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인간관계라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주변과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며 서로 배려하고 존경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녹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과의 원만한 관계(父子有親), 부부 간의 역할과 애정(夫婦有別), 회사와 직원과의 화합과 의리(君臣有義), 노인과 젊은이들 간의 아름다운 양보와 형제 간의 우애(長幼有序), 그리고 동료와 친구들 사이의 믿음과 우정(朋友有信), 이 모든 덕목들은 결국 좋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출세를 하고 돈을 벌어도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그 성공이 아름답지 않게 보인다. 결국 인간은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치에서 보면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부터 잘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효(孝)는 나와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식 간의 인간관계 덕목이며 모든 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이 밖에 나가 아무리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직에서 훌륭한 리더가 된다는 것은 가정에서 얼마나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돈돈히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었고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는 결국 위대한 리더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하기 위한 기반이 됐던 것이다.
문제는 효도의 개념이다. 효도가 역사 속에서 부모의 병환을 낫게 하기 위해 찬 겨울에 얼음물 속으로 뛰어들어 잉어를 잡는 것이나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부모에게 드리는 이상하고 엽기적인 형태로 오도됐지만 그것은 왕권 차원에서 효도를 조직적으로 왜곡한 모습이다. 효도는 부모와 자식과의 원활한 세대교체와 문화의 계승 및 발전의 측면에서 다시 고찰돼야 한다.
<중용(中庸)>에 보면 인간관계의 시작인 효(孝)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효도는 조상의 뜻을 잘 계승해(孝者 善繼人之志), 그분들이 하고자 했던 사업을 내 시대에 잘 펼치는 것이다(善述人之事者也).’ 일명 ‘계지술사(繼志述事)’라는 사자성어가 나오는 구절이다. 조상의 뜻(志)을 잘 계승해(繼), 새로운 사업을(事) 펼쳐(述)나가는 계지술사(繼志述事)가 효라는 정의다. 효는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올리고 편안히 모시는 것도 있지만 다음 세대가 전 세대가 가졌던 꿈을 이어받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펼쳐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다. 일명 세대의 계승과 발전 차원에서 효를 논한 것이다.
가정이라는 조직이 계지술사(繼志述事)의 효를 통해 발전해 나가듯이 조직도 역시 계승과 발전 차원에서 효(孝)를 논해야 한다. 효(孝)는 단순히 가정의 윤리가 아니라 조직의 꿈과 사업의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POSCO의 박태준 명예회장이 작고하면서 POSCO의 창립 세대들이 꾸었던 꿈을 재조명하고 그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사업을 펼쳐나가는 계지술사(繼志述事)의 움직임 역시 효(孝)의 새로운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가정은 물론 국가와 기업은 지속돼야 한다. 지속은 지나간 세대와 새로운 세대와의 아름다운 관계의 미학이며 지나간 세대의 꿈을 계승해 새로운 세대의 사업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과거의 원만한 계승 없는 새로운 것은 지속할 수 없다. 아울러 새로운 발전 없는 계승 역시 지나간 시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지나간 세대의 뜻을 이어 새로운 사업을 펼쳐나가라! 계지술사(繼志述事). 임진년 화두로 삼고 싶은 구절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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