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술주정뱅이가 되기 쉽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증오하며 자라온 딸은 신기하리만큼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려 폭력적인 남편을 선택할 비극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된다. 혹독한 시어머니를 만나 평생 울고 지낸 며느리가 다시 더 혹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일은 흔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거의 좋지 못한 경험과 비극적 환경이 좋은 교훈이 돼 반드시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경에 지배되어 배운 대로 처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가 우리를 삼키고 실패가 우리를 부서뜨린 경우다.
나쁜 상사가 또다시 나쁜 상사를 키운다
마찬가지로 조직의 권위주의와 상사의 횡포에 시달리다 보면 직원들은 권위주의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그때 구성원들은 항상 ‘누가 보스야?’ 라고 묻게 된다. 그리고 왕초의 견해에 따른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자신을 관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나쁜 고참이 나쁜 후배를 만들고, 나쁜 상사가 또다시 나쁜 관리자를 양산해 내는 학습의 법칙이 우리 일상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나쁜 상사가 정말 나쁜 이유는 그 사람이 우리의 정신과 행동에 그의 나쁜 점의 일부를 복제해 주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있다. 냉정한 상사가 우리 위에 군림하던 것을 기억해 ‘내가 저 자리에 가면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보스가 되어 그 자리에 서면 그 냉정함을 저도 모르게 따르게 되고, 가혹한 상사를 무서워하던 것을 기억해 그 가혹함의 효율성을 믿게 된다.
반면에 상사가 너무 부드러우면 종종 그 사람을 무시하려 했던 마음을 기억하고, 상사가 잘해 주면 편안하려고 했던 것을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신이 상사가 되었을 때 부하 직원의 취향과 재능을 잘 활용하고 배려하는 리더가 되는 대신 자기도 모르게 ‘영악하고, 속일 수 없고, 직위의 권력을 보여 주고 싶어 안달하는’ 권위주의적 보스가 된다.
좋은 상사가 그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에게 역할 모델이 되어 주듯이 치사하고 독한 상사 역시 나쁜 본보기로 남게 된다. 나쁜 상사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문화가 그 구성원들을 구속하듯이 나쁜 상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직의 피 속으로 스며든다.
조직에 있는 한 언젠가 누군가의 상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의 부하 직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좋은 상사가 되려면 나쁜 상사처럼 되지 않겠다는 분명한 삶의 자세를 확립하고, 힘들던 생활을 부하 직원에게 되돌리지 않으려는 선한 용기로 무장해야 한다. 결국 다른 사람의 실패와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들을 반복하게 되고 그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오직 지난 일들로부터 교훈과 배움을 얻은 자 만이 더 높은 차원의 배움으로 향해 갈 수 있다. 우리는 배움을 통해 더 높은 배움으로 나아간다. 나는 이것을 ‘선한 성장’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