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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위한 시(詩)적 상상력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나를 알아차리는 것

황인원 | 152호 (2014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자신만의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유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마음생각현상의 순서를 따라 일어남. 문제는 정해진 답변을 강요하는 교육으로 인해 자신만의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남이 심어준 생각만 하는 경우가 많음.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방법

시인들의 창작법인일체화를 통해현상생각마음의 순서로 거꾸로 돌아가야 함. 즉 자신이 쓰고자 하는 시적 대상의 마음을 자기의식대로 상상해내도록 노력

 

대화가 되지 않는 상대와 소통하려면

남을 바꾸기보다 나를 바꾸는 것이 더 쉬움. 나 스스로를 알아차려 내가 바뀌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소통이 가능해짐

 

편집자주

()는 기업 경영과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는 뻔히 보여도 보지 못하는, 혹은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알려주는 지혜와 통찰의 보고(寶庫)입니다. 현대 경영자에게 무한한 창조적 영감을 주는 시적 상상력의 원천을 소개합니다.

 

시는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것이 사물이든 자연이든 시를 쓰고자 하는 대상, 즉 시적 대상의 마음을 읽고 드러내는 일이다. 시인들은 일체화라는 방법을 통해 마음을 읽는다. 하지만 일체화는 시적 대상의 마음을 읽는 방법으로만 활용되는 게 아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소통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일체화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시인이 시적 대상으로 가서 하나가 되는 일체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시인이 시적 대상을 나에게로 끌고 와서 하나가 되는 방식이 있다. 전자가 창조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면, 후자는 나를 변화시키고 소통을 이루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우선 마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어원을 통해 다시금 들여다보자. 마음의 고어는마삼이다. 이 단어가마슴으로 변했다가 지금의마음이 됐다. 마삼마슴마음의 순서로 단어가 변한 것이다.

 

마는 마디, 마당 등으로 쓸 때처럼 어떤 공간을 의미한다. 삼과 슴은 생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 마음은생각 공간이라는 뜻이다. 즉 우리의 생각이 담겨 있는 공간이 바로 마음이라는 얘기다.

 

마음은 밭, 생각은 씨앗, 현상은 드러남

더 쉽게 설명하자면 마음이 밭이라는 공간이라면 생각은 씨앗이다. 따라서 어떤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서 마음의 밭에 피어나는 것이 달라진다. 피어나는 것은 드러남, 즉 현상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는 모든 것은 현상인 셈이다. 밭이 있고 그 밭에 씨앗을 뿌리고 가꿔야 식물이 나오듯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마음()→생각(씨앗)→현상(식물)’의 순서를 따라 일어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게 있다. 씨앗에 대한 설명이다. 씨앗은 생각이다. 생각은 대부분 의식으로 만들어진다. 의식은자신이나 사물에 대한 인식작용이다. 어떤 대상을 인식하려면 앎이 필요하다. 책을 인식하려면 책이라는 단어와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을 봐도 책이라고 인식할 수가 없다. 인식하지 못하면 의식할 수 없다.

 

인식작용은 교육에 의해 이뤄진다. 사람은 교육을 받는다. 하다못해 어린 아기에게아가야, 거기 가면 안 된다. 이리와라고 어머니가 말하는 것조차 모두가 교육이다. 이 교육이 의식을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이 정해진 답을 강요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모든 인식작용을 교육받은 대로만 하게 된다. 정해진 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설명하려 하니 그만큼 자기의식으로 판단하는 힘이 약화된다. 교육에 의해 남이 심어준 생각만 하게 될 뿐 자기만의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현상→생각→마음’ 순으로 들어가라

마음과 생각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에 보이는 모든 현상의 과정, 마음생각현상의 과정을 거꾸로 되돌아가면 된다. 바로현상생각마음순이다. 마음과 생각은 보이지 않으니 현상에서부터 출발해 거꾸로 되돌아가야 생각과 마음이라는 밭에 도착할 수 있고 마음 밭에 어떤 생각이 심어져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그동안 교육받은 대로 의식하기 때문에 정해진 답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들은 일체화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시적 대상의 마음을 자기의식대로 상상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된 것이 바로 시다.

 

 

 

시인은 문장을 다 쓰고 나서 찍는 마침표에 주목한다. 마침표가 보이는 것은 현상이다. 이제 현상을 보고 마침표의 생각과 마음을 찾아야 한다. 생각과 마음을 찾을 때의 방법은 시적 대상인 마침표와 일체화한 후 자기의식을 활용하면 된다.

 

, 시인이 마침표와 일체화했다. 이때 일체화는 내가 마침표에게로 가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마침표를 나에게 가져오는 방법이다. 마침표가 나에게 왔다는 것은 끝이라는 의미가 나에게 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인은 답이 정해져 있는 교육에 의한 의식, 마침표=이라는 의미를 버리고 자기의식으로 마침표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마침표를 시인 자신에게 끌어들여 마침표와 시인이 하나가 됐듯 이번에는 또 다른 존재를 찾아 그 의미를 가져온다. 이렇게 되면 마침표의 의미가 달라진다. 마침표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은 곧 시인 자신이 달라지는 것이다.

 

씨알은 마침표와 닮았다. 둥그런 모양 때문이다. 씨알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씨알은 처음이고 시작이다. 마침표가 된 시인이 마침표와 공통점이 있는 씨알과 또 다시 하나가 되면 씨알의 특징이 마침표인 나에게로 오게 된다. 결국 마침표와 씨알은 같은 의미가 되고 마침표 역시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의미는 시인이 자기의식으로 찾아낸생각이다.

 

이제 마음에는 마침표가 시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가 쌓이게 된다. 마음의 밭에 새로운 의미의 마침표가 자라게 된다. 이것이 시인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사물이나 자연도 그런 의식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어디 사물이나 자연뿐이겠는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분명하게 달라지게 한다. 자신의 고정화된 개념만 옳다고 여기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그만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생각 공간이 넓어지니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나는 왜?’로 자기 마음 들여다보기

특히 이런 방법을 자신에게 적용하면 자기 변화가 가능해진다. 자신에게 드러난 모습은 현상이다. 이 현상과 자신을 일체화해보면 자기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 해명될 뿐 아니라 그 해명을 통해 내 마음 밭에 새로움을 심을 수 있다.

 

자신에게 드러난 현상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니 사실은 이미 하나다. 하지만 나와 현상을 두 개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둘을 분리해 보라. 분리하면 현상이 더 잘 보인다. 그러고 나서 내가 현상을 끌어들여 하나가 되는 일체화를 시도한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바보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 말을 들은 나는 엄청나게 화가 났다. 이때의 화는 현상이다. 사실 화가 난 것은 나이기 때문에 화와 내가 분리될 수 없지만 나와 화를 분리해야 한다. 그래야 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내가 화를 끌어다 하나가 돼본다. 화가 돼 보면 내가 화를 내고 있는 현상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다가 화가 멈추면 화가 멈추는 것을 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게 행동 하나하나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이때 질문의 방법은나는 왜?’. 답을 찾을 때 논리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면 논리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나를 알아차린다. 집착이 생기면 집착이 생기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린다. 두려우면 두려운 것을 알아차리고, 사라지면 역시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린다.

 

드러나는 현상에는 모두 이유가 숨어 있다. 숨어 있는 이유를 찾으면 숨어 있는 이유를 일으킨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계속나는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이유를 찾아 마음 밭에 도달해 보는 것이다. 결국에는 내 마음 밭에 어떤 단어가 심어져 있기에 바보라는 단어에 그토록 예민했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될 것이다.

 

대개 이럴 때는 바보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나 상처가 마음 밭에 심어져 있어서 그런 말을 들음과 동시에 부정적 의식이 발동해 화라는 현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내 행동의 원인을 알게 되면 현상으로 드러나게 된 원인을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앞의마침표에 대하여라는 시에서처럼 다른 존재와 또다시 일체화하면서 다른 생각을 넣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 공간에 다른 생각이 심어지니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이 자라게 된다. 이것이 예전과 다른 태도와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이유다.

 

회사에서 얼굴 마주치기도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나는 왜?’라는 반복 질문을 통해 숨어 있는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그 까닭을 스스로 밝혀내면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내가 달라지는 것이다. 보통 상대를 미워할 때는 생각 공간이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는 비좁은 상태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좁은 공간에 자신이 가진 의식 하나만으로 간신히 고정화했으니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생각 공간을 조금만 넓혀 다른 의식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면 이해가 되고 배려가 생긴다. 소통이 가능해진다.

 

퇴행요법도 자신 알아차리기의 하나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할 때 사용하는 치료법 중 하나로 퇴행요법이라는 게 있다. 어느 한 유명 정신과 의사에게 환자가 찾아왔다. 그 환자는 이유 없이 늘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진료를 해도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이 환자는 결국 정신과를 방문하게 됐다. 특히 퇴행요법을 활용해 치료하는 의사를 찾았던 것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최면을 걸고 그 환자의 전생으로 들어가는 퇴행요법을 사용했다. 현생이 아닌 전생에혹시 가슴 아픔과 관련 있는 일이 있나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이처럼 현생에서 가슴 아픈현상은 있지만 아프기까지 보이지 않는생각마음을 찾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마음 밭에 어떤 일이 담겨져 있는지를 찾아내고자 하는 치료법을 퇴행요법이라고 한다. 이 환자는 전생에 칼로 가슴이 찔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때의 아픔이 무의식 속에 남아 마음에 심어져 있었다.

 

정말 재미있는 사실은 그 원인을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왜 원인을 아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할까? 이것 역시 자신 알아차리기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가슴이 아픈지 알게 되면 그만큼 생각의 공간이 넓어지게 되고, 넓어진 공간만큼 그 현상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픔을 다른 생각으로 아프지 않게 바꾸어 놓는다. 의식의 씨앗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각의 공간이 넓어져 아팠던 것을 아프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의식 바꾸기가 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치료가 되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소통의 첫 단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를 알아차리는 건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차리는 것이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내 몸과 하나여서 아예 인식 자체를 잘할 수 없는 것을 인식하고 의식함으로써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대화가 되지 않아 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과 어떻게 하면 소통을 이룰 수 있을까? 남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나를 바꾸는 것이 더 쉽다. 나를 바꾸려면 나를 알아차려야 한다. 나를 알아차려 내가 바뀌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내 태도가 달라지면 그제야 남도 바뀐다. 바뀌면 막혔던 것이 뚫어진다.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소통의 첫 단추다.

 

어떤 어린이가 이런 시를 썼다.

 

 

마지막 시구가 절묘하다. 완전히 앞의 내용을 반전시켰다. 이 시를 소개하면 대부분∼’ 하고 웃는다. 그러면서 남성들은 씁쓸해 한다. 아침 일찍 나와 밤늦게 집에 들어가기를 반복해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는 우리 시대의 아빠상이기 때문이리라.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쓴 것치고는 잘된 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를 알아차리는 건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차리는 것이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내 몸과 하나여서 아예 인식 자체를 잘할 수 없는 것을 인식하고 의식함으로써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는 가정의 문제가 드러난다. 엄마는 아빠의 모습이라는 현상을 놓고 아이에게 계속 좋지 않은 의식을 씨앗으로 줬고, 아이는 그 씨앗을 자기 마음 밭에 심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엄마는 아이의 마음 밭에 심어져 있는 아빠의 부정적 존재 가치를 빨리 바꿔줘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깨닫지 못한 엄마라면 계속 아빠에 대한 부정적 말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아이의 생각 공간, 즉 마음 밭에는 아빠의 존재가 좋지 않은 이미지로 단단하게 심어져 자라나게 될 것이다. 아이와 아빠는 점점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서로 부정적 생각으로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해준 게 없는 사람이 되고, 아이 태도가 왜 그런지 모르는 아빠는 아이의 태도가 불만스러워 서로를 등한시하고 미워하게 된다. 당연히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빠와 대화가 이뤄지지 않게 된다.

 

이 아이가 커서 아빠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을 지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알아차림으로 자신의 마음 밭에 심어져 있는 아빠의 부정적 이미지가 엄마에 의해 형성된 것임을 스스로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면 아빠에 대한 부정이 벗겨지고, 긍정의 씨앗이 다시 심어지며, 이 아이의 마음 밭에는 긍정의 생각이 자라나게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빠와 진정한 대화가 이뤄질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엄마가 자기 알아차림을 통해 아빠를 이해하고 아이에게 아빠의 이미지를 다시 심어주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소통이 가능해지면 자연스럽게 아이에게도 아빠와의 거리가 좁혀질 것이다. 

 

 

황인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moonk0306@naver.com

필자는 성균관대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 기자와 경기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시 전공자와 경영학자가 함께 만나 창조 시대를 이끄는 문학경영학회를 만드는 게 꿈이다. 저서로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시 한 줄에서 통찰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감성의 끝에 서라(공저)> 등이 있다.

  • 황인원 | - (현)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
    - (전) 중앙일보/경향신문 기자
    - (전) 경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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