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Z Consulting

조약돌과 지혜로운 까마귀

97호 (2012년 1월 Issue 2)

 
 
 
 
편집자주
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 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 ‘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 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심한 가뭄이 든 여름날, 목마른 까마귀가 숲 속에서 샘을 발견하고 서둘러 다가갔다. 애석하게도 오랜 가뭄에 샘도 말라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우가 샘 곁에서 깊이가 매우 깊은 물 항아리를 발견했다. 쇠로 만든 이 항아리는 입구가 너무나 좁고 깊어 물이 있는 곳까지 도저히 입을 넣을 수 없었다. 까마귀는 어떻게 하면 물을 마실 수 있을까?
 
이솝우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능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를 해보자면 물이 입이 닿는 곳에 있어야 물을 마실 수 있는데 물의 높이가 너무 낮아서 마실 수가 없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생각해보자. 바로 물이 입이 닿는 곳까지 옮겨진 상태일 것이다. 이를 위해선 주어진 조건보다 물의 높이가 높아져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빨대를 이용하는 것이지만 주변에 빨대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매개물 X가 있어야 이것이 가능할까? 우화에 나온 답은 ‘조약돌’이다. 지혜로운 까마귀는 조약돌을 큰 항아리 안에 옮겨 넣어 수위를 높인 후 물을 마셨다.
 
매개물 X를 찾아가는 메타 사고
언젠가 어린이 한 명에게 이 문제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 아이는 금방 정답을 얘기했다. 하지만 이 어린아이는 스스로 답을 생각해 낸 게 아니라 이 우화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해 올바른 대답을 한 것이었다. 이 어린이처럼 답을 알고 있는 문제를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에서는 조약돌이라는 정답을 외우는 건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완전히 동일한 문제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약돌’처럼 문제 해결로 이끄는 매개물 X 를 생각해 낼 줄 아는 ‘메타 사고’다.
 
메타사고란 통상적인 생각보다 한 차원 위에서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스리는, 즉 ‘생각을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발상에 있어서는 발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발상을 도출하는 데 관건이 된 것을 한 차원 위에서 바라보면서 스스로의 사고 과정을 제어하고자 하는 사고다. 트리즈의 40가지 발명의 원리는 기실 문제 해결안에 대해 메타 사고를 진행해 정리한 내용들이다. 문제 해결의 역사 속에는 직접적인 기능이나 작용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조약돌 같은 매개물 하나가 꽉 막힌 모순 문제를 단번에 풀어버리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조약돌로 대변되는 매개물 X를 문제 해결책으로 활용한 사례로 흔히 대형 할인마트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쓰는 쇼핑카트를 꼽을 수 있다. 흔히 장바구니 크기가 클수록 고객들의 구매액수는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무의식적으로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바구니가 커지면 고객들이 팔이 아프니 곤란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바로 밀고 다닐 수 있는 장바구니인 바퀴 달린 쇼핑카트다. 카트를 만들면 크기가 커서 장바구니처럼 나도 모르게 들고 가는 일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카트에도 나름의 문제가 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카트 정리를 하는 일이 고생스럽다. 자동차에 물건을 싣고 나면 고객들은 카트를 정리하는 게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므로 그냥 놓고 가버린다. 마트의 직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카트를 정리하느라 힘이 든다. 마트 경영진 입장에서는 비용 증가의 요인이 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을 위한 트리즈의 4단 사고법
트리즈의 4단 사고법인 ‘모순 인식→이상해(理想解) 설정→자원 분석→자원변환(매개물 도입)’을 적용한다면 매우 쉽게 문제 상황을 재구성하고 해결안의 단초를 잡아갈 수 있다.
 
① 모순 인식: 마트에 카트를 도입하면(approach), 구매촉진과 함께 분실의 위험이 줄어들지만(good), 정리를 위한 공간 비용 외에도 여기 저기 분산된 카트 정리를 위한 시간과 비용이 증가한다(bad).
 
② 이상해 설정: 모순이 없어진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마트에 카트를 도입하고(approach), 구매촉진과 함께 분실의 위험이 줄어들며(good→good), 정리를 위한 시간과 비용의 증가를 최소한으로 하면서(bad→good) 시스템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스스로 동작하는 X가 있는 경우다. 그렇다면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의 주요 자원은 무엇이 있을까?
 
③ 자원 분석: 쇼핑을 위한 카트는 바퀴가 있고 손잡이가 있으며 부피는 장바구니의 네 배며, 성인이 잡기에 적절하고, 철제 망으로 만들어져 튼튼하며 차곡차곡 옆으로 쌓아두기 편하도록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손님은 정리된 카트를 쇼핑을 위해서 가져오고, 카트에 쇼핑한 물건을 담고, 쇼핑을 마친 후에는 카트에서 짐을 내려서 차에 정리한다고 생각한다.
 
④ 매개물을 이용한 자원 변환(이상해로부터의 문워킹): X는 매우 간단하고 누구나 가진 매개물로서 손님이 ‘스스로’ 카트 정리를 하고 싶도록 변화시킨다고 해보자. 자, 이 X가 무엇이 되면 좋을까?
 
 
 
 
멀티스크린 기법
매개물을 활용하고자 해결안의 방향성을 잡았다면 주변에서 쉽게 확보할 수 있고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자원으로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탐색 활동을 조금 더 진행해야 한다. 이런 탐색 활동의 틀은 ‘멀티스크린(multi-screen)’ 기법을 활용해 문제와 관련된, 혹은 시스템과 관련된 이전, 이후의 상황, 시스템의 내부 및 시스템의 상위에 있는 자원들까지 다양하게 범주를 나눠 탐색한다. 멀티스크린 기법은 문제와 관련이 있는 부분만 한정해 탐색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 그것이 속해 있는 공간적, 시간적, 문화적 맥락까지도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트리즈 사고 기법이다. 트리즈의 창시자인 알트슐러는 멀티스크린 기법을 ‘천재의 사고법’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이 기법은 갖가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원들을 수배하는 것 외에도 문제에 영향을 끼치는 각종 인자들을 다각도로 살펴볼 때에도 매우 유용한 사고기법이다.
 
멀티스크린 기법을 통해 자원의 범주를 지금 현재의 기준보다 넓히는 이유는 문제의 조건에 나타난 자원만을 활용할 경우 이러한 매개물들의 후보를 전부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변에 매개물로 활용할 자원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과 함께 자유로운 브레인스토밍을 하거나 관찰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트리즈가 일반적인 브레인스토밍과 같으면서도 다른 점은 이러한 여러 개의 창문이나 제어 질문 등을 활용해 다양한 상황을 모두 고려하도록 사고를 유도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금 현재 기준이 되는 시스템을 쇼핑카트라고 치자. 쇼핑카트의 하위 시스템은 쇼핑카트의 구성 요소인 손잡이나 카트 망 등이 되며 쇼핑카트의 상위 시스템은 쇼핑몰과 그 내부의 제반 요소들이 된다. 쇼핑카트와 관련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본다면 과거는 쇼핑카트가 잘 보관돼 있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자원을 탐색하면 되고 미래는 쇼핑 후의 쇼핑카트와 주변의 자원을 상상하면 된다. (표 1) 이처럼 멀티스크린 기법을 활용하면 자원 탐색뿐 아니라 문제의 다양한 면들에 대해서도 함께 고찰할 수 있다. 그럼, 위 사례에서 멀티스크린 기법을 통해 다각도로 고찰한 자원 중 가장 유용할 것 같은 자원은 누가 갖고 있을까? 쇼핑 고객이다. 쇼핑 고객이 가진 것 중에서 그다지 비용이 들지 않을 것 같은 X로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100원짜리 동전이다.
 
숫자 계산에도 활용할 수 있는 매개물 X
매개물 X를 활용한 사례는 숫자 계산에도 활용된다. 어느 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1부터 100까지를 모두 더하라는 문제를 냈다. 그 선생님은 아마도 최소 30분 정도는 아이들이 계산에 몰두하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어린이가 5050이라는 정답을 말했다. 후일 천재 수학자로 이름을 떨친 가우스였다.
 
가우스가 쓴 방법은 계산을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매개물 X를 활용하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100과 1을 더한 값은 101이며 이 값은 서로 대칭되는 자리의 두 숫자를 더하면 동일하다는 사실이 바로 계산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할 수 있게 만든 매개물 X였다. 101이라는 합이 총 50번 있으니 곱셈에 아주 약간의 지식만 있더라도 5050이라는 값이 금방 나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매개물을 10진수의 덧셈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계산을 할 때 8 더하기 7이라는 셈은 손가락 셈으로도 할 수 있지만 10이라는 매개물을 써서 10에 가까운 수(8)를 10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수(2)를 10에서 먼 수(7)에서 뺀 후(5) 매개물 숫자(10)와 더하면 곧바로 덧셈의 결과물(15)이 나오는 것도 계산이 매우 편리한 10이라는 매개물을 활용해 셈을 빠르게 하는 산수의 지혜다.
 
동화 속의 문제 해결, 마트에서의 카트 정리, 복잡한 셈을 쉽게 해 주는 공통된 X가 바로 매개물이다. 어떤 문제나 상황이 발생하든 이런 매개물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인지 먼저 검토하는 혜안을 우리는 메타 사고라고 부른다. 메타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느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천재적인 생각을 도출할 수 있다. 트리즈는 그것을 가장 빠르게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다.
 
 
송미정 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부장 triz_institute@hanmail.net
필자는 KAIST에서 화학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 트리즈 협회 공인 Level 4 전문가로, 삼성종합기술원에서 200건 이상의 연구 개발 과제 컨설팅을 수행했다. 저서로 <회사를 살리는 아이디어 42가지(공저)>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