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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vation Insight

어렵다고 연구비 줄인 기업, 3년 후 성과 가장 나빴다

안준모 | 245호 (2018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술혁신을 위한 기업의 연구개발은 단기간에 성과를 창출하기 힘들다. 기업 입장에선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경기 침체기에는 기술혁신을 위한 투자를 축소할 수도, 확대할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기에 전략적으로 기술혁신을 감행한 기업들은 그만큼 경기회복 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기술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효과적인 기술혁신을 달성할 수 있다. 자사의 비핵심 기술을 라이선싱해 추가적인 자원을 확보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모색해 중장기 기술 개발에 나선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업체 FIAT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꼭 경기침체기가 아니더라도 혁신이 기업 성장에 필수가 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도 고려해 볼 수 있는 대안이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업들은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곤 한다.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은 단기간에 성과를 창출하기 힘들기에 비용으로 생각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 외환위기 당시 많은 한국 기업이 사내 연구소를 폐쇄하거나 축소했다. 이는 산업인력 공급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외환위기 전에는 이공계 대학 진학을 위한 이과 학생들이 넘쳐났지만 연구개발 부서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이공계 실직자들이 증가하면서 이공계 학생들이 문과로 전과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이 경기침체기를 극복하는 올바른 전략일까? 허리띠를 졸라매는 감축 일변도의 전략은 기업이 직면한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됐을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인 측면에서도 기업에 도움이 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autonomous vehicle), 맞춤 의학(personalized medicine), 적층제조(additive manufacturing)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용어들이 회자되고 있는 시대에선 기술 혁신을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 경기침체와 기업 성장 둔화를 이유로 무턱대고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거나 회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성장이 정체된 시기에도 연구개발에 투자해 기업 혁신을 달성할 수 있는 대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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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세 가지 전략들

기업은 다음의 세 가지 기술혁신 전략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기술혁신을 포함, 가능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긴축정책, 내부 혁신투자를 지속하는 닫힌 혁신전략,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혁신자원을 효과적으로 취사선택하는 열린 혁신전략 등이다.

필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University of Cambridge)의 민셸(Minshall) 교수, 모타라(Mortara) 박사와 함께 영국혁신조사 데이터(UK Community Innovation Survey)를 바탕으로 기업의 기술혁신성향을 분석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전후로 한 약 9년간의 영국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의 전략이 거의 비슷한 빈도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전략 1 긴축 정책 (austerity plan) - 허리띠를 졸라매자

긴축정책은 기업이 당면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더 나아가 인원 감축까지 하면서 자금에 대한 (일시적인)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전략은 직관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쉬우며 이행하기도 용이한 접근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이 최우선 당면 과제이기 때문에 당장의 생존 이슈와 거리가 있는 내부 연구개발에 대해 투자를 줄일 수 있고, 이러한 접근법은 기업이 가진 한정된 자원을 단기대응을 위해 재분배(re-allocation)하는 최적화 과정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관찰된 이러한 유형의 영국 기업들은 내부 연구개발 투자를 비롯한 모든 유형의 기술혁신 활동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전공 연구 인력을 포함, 전반적인 인원 감축도 단행했다. 이탈리아국립연구회(National Research Council)의 연구국장(Research Director)이자 영국 버벡대 교수인 아키부기(Archibugi) 연구팀이 2008년 전후의 영국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2008년 영국 전체의 혁신투자액이 2006년과 비교했을 때 약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상당수의 기업이 긴축정책을 채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긴축 일변도의 전략은 몇 가지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이슈는 ‘회복력(resilence power)’이다. 어떤 경기침체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기 때문에 기업은 경기침체가 끝난 후도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 막상 경기가 회복됐을 때, 연구개발 긴축정책으로 인해 기업의 혁신역량(innovation capability)이 심각한 수준으로 저해됐다면 다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이로 인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다.

경제위기 3년 후 기업 매출액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살펴보면 회복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 데이터 분석에서도 긴축정책을 실시한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가 세 그룹 중 가장 저조했다. [표 1]에 나타나 있듯 긴축정책을 펼쳤던 기업들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내부혁신을 한 기업과 외부혁신을 한 기업은 각각 242%, 272% 성장했다.



이러한 결과는 과거 경기침체 시 긴축정책을 펼쳤던 많은 기업 사례에서도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샤프나 히타치, 소니는 연구개발 투자액을 평균 31% 감축했는데, 이로 인해 성장 회복력을 잃어 한국에 디스플레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1990년대 초반 미국의 경기침체기 동안 연구개발 투자액을 감축한 GM과 크라이슬러도 시장 장악력을 잃어 도요타나 혼다 같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에 안방을 내줬다.

전략 2 내부 혁신 - 기술투자의 끈을 놓지 않는다

기업들은 경기침체라는 외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는데, 기업 내부의 기술투자를 지속하는 닫힌(closed) 혁신전략이 그중 하나다. 여기서 닫힌 전략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러한 기업들이 보인 독특한 대응방식에 기인한다. 필자의 분석에서 관찰된 이러한 유형의 기업들은 내부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확대했지만 기술혁신에 필요한 정보를 외부에서 얻는 외부 탐색(external search) 활동은 줄였으며 외부 협력은 거의 변화가 없거나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이러한 전략을 취한 기업들이 전체 종업원 수는 줄였지만 오히려 과학기술 전공 연구 인력은 늘렸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은 경기침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내부 연구개발 분야를 기업의 핵심 역량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기업들을 ‘시류에 저항한다(swimming against the tide)’는 영어속담에 빗대기도 한다. 아키부기 교수팀의 연구에서도 상당한 수의 혁신기업들이 경기침체 기간 동안 기술혁신 투자를 오히려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업들은 대기업들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물론 사내유보금 등 재정 여건이 좋은 대기업들이 어려운 경기침체기에 기술혁신 투자를 늘이는 것이 더 쉽겠지만 흥미롭게도 업력(firm age)이 8년 이하인, 이른바 혁신형 가젤기업(고성장을 보이는 강소기업)들도 경기침체 기간에 기술혁신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슘페터(Schumpeter)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경제침체기에 일어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 일부 기업들이 긴축정책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잃는 동안 새로운 혁신형 기업들이 등장해 빠르게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기술혁신 투자에 미치는 요인을 분석해 봐도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 경기침체기 전에는 기업의 크기(예: 종업원 수)나 경제적 성과(예: 매출액) 같은 지표들이 기술혁신 투자금액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경기침체기 중에는 이러한 지표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내부 연구개발 부서(internal R&D department)를 가지고 있는가가 경기침체기 중의 기업의 기술혁신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첫 번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들이 반드시 대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설립되지 얼마 되지 않은 기업일지라도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시류에 역행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 크게 보면 경기침체가 기업들의 시장 영향력을 재편하는 ‘창조적 파괴’를 가져오는 것이며, 작은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고성장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이다.

두 번째 중요한 시사점은 앞서 언급한 ‘회복력’이다. 내부 연구개발 부서 존재 여부가 경기침체기의 기술혁신 투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내부 연구개발이 회복력을 키우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는 점을 의미한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경기침체기에 내부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한 기업들은 동기간 긴축정책을 펼친 기업들보다 경기침체 후 2.4배 이상의 매출액 증가를 보였다. 내부 연구개발 확대가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효과적인 포석이었던 것이다.

2008년 이후 샤프와 히타치, 소니가 디스플레이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줄였을 때 LG와 삼성은 연구개발을 각각 119%와 37% 늘였고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이 경기침체 후 글로벌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되는 계기가 됐다. 아사히맥주도 19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기 극복을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해 슈퍼드라이(Super Dry)라고 하는 히트 상품을 출시함으로써 시장점유율을 한층 끌어올린 바 있다.

전략 3 외부 협력 - 효과적인 취사선택(取捨選擇)

내부 연구개발 투자 확대만이 경기침체 극복의 해법은 아니다. 제3의 전략으로서 외부의 혁신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전략도 있다. 필자의 데이터 분석에서 관찰된 이러한 유형의 기업들은 경기침체기 동안 외부 기관들과 기술혁신을 위해 활발하게 협력했다. 이러한 전략을 택한 기업들은 원청업체나 하청업체처럼 동일한 가치사슬(value chain) 내의 기업들과 협력하기보다는 대학이나 연구소, 경쟁기업처럼 다른 가치사슬에 위치한 외부 기관들과 협력했다. 또한, 아예 다른 환경에 있는 외국 기관들과 국제협력을 활발히 했다는 점도 이들 기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이 유형의 기업들은 경기침체기 이후 가장 많은 매출액 증가를 달성했다. 긴축정책을 택한 기업들과 비교하면 매출액 증가가 거의 3배에 달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이들의 전략이 유효했을까?

첫째, 빼기 전략과 네트워킹을 통한 보유효과(retention effects)다. 경기침체기가 아니더라도 모든 기술 개발을 내부적으로 개발하는 전략은 아주 효율적이라고 볼 수 없는데, 자원 배분에 제약이 가해지는 경기침체기에 이러한 비효율성이 가중될 수 있다. 그 때문에 핵심 역량을 제외한 일부 영역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하는데 너무 과감한 포기는 회복력 저하 등의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빼기 전략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일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부 혁신자원들을 외부 협력을 통해 곁에 두는 보유전략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람쥐는 생존여건이 가혹해지는 겨울을 극복하기 위해 겨울잠을 자게 되는데, 이때 겨울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방을 축적하지 않고, 외부 식량창고에 도토리를 저장해 둔 뒤 배가 고플 때 깨서 저장해둔 도토리를 먹는다. 기업의 경기침체 극복 전략도 마찬가지다. 경기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 스스로 어느 정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동시에 필요한 혁신자원을 외부에서 조달하기도 함으로써 협력 파트너의 혁신자원을 효과적으로 레버리지(leverage)하는 것도 나중을 도모하기 위한 효과적인 린(lean) 전략이 될 수 있다.

둘째, 외부 협력은 새로운 유형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게 해준다. 기업이 어느 정도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내부 연구개발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경기침체기에 일시적으로 투자를 줄이더라도 기존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시장을 회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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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사업영역으로의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면 연구개발을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경기침체기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요구되는 비효율적 전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유형의 기술일수록 외부 파트너의 것을 활용하는 것이 경기침체 후 성장 모멘텀(growth momentum)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여러 가지 외부 협력이 경기침체 후 매출액 증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는데 여러 가지 외부 협력 유형 중에서도 가치사슬 밖, 그리고 국제협력이 매출액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했다. 통상 원청·하청업체와의 협력이 기존 공정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반면 대학이나 연구소, 경쟁기업 등 가치사슬 밖에 있는 파트너와 협력이 새로운 지식탐색에 효과적이다. 또 국제협력도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의 지식이나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경기침체 후의 회복력 축적을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셋째, 외부 협력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금융위기 같은 어려운 시기에 기업들은 대부분 연구개발 투자를 축소한다. 기술혁신을 위한 투자가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단기 부채 같은 역할을 한다는 부정적 인식에서다. 그러나 외부 파트너에게 비핵심 기술을 라이선싱함으로써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기업이 보유한 모든 지식재산권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업의 핵심 상품과 직결되지 않는다면 다른 기업에 이전에서 라이선스 수입을 올리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특허의 경우 출원은 물론 특허권 유지에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경기침체기에는 특허 유지비용 축소 차원에서라도 외부 라이선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FIAT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폐쇄적인 기술혁신을 추진하는 기업이었다. 대부분의 기술을 기업 내 중앙연구소라 할 수 있는 CRF(Centro Ricerche Fiat)에서 자체 개발했는데 FIAT와 계열사, 일부 하청업체만이 공유할 뿐 가치사슬 밖에 있는 외부 파트너에게 라이선싱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연히 특허 등의 지식재산권도 자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했다.

1992∼1993년 세계 자동차 업계에 위기가 찾아오면서 FIAT도 큰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수요가 20∼30% 줄어들었고, 특히 FIAT는 국내 시장의 43%, 유럽시장의 12%가 줄어드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FIAT그룹 전체에서 1만2000명의 종업원을 감원해야 하는 위기를 맞게 됐고 당연히 그룹 중앙연구소인 CRF도 큰 위기에 봉착했다. 이 같은 위기를 CRF는 무조건적인 긴축정책보다 효과적인 외부 협력 정책을 펼침으로써 슬기롭게 극복했는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세부 전략이 유효했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CRF는 자체 기술의 외부 라이선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본사의 자금난으로 연구개발 재원 확보가 시급했던 CRF는 보유기술을 외부로 이전하는 기술 라이선싱으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렇다고 내부 기술을 무작정 판매하는 소모적인 라이선싱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기술이 현재는 물론 미래에 필요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인지를 먼저 판단했다. 이를 전담하는 부서를 별도로 뒀다. 이 같은 효과적 취사선택(gate keeping)을 통해 최소한의 핵심 기술을 보호하고 비핵심 기술을 외부로 라이선싱함으로써 부가적인 이익을 창출했다. 이에 따라 1995년 약 400건에 머물렀던 외부 기술 이전이 2003년에는 약 7배 증가한 2700건에 이르게 됐고, 결과적으로 CRF가 연구개발을 위해 모그룹 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정도도 줄어들었다.

둘째, 중장기적인 외부 협력 파트너를 확보했다. CRF는 외부 라이선싱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는 외부 협력 파트너를 지속적으로 물색했다. 비핵심 기술이라도 이를 외부에 이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의 핵심 역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외부로 유출되는 부분을 근거리에 보유(retention)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자사의 기술을 이전받은 기업들이 적대적인 관계로 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CRF는 이러한 점을 잘 인지하고 중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만한 외부 파트너 탐색에 상당한 공을 들였으며, 이들과 중장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네트워킹을 통한 보유효과(retention effects)를 극대화했다. 예를 들어, CRF는 비상등과 원거리 지원 장치 전문회사인 베겔리(Beghelli)와 파트너십을 맺고 운전자 사각지대 경고장치 등의 광학보조 기술을 개발했다. 유니항공(Uniair engine technologies)과 함께 가변 밸브 타이밍(variable valve timing, VVT) 기술을 개발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단순히 일회성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마련하고 파트너를 자사의 혁신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줄어든 내부 연구개발 역량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통해 보완하고 이들의 CRF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핵심 역량이 근거리에서 보유될 수 있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치사슬 밖의 협력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자동차 업계의 위기 전 FIAT는 EU(유럽연합)가 지원하는 외부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대부분의 필요 기술을 내부적으로 CRF에서 개발하는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기를 계기로 외부 협력 전략을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이나 공공연구소와의 협력 프로젝트가 증가했다.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습득하기 위해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FIAT그룹의 중앙연구소였던 CRF의 재정 수입 구조가 건전한 방향으로 다변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과거 CRF가 모그룹의 자금지원에만 의존했으나 외부 협력업체들과 함께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적극적으로 EU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모그룹 재정지원도가 감소했다. 이는 CRF가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2002년 CRF는 53%의 연구비를 외부에서 조달함으로써 재정적으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고효율·친환경 엔진 시스템 개발 같은 핵심 연구개발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었다.

마치며

경제위기 같은 불가항력적 외부 충격이 올 때 많은 기업은 인원 감축이나 연구개발 투자축소 같은 수동적인 전략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경기침체 이후 어떻게 기업의 혁신 역량을 회복할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도 경기침체 기간에 일어나는 창조적 파괴에 대응하기 위한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효과적인 다이어트와 중장기인 파트너십, 추가적인 재원까지 확보할 수 있는 외부 협력 전략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외부 협력이 단순한 아웃소싱의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버릴 것과 취할 것을 현명하게 구분하고, 외부 파트너를 기업의 혁신생태계로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더해지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돼야 경기침체를 극복하면서 성장 동력도 확보할 수 있다.

기술의 복잡성이 점차 증가하는 요즘 한 기업이 원천기술의 개발부터 시제품 제작, 마켓 테스트까지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다른 기업과 차별화 포인트를 가져갈 수 있는 핵심 역량을 최소화해 내부화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비핵심 기술 개발은 과감히 외부 협력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 슬기로운 전략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상당한 불확실성을 수반하고 있으나 준비된 기업에는 ‘창조적 파괴’의 주역이 될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안준모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jmahn@sogang.ac.kr

필자는 서울대에서 화학공학 학사를,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기술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소기업청, 과학기술부, 교육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근무했으며 개방형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제조업(high value manufacturing)과 중소벤처기업의 기술혁신 활동, 기술창업과 사업화, 기술혁신정책 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1. Ahn, J. M., Mortara, L. and Minshall, T. (2018) “Dynamic capabilities and economic crises: Has openness enhanced a firm’s performance in an economic downturn?”, Industrial and Corporate Change 27(1), 49-63
2. Archibugi, D., Filippetti, A., &Frenz, M. (2013). “Economic crisis and innovation: Is destruction prevailing over accumulation?”, Research Policy, 42(2), 303-314.
3. Di Minin, A., Frattini, F., & Piccaluga, A. (2010). “Fiat: open innovation in a downturn (1993-2003)”,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52(3), 132-159
4. 전경련 (2006) “경기침체기 기업 생존전략”
  • 안준모 안준모 | -(현)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전)중소기업청과 과학기술부, 교육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근무
    jmah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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