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사태와 회계 대란의 교훈

“회계 투명할수록 시가총액이 늘어난다”

290호 (2020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2018년 한 해 업적에 대한 회계 처리를 두고 무려 43개의 상장법인이 회계법인들로부터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았다. 이 수치가 2015년 12개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계법인이 기업들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이 ‘회계 대란’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센 풍파를 몰고 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 삼일회계법인과 회계 처리에 대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한정의견을 받게 되면서 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회사가 매물로 나오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게 됐다. 이런 사태는 2017년 말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 법률의 개정안(이하 신(新)외감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회계 감사를 담당하는 회계법인이나 경영자 및 이사회의 책임이 대폭 강화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2018년 한 해 농사의 결실을 확정해 발표하는 2019년 3월 주주총회 시즌 동안 무려 43개의 상장법인이 외부 감사를 담당한 회계법인들로부터 비적정 감사의견(한정의견, 부적정의견, 의견거절)1 을 받았다. 이 사건을 두고 언론에서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회계 대란’이 벌어졌다고 일제히 보도했을 정도다. 이 와중에 가장 언론의 주목을 받은 기업이 아시아나항공이다. 사실 아시아나항공은 최종적으로 회계법인들로부터 비적정의견을 받은 43개 기업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주총 시즌에 가장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알아보자.


아시아나항공 사태의 내막

아시아나항공이 감사를 받기 전 공시한 2018년의 잠정적인 영업이익은 1784억 원, 당기순손실은 104억 원이다. 2017년 기록한 영업이익 2456억 원, 당기순이익 2626억 원의 실적에 비해 크게 악화된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나항공이 발표한 잠정실적은 감사 과정 중에 크게 바뀌게 된다. 외부로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외부 감사를 담당한 삼일회계법인 담당 회계사들과 아시아나항공 사이에 정확한 회계 처리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2019년 3월22일, 삼일회계법인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영업이익 887억 원, 당기순손실 1050억 원이었다. 앞서 아시아나항공이 발표했던 잠정실적과 크게 다른 수치였다.2 이에 추가해 삼일회계법인은 적정의견이 아닌 한정의견을 발표했다. (1) 에어부산을 종속기업으로 분류하지 않은 점, (2) 마일리지이연부채, (3) 운용리스 항공기 정비충당부채 관련 내용들이 재무제표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거나 정확한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자료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소식은 자본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인 금호산업도 아시아나항공 때문에 한정의견을 받았다. 금호산업의 전체 자산 중 아시아나항공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를 신뢰할 수 없다면 금호산업의 재무제표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정의견 발표 즉시 두 기업 주식의 거래가 중지됐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감사 과정에서 삼일회계법인이 여러 부적절한 회계 처리를 발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적절한 회계 처리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회계법인과 아시아나항공 측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이고, 삼일회계법인 측 주장 일부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측도 동의를 해서 앞서 발표한 잠정실적을 크게 수정한 새 재무제표가 작성됐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세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아시아나항공 측이 더 이상의 수정을 거부하거나, 또는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에 대한 충분한 근거 자료를 마지막까지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일회계법인은 이런 회사의 주장에 대해 동의를 할 수가 없다고 판단해서 한정의견을 제출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정의견이 자본시장에 미친 여파

한정의견이 제출되고 거래가 중지되자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깜짝 놀랐다. 설마 삼일회계법인이 한정의견을 제출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끝까지 회계 처리 방법의 수정이나 자료 제출을 거부했을 것이다. 과거 대부분의 회계법인은 감사를 담당하는 기업과 회계 처리를 둘러싼 의견 충돌이 있더라도 적당한 수준에서 종종 타협하곤 했다. 실제로 3년 전인 2015년 기준 적정의견을 받지 못한 기업은 12개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2016년 21개, 2017년 32개로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다. 이런 통계를 봤을 때, 2015년 이전에는 외부 감사를 담당한 회계법인이 기업과 회계 처리 문제로 갈등을 겪더라도 거의 대부분 기업의 뜻에 따랐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회계 처리 문제로 한정의견을 받았다는 소식은 자본시장을 크게 뒤흔들었다. 금호산업을 포함한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동반 폭락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나흘의 시간이 흐른 3월26일, 삼일회계법인은 적정의견으로 수정된 감사의견을 발표했다. 3월22일 처음 한정의견을 제시했을 때의 실적과 달리 영업이익은 887억 원에서 282억 원으로 줄었고, 당기순손실은 1050억 원에서 1959억 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아시아나항공이 삼일회계법인이 주장한 대로 회계 처리를 수정한 결과였다.

이 소식은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왔다. 2018년 말 부채비율이 634%에 달할 정도로 부채가 많은데 2019년 이후 경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을 고려하면 아시아나항공이 과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여러 채권자가 부채 회수를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보도됐다. 만약 채권자들이 만기가 돌아온 부채를 회수해버리고 다시 빌려주지 않는다면 아시아나항공이나 금호산업은 모두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9년 동안 상환해야 하는 단기 금융부채만 아시아나항공은 1조 원 이상, 금호산업은 1000억 원에 달하는데, 이를 상환할 수 있는 현금이나 기타 단기금융상품은 아시아나항공은 총 4508억 원, 금호산업은 417억 원에 불과했다. 이 정도의 현금성 자산으로는 2019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규모 적자를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정치적 해결 노력

초반에 아시아나항공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3월 말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모 전직 대통령의 사위와 현직 거물급 정치인을 사외이사로 임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외이사들의 구성을 보면 은퇴한 정치인들이나 현 권력자와 가까운 사람이 다수를 차지했다. 국내 거의 모든 대기업이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권의 실력자와 친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 한두 명을 사외이사로 모시기 위해 노력한다. 후진국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지만 기업들의 이런 행동은 합리적인 반응이다. 국내에서 그만큼 정치 권력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처럼 정치인 또는 정치와 깊이 관련된 사람들 다수가 민간기업 사외이사를 차지하는 경우는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3 이런 사외이사들은 주주들을 대표해서 대주주의 경영을 감시하고 조언을 하기보다는 정부에 대한 로비나 바람막이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금호아시아나그룹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외이사로 영입했을 것이고, 어려운 순간에 처하자 과거보다 더 거물급 인사를 영입해 어려움을 극복해 보려 했을 것이다. 즉, 이들 거물급 인사가 정권을 통해 채권단에 압력을 넣어 부채를 연장해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처럼 전직 대통령의 사위와 현직 거물급 정치인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려고 했던 사실이 거의 대부분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거나 보도됐더라도 아주 작게 언급되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한정의견이 발표된 직후 회사의 어려운 상황과 회사의 반응이 세간에 알려지자 금호아시아나의 대주주인 박삼구 회장과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비난이 폭주했다. “회사를 망가뜨린 무능한 대주주와 경영진은 물러나라”는 주장도 다수 제기됐다. 마침 비슷한 시기 대한항공에서 대주주의 가족들에 의해 벌어진 여러 ‘갑질’이 알려지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계열사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4 즉, 이런 시점에 금호아시아나그룹 사태가 발생하니 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비교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한 비난도 폭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정치권 인물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한 행동 사이에 큰 차이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주주들과 여론의 비난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또한 이런 사건이 공개돼 여론화된 만큼 정치권도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이 혹시 은밀한 부탁을 한다고 해도 이를 쉽게 들어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론이 점차 악화되자 박삼구 회장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제공할 테니 채권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이를 단번에 거부했다. 불과 몇백억 원 정도의 담보를 받고 최소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추가 대출을 해달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이 정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경영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 더 이상 박삼구 회장을 믿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어려운 재무 상황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가운데 신용등급이 BB 이하가 되면 조기 상환해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는 차입금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들 부채는 만기가 1년 이내에 도래하지 않으므로 유동부채가 아닌 비유동부채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BBB-인 신용등급이 한 단계만 아래로 하락해서 BB+가 되면 즉시 상환해야 한다. 그런데 아시아나항공이 부채를 상환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신용평가사들도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에 대한 재검토를 시작했다. 신용등급이 하락한다면 아시아나항공이 2019년 갚아야 할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상황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나항공의 2018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공시내용이 있다.



이런 조기상환조건이 붙은 차입금은 장기차입금 약 2500억 원, 사채 약 2300억 원, 자산유동화증권(asset-backed securities, ABS)
1조1400억 원으로 알려졌다. 또한 새롭게 개정돼 2019년부터 적용 예정인 리스 회계 처리 기준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약 400% 정도가 추가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제까지 리스사의 자산인 항공기를 리스해서 운행했는데, 이제부터는 이 항공기를 아시아나항공의 자산과 부채로 동시에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막대한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으므로 만약 신용등급이 하락한다면 아시아나항공은 부도가 날 것이 분명했다.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고난의 역사

여론이 점점 악화되고 산업은행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박삼구 회장은 그룹 회장 직위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삼일회계법인의 적정의견이 발표된 지 이틀 뒤인 3월28일이다. 자신은 직위에서 물러날테니 회사만은 살려달라고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이런 읍소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은 강경한 자세로 나왔다. 산업은행장이 직접 나서서 “퇴진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가 망하지 않으려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해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에 금호아시나아그룹은 마침내 항복했다. 그 결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으로 다시 넘어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됐다.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이 단초가 돼 한때 재계 서열 10워권 안에 들었던 대기업 집단의 총수가 물러나고 그룹이 크게 쪼개지게 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쪼개져 나간다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산업과 금호고속만 남은 군소 그룹으로 몰락하게 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이처럼 고난의 역사를 겪게 된 것은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6조7000억 원의 인수대금 중 거의 대부분을 차입해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했다. 이 인수의 성공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 서열 10위권 안으로 진입했고, 박 회장은 그룹의 급성장을 이끈 능력 있는 경영자로 칭송받았다. 그런데 당시 그룹 계열사들의 상황을 보면 이때 빌려온 막대한 차입금의 이자도 제대로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인수 후 대우건설이라도 경영상태가 좋았다면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몰리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대우건설의 상황도 어려워졌다. 거기다가 대우건설의 자금을 빼내고 부족한 자금은 추가로 빌려서 총 4조1000억 원에 대한통운까지 인수했다.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탄 형국이었다. 5




이런 상황에서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빌려온 부채(보다 정확히 설명하면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콜옵션을 주고 조달한 자금)의 만기인 2009년 말이 다가오자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위기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박삼구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형의 무리한 경영으로 그룹이 위기에 빠졌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신의 지분비율이 높던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형제 사이의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둘 모두에 대해서 각계각층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 속에 박삼구 회장은 동생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는 동시에 자신도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물러난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의 대주주가 돼 금호석유화학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시킨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치열한 소송전이 다수 벌어진다. 형제가 적으로 바뀐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부채를 갚지 못하자 그룹은 채권단 소유로 넘어간다. 그 후 2010년이 돼 채권단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이 시점에서 잠시 물러났던 박삼구 회장도 회사에 복귀한다. 이런 과정 중에 계열사였던 금호렌터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한통운 등 여러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그룹의 재무상태가 회복된다. 드디어 2014년 10월 아시아나항공은 워크아웃을 마감했으며, 2017년 금호타이어 매각을 끝으로 구조조정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행복했던 시간은 잠시였다. 2016년 말 사드 관련 중국의 한국 여행 규제가 시작되면서 중국 노선을 주력으로 하던 아시아나항공은 승객 급감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기내식 공급사를 아시아나항공에 돈을 빌려줄 수 있는 회사로 바꾸려다 문제가 생겨 한동안 항공기에 기내식을 싣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 사태로 우수한 기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악화됐다. 이 당시 직원들도 그동안 사내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을 외부에 알리면서 경영진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러한 폭로 내용 중 어디까지 진짜일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일부 과장된 것들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을 보면 대주주나 경영진의 행태에 불만을 품고 있던 직원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번 사태까지 터지게 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사태의 배경과 신외감법의 제정

결과적으로 회계법인의 한정의견 발표에서 시작한 이 작은 사건의 결과로 박삼구 회장은 그룹에서 물러났고 회사는 매물로 나오게 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엄청난 결과다. 이런 경우는 작년까지는 보기 힘들었던 일이다.

사실 이런 사태는 2017년 말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 법률의 개정안(이하 신(新)외감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이 법안으로 회계감사를 담당하는 회계법인이나 경영자 및 이사회의 책임이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회계 처리에 문제가 발견되면 큰 처벌을 받게 된다. 신외감법의 핵심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다. 이는 6년간 기업이 감사인을 자율적으로 선임하면 그 후 3년 동안은 당국이 강제로 감사인을 선정하겠다는 제도다. 또한 표준감사시간이 정해졌고, 회계법인은 이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게 됐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은 이런 변화의 효과에 대해 잘 인지하거나 준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회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부 경영자는 회계법인의 임무가 감사가 아니라 기업을 대신해서 재무제표를 작성해주는 것이라고 인식하기도 했고, 투자자들 또한 회계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감사 보수는 미국의 약 10분의 1, 일본이나 홍콩의 약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이 수치를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회계감사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뤄졌을지 짐작할 수 있다. 감사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더라도 기업이 감사인을 교체해 버리겠다고 압박하면 회계법인이 문제점을 덮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회계투명성이 낮다라는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돼 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신외감법과 표준감사시간제도가 마련됐다.

이런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감사 환경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감사인 지정제도로 인해 감사인이 기업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지 않고 보다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표준감사시간의 도입으로 인해 감사 시간은 크게 증가할 것이며, 그 결과 당연히 감사 보수도 증가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경영 환경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면 늘어난 감사 보수가 일부 중소기업들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두고 “회계법인이 갑질을 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하는 경영자도 만나봤다. 회계법인이 강하게 나오자 일부 기업인은 “불경기에 접어들어 기업하기도 힘든데 왜 회계법인까지 우리를 못살게 구느냐”고 불만을 호소하고, 극단적으로는 “감사가 왜 필요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 겪는 어려움들은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에서 겪는 산고일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감사 시장이 우리 위상에 걸맞지 않은 낮은 수준이었고 감사가 형식적으로만 수행됐다는 점, 이러한 변화가 자본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개혁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이 향상된다면 회계감사에 소요된 지출보다 시가총액이 훨씬 더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경영자들이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고 의도를 오해하지 않도록, 회계법인도 행동을 조심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경영자들에게 더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 6


회계 대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내년에 제2의 회계 대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기업들은 회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회계 관련 전문 인력을 스스로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제 감사를 담당한 회계법인이 기업 대신 회계 처리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법이 됐다. 따라서 기업은 회계법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회계 처리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이 판단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를 회계법인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계를 잘 아는 인력 확보와 이 인력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변하는 회계 기준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내부 통제 제도의 하나로서 내부 회계 관리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즉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회계법인도 달라져야 한다. 독립적인 자세로 꼼꼼한 감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유능한 인력을 길러내고 계속해서 변하는 회계 기준을 공부하고 교육하는 것, 그리고 내부적으로 엄격한 품질관리제도를 마련하고 유지하는 것도 회계법인의 책임이다. 혹시 과거 낮은 감사보수를 핑계로 이를 미뤄뒀다면, 이제는 미룰 명분도 없다. 제도의 정비로 인해 이런 투자를 할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앞으로는 문제가 생기면 회계법인의 존속이 어려울 정도로 처벌 수위가 높아질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주와 다른 투자자들, 그리고 사외이사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긴다. 아무리 제도가 바뀐다고 해도 기업의 주인인 주주나 다른 투자자들이 회계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회계감사가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 주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 모든 일을 경영진에게만 맡긴다면 경영진은 자신을 견제하는 회계법인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회계 처리를 용인하는 회계법인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주나 주주를 대리하는 사외이사들이 적극적으로 외부 감사를 담당하는 회계법인과 소통하면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챙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주들이 사외이사를 선정하는 주주총회에 적극 참석하고, 기업의 행동을 감시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춘 사람이 사외이사로 뽑힐 수 있도록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물론 기업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주는 것도 사외이사의 역할 중 하나다. 그렇지만 경영자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이다. 사외이사의 법적 책임이 크게 증가한 만큼 사외이사들도 이제 적극적으로 경영진의 행동을 살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중대한 회계 부정이나 횡령 등의 사건이 벌어질 경우 사외이사들이 형사 처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사소송에 휘말릴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두렵다면 사외이사 역할을 맡지 말든가, 맡았다면 열심히 감독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혹시 법정에 서게 됐을 때 선관주의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2,3,4권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 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4호 The Centennial Strategy 2020년 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