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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타인의 취향

김현진 | 292호 (2020년 3월 Issue 1)

넷플릭스는 2006∼2009년,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 ‘시네매치’의 품질을 10% 개선하는 팀에게 상금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주는 ‘넷플릭스 프라이즈’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800여 명에 이르는 신규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등 데이터 알고리즘의 비약적 성장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2015년 콜린스사전이 ‘Binge-watch(몰아보기)’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는 등 이른바 ‘넷플릭스 신드롬’이 이어지게 된 데는 시청 패턴과 선호도를 찰떡같이 추적하는 이 회사의 초개인화 서비스가 기여한 바 큽니다.

코리 바커 브래들리대 교수는 저서 『넷플릭스의 시대』에서 밀레니얼세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참가자들이 넷플릭스를 주로 ‘주어(subject)’로 소개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다수의 소비자는 “넷플릭스는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더 많이 사용할수록 넷플릭스는 나에 대해 더 많이 학습한다”고 ‘증언’했습니다. “내가 넷플릭스를 본다”를 넘어서 “넷플릭스가 내게 어떤 혜택을 제공한다”고 표현하는 점, 더 많이 이용할수록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점이 초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에서 느껴지는 친밀도를 표현한다는 해석입니다. 빅데이터와 AI 기술로 고도화되고 있는 추천 알고리즘은 점점 소비자 본인도 잘 인지하지 못했던 소수 취향까지 족집게처럼 짚어내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넷플릭스 채널과 아마존 서점을 탐색하면서 얼굴만 보고도 내가 원하는 걸 먼저 꺼내주던 30년 단골 가게 주인 같은 편안함과 배려심을 느낍니다.

이처럼 IT를 활용한 서비스 영역에서 초개인화는 각 기업의 경쟁력과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잣대로까지 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비 투자 등의 이유로 지금까지 보수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제조업에서도 초개인화를 내세운 혁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설계-생산-판매라는 가치사슬을 100여 년간 이어왔던 완성차 업계가 대표적입니다.

장영재 카이스트 교수는 이번 호 기고문에서 ‘나만의 차’를 찾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만한 ‘대량 개인화(mass-individualization)’ 생산 시스템을 소개합니다. 앱스토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앱을 다운받아 맞춤형 기기로 만드는 스마트폰처럼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원하는 사양을 골라 주문하면 며칠 만에 취향 저격 차량을 배달해주는 비즈니스 모델, ‘앱 카’가 카이스트팀이 연구 중인 초개인화 제조 플랫폼입니다.

광고 회사 ‘사치 & 사치’의 케빈 로버츠 회장이 “마케팅은 죽었다”는 말로 기업 주도의 ‘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의 종말을 선언한 지 약 8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유튜브는 한 가지 동영상 광고를 기반으로 하되 소비자들의 소소한 취향과 삶의 맥락에 맞춰 광고 제목, 이미지, 가격 문구, 클릭 유도 문구 등을 달리해 제작하는 광고 상품, ‘디렉터 믹스’까지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초개인화 서비스의 성패는 역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천착하고 소비의 맥락을 읽는 힘, 즉 ‘타인의 취향’을 해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시켜 보시길 바랍니다.

한편 이번 호 DBR은 창간 12주년을 맞아 ‘패러다임 전환 시대, 차세대 리더십’을 조망했습니다. 한때 우리 경제를 일궜던 거목들이 최근 잇따라 영면하면서 한국 현대 기업사에서 유례없는 리더십의 교체가 이뤄지는 때, 차세대 리더들이 견지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짚었습니다. 호기심에 다시 열어본 DBR 창간 1주년 기념호에서 초대 DBR 편집장은 “처음 창간 계획을 내놓았을 때 많은 분이 도박이라 했다. 정보를 넘어선 지식을 담은 매체를 만들겠다는 꿈은 꿈으로 그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고 썼습니다. 지난 12년간 꿈을 현실로 이끌어주신 독자 여러분의 지지는 창간 기념 SNS 이벤트를 통해 접수된 사진들을 통해서도 절절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DBR도 독자 여러분들의 ‘취향’을 읽는 다양한 노력으로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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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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