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골자로 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안에 대한 여러 우려가 제기됐지만 특히 “지금도 상사 눈치가 보여 연차를 다 못 쓰는데 장기 휴가는 실효성이 없다”면서 근로시간을 적립했다가 나중에 몰아 쉬게 한다는 내용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MZ세대 직장인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직장인 금쪽이’는 여전히 법정 연차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독자들의 사연을 종합해 재구성했습니다. 직급 불문, 일과 쉼의 균형을 모색하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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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김 매니저(30) 소비자 회사 전략/기획팀
작년 초, 새로운 직장으로 옮겼습니다. 더 나은 경력과 보상을 찾아 택한 도전인 만큼 이직을 후회 없는 결정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 1년간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헤매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을 거치면서 지금은 이따금씩 성취감도 느끼고 일에 재미도 붙여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회사에는 전 회사에 없었던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연차를 며칠씩 붙여 쓰면 상사가 노골적으로 눈치를 준다는 겁니다. 회사 전체의 문화인 건지 저희 팀만의 문제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3일 이상 연이어 휴가를 내려고 하면 팀장이 꼬치꼬치 사유를 캐묻습니다. 팀원들도 팀장 기분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조하면서 젊은 직원들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합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다들 웬만해서는 반차만 내거나 하루 이틀만 쉬고 제자리로 복귀합니다.
전산상에 휴가 사유는 쓰지 않아도 되는 게 회사 방침입니다. 그렇지만 매번 결재를 올릴 때마다 팀장이 “무슨 일 있냐” “지난번에도 어디 가지 않았냐” “요새 안 바쁘냐”면서 승인해주기 싫은 티를 냅니다. 개인적인 사유라 얼버무리거나 말끝을 흐리면 “면접 보러 다니는 거 아니냐”며 업무에 대한 몰입이나 충성도를 의심합니다. 한 번은 금요일과 월요일에 연차를 내고 나흘간 남자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팀장과 사수가 “누구랑 어디 좋은 데 가냐”고 연신 묻는 통에 이실직고했다가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연차를 쓸 때마다 “또 남친이랑 놀러 가냐”고 팀원들이 한마디씩 거들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적당한 거짓말로 둘러댔어야 했는데 미숙했던 제 대처에 화가 나면서도 남의 휴가 사유에 다들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작년에는 이직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팀에서 나이도 어린 편이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하루 이틀 쉬는 정도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전 회사에서는 일주일 휴가를 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게 당연시됐기에 불만은 컸지만 일단 새 회사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연말까지 법정 연차 휴가도 다 소진하지 못했습니다. 저만 이런 게 아니라 다른 팀원들 처지도 비슷합니다.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으면 친구들은 아직도 그런 회사가 있냐고, 직장인의 권리이니 무조건 연차는 다 쓰고 통보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새 직장에서 경력이나 평판도 잘 관리하고 싶고 다른 팀원들이라고 안 쉬고 싶은 건 아닐 텐데 저만 유별나게 행동하면 ‘발칙한 요즘 MZ세대’로 뒷담화 대상이 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일만큼이나 휴식이 중요한데 장기 여행을 떠나 기분 전환이나 재충전을 할 기회가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이런 삶을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일은 마음에 드는데 휴가 때문에 이직하자마자 1년 만에 또다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는 게 책임감 있는 태도인 건지도 모르겠고 답답할 따름입니다.
김명희cavabien1202@icloud.com
인피니티코칭 대표
필자는 독일 뮌헨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심리학 석사, 고려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고려대, 삼성경제연구소,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강의와 연구 업무를 수행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코칭 리더십, 정서 지능, 성장 마인드세트, 커뮤니케이션, 다양성 관리, 조직 변화 등이다.
비즈니스 교육·훈련 기관 씨앤에이엑스퍼트(C&A EXPERT)의 대표이자 성균관대 경영학부 겸임교수다. 감정 코칭 전문가로서 직장 내 감정 관리 및 소통 기술에 대해 CEO와 임원, 팀장 및 팀원을 대상으로 컨설팅과 교육을 진행한다. 저서로는 「감정 관리도 실력입니다」 「감정에 휘둘리는 아이 감정을 다스리는 아이」 「제가 겉으론 웃고 있지만요」 「서른살 감정공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