간부들이 자신을 달리 보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쌍방향 통신이 이루어져 오히려 경영 실적이 오르더라고 자랑했다. 중국 열하(지금의 하북성 승덕) 탐방 때, 두어 분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앞으로 신입 사원 채용에서 인문대 출신을 더 많이 뽑아야겠다고 진지하게 고백했다. 나는 여기서 인문학의 ‘위기’가 이미 사라진 것을 느꼈다.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경영의 정답을 인문학에서 찾으려는 경영인이 있다면 나는 그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은 삶의 가치, 인간관계의 본질,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도리, 인류 공존을 위해 서로 잊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원리와 경험의 사례로서 성찰을 되풀이 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그간 과학기술, 경제학, 경영학에만 매달려 이 원천을 외면함으로써 우리의 한계를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서울대 인문학과정은 이 한계를 걷어내고자 에라스무스의 명구 ‘원천으로(Ad Fontes)’를 구호로 택해 ‘AFP’란 애칭을 붙였다. 인문학은 곧 경영의 필수과목으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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