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채권을 사용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① 자금을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고 ② 이자 지급액이 비용이 아닌 배당으로 표시돼 당기순이익을 높일 수 있으며 ③ 회계상에서는 자본이지만 세법에 따르면 부채이므로 이자 지급액이 과세 소득에 잡히지 않아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 특히 전환형 영구채권(영구CB)의 사용은 투자자와 발행사 모두에 매력적인 선택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특정 기한이 되면 발행사가 옵션을 행사해 투자금을 상환받을 수도 있고, 그 이전에 투자자가 전환권을 행사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발행사 입장에서도 투자자들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시장에서 매각하면 회사의 현금이 유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HMM(구 현대상선)도 생존의 위기를 겪던 2010년대 중후반 영구CB 등을 발행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이후 업황 개선으로 주가가 상승하면서 HMM의 영구CB를 매입했던 산업은행 등은 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했다. 2023년 말 벌어진 입찰에서 하림이 6조4000억 원의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HMM은 산업은행의 품을 떠나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됐다.
2010년대 중반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이 현대글로벌을 지배하고, 현대글로벌이 현대엘리베이터를 지배하고,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을 지배하고, 현대상선이 현대증권과 현대아산 등의 기타 회사들을 지배하는 복잡한 형태의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계열사들 중 해운사 현대상선이 특히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는 2008년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교역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여러 조선사가 위기에 직면했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비롯한 해운사들도 생존의 위기를 겪었다. 현대상선 때문에 현대그룹은 그룹 전체가 망할 수도 있었던 위기를 겪었고, 위기를 극복하고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법적 또는 윤리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러 거래를 벌이기도 했다.11이런 거래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DBR 358호에 실린 ‘총수익스와프를 통한 경영권 방어 논란’이라는 필자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 결과 현정은 회장은 경영권을 지킬 수는 있었지만 소송에서 패해 1700억 원을 배상해야 했으며 현대그룹은 여러 행동주의 펀드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의 대상이 됐다. 현정은 회장은 책임을 지고 이사직을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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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acchoi@snu.ac.kr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최종학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권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 가치평가』 『사례와 함께하는 회계원리』,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