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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s from Classic - 바흐와 헨델 下

멋쟁이 헨델, 패러다임 바꿔 성공을 낚다

김혜옥 | 102호 (2012년 4월 Issue 1)







헨델, ‘나는 멋쟁이다

헨델은 10대 때부터 멋쟁이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패션 리더였던 것은 물론 자신을 잘 포장하고 이를 명성으로 승화시키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외과의사였던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강도 높은 음악 몰입교육을 시켰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에 더 관심이 있었고 심지어 18세부터 제자를 받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능력이 거의 없었음에도 여러 도시를 돌며 연주 경력을 쌓았다는 것을 잘 포장해 제자를 받아 스쿨(School)을 형성한 것이다. 또 헨델은 독일이 당대 문화의 중심지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끊임없이 해외로 나갈 궁리를 했다. 연주 여행으로 구축한 네트워크를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만한 길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조그마한 루터교 도시의 궁정에서 외과의사로 봉사하던 헨델의 아버지는 제법 유복한 경제력과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명예가 다소 아쉬웠다. 이에 유명한 큰 교회 목사의 아들이었던 텔레만이 그랬던 것처럼 헨델도 법대에서 진득하게 공부하길 바랐다. 그러나 헨델은 11 소크라테스 방식으로 교수의 강론과 학생의 연구로 진행되던 공부를 멀리하고 연주 기회만을 쫓아 다녔다. 아버지와 잦은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헨델은많은 독일 작곡가들이 여러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누가 맹주라고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꼭 기회를 잡고 싶다며 결국 대학을 그만둔다. 이렇게 해서 인생 전체를 통틀어 커다란 자양분이 된 이탈리아 유학의 여정이 시작됐다.

 

20대 초반의 헨델에게 이탈리아는 꿈의 땅이었다. 우선 교회가 예술에 개방적이었다. 자기 절제와 함께 끊임없이 성찰을 요구했던 루터, 칼뱅교의 입장과 달리 가톨릭 교회는 음악과 미술에 투자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비발디(Vivaldi) 같은 이들은 교회에 소속돼 있었지만 오케스트라를 정기적으로 지도하면서 베니스의 극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유복한 경제 조건과 자유분방한 사조 또한 매력적이었다. 도시마다 오페라 극장은 붐볐고 교황이 관람하는 연주회가 있었을 정도로 예술에 대한 활기가 넘쳐났다. 이 시절 헨델은 몇 가지 협주곡을 비롯해 유명한 합창 작품주께서 말씀하셨다(Dixit Dominus)’를 통해 재기 발랄한 오케스트라 선율과 규모 있는 합창단의 표현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헨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Value)는 무엇이고 자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인터페이스(Interface)와 상품(Product)을 어떤 식으로 구현했을까? 헨델은 단순히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브랜드와 명성에 더 치중했다. 바흐가 내적인 완벽성과 작품 자체의 구조화를 통해 그 진정성을 인정받는 데 주목했다면 헨델은 자기 자신 자체를 상품이라고 보고 여러 분야에 걸쳐 문어발식발뻗기를 시도했다.

 

또 바흐와 달리 헨델의 상당수 작품들은 모방(Imitation)과 다양한 성향을 섞는 것(Mix-up)으로 일관됐다. 당대의 트렌드를 좇다 보니 다른 작곡가들과 비슷한 산출물들이 여럿 나오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도 서로 비슷한 유형들이 다수 나오기도 했다. 오라토리오메시아는 오페라의 다른 선율이나 오르간 협주곡집들로부터 내용들을 차용했고 특정 성가곡의 경우 아예 구성 자체를 빌려온 것도 있었다.

 

헨델은 경영자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유학 직후 하노버 궁정에 고용됐던 헨델은 끊임없이 외도의 길을 모색하던 결과 잠재적 시장은 크지만 상대적으로 아직 매력적인 아이템이 주입되지 않았던 영국 런던의 오페라 시장을 주목했다. 당시 영국의 오페라는 거의 독창곡 중심이었고 성악가의 기량에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는 심심한 장르였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새 트렌드를 습득했다는 자신감을 가진 헨델 입장에서는 욕심 나는 미개척 영역이었다. 마침내 헨델은 1720년대 초반 이탈리아어로 상연되는 작품을 헤이마켓 오페라 시장에 인기리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특히 섬나라에 있다 보니 문화적으로 취약하다는 콤플렉스가 있었던 영국의 상류층 귀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1

 

그럼 헨델의 역량 모델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도 네트워크, 두 번째도 네트워크, 세 번째도 네트워크였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일반적인 제자를 거의 받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영항력 있는 헨델의 회고자로 지목되는 제자 스미스가 헨델의 오페라에 투자하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 헨델은 왕실의 어린 자제들을 개인지도하고 그들에게 바이올린, 성악, 작곡 기법 등을 가르치면서 왕족들과 친해지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하노버 궁정을 떠나오면서 척졌던 선제후가 조지 1세로 영국 왕의 자리에 등극하자수상음악을 작곡해서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한 일화도 있다. 이후 수년간 헨델의 오페라는 공주를 비롯해 여러 왕족들의 후원금과 지원 기반을 토대로 운영됐다고 한다.

 

실험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무대 연출이 핵심이었던 헨델의 오페라는 장중한 스토리 위주의 영국 오페라에 비해 위험성이 강했다. 따라서 유력 투자자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안정적인 자금 유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헨델은 왕실 차원의 관심과 함께 귀족층들의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경쟁자 진입으로 네트워크 기반 명성이 무너지다

그러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역량은누군가의 사람이 되면서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부정적인 요소로 돌아오기도 했다. 하버드대의 사회학/경영학 교수인 조던 시겔(Jordan Siegel) 박사는 이것을 가리켜정치적 네트워크 내재성의 부정적 단면(Negativity of Political Embeddedness)’이라고 말한다.헨델 역시 초기에는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했던 영국 정계의 시류에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특히외교 관계에는 물 같은 총리’ ‘매국노 총리로 지목되었던 월폴 수상과의 관계가 외국인인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방인이라며 그의 오페라와 작품이 갖는 가치를 폄하하는가 하면 국가적인 위기가 온존하는 시기에 외국어로 상연되는 음악을 듣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영국 오페라 시장에 진출하는 경쟁자가 늘어나면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헨델의 명성에 손상이 가기도 했다. 특히 이탈리아 오페라의수입업자였던 헨델을 위협하는본토박이 이탈리아인니콜라 포르포라(Nicola Porpora, 1686-1768)의 영국 진출은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헨델의 쇼맨십(Showmanship)에 철저히 쇼맨십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헨델의 오페라가 미남 카스트라토 가수(소년 합창단원 출신으로 변성기가 오기 전에 거세해 소프라노-알토의 고음역을 소화할 수 있는 남성 가수를 의미한다)였던 세네시노(Senesino)와 계약해 흥행을 올렸다면 포르포라는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쳤던 파리넬리를 고용하는 전략으로 대응했다. 포르포라는 경영자이자 주주로서 제작과 투자 과정에 참여함과 동시에 연주자로서 직접 공연을 지휘하는 역량까지 선보였다. 또 그는 여러 정객들과의 교분을 통해 역량을 과시했던 헨델의 경쟁력에 대해 상대 파벌의 귀족들과 영부인들을 접촉해 투자와 후원을 이끌어내기까지 했다. 결국 헨델은 경쟁자들의 지속적인 견제와 네트워크 자산의 진부화로 인해 1720년 말에 파산을 겪고 만다. 한때는 남해주식사건(South Sea Bubble: 당시 영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할리가 재정 위기 타개 목적으로 설립해 영국 재무성 채권과 노예 무역 전문 기업이었던 남해회사의 주식을 교환하는 수익 상품 투기 사건. 튤립 버블과 함께 유럽의 대표적인 버블 사례로 꼽히며 헨델은 왕족들과 함께 투기에 가담해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을 설립할 자산을 모으려 함)으로 고위층의 축재 스캔들에 휘말릴 만큼 부를 자랑했던 헨델이 이제는 아이템이 식상하다는 반응과 함께 빈털터리 신세가 될 지경까지 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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