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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영 시대, 바보스러움이 경쟁력!

신동엽 | 29호 (2009년 3월 Issue 2)
창조적 천재들의 바보짓
창조적 천재들은 일반인들이 했다면 바보짓이라고 비웃음을 살 만한 우스꽝스런 행동을 자주 한다. 모차르트의 일생을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를 본 사람들은 이 창조적 천재가 어이없는 광대 짓을 하며 작곡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위대한 작곡가가 왜 이런 장난을 쳤을까? 최근 기업경영에서 모차르트에 준하는 창조성을 가진 리더로 인정받는 스티브 잡스도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이미지나 현대 사회의 합리성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인도 도인들의 기행에 열광하는 엉뚱한 괴짜로 유명하다.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20세기 후반 가장 창조적인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발사 직후 폭발해버린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위원회에서 다른 참석자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심각하게 격론을 벌일 때, 혼자 낄낄대며 양파링 과자를 컵에 담긴 물에 집어넣었다 꺼냈다 하는 장난을 쳐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엉뚱한 장난을 친 게 아니었다. 실제 챌린저호 폭발은 양파링처럼 생긴 오(O)링이 찬 기온에서 얼어 터지는 바람에 연료가 누출되어 발생했다.
 
왜 창조적 인물들은 툭 하면 이런 바보스럽고 장난기 어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주장대로 21세기는 한 명의 창조적 천재가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끊임없는 창조와 혁신이 기업은 물론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21세기, 이런 창조적 천재들의 바보스러운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7호(2009 2 15자)를 통해 모든 사회과학 분야를 통틀어 최고의 창조적 천재라고 소개했던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제임스 마치 교수는 창조경영이라는 말이 출현하기 훨씬 전인 1970년대 초 이미 ‘바보스러움의 기술(technology of foolishness)’이라는 짧은 논문을 발표해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논문이 발표되고 40여 년이 지났지만 21세기 초의 경영자들에게 마치 교수의 분석은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목적 추구’와 ‘목적 발견’ 의사결정의 차이
‘바보스러움의 기술’ 논문에서 마치 교수는 개인이나 조직의 의사결정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2가지 유형이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혼동하는 오류를 저지른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유형은 주어진 목적을 어떻게 추구하고 달성할 것인가에 관한 의사결정이다. ‘목적 추구(goal-pursuing)’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유형의 의사결정으로 치밀하고 냉철한 예측, 분석, 계산, 계획을 통해 이뤄진다. 기존 사업 운영이나 상품 생산과 같은 주어진 목적에 대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성을 달성한다는 게 핵심 원칙이다. 20세기 현대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래 전 세계 기업이나 경영학계에서 실천하고 연구하며 가르쳐온 ‘효용 극대화(utility maximization)’와 같은 전략적 의사결정이나 합리적 의사결정은 모두 ‘목적 추구’ 의사결정의 사례다.
 
그러나 마치 교수는 ‘목적 추구’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의사결정 유형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목적을 추구할 것인가를 다루는 ‘목적 발견(goal-finding)’ 의사결정이다. 목적 발견 의사결정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기술, 사업 등을 만들어내는 혁신을 시도하거나, 지금까지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미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창조적 비전을 수립할 때 필요하다. 즉 ‘목적 발견’은 창조경영의 핵심 의사결정이며 ‘목적 추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마치 교수는 어떤 목적을 추구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개인이나 조직의 운명에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이슈지만 대다수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현실은 대다수 기업들이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고자 할 때에도 주어진 목적을 추구하는 데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예측, 분석, 계산, 계획 등의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만든 적이 없던 혁신적 미래 상품이나 사업 분야를 창출하고자 할 때도 기업들이 복잡한 숫자로 계산된 성과 목표나 예측 수익 규모 등을 강요해 이런 시도 자체를 원천적으로 좌절시켜버리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바보스러움의 기술과 창조경영
그렇다면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는 의사결정에 필요한 노하우와 역량, 프로세스는 무엇일까? 마치 교수는 목적 추구 의사결정이 계산, 분석, 예측, 계획 등과 같은 ‘이성의 영역(realm of reason)’이라면, 목적 발견과 관련한 의사결정은 꿈과 상상력과 같은 ‘장난과 유희의 영역(realm of play)’이라고 강조한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곧잘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장난친다(play with ideas)’라는 영어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심각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 경직된 마음으로 계산이나 분석만 해서는 안 된다. 처음 보는 신기한 새 장난감을 가지는 노는 어린아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모차르트나 잡스, 파인먼 같은 창조적 천재들이 어린아이처럼 장난스럽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이유다.
 
그러나 꿈과 상상력, 장난스러움 등은 냉철한 계산과 분석, 예측, 계획에 기초해 의사결정을 해온 전통적 경영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성원들이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치밀하게 관리되고 통제되는 전통적 기업에서는 꿈과 상상력, 장난스러움을 통한 창조적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한두 가지 기존 사업 분야에 집중해 이를 반복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기만 하면 됐던 20세기 대량생산 시대에는 이런 꿈과 상상력, 장난스러움이 그야말로 바보 같은 행동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던 혁신적 미래 사업 분야나 상품을 창조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21세기에는 엉뚱하고 장난스러운 꿈과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따라서 마치 교수는 이를 ‘바보스러움의 기술’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애플, 구글, 3M, 마이크로소프트(MS), 닌텐도 같은 창조적 기업들은 상상력을 경영의 핵심 화두로 삼고 있다. GE는 아예 ‘상상력을 통한 한계 돌파(imagination break-through)’를 핵심 가치로 정했다. 21세기 창조경영 시대에 꿈과 상상력, 장난스러움은 가치 창출과 경쟁력 강화에 반드시 필요한 ‘의미 있는 바보스러움(sensible foolishness)’인 것이다.
 
‘바보스러움의 기술’과 관련, 그는 ‘기억을 원수처럼 여기라’고 제언한다. 즉 과거 사업의 성공 경험 등 ‘기억’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전혀 새로운 사업을 발견하는 데 가장 심각한 장애요인이 된다는 의미다. 또 마치 교수는 ‘직관적 느낌을 경원시하지 말고 심각하게 고려해보라’고 충고한다.
 
계산과 분석만으로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감성과 욕망, 당위성, 희망, 이유 없는 끌림 등 직관적 느낌이 훨씬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목적 추구’ 행동이 주도하던 20세기 대량생산 시대의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경영자들은 꿈과 상상력, 장난스러움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이나 기술, 서비스, 사업 분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려는 창조적 천재들의 자유분방한 ‘목적 발견’ 행동에 발목을 잡는다. 이런 면에서 마치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21세기 창조경영 시대에는 바보스러움의 기술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임파워먼트(empowerment)하는 기업들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편집자주 신동엽 연세대 교수가 학계에서 인정받는 최고 경영 사상가들의 지혜와 통찰을 전하는 ‘경영 거장 탐구’ 코너를 연재합니다.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달성한 거장들은 인류의 지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기여했지만, 오로지 학술 연구에만 매달린 탓에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장들의 통찰은 첨단 지식정보 사회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합니다. 한 차원 높은 지식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를 비롯한 다수의 저널에 논문을 실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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