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맞는 매가 덜 아프다

24호 (2009년 1월 Issue 1)

2008
년 8월 말9월 초에 두산그룹 소속 기업들의 주가가 모두 급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두산이 자회사 두산 인프라코어 인터내셔널과 두산 홀딩스 유럽의 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두산 인프라코어는 2007년 49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중장비 회사 밥캣을 인수했다. 한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인수합병(M&A)이자 한국 기업이 미국 대기업을 인수한 거의 최초의 사례였다. 두산은 이때 모든 자금을 자체자금으로 조달할 수 없어 약 29억 달러를 미국에서 차입 조달했다. 흔히 부채 약정(debt covenant) 또는 재무 약정(financial covenant)이라 불리는 이때의 차입 조건은 밥캣의 부채가 EBITDA(세금,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의 7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2008년 들어 글로벌 신용위기가 날로 악화되면서 미국 건설 경기도 침체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건설 장비를 생산하는 밥캣 역시 이 후폭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실적 악화로 EBITDA가 나빠지면서 밥캣은 부채가 EBITDA의 7배를 넘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두산은 증자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사실 밥캣 EBITDA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면 1억 달러 미만의 비교적 적은 금액만 증자해도 충분했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10억 달러의 증자를 결정했다. 밥캣의 차입금을 줄여 좀 더 건실한 재무구조를 이루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이 10억 달러의 증자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두산그룹 전체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08년 8월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10억 달러는 약 1조1000억 원이다. 두산그룹의 전체 규모와 부채 수준을 고려하면 그룹 전체 주가 급락을 일으킬 만한 대단한 금액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기에는 인간의 묘한 심리가 숨어 있다.
 
투자자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주류 재무관리학의 이론대로라면 자본시장은 항상 효율적이다. 효율적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이용해 분석하고, 분석 결과에 따라 합리적인 투자결정을 내린다. 직관이나 감을 이용해 투자하는 비이성적인 투자자들도 일부 존재하지만 이런 일부 투자자들은 다수의 현명한 투자자들 때문에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 투자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은 주류 이론과 상당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는 이용 가능한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이 정보들을 모두 분석하여 투자의사를 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가장 중요한 몇몇 정보만을 분석, 의사결정을 단행한다.
 
회계 분야의 연구 결과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정보는 기업 실적이 시장의 예상치를 초과하느냐, 미달하느냐였다. 이때 시장 예상치는 애널리스트들이 발표하는 해당 기업의 실적 예측치를 말한다. 다수의 애널리스트들이 한 기업을 대상으로 하여 실적 예상 수치를 발표하므로 투자자들은 이 예측치의 평균이나 중위수를 투자 근거로 삼는다. 기업의 실적이 시장 예상치보다 훨씬 높으면 ‘어닝 서프라이즈’, 훨씬 낮으면 ‘어닝 쇼크’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알려지기 시작한 이 용어는 최근 신문의 증권 면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한 기업의 주가는 시장의 기대 수준에 따라 형성된다. 실적 발표 때 기업의 실제 성과가 예측치를 초과하면 주가는 상승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당연히 주가가 하락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때 주가가 오르거나 떨어지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실적이 시장 예상치보다 10% 높거나 10% 낮다면 주가 상승폭과 하락폭 역시 비슷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시장의 움직임은 전혀 달랐다.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초과했을 때 그 기업의 주가가 오르긴 했지만 상승폭 자체는 크지 않았다. 반면에 실적이 예측치에 미달하면 주가가 상당히 큰 폭으로 하락한다. 왜 그럴까.
 
손실회피 경향의 투자 성향
많은 연구 결과는 인간의 심리가 손실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익과 손실에 대한 인간의 효용 함수가 각각 다르게 반응한다는 의미다. 이익을 본 경우에는 효용 함수가 완만하게 증가하지만 손실을 보면 효용이 급격히 감소한다.
 
이 효용 함수는 이익이나 손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점점 기울기가 완만해진다. 즉 이익이나 손실 규모가 클 때는 이익이나 손실이 추가로 증가해도 효용이 변하는 정도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 프린스턴대의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라는 심리학자가 1979년에 발표한 ‘전망 이론(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er Risk. Econometrica)’을 응용한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주식 투자로 1달러를 벌 때 느끼는 기쁨보다 1달러를 잃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 2배 정도 크다는 것이다. 이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카너먼 교수가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뒤 인간의 비합리적 판단과 행동이 금융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소위 행동주의 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학계와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 심리학에서 이뤄진 수많은 시험은 이러한 인간의 심리 상태가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냈다. 투자자들의 반응 또한 이 전망 이론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분기말이나 연말 이전에 애널리스트들에게 경영 환경이 어렵다는 등의 부정적 정보를 미리 알리려고 노력한다. 시장의 기대 수준이 자사의 실적보다 높다고 판단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시장의 기대 수준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 형편이 어렵다고 미리미리 알려야 시장의 기대를 서서히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시장의 기대 수준을 낮춘 다음, 이 기대치를 초과하는 실제 성적을 발표해야 시장의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그 예상치에 미달하는 이익을 발표하는 것보다 주가 부양에 효과적이란 점을 노린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옛말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 심리는 참으로 미묘하다. 기업이 발표한 실제 실적보다 때로는 그 이익이 기대 수준과 비교했을 때 어떠하느냐가 주가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두산그룹 주가 급락의 원인
필자는 두산그룹의 주가 급락 역시 바로 이 ‘전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산그룹의 증자 발표가 나오자마자 애널리스트들은 두산이 제때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실제 이 발표가 나오기 불과 며칠 전까지도 두산그룹은 밥캣의 영업 실적이 우수하고 그룹의 자금 사정이 좋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심지어 증자 발표 하루 전에 IR 담당자는 증자설이 사실무근이라는 이야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두산의 설명대로 두산이 의도적으로 증자 관련 정보 제공을 늦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밥캣 인수 후 세계 각국에 흩어진 여러 회계 및 ERP 시스템을 두산 시스템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지체, 정보 집계가 늦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떠했건 불과 하루 전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은 자본시장이 충격을 받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애널리스트는 두산의 행동에 대해 “섭섭하다”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실망감을 표시했다. 상당수 애널리스트들도 이제 앞으로는 두산의 발표를 믿기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들은 두산이 발표한 것보다 밥캣의 실제 상황이 더 나쁠 수 있다며 목표 주가를 대폭 낮췄다. 충격 받은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으며, 두산그룹 주가는 더욱 추락했다.
 
밥캣의 영업 실적 악화 및 증자 발표가 알려지기 이전에 두산그룹의 주가는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정보가 드러나는 순간 투자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실제보다 더욱 극단적이고 나쁜 상황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기대에 미달한 결과가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생각하는 시장 참가자들의 실망감 또한 더 커졌다. 때문에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 것이다.
 
두산 외에도 최근 대규모 M&A를 단행한 STX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가가 모두 큰 폭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지난 호에서 설명한 풋옵션 관련 자금 사정 악화설이 주 원인이긴 하지만 두산그룹의 발표 또한 주가 하락에 일부 공헌했을 가능성이 높다. 언론은 이들이 모두 대규모 M&A를 단행했다는 것을 들어 ‘급히 먹다 체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두산의 이상하 전무는 부랴부랴 기자회견과 기업설명회를 열어 두산의 자금사정이 열악하지 않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당초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겠다는 목표 아래 자금을 준비했지만 인수를 포기하고 이 자금을 자회사 밥캣의 부채 상환에 우선 사용하겠다는 것이 발표 내용의 핵심이었다. 두산그룹의 2008년 영업이익은 약 2조4000억 원이기 때문에 현재 환율로 약 1조5000억 원에 해당하는 10억 달러를 증자하는 것은 그룹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 전무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M&A를 통해 과거 소비재 업종에 주력한 두산그룹을 중공업 중심의 새로운 두산그룹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그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IR 부서의 책임자가 아니라 그룹의 주역이 직접 홍보에 나섰으니 두산이 이번 사태에 얼마나 놀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시장과 미리미리 소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증자 발표 이전에 미리 기자회견을 갖고 이런 구체적인 정보를 시장에 제공했다면 그룹 계열사 전체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적이 나쁠수록 미리 시장에 알려라
두산 사태가 발생한지 불과 10여 일 뒤인 9월 중순에 LG디스플레이는 기업설명회를 열고 세계적인 액정표시장치(LCD) 공급 과잉 문제로 3분기 및 4분기 실적 전망치를 낮추고 생산량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LG디스플레이가 두산그룹의 사례에서 배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기업들도 이제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미리 시장에 널리 알리는 것이 가장 좋음을 깨닫고 있는 듯하다.

여담이지만 한국 남자들은 군대나 학창 시절에 ‘고참병이나 선생님한테 먼저 맞는 매가 덜 아픈지, 나중에 때리다 지쳤을 때쯤 맞아야 덜 아픈지’를 고민해 본 추억이 있을 것이다. 자본시장의 경우 확실히 먼저 맞는 매가 덜 아프다.
 
과거 대공황 시절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라고 이야기했다. 70년 전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면 투자자들은 그 다음부터 기업이 무슨 소리를 해도 쉽게 믿지 않는다. 사전에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해당 기업이 신뢰할 만한 기업이라는 것을 투자자들에게 인식시켜 줘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자가 ‘회계를 통해 본 세상’ 두 번째 원고로 DBR 20호(11월 1일자)에 실은 ‘부정적 뉴스, 숨기는 게 능사 아니다’라는 글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EBITDA와 영업현금 흐름
 
EBITDA는 영업 활동에서 발생한 현금 흐름을 손익계산서를 이용해 추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표다. 현금흐름표가 재무제표에 포함되기 전인 1990년대 초반까지는 현금 흐름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이때 손익계산서를 이용해 영업 현금 흐름의 근사치를 계산한 수치가 EBITDA다.
 
EBITDA 금액은 영업활동에서 발생한 현금 흐름 수치와 비슷하지만 영업 자산이나 부채의 증가 및 감소분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기업의 잉여 현금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영업 현금 흐름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아직 많은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관성의 법칙에 의해 여전히 EBITDA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금흐름표 등장으로 영업 현금 흐름을 파악하기가 쉬워진지가 이미 10년이 지났으므로 앞으로는 기업들이 영업 현금 흐름을 바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황이석 저 ‘CFO 강의노트’(서울경제경영 펴냄)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책은 모든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경영에 참고할 만한 수준 높은 회계 정보를 사용한 재무전략 지침서다.
 
편집자주 서울대 최종학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동시에 받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3호 Future Food Business 2019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