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를 통해 본 세상 36
편집자주
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최 교수는 33회 원고를 시작으로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어떻게 결정되고 움직이는지, 그 과정에서의 회계정보를 활용한 올바른 투자 방안은 무엇인지에 관한 글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며, 이번 글은 제4편에 해당합니다.
버블(bubble·거품)이란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내재가치 수준보다 월등히 상승하는 현상이다. 버블 뒤에는 필연적으로 거품이 꺼지면서 가격이 폭락하게 된다. 현재 전 세계는 미국의 부동산 버블에서 시작한 금융위기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버블 현상이 상당히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겪어본 주식시장의 버블만 해도 2000년까지의 IT버블과 그 뒤 거품 붕괴로 인해 2001년까지 벌어졌던 위기, 1996년 외환위기 직전까지의 버블과 1997년부터 벌어졌던 경제위기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버블이 바로 2007년까지의 부동산 경기호황에서 초래됐던 주식시장의 버블과 그 이후의 경제위기다.
필자는 DBR 82호에 실린 ‘출렁이는 증시, 결국 가치투자가 이긴다’라는 글에서 주식시장에서 대략적인 주가의 수준은 내재가치 투자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이 설명대로 내재가치 투자자에 의해 주가가 결정된다면 어떻게 해서 버블이 생길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본 고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주식시장에는 많은 투자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모든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일부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투자하는 투자자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이들 비이성적인 투자자들의 투자는 이성적 투자자들이 결정하는 주가의 흐름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비이성적으로 주가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 반대로 비이성적으로 주가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어 전체적으로 평균해보면 그 효과가 거의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이성적인 투자자의 투자에 대해 다른 투자자들이 무리를 지어 따라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전문용어로 ‘허딩(herding)’이라고 하는데 쉬운 말로 하면 ‘남들이 다 하면 잘 모르지만 나도 따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바로 이 허딩의 결과로 나타나는 게 버블이다.
미국 IT 버블의 사례
1990년대 말부터 미국 IT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활동도 없고 수익모델도 애매한 기업들의 주가가 치솟았다. 물론 당시 우리나라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IT 지원정책에 힘입어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골드뱅크나 다이얼패드 같은 적자투성이 회사의 주가가 당시 삼성전자나 현대중공업 못지 않은 수준까지 올랐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특별히 IT 분야와 관련이 없는 기업들도 이름을 ‘OOO.com’으로 바꾸기만 하면 주가가 몇 배로 뛰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런 거품도 잠시였다. 2000년부터 거의 대부분 IT 기업들이 파산했으며 살아남은 기업들의 주가는 불과 몇 분의1 수준으로 폭락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해보자. 1990년대 말부터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웹(web)이 탄생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언론이나 애널리스트, 투자은행들은 IT 산업이 기존 산업과는 전혀 다른 신경제(new economy) 분야이며 IT 기업들이 앞으로의 산업을 제패할 것이라는 식의 보도나 홍보를 쏟아냈다. IT 분야는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도 이런 거품을 적극적으로 북돋웠다. 이처럼 IT 분야가 전도유망해 보이니 많은 투자자금이 1990년대 초·중반에 이 분야로 흘러들어갔다. 벤처캐피털이나 투자은행들이 실리콘밸리에 있는 조그마한 회사들에 자금을 대는 역할을 했다. 벤처캐피털이나 투자은행들은 통상적으로 상장 전 초기 단계에 있는 기업들에 투자를 한 후 이들 기업을 상장시켜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창출한다. 따라서 이들은 회사를 성공시켜 이익을 창출한 후 상장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1990년대 말이 될 때까지도 이들 대부분의 작은 회사들은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기순손실이 계속 확대되거나 손실 규모가 별로 변하지 않는 추세였으므로 기존의 이익 지표를 가지고 회사가 긍정적이라고 홍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자 투자은행들은 이들 기업을 상장시키기 위해 그때까지 별로 잘 쓰이지 않던 EBITDA(이자비용, 세금, 감가상각비 및 무형자산 상각비 차감 전 이익)라는 독창적인 측정치를 이용해 회사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EBITDA는 회사가 적자를 보느냐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경우 매출액이 증가하기만 하면 늘어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적자가 나더라도 매출액이 늘고 있는 기업이라면 ‘앞으로 이 속도로 계속해서 EBITDA가 늘어나면 몇 년 후 흑자로 전환할 것이며 또 몇 년 지나면 전 미국에서 해당 분야의 강자가 될 것이다’는 감언이설로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게 가능했다.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주식을 사야 돈을 벌 수 있는 투자은행 소속 애널리스트들은 EBITDA를 활용한 분석보고서를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그 결과 일반 투자자들이 이런 주식에 점차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주식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니 점점 더 많은 추세 투자자들이 IT 기업들의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즉 주가가 상승하는 추세가 가속화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지 내재가치 투자자들은 이런 주식을 사지 않았다. 워런 버핏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자 언론은 ‘워런 버핏은 신(新)경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꼬았다. ‘워런 버핏의 시대는 갔다’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그동안 IT 주식을 구입하지 않던 내재가치 투자자 펀드매니저들도 IT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일부 펀드매니저들은 IT 주식의 내재가치가 높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식 가격이 계속 올랐기 때문에 버블이 꺼지기 전 적당한 시기에 주식을 팔고 나오면 된다는 생각에 IT 주식을 구입했다. 폭탄을 돌리다가 폭탄이 터지기 전에 재빨리 뛰어나오겠다는 계산이었다. 둘째, 또 다른 펀드매니저들은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왜 IT 주식을 구입하지 않느냐며 항의하거나 펀드를 환매하는 것 때문에 IT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셋째, 일부 펀드매니저들은 IT 주식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과거 투자 판단이 틀리지 않았을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남들처럼 IT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당시는 IT 주식을 매수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취급받던 시기였다. 즉 내재가치 투자자들마저도 이런저런 이유에서 주식 매수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런 상황이 바로 앞에서 설명한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허딩 현상이다. 결과적으로 기업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추세 투자자들이 벤처캐피털, 투자은행, 애널리스트, 그리고 언론의 홍보내용을 그대로 믿고 IT 주식에 계속 뛰어들었고 이런 추세가 계속되자 나중에는 내재가치 투자자들마저 이런 추세에 함께 뛰어들어 계속 주식가격을 상승시키는 거품이 발생했다.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