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1. Interview: 린스타트업의 대부 스티브 블랭크 스탠퍼드대 겸임 교수

코로나 이후 고객 변화 잡으려면
추측-실험-피벗하는 ‘스타트업 방식’으로

313호 (2021년 0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코로나19 이후 고객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가설과 검증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수정하는 피벗 전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에서 피벗이 어려운 이유는 ‘프로즌 미들(Frozen Middle)’ 문제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실행 그룹과 혁신 그룹을 구분하고 그들이 상호 협력할 수 있도록 조직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혁신의 성격에 따라 실행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데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관련된 혁신의 경우, 규정집의 부록 같은 별도 절차를 만들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혁신의 경우, 아예 별도 건물에 독립적인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각종 혁신 활동 포스터를 붙이고 단체 티셔츠와 커피잔을 맞춘다고 혁신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조직이 혁신을 어떻게 실현시킬지에 대한 공통의 규칙과 신뢰 체계, 즉 혁신 강령을 구축해야 한다.



편집자주
스티브 블랭크 교수와의 화상 인터뷰 내용은 DBR 유튜브채널 ‘DBR tv’에서도 만나실 수있습니다.

코로나19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진 경영 환경 속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수정하는 ‘피벗(Pivot, 방향 전환)’ 전략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에어비앤비는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급작스럽게 전면 중단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단거리 여행과 단기 임대 중심으로 빠르게 궤도를 수정해 고객을 놓치지 않았다. 반면, 위기에 대응하는 데 실패해 파산에 이른 기업도 수두룩하다. 이처럼 피벗에 성공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차이는 무엇일까?

피벗은 린스타트업(Lean-startup) 방법론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이다.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 스탠퍼드대 교수가 2003년 ‘고객 발견(discovery) - 고객 검증(validation) - 고객 개척(creation) - 조직 구축(company building)’의 4단계로 구성된 고객 개발 모델(Customer Development)을 만들면서 고객 검증에 실패하면 빠르게 궤도를 수정해 다시 고객을 발견하는 과정, 즉 피벗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뒤이어 당시 IMVU를 창업하고 블랭크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에릭 리스(Eric Ries) 현 장기증권거래소(Long Term Stock Exchange) 대표가 고객 개발 모델에 소프트웨어 기업의 애자일 관행을 결합한 경영 방식을 ‘린스타트업’라고 명명했다. 여기서 리스는 피벗의 의미를 고객 개발에 한정하지 않고 전략의 변화로 확장했다. 2010년 알렉산더 오스터왈더가 저서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에서 창업가들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 프레임워크를 제시하면서 린스타트업 모델이 완성된다. 블랭크 교수에 따르면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로 가설을 설계하고, 고객 개발과 애자일 방법론을 바탕으로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 MVP)을 반복적으로 테스트함으로써 혁신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 린스타트업 방법론의 골자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피벗을 포함한 린스타트업 방법론의 선구자로 알려진 스티브 블랭크 스탠퍼드대 경영공학부(MS&E) 겸임 교수를 줌(Zoom)으로 화상 인터뷰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블랭크 교수와의 두 차례 인터뷰를 요약, 소개한다.

블랭크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즈니스 환경의 예측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짐에 따라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 예컨대 고객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빠르게 테스트하는 린 방식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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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스티브 블랭크

스티브 블랭크(67)는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연쇄 창업가이자 창업 교육자이다. 1980∼90년대에 기술 관련 스타트업 8개를 창업했으며 그 경험을 살려 고객 개발 방법론을 개발해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교육자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1년 고객 개발 모델과 애자일 엔지니어링,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를 결합한 ‘린 런치패드(Lean LaunchPad)’ 클래스를 설계했다. 그의 교육 커리큘럼은 전 세계 유수 대학뿐 아니라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혁신 사업(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 Innovation Corps)에 도입됐으며, 국방(the Hacking for Defense)과 외교(Hacking for Diplomacy programs)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현재 스탠퍼드대 겸임 교수이자 컬럼비아대 선임연구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강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피벗의 중요성이 부상하고 있다. 피벗의 의미는 무엇인가?

피벗은 현재 작동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부분 혹은 그 이상을 수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피벗은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다. 고객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학습하고 발견한 결과이다.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때는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하는 방식이 통했다. 하지만 중국, 신기술 같은 새로운 변수가 끊임없이 생기고 파괴적인 비즈니스가 나타나는 21세기에 피벗의 중요성이 커졌다. 피벗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 비즈니스 모델을 바꿀 수 있도록 이끈다. 단순히 타깃 고객을 바꾸거나 상품이나 서비스의 일부 특성을 바꾸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오스터왈더가 정의한 비즈니스 캔버스의 9개 블록1 중 어떤 부분도 피벗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 이런 변화를 예측한 책이나 계획은 없었다. 계획을 세워야 하는 대기업 신사업 부서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후 고객의 변화를 따라잡으려면 스타트업처럼 사고하는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은 계획에 따라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 쉬운 말로 ‘추측’에서 출발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추측은 언제든 ‘틀려도 괜찮다’. 빠르게 실험, 테스트하고 학습해 다른 가설로 바꾸면 된다. 피벗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는 조직과 리더십이 그런 신속한 변화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린스타트업은 스타트업을 위한 방법론이다. 대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2013년 5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커버스토리로 내가 쓴 ‘Why the Lean Start-up Changes Everything2 ’이란 글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린스타트업은 스타트업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 글에서 GE 같은 대기업도 린스타트업을 적용하기 시작했음을 소개한 이후로 린스타트업 운동이 대기업에도 유행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대기업도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데 린스타트업 방법론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사람이 린스타트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안타까운 점은 여전히 많은 기업이 린스타트업의 겉모습만 흉내내고 도구로만 받아들였지, 린스타트업을 활용해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태생이 스타트업과 다르다는 점부터 먼저 인정해야 한다. 린스타트업의 아이디어는 스타트업은 단지 대기업의 규모만 줄인 버전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에서 단지 규모를 키운 버전이 아니다. 대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을 실행하는(execution) 조직이라면 스타트업은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search) 조직이다. 매일 계획을 실행하는(execution) 대기업과 매일 실험하는(experimentation) 스타트업의 조직 디자인은 다를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에 맞는 기술과 도구를 갖추고 있듯이 대기업도 그동안 성장하는 데 기초가 된 수많은 계획과 절차, 관련 부서들과 OKR, KPI 같은 성과 지표들을 갖추고 있다. 대기업이 위기에 빠르게 대응하려면 조직의 디자인부터 스타트업처럼 바꿔야 한다. 대기업에서 피벗이 어렵다면 그것은 결코 구성원들이 스타트업보다 덜 똑똑해서가 아니다. 단지 현 대기업의 조직 구조 안에서 대기업 구성원들은 스타트업보다 덜 민첩할 수밖에 없다.

조직을 바꾼다는 게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조직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얼어붙은 중간관리자 조직, 일명 ‘프로즌 미들(Frozen Middle)’이라고 불리는 그룹 때문이다. 오래전 한국에서 1년간 일하면서 한국 대기업의 문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경영진은 변화의 필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변화를 추진하고자 한다. 조직의 가장 밑에 있는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열정적인 기업가를 자처하며 변화를 기회로 삼고자 한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에 있는 중간관리자들이다. 기존 프로세스에 충실한 이들은 이런 변화가 잠깐 지나가는 유행이라고 생각하고 지속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설령 믿는다고 해도 당장 무엇을 실행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이들은 그동안 조직이 세운 계획에 따라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앞으로는 창의적으로 변신해서 주어진 경로를 벗어나라고 강요한다면? 어려운 일이다. 이들을 포함해 모든 조직에 실행 조직에서 창의적인 혁신 조직으로 변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기존 조직은 기존 방식으로 운영하고, 그와 동시에 스타트업처럼 일하는 혁신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프로즌 미들’ 문제를 해결하고 실행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은 노벨상을 탈지도 모른다. 한 가지 정답은 없다. 선례를 보면 창업자가 운영하는 기업이 다른 기업보다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운 경향을 보인다. 일론 머스크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창업자는 구성원들을 절차가 아니라 하나의 미션에 정렬시킴으로써 동기부여한다. 프로즌 미들 문제는 구성원들이 기업의 미션이 아니라 절차만 따르게 되면서 발생한다.

혁신의 종류는 3가지 범주로 나눠볼 수 있다. 맥킨지의 혁신의 3가지 범주(Three Horizons of Innovation)3 에 따르면 혁신은 비즈니스 모델을 실행(execute)하느냐, 혹은 찾느냐(search)를 기준으로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집중하는 1범주,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는 2범주,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데 집중하는 3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1범주는 기존에 쓰던 생산관리 툴을 활용해 핵심 비즈니스 모델에서 과정, 절차, 비용 등을 개선하는 혁신을 추구한다. 2범주는 새로운 채널 혹은 고객을 발굴하거나, 기존 고객에게 새로운 상품을 판매하는 등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데 집중한다. 현 비즈니스 모델 안에서 적정 수준의 리스크하에서 실험을 반복하는 것이다. 마지막 3범주는 기업가들이 새롭고 파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보육하는 것처럼 빠르고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확장 가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다.

맥킨지의 이론은 혁신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에 나서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특히 1, 2범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프로즌 미들’ 문제를 해소하려면 그 안의 혁신 그룹을 위한 별도의 규칙 세트를 만들어야 한다. 마치 규정집의 부록(appendix)처럼 말이다. 99%에 해당하는 기존 실행 그룹은 규정집의 앞부분 내용을 따르면 된다. 1%의 혁신 그룹을 위한 별도의 규정이 필요하다. 예컨대, 혁신 그룹이 재무 파트에 얼마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려면 각종 입증 서류와 위원회 검토 자료, 서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별도의 규정에 따라 혁신 그룹은 해당 예산을 원하는 곳 아무 데나 쓰고 나중에 보고하면 된다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면 혁신 그룹이 매번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마다 기존 실행 그룹과 입씨름하며 싸울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3범주에 해당하는 파괴적인, ‘미친’ 아이디어는 1, 2범주처럼 기존 규정집에 부록으로 새로운 규정을 붙이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3범주에 해당하는 혁신 그룹은 물리적으로 아예 실행 그룹과 분리돼서 별도의 건물, 그들 업무에 최적화된 공간에서 그들만의 계획과 절차, 정책, 인센티브로 운영돼야 한다.

혁신 그룹에 특화된 인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가? 실행 그룹과 혁신 그룹이 서로 다른 룰에 따라 일한다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혼란과 불확실성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혼란과 불확실성이 좀 더 편안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그런데 99%의 사람들은 전자의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대로도 편안하고 좋은데 왜 저렇게 리스크를 질까? 의구심을 갖는다. 하지만 매일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것 같은 도전을 즐기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기업은 모든 사람이 리스크, 불확실성을 똑같은 방식으로 활용한다고 착각한다. 리더는 양쪽 그룹이 모두 기업의 생존에 필요하며, 기업의 같은 미션 아래 협력할 필요가 있음을 잘 설명해야 한다. 한국에도 적용될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현재의 일을 실행하는 그룹은 당신의 지금 월급을 벌고, 미래를 위해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그룹은 당신의 퇴직연금을 벌고 있다고. 단기적인 업무와 장기적인 프로젝트 모두 기업의 생존에 중요하지만 리스크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

기업들은 피벗을 시도했다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한다.

우선 실패에 대한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실행 그룹은 매일 무엇을 해야 할지 절차가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는 곧 개인의 잘못이 된다. 실패한다고 보상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혁신 그룹에서는 스타트업처럼 하는 일이 전부 실패다. 스타트업에서는 모든 사람이 본인이 실패할 것을 안다. 오히려 충분히 실패하지 않으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게 돼버린다. 스타트업에서는 실패하는 게 가족이나 동료들을 당황시키지 않는다. 작게 실패하고 또 다른 일을 시도하면 된다.

하지만 대기업에는 과거에 체계적인 계획을 실행해서 성공한 경험들이 존재한다. 이런 훌륭한 계획들이 있는데도 실패를 하면 대기업에서는 그냥 개인이 잘못한 게 돼버린다. 즉, 실행의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다. 예컨대,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면 다들 싫어할 것이다. 실패는 나쁜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에도 예산의 작은 일부를 투입해서 실패해도 괜찮은 조직, 예컨대, 코로나 이후의 환경에 대해 마음껏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할 수 있는, 괴짜들로 이뤄진 조직을 만들 수 있다.

혁신의 과정은 깔때기(funnel)와 같다. 10개 아이디어 중에 5∼6개는 나쁘고, 2∼3개는 괜찮고, 1∼2개 정도가 잘돼도 성공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혁신이 성공하려면 조인트벤처든, 사내 벤처든, 파트너십이든 혁신 깔때기에 그만큼 더 많은 기회를 쏟아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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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벗을 잘한 기업의 사례를 들어 설명해달라.

과거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사티아 나델라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MS) 사례를 들 수 있다. 두 기업 모두 비전을 가진 강력한, 새로운 리더십이 회사를 바꿨다.

스티브 발머 시절의 MS는 매출과 수익으로 보면 엄청 성공적이었다. CEO의 역할이 매출을 늘리는 것이라고 본다면 발머는 최고의 CEO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재무적 성과와 별개로 발머의 MS는 21세기의 핵심적인 5개 기술, 즉 검색, 스마트폰, 모바일 운영 시스템, 미디어, 클라우드 부문에서 다른 회사에 뒤처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MS에 스마트한 엔지니어가 없어서일까? 아니다. 관련 프로젝트는 많았지만 발머가 기존 강점인 윈도와 오피스 비즈니스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것과 연관되지 않은 프로젝트는 경영진의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발머는 가장 뛰어난 실행자(executor)이자 20세기형 리더였다. 단기적인 성과는 뛰어났지만 장기적인 전망은 ‘글쎄’였다. MS가 클라우드, 앱, 모바일 등 새로운 분야로 방향을 전환하려면 프로덕트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의 조직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결국 2014년 새로운 CEO로 취임한 사티아 나델라가 MS를 모바일과 클라우드(Azure) 중심으로 재조직하고 오피스와 아주르 팀을 윈도에서 해방시켰다. 스마트폰 비즈니스를 정리하고 진통 없이 윈도를 출시했으며 이제 증강현실과 대화형 인공지능 중심으로 회사를 바꾸고 있다. MS가 당장 20세기와 같은 시장 지배력을 얻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MS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변화도 따라잡고 있다.

또 다른 놀라운 사례는 일론 머스크의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다. 최근 가장 빠른 속도로 피벗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이스X의 출발은 원래 로켓을 제작하는 게 아니었다. 우주 개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화성에 최초 생명체인 식물을 키우는 일명 ‘화성 오아시스(Mars Oasis)’ 프로젝트를 준비하다 식물을 운반할 로켓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 머스크가 직접 로켓 제작에 도전하게 된다. 특히 ‘로켓은 왜 한 번 사용하고 버려야 하지?’란 의문을 최초로 제기하고 로켓을 재활용하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로켓의 제작 비용을 엄청나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 스페이스X는 팰컨1, 팰컨9, 스타링크에 이르기까지 민첩한 엔지니어링으로 어떤 기업보다 빠르게 기술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애자일이 소프트웨어 기업뿐 아니라 하드웨어 기업에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다.

늘 밖으로 나가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로 대면 소통이 힘들어졌는데 고객 발굴에 문제는 없는가.

나는 10년 이상 창업가들을 가르치면서 대면 미팅보다 더 나은 소통 방식은 없다고 강조해온 사람이다. 사무실 안에서는 팩트가 나오지 않는다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화상으로 창업가들을 가르치면서 생각이 완전 바뀌었다. 특히 화상 미팅이 첫 미팅인 경우 대면보다 더 효과적임을 확인했다. 이제 스타트업 대표가 내게 와서 고객을 처음 만나러 운전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하면 혼낼 것이다. 문제를 이해하고 브레인스토밍하는 정도의 초기 피드백 단계에서는 화상 미팅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물론 그 이후의 미팅에서는 말하는 방식이나 주변의 환경 등 미묘한 부분을 캐치하려면 대면 접촉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피드백에는 화상이 더 생산적임을 내 경험으로 확신하고 있다. 물론 화상 미팅으로 보디랭기지가 주는 신호를 전부 다 캐치하기가 어렵고, 또 미팅 횟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금방 더 지치긴 한다. 하지만 훨씬 효율적으로 더 많은 횟수의 미팅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화상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감지하는 소프트웨어도 나오고 있다. 온라인에서 다양한 도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보통 창업가를 대상으로 수업을 할 때 일주일에 10∼15명의 고객을 인터뷰하라고 주문하는데 최근 온라인 강의에서 학생들은 20명 이상을 인터뷰해오고, 대면만큼이나 충실한 피드백을 받아온다. 화상 미팅에서 얼마나 고객과 상호작용이 잘됐는지의 효과도 미팅 직후 고객에게 앱을 다운로드하거나 구매하는 식의 행동을 요청함으로써 체크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고객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는 핑계는 열심히 안 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린스타트업 방법론이 나온 지 20년이 다 돼간다. 이 방법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

린스타트업 방법론은 1990년대 닷컴 버블 이후 가용 자원의 한계에 부딪힌 창업가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창업가들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도구가 절실했다. 처음 내가 만든 도구가 바로 고객 개발 모델이고, 다음에 에릭 리스가 워터폴(Waterfall4 )이 아닌 애자일(Agile) 방식을 강조하며 고객 개발에 애자일을 결합했다. 다음으로 알렉산더 오스터왈더가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를 만들면서 3개의 린스타트업 도구가 완성됐다.

나 스스로도 린스타트업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필요한 요소와 자원이 많은 대기업에 필요한 요소, 그 사이에 빠져 있는 근본적인 무엇을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 2013년 HBR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글은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기업 CEO들에게도 린스타트업의 도구를 활용할 계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많은 기업이 린스타트업의 도구만 베끼고 실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조직 혹은 과정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변화에 저항하는 중간관리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대기업을 어떻게 조직할지에 대한 이론이 린스타트업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간 성공한 기업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외부에서 기인한 위기나 리더십의 교체가 있을 때 변화에 성공했다. 구성원들이 현재 상태에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또 강한 비전을 가진 리더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조직에서는 변화를 추구하기가 쉽지 않다.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위기가 닥치고 구성원들이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느껴서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해야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CEO는 기성의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변화를 추진하는 데 유리하다. 코로나19는 이전에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이며, 앞으로 고객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런 위기를 맞아 피벗에 실패하는 기업은 앞으로 생존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혁신을 추구하는 리더에게 조언을 한다면?

많은 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이나 해커톤 같은 다양한 혁신 활동을 펼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활동이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동떨어져 있거나 실제 상품과 서비스로 연결되지 못해 혁신 흉내만 내는 ‘혁신 극장(innovation theater)’에 머물 때가 많다. 리더는 조직이 나아가야 할 혁신의 방향을 담은 혁신 강령(Innovation doctrine)을 구축해야 한다. 액셀러레이터를 세우고, 각종 포스터를 붙이고, 단체 티셔츠와 커피 잔을 맞춘다고 혁신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조직이 혁신에 대해 공유하는 믿음, 혁신을 어떻게 실현시킬지에 대한 공통의 규칙과 신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려면 리더가 우선 혁신 활동의 성격과 프로세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내 기업가에게 예산과 권위를 부여하고, 그들을 방해하는 내부의 장애물들을 없애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나 아이디어도 다른 부서들이 기존 상품과 경쟁한다, 채널이 겹친다, 팔 방법이 없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반대하기 시작하면, 그 어떤 학습도 이뤄지지 못한 채 사장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혁신은 기존의 포지션과 권력을 조정하는, 고통스러운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