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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작은 거인’의 힘

김현진 | 416호 (2025년 5월 Issue 1)
2024년 3월 중국의 드론 스타트업 펑페이항공(AutoFlight)이 개발한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가 세계 최초로 바다 횡단에 성공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선전시에서 주하이까지 약 55㎞ 거리를 20분 만에 비행한 이 시범 운항은 3시간까지 걸리던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습니다. 한편 선전시는 250개 이상의 드론 이착륙장을 운영 중이며 연말까지 1000개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이 사례는 단순한 교통 혁신이 아닌 중국 정부가 선언한 ‘하늘에서 생산력을 찾는다(向天空要生产力)’는 산업 전략의 총체적 결과물입니다. 드론 배송을 넘어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유인 드론 택시로의 진화는 중국이 하늘 위에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는 움직임의 서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혁신이 가능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강력한 국가 전략과 규제 완화, 빠르게 진화하는 민간기업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특히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전정특신’은 전문화(專), 정밀화(精), 특색화(特), 혁신화(新)를 추구하는 중소기업을 가리킵니다. 중국은 이들 첨단기술 기업을 통한 생태계 조성으로 기술 자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서도 중국 정부나 기업들이 ‘배짱’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전략을 보유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릅니다. 미국의 반도체 제재와 수출 통제는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자극했고 중국은 이를 기회로 삼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은 산업생태계 확장을 위해 인재 정책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예컨대 하이얼의 ‘런단허이(人单合一)’ 모델은 단순한 자율성 부여를 넘어 개인과 조직의 목표가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운명 공동체형 조직 운영 방식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양 전통의 ‘조화’ 개념을 현대적 경영 기법과 접목해 개인주의적 특성을 지닌 MZ세대 구성원들이 자기실현과 업무 성과를 동시에 추구하는 동기부여 메커니즘을 설계한 점이 돋보입니다. 단순히 연봉이나 복지로 인재를 끌어오는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국 기업들에도 시사점이 큰 사례입니다.

한편 우리 기업들도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전정특신 기업들과 상호 협력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전환, 제조-서비스 융합, 스마트공장, 글로벌 인증 등의 분야에서 각국의 강점을 살려 제3국 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등 상호 보완적 협력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 기업들이 모두 순항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중국 자동차 산업은 정부 보조금에 힘입어 성장했지만 과잉 생산과 경쟁 과열, 내수 의존 등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균열의 징후까지 냉철히 읽어 내고, 중국의 위기 요소를 적절히 파고드는 틈새 전략도 필요합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는 ‘패스트 팔로워’로 여겨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중국이 최근 세계 무대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된다는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 기획됐습니다. 중국은 엄청난 생산·소비 기지인 ‘큰 거인’이며 이제는 수많은 전정특신, 즉 ‘작은 거인’을 앞세워 산업 전반에서 실질적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들을 통해 우리 기업들을 ‘추격’하는 것을 넘어 ‘추월’을 시도하는 중국 기업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정부는 생태계 기반의, 명확한 목표를 가진 정책을 설계하고 있는가?” “기업은 인재를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 ‘육성’하고 있는가” “단기 생존이 아닌 장기 성장을 내다보는 비전이 있는가?”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면 더 이상 미묘한 우월감을 즐길 여유가 없습니다. 중국에선 하늘 위에 새로운 산업 질서가 그려지고 있는 지금, 한국 기업은 과연 어떤 항로를 그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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