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모회사가 자회사에 유의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 기준이 구체화돼 있기는 하지만 여러 정황이나 주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등 전문가적 재량이 포함된다는 문제점은 계속해서 존재한다. 거의 동일한 상황에서도 실질 지배력 여부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보니 특정 의도가 있는 기업들은 다른 기업을 연결하거나 연결하지 않겠다는 의사결정을 자의적으로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관련 사안을 다루는 감독 기관 역시 스스로 결정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2022년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HD현대로 바꾸고 새 대표로 정기선 씨를 선임했다. 이로써 정주영-정몽준-정기선으로 이어지는 3세대 경영이 시작됐다. HD현대의 주력 회사는 흔히 ‘현대조선’이라고 이름이 잘못 알려진 현대중공업을 비롯해서 현대일렉트릭, 현대제뉴인, 현대오일뱅크 등이다. 이런 큰 변화가 의결된 주주총회에서는 안건에 대한 별다른 반대가 없었다. 아주 조용히 주주총회가 이뤄져서 회사명이 바뀌었다는 것도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을 정도다. 승계 과정에서 큰 논란이 벌어졌던 몇몇 기업의 경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HD현대의 자회사들 중 현대오일뱅크는 원래 1964년 창립된 극동석유(극동정유)를 모체로 하며 석유화학공업과 석유 및 윤활유 제조 및 판매가 주 사업 분야다. 1993년 현대그룹이 경영 위기에 빠진 극동정유를 인수해 사명을 현대정유로 바꿨다. 2002년 현 사명으로 바꾼 후 2010년 들어 현대중공업그룹이 경영권을 인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유소 업계로만 따지면 국내에서 SK에너지와 GS칼텍스 다음이다.
2021년 말부터 현대오일뱅크는 거래소 시장 상장을 준비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2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상장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바 있다. 따라서 상장 3수생이라고도 불렸다. 이번 세 번째 상장 시도 당시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등의 이슈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청구서를 접수하면 45일 이내에 심사 결과를 알려주도록 돼 있는데 2021년 12월에 회사가 예비심사청구서를 접수했지만 6월이 돼서야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상장을 통해 현대오일뱅크가 속한 현대중공업그룹은 보유 지분의 일부를 외부에 매각해 약 1조 원의 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6월에 상장 허가가 내려졌지만 2022년 들어 주식시장이 몹시 침체가 돼 있는 상황이라 2022년 7월 현대오일뱅크는 상장 계획 취소를 발표했다.
최종학acchoi@snu.ac.kr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최종학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권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 가치평가』 『사례와 함께하는 회계원리』,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