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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재무제표가 전하지 못한 진실

김현진 | 390호 (2024년 4월 Issue 1)
2003년 로스엔젤레스(LA)에서 창업한 미국의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 ‘리볼브그룹(Revolve Group)’은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입소문을 통해 열혈 고객층이 확대되는 등 인기몰이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2019년 6월, 기업공개(IPO)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직전에 진행됐던 다른 기업들의 IPO 성적을 두고 볼 때 성공을 예견하긴 힘들었습니다. 경영진 모두 떨리는 마음으로 맞이한 운명의 날. 12억 달러로 산정된 리볼브의 IPO 가치가 거래 첫날 89%까지 추가로 상승하면서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12개월간 매출액의 약 4.5배까지 치솟았습니다. 투자자들 및 IPO 가격을 설정한 증권사는 보수적으로 움직였지만 이 회사의 강력한 펀더멘털이 높은 기업평가로 이끈 겁니다.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이 사례를 소개한 대니얼 매카시 에머리대 고이주에타경영대학원 교수와 피터 페이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교수 등 공동 연구진은 이 기업의 평가가 긍정적으로 이뤄진 것은 ‘고객유닛(customer-unit) 경제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고객유닛 경제학이란 고객 한 명의 관점에서, 고객의 지출 금액과 회사의 지출 금액을 각각 산정하는 것인데 고객의 기여도를 기업평가에 반영하는 데 이론적 근간이 되는 개념입니다. 즉, 리볼브의 경우에도 신규 고객 확보 및 단골고객 유지 비율이 높다는 점이 고객유닛 경제학 관점에서 수익 잠재력이 크다는 사실을 입증하므로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리볼브의 IPO 성공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장해야 한다’는 과거의 재무적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 기반 기업평가가 매출의 지속가능성을 판별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상징적 사례”라고 강조했습니다.

재무제표로만 알기 어려운 회계장부 너머의 성과를 반영하는 평가 도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국내에서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100년 넘게 ‘기업의 언어’로 불리며 한 기업의 재정 건전성과 가치를 평가해온 재무제표가 고객 중심 경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현 경영계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움직임입니다.

이에 한국CRM·디지털마케팅협회 소속 교수 등으로 이뤄진 경영학자들이 기업이 자산으로서 고객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측정 체계가 없기 때문이라며 재무제표의 대안으로 고객제표를 제시하고 나섰습니다. 재무제표가 여전히 기업의 성과 평가를 위한 매우 중요한 체계인 것은 사실이지만 보완될 여지가 많다는 시각에서 출발한 움직임으로 세계 최초의 시도임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 노스이스턴대 다모르매킴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셔먼 교수와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영 교수는 HBR 기고문, ‘재무보고서로 진실을 알기 어려운 이유’에서 재무제표는 경영진의 재량에 따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성과를 부풀리기 위한 왜곡 현상이 발생할 여지가 많고 빠르게 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다양한 상황에 놓인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기에 역부족이란 점을 꼽습니다. 예컨대 연말, 매출 기준을 맞추기 위해 밀어내기식으로 파격적인 할인 판매에 나서는 상황이라면 당장은 실적 목표를 채울 수 있을지언정 ‘체리피커’ 등 ‘덜 바람직한 고객군’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에 해를 끼쳤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재무제표는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를 뜻하는 사회자본은 물론 인적자원 및 브랜드 가치 등 무형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한계로 지적돼 왔습니다. 이 같은 재무제표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고객 중심 경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고객제표는 신선한 관점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모든 고객은 똑같지 않다(All customers are not created equal)’라는 경영계 ‘명언’을 떠올리면서 숫자가 아닌 고객에게 집착하는 법을 고민하는 데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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