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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시선의 끝

김현진 | 382호 (2023년 12월 Issue 1)
기자 초년병 시절, 자동차 영업왕이나 보험 판매여왕 등 화제가 된 영업인을 취재할 일이 많았는데 공통적으로 꼽을 만한 성공 요인들이 있었습니다. 근면성실하게 발품을 팔아 사람을 만나고, 고객들을 가족처럼 챙기는 섬세함 같은 인간적 요소들입니다. 이들은 심지어 “와이프 생일은 매년 잊어버려도 큰손 고객 가족들 생일은 일일이 챙겼다”는 등의 얘기를 무용담처럼 전하곤 했습니다.

기업을 대상으로 B2B(기업 간 거래) 영업을 하는 경우는 더욱 그랬습니다. 큰 거래처의 경우 지연, 학연, 혈연은 물론 없던 인연까지 만들어서라도 인간적 관계에 매달려 끈기 있게 구애하는 것이 ‘참영업인’의 자세처럼 여겨졌습니다. ‘관계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하는 접근 방식이 가장 큰 미덕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시대가, 고객의 기대가,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에도 B2B 영업·마케팅 현장에서의 혁신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개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B2C 영업 및 마케팅 현장에선 최첨단 기술 개발 및 소비자 분석 기법 발전 등에 힘입어 최근 몇 해간 많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소비자 행동이 급격히 바뀐 팬데믹 기간에도 주로 B2C 영역에서의 마케팅과 영업 활동에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예컨대 이제는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는 MZ세대 소비자 분석 역시 주로 B2C 영역에서 진행돼 왔습니다. 하지만 B2B 고객 기업의 구매 담당자 가운데서도 약 70%가 MZ세대라는 최신 통계가 있습니다.

B2B 영업 현장에서 만나는 MZ세대 고객 36%는 전화를 극도로 피하는 ‘콜 포비아’가 있고 문자나 메시지 앱 등으로 소통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70%가 넘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근면성실하게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비단 접근 방식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B2B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선 일차적 고객인 조직 구매자를 넘어 ‘고객의 고객’인 최종소비자를 봐야 한다고 조언해 왔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관행들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옴니채널이 활성화되고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개인화가 고도화되는 등 B2C 영역에서의 혁신이 B2B 비즈니스의 혁신을 부채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도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구매 생태계와 연결된 모든 이의 통점을 해소할 수 있는 토털 솔루션이 필요해진 겁니다. 고객 기업 역시 구매와 사용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가치사슬을 관통하는 솔루션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기업 고객을 공략하는 목적이 결국 그 말단의 최종소비자를 향하는 것이고 이에 기업 고객(B2B)과 개인 고객(B2C)을 구분하는 것 역시 의미가 없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이에 발맞춰 B2B2C(Business to Business to Consumer) 마케팅과 영업 전략이 고객 경험 창출을 위한 최신 솔루션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수명을 다한 기존의 B2B 마케팅·영업 모델의 구태에서 탈피해 최종소비자까지 염두에 둔 고객 지향적 전략입니다.

학계 및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이번 DBR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제시한 화두들 가운데 달라진 B2B 전략이 결국 긴밀한 소통, 개인화 등이 필요한 사람 대 사람 간의 거래, ‘H2H(Human to Human)’를 지향하는 것이라는 해석에도 눈길이 갑니다.

과거 영업왕의 덕목이 ‘관계에 대한 관심’이었다면 이제는 최종소비자가 구매 과정에서 불편을 겪을 요소는 없을지 등을 총체적으로 살피는 ‘경험에 대한 관심’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2023년을 불과 한 달여 남겨놓은 시기, 새해를 미리 내다보는 시선의 끝에는 최종소비자, 그리고 그들이 경험할 고객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인사이트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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