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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시대 중국 상인 이야기

“사치도 경제” 400년 전의 인식 전환

조영헌 | 355호 (2022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명나라 중국의 사치 풍조는 문인 엘리트가 열었지만 대중화는 상인들이 주도했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은 부자 상인들이 다른 상인들을 압도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향락의 삶을 과시했다. 문인들은 이런 사치가 대중화되는 것을 우려하며 ‘구별 짓기’를 통해 돈 많은 상인을 비하했다. 그러던 중 사치는 민생에 도움이 된다는 새로운 인식이 등장하며 이 같은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사치 단속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중국의 명품 시장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이었던 2021년 7월을 전후해 중국 지도부는 사회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정풍(整風) 운동’을 한층 강화했다. 기업과 부유층이 가진 부를 나눠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는 ‘공동부유(共同富裕)’ 정책이나 대중적인 영향력이 큰 연예인 관련 정보를 강력히 통제하는 정책 등이다. 인터넷에 전파가 금지된 연예인의 금지 목록 가운데 ‘사치•향락과 배금주의’가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사치 풍조를 차단해 과열된 빈부격차를 줄이며 사회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의도일 터이다.

허베이성(河北省) 푸닝(撫寧)에서는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인민폐 200위안(한화 약 3만5000원) 이상의 현금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금지됐다. 대상은 공산당 당원, 공무원, 지역 지도자들이다. 중국 공산당이 이런 식으로 당원들을 단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중국 당국은 부패 방지 운동의 일환으로 사치스러운 식사와 음주는 물론 골프클럽에 가입하거나 사적 클럽에 출입하는 것도 금지했다. 그 시작은 2013년 시진핑이 집권과 함께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4풍(四風, 관료주의, 형식주의, 향락주의, 사치 풍조) 척결’을 주장하면서부터다. 당시 명품 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도됐다. 사치스러운 선물을 주고받거나 화려한 차를 타는 일 등이 금기시되며 명품 업계가 휘청거릴 정도가 됐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도 잠시였다. 실제 명품 시장에서 중국의 입김은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중국의 세계 명품 시장 점유율은 약 두 배 증가했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중국이 2025년 세계 명품 시장 점유율의 46∼48%를 차지하며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세계 최대 명품 시장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제주도 등지의 면세점에서 중국인 여행객들이 명품을 싹쓸이하는 큰손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인들이 명품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중국은 모조품, 즉 명품의 ‘짝퉁’으로도 유명하다. 짝퉁 시장에 방문해보면 짝퉁 역시 C급부터 AA급까지 수준이 다양하다. 명품 사랑과 짝퉁의 유행은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지만 그 규모와 액수의 수준에서 중국은 가히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사치 풍조는 언제부터 확산됐을까? 사치 풍조를 조장한 이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사치 풍조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기능만 수행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의 대부분은 대운하 시대(1415∼1784)를 살았던 상인들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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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 풍조가 대중화되는 명나라 시대

필자가 상하이를 갈 때마다 늘 방문하는 곳이 있다. 인민광장에 1996년 12월에 건립된 상하이박물관이다. 1998년 2월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게 관람한 곳은 ‘명청(明淸) 가구관’이었다. 명나라 시대의 가구를 먼저 관람한 후 청나라 시대의 가구를 바라보던 중 속이 메슥거렸다.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박한 명나라 가구에 비해 화려한 장식 기교가 들어간 청나라 가구가 토할 것처럼 어지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청나라가 망했지!”라는 말이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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