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논어』 첫 구절의 궁극적인 신비는, 배운다는 일의 호소력을 다름 아닌 그것이 유발하는 기쁨에서 찾았다는 데 있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돈이 되지 않는가”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존경받지 않는가”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미남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대신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배움이 가져다주는 효용 때문에 지겨운 공부를 참아가며 해온 많은 이에게 이 언명은 놀랍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한때 배움의 기쁨을 안내하던 『논어』의 첫 구절은 과거시험 합격을 위해 외워야 하는 대상이 됐으며, 모범답안과 함께 돌아다니는 신세가 됐고, 결국에 가서 배움의 희열을 잃는 과정에 일조하게 됐다. 세속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은 배움의 기쁨을 설파하던 텍스트가 세속적 성공의 필수과목이 된 것이다.
편집자주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추석 연휴를 뜨겁게 달구는 등 그동안 리듬감과 유머, 해학이 어우러진 글을 선보여온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논어』 해설에 나섭니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이 담긴 최고의 고전 『논어』에 대한 김영민 교수의 창조적 해석은 경영자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줍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 해설 1: 학(學)이란 무엇인가 『논어』를 여는 단어, ‘학’(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子曰)라는 표지를 뺀다면 현행 『논어』의 첫 글자는 학(學, 배우다)이다. 『논어』와 같은 고전에서 제일 앞에 오는 단어라니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실로, 『논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 중 한 사람인 윤재근은 “공자(孔子)는 왜 『논어』 맨 앞에 학이(學而)란 말을 던져놓았을까? 이 학(學) 뒤에 목적어로 유자(有子)의 효제(孝悌)를 두어도 되고, 증자(曾子)의 삼성(三省)을 두어도 된다는 뜻은 아닌지 살아가면서 곱씹어보게 된다” 11 윤재근, (사람인가를 묻는) 『논어』 1, 동학사, 2004, 49쪽
닫기라고 자문자답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