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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호모 루덴스와 ‘Here and Now’

김현진 | 310호 (2020년 12월 Issue 1)
공연예술 발달사에 있어 혁신적인 변곡점으로 꼽히는 사건은 실내 극장의 출현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였던 이때부터 공연은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를 기반으로 16세기 후반, 영국에서 상업 극장들이 본격적으로 출범하고, 이곳에서 꽃피워진 연극 예술이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를 탄생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콘텐츠를 만들고 연기하는 아티스트는 이를 기꺼이 감상하는 관객과 호흡하며 공연예술이란 인류 공통의 보고를 차곡차곡 채워왔습니다.

극장과 무대라는 공연예술의 하드웨어는 예술과 관객이 같은 물리적 시공간에 존재함으로써 완성되기에 ‘지금, 이곳(Here and Now)’의 정신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Here and Now’ 정신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공익 캠페인의 대표 캐치프레이즈로 받아들이게 된 팬데믹 시대와는 상극입니다. 따라서 대극장 공연만 놓고 봐도 객석 점유율이 70% 안팎은 돼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국내 공연계에서 관람객 수를 제한해야 하는 코로나는 재앙과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확산세가 더 심했던 일부 다른 국가의 공연예술계 역시 힘든 한 해를 보냈습니다. 절박함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모태가 돼 신박한 아이디어들을 탄생시켰고 이것이 웃픈(웃기지만 슬픈) 현실의 기록으로 남게 됐습니다. 미국의 인디 록밴드 ‘플레이밍 립스’가 오클라호마에서 올 10월 연 ‘1인 1풍선’ 콘서트가 그 예가 아닐까 합니다. 이들은 밴드는 물론 관객들까지 공기가 가득 주입된 대형 풍선 한 개에 한 명씩 들어가 비말을 통한 감염 우려 없이 맘껏 소리 지르고 발을 구르며 온전히 공연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공연은 감염병의 위협을 극복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었기에 공연예술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디지털 혁신은 급물살을 탔습니다. 그리고 디지털은 오프라인의 대안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엔터텍(entertainment+technology)’ 전략을 통해 뉴노멀 시대, 공연예술계에 희망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팬데믹 이후 온택트(untact+on) 공연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방탄소년단(BTS)의 10월, ‘맵오브더소울’ 콘서트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특히 팬들이 멤버별 퍼포먼스를 다양한 앵글에서 볼 수 있게 한 멀티뷰 화면 시스템은 오프라인 공연에서의 아쉬움까지 장점으로 승화시키며 경험의 ‘대체’를 넘는 ‘확장’을 도모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공연예술계 ‘언택트 룰’의 핵심은 오프라인 경험을 온라인으로 이전하는 것을 넘어 온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차별화된 혜택을 더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내년을 대비해 최근 쏟아져 나오는 트렌드 관련 서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는 바로 ‘집’입니다. 기존의 휴식처 개념에서 외부 유해 환경으로부터 몸을 감추는 안전한 ‘벙커’로까지 원초적 의미가 확대되고 있는 집이란 공간에서 사람들은 ‘놀기’라는 본능에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에 영상 콘텐츠, 특히 게임의 인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e스포츠의 종주국인 한국에서 특히 팬데믹 시대의 게임 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들을 엿보게 합니다. 구글 유튜브, 아마존 트위치, 마이크로소프트 믹서에 이어 최근에는 페이스북이 글로벌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경쟁에 가세한 가운데 페이스북 앱의 피지 시모 총괄은 게임에 대한 우선 투자 의지를 밝히며 “게임이야말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상호작용하게 하는 엔터테인먼트”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최근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높은 ‘동물의 숲’이나 ‘어몽 어스’가 예전처럼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지인들과 여가를 보내는 ‘온라인 동창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게임이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에 인간의 놀기 본성을 자극하고 관계성 강화의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온라인으로 옮겨온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시선을 맞췄습니다. 특히 기술적 요소뿐 아니라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연결 본능을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갈 것인지 그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뉴노멀 시대,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의 변화에 주목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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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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