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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한경희 생활과학•하이원전자의 상생

파격적 임대… 공동 인사관리…“같이 살고, 같이 먹었죠, 그게 공생이죠”

하정민 | 76호 (2011년 3월 Issue 1)
 

 
“같이 살고, 같이 먹어야 진정한 식구죠.”(유영철 한경희 생활과학 생산본부 이사) “여기저기서 상생 경영을 주장하길래 뭔가 했더니 우리가 계속 해온 거더군요.”(한승범 하이원전자 대표)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 이마트 피자 등으로 상생 경영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다양한 동반 성장 정책을 내놓으며 대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대기업은 시장 원리에 반하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중소기업들은 열악한 현실이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푸념한다.
 
하지만 상생이나 동반 성장 같은 용어를 굳이 쓰지 않고도 이미 이를 잘 실천하고 있는 기업도 많다. 스팀 청소기로 유명한 한경희 생활과학과, 이 회사 제품의 조립 생산을 도맡아온 하이원전자도 그 중 하나다. 두 회사는 2008년 9월부터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경희 생활과학 본사에서 함께 기거하고 있다. 밥도 같이 먹고 직원 휴게실도 같이 쓴다. 심지어 하이원전자의 임원 면접도 같이 진행한다. 생산 혁신으로 얻은 이익을 공유하기도 한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원들도 이해관계에 얽매여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데, 독립 법인인 두 회사는 이처럼 특별한 동거를 지속하고 있다. 유영철 한경희 생활과학 생산본부 이사와 한승범 하이원전자 대표를 만나 그 비결을 들어봤다.
 
“같이 살자” 파격적 임대 혜택
2008년 여름 한경희 생활과학은 고민에 빠졌다. 금천동 본사 건물의 남는 공간을 사용하던 업체가 계약만료 후 공간을 비우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사용할 새로운 임대인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내에서는 ‘시간이 좀 걸려도 한경희 생활과학과 크게 상관없는 다른 업체를 찾아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올리자’는 의견과 ‘아예 모르는 사람을 데려오느니 차라리 협력업체를 입주시키는 게 어떨까’라는 의견이 나왔다.
 
고민 끝에 한경희 생활과학은 협력업체를 입주시키기로 결정했다. ‘협력업체와 같은 공간을 쓰면 그 업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쉽게 바꾸기도 어렵다. 너무 위험 부담이 크다’는 내부의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협력업체와 한 공간을 사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경영진에서 이를 밀어붙였다. 대신 입주업체를 선정할 때에는 치밀한 검토와 분석을 거쳤다. 한경희 생활과학은 수십여 개의 협력업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 협력업체는 크게 부품만 생산해서 공급하는 업체와 완제품을 조립하고 생산하는 업체로 나뉜다. 후자에 속하는 하이원전자는 한경희 생활과학의 완제품 중 70% 정도를 조립하고 있다. ‘과거 경험 상 하이원전자라면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 한경희 생활과학 측은 결국 이주 제안을 했고, 하이원전자도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결정은 양측 모두에 상당한 부담을 줬다. 유영철 한경희 생활과학 이사의 말이다. “원청업체와 협력업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입니다. 서로 안 볼 수는 없지만 막상 보면 좀 껄끄럽고 어색하죠.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면 시어머니는 편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요즘 고부관계가 어디 옛날 고부관계입니까.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 보느라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경비실에 김치를 맡겨놓고 간다는 말까지 나오잖아요. 저희도 협력업체에 하고 싶은 말 다 못합니다. 떨어져 있을 때는 안 보이던 단점만 눈에 들어와서 갈등이 커지면 어쩌나 걱정도 많았습니다.”
 

한승범 하이원전자 대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2006년 설립된 하이원전자는 원래 인천 서구 수출 5공단에 공장을 두고 있었다. 당시 근무했던 40∼45명의 직원들은 대부분 인천 거주자였다. 공장을 서울로 옮기려 하니 이들 대부분이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품질을 유지하면서 안정된 생산 체제를 갖추려면 숙련된 인력이 꼭 필요하다. 새로운 인력이 역량을 갖추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보이지 않는 비용 지출이 불가피했다.
 
이를 감안해 한경희 생활과학은 시세보다 25% 정도 싼 가격에 하이원전자와 임대 계약을 맺었다. 싼 임대료로 하이원전자 역시 새로운 인력을 뽑는 비용, 이들이 숙련된 역량을 갖추기까지 필요한 유무형의 비용을 상쇄할 수 있었다. 현재 한경희 생활과학 본사가 위치한 금천구 사옥의 면적은 약 3000 평이다. 이 중 16%인 480평 정도를 하이원전자가 사용하고 있다.
 
식사도 복지혜택도 똑같이… 임원 면접도 함께
현재 본사에 근무하는 한경희 생활과학의 직원은 130여 명, 하이원전자의 직원은 80여 명이다. 한경희 생활과학은 하이원전자가 입주했을 때부터 식사와 복지혜택을 똑같이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야 진정한 한 식구가 된다는 생각에서다. 구내식당의 규모가 협소해 사람들이 많이 몰릴 때는 한 회사가 먼저, 다른 회사가 나중에 먹기도 하지만 밥을 같이 먹는다는 기본 개념에는 변함이 없다. 직원들의 휴식 공간인 복지관을 같이 쓰며 각종 복지 혜택도 공유했다. 화장품 사업도 영위하고 있는 한경희 생활과학은 설과 추석 때 직원들을 대상으로 화장품 특판 행사를 연다. 두 회사 모두 주부 근로자들의 비율이 높다. 때문에 시가보다 40∼50% 저렴한 가격에 화장품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면 근로자들이 무척 좋아한다. 하이원전자 직원들도 똑같은 가격에 특판 화장품을 살 수 있다.
 
유영철 이사는 “같은 건물을 쓰면서 밥을 따로 먹고, 서로 인사도 안하고 지낸다면 같이 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양쪽 직원들이 갑을관계를 느끼지 않고 생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승범 대표도 거들었다. “두 회사의 임원들이야 회의니 뭐니 해서, 이사하기 전부터 자주 얼굴을 봐 왔지만 말단 직원들이야 어디 그런가요. 그래서인지 처음 입주했을 때는 적잖이 낯설어했지만 같은 곳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나누다 보니 금방 친해지더군요.”
 
하이원전자의 관리자를 뽑을 때도 유영철 이사를 비롯한 한경희 생활과학 측 인사가 동행한다. 현재 하이원전자의 생산 라인 관리자들은 10여 명 정도다. 생산직 못지않게 관리자들의 이직도 잦은 편이라 좋은 사람을 뽑아서 오랫동안 근무하도록 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유 이사는 “관리자 한 명을 뽑는 일은 해당 라인의 품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한경희 생활과학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물론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두 회사 모두를 위해서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양해를 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임원 면접을 같이 진행하면서 겪은 일화다. 한 번은 급하게 새로운 생산 라인 관리자를 뽑아야 할 일이 생겼다. 최종 면접에 올라온 후보자는 남녀 각각 한 명씩이었다. 경력은 남성 후보자가 더 훌륭했지만 그는 여성 후보자보다 더 많은 연봉을 요구했고, 이직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여성 후보자보다 길었다. 한승범 대표는 근로자의 절대 다수가 중년 여성인 하이원전자의 특성 상 더 낮은 연봉 등을 이유로 여성 후보자에게 마음이 갔다. 반면 삼성전자 출신의 유영철 이사는 관리자라 해도 생산 라인에서는 힘을 쓸 일이 많고, 설사 더 많은 돈을 주더라도 더 나은 경력을 가진 남성 후보자를 뽑아 오래 근무하도록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남성 후보자를 밀었다.
 
생각의 차이를 확인한 두 사람은 오랜 토론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 당장은 생산 라인을 제대로 돌리는 게 급하니 이번에는 여성을 뽑고 다음에는 경력이 더 훌륭한 남성을 뽑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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