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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봄꽃이 제때 피길 바란다면

김현진 | 370호 (2023년 06월 Issue 1)
얼마 전 자판기 천국인 일본에서 ‘탄소 먹는 자판기’가 개발돼 화제가 됐습니다. 기계 하부에 분말 형태의 흡수재를 넣어 이산화탄소(CO₂)를 흡수할 수 있게 설계한 자판기입니다. 개발사인 아사히음료에 따르면 자판기 한 대당 연간 CO₂ 흡입량은 수령이 56∼60년 된 삼나무 20그루의 흡입량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이처럼 일반 시민들도 쉽게 탈탄소를 실천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세계 곳곳에서 선보여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탄소 감축에 대한 절박함과 경제성을 동시에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비롯한 국제 협약의 강화, 탈탄소 관련 기술의 향상, 지속가능한 경영에 대한 사회적 압력 등이 최근 몇 해간 이어진 ESG 신드롬과 더불어 실천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문제는 복잡한 데이터에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지 않아도 누구나 피부로 느끼게 된, 우리 삶의 당면 과제가 된 지 오랩니다. 등산을 즐기는 한 지인은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 진달래의 개화 이후 4월 초·중순 벚꽃, 5월 철쭉 순으로 차례차례 피던 개화 순서가 올해 유난히 뒤죽박죽되는 모습을 보고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체감했다”고 말합니다. 실제 올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벚꽃의 개화 시기는 지난해 대비 2주 이상 당겨졌는데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기후변화의 지표 작물인 벚꽃 개화 시기의 조정 자체가 지구온난화의 증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계가 빨라진 기후변화와 맞물려 탈탄소 이슈 중에서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키워드로 자발적 탄소 시장(VCM)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로 산업계의 탄소배출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현상입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선진국들에 이어 국내에서도 올해 하반기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최초의 VCM거래소를 개설한다고 예고한 상황이라 기업들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VCM은 국제기구나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고 배출권의 과·부족분을 거래해 목표를 지키도록 하는 ‘규제 시장’과 구별됩니다. 탄소 배출 감축 의무가 없는 기업, 지자체, NGO, 개인 등이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 감축 활동을 수행하면서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올 초 발간된 베인앤드컴퍼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던 VCM은 지난해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탄소배출권의 적격성 논란, ‘그린워싱’에 대한 비난 증가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세계 5위 규모의 대형 석유기업 셰브런이 가장 비근한 그린워싱 논란 사례로 꼽힙니다. 국제 기업 감시 단체 코퍼레이트어카운터빌리티는 5월 24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셰브런이 2020∼2022년 VCM에서 구매한 탄소배출권의 93%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고발해 논란이 됐습니다. 그린워싱 논란이 이처럼 자주 불거지자 유럽연합의회는 5월 11일, 기업이 탄소배출권 구매를 근거로 탄소중립을 달성했다고 홍보하는 것을 아예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규제 강화는 앞으로 기업들의 기후 행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VCM이 활성화되려면 그린워싱 및 환경적 무결성 논란 해소, 검증 체계 개선 등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팬데믹 여파에 따른 경기 불안정, 투자 여건 악화 등을 핑계로 몇 해간 고조됐던 ESG, 기후 대응 등의 키워드를 슬쩍 서랍에 넣어버리는 기업들이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래로 향했던 변화의 시계를 역주행시키는 일입니다. 규제에 대한 리스크 대응이라는 명분과 더불어 경쟁력 강화라는 새로운 사업 기회 모색의 관점에서 환경과 관련된 최신 이슈들에 다시 관심을 쏟아보시기 바랍니다. 봄꽃이 제때 피길 바라는 인간적인 염원도 한 스푼 섞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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