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1. 리쇼어링 정책, 제대로 실행하려면

산업 다각화 통해 ‘히든 챔피언’ 육성
제조업 중심으로 일자리 창출 선순환을

303호 (2020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리쇼어링’의 목적은 기업 경쟁력 강화와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일 것이다. 그렇다면 리쇼어링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과제들은 무엇일까. 먼저, 산업을 다각화해 ‘히든 챔피언’을 늘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Made in Korea’라는 국가 브랜드를 갖춰나가야 한다. 성공 사례들도 적지 않다. 과거 임금 상승으로 한국을 떠났던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품질 문제를 겪은 뒤 다시 부산 사상공단에 제품 개발을 맡겼고, 태광실업과 창신INC 같은 OEM•ODM 전문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해외에서 정착한 기업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것만이 리쇼어링은 아니다. 해외로 진출하려는 제조 기업들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국내 생산기지 증설을 독려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리쇼어링으로 이해해야 한다.



1. 한국 경제와 제조업

돈이 돈을 부르는 세상이다. 지구상의 금융시장 규모는 실물경제의 규모를 넘어선 지 오래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단기금융시장(money market)과 자본시장(capital market)을 포함한 금융시장의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 이상을 웃돌고 있다.1 금융산업의 성장은 기업에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데, 기업은 자사주 거래나 채권 발행의 레버리지를 이용해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지주회사를 설립해 지배구조를 강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금융시장에서 창출한 레버리지 효과는 궁극적으로 자사주의 가치에 기반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회사에 심각한 품질 문제가 발생해 대량의 리콜 사태가 이어지고, 이로 인해 큰 손실이 발생한다면 주식가격은 수직 낙하할 것이고 신용평가 또한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재무 상태가 악화된 기업은 적대적 인수합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자본시장의 존재는 실물경제의 틀 안에서 활동하는 기업에 양날의 칼이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하듯이 제조 기업은 기업 본연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에 충실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때, 금융시장이 제공하는 달콤한 혜택도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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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제조업이 중요한 이유는 일자리 창출이다. 투자자로서는 금융시장을 통해 수익을 실현하는 것이 제조업체를 운영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 거래의 확대가 사회가 요구하는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주식매매가 10만 원 상당이든, 10억 원 상당이든 추가 인력을 투입할 필요 없이 같은 프로세스로 거래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부의 분배 측면에서 제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다수의 국민에게 경제적 이득을 제공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누누이 배웠듯이 ‘가을 하늘 공활한데 천연자원은 절대 부족한’ 나라, 대한민국이 제조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제조업의 거시경제적 중요성을 이해하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가 고통을 겪고 있던 2007∼08년경 유럽의 경제 중심 독일도 경기침체와 고실업의 위기에 직면한다. 하지만 독일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와는 달리 위기에서 빨리 탈출했는데, 당시 독일 정부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균형을 유지했던 것이 위기 극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결론지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가 재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던 그리스가 관광산업과 파생된 서비스업에 몰입해 낭패를 본 것을 고려하면 독일 정부의 상황 판단은 매우 설득력 있다. 제조업의 중요성에 대한 메르켈 정부의 새로운 인식은 제조업 혁신 정책인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저성장 시대에 창업 지원으로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던 각국 정부가 ‘리쇼어링(reshoring)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해외로 이동한 제조 기반을 불러들이려는 노력은 미국에서 시작됐으며, 이는 미국 제조 기업들이 외국(특히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겨서 사라진 일자리가 수백만 개에 이른다는 정치•경제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더구나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공급사슬 단절(Supply Chain Disruption)이 곳곳에서 발생하면서 중국을 탈출해 자국을 중심으로 기업 생태계를 재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나라에서 감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정책이 국산 소재 개발의 중요성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해외 생산 시설의 국내 이전에 힘을 실어준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생명줄과도 같은 반도체산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핵심 소재의 개발 및 부품 국산화를 지원하고, 국내 생산 시설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를 공고히 하자는 취지에서 2019년 추경 예산을 마련했다. 동시에 2025년까지 매년 1조 원씩 총 5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2

사실 기간산업에 필요한 핵심 원자재의 수입선 다변화는 어제오늘의 이슈는 아니다.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는 1989년에 출판한 『한국의 붕괴』라는 저서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고 일컬으며 취약한 수출입 구조를 지적했다. 가마우지가 열심히 노력해서 잡은 물고기가 고스란히 어부의 손으로 넘어간다는 비유인데, 이는 한국의 제조업이 일본에서 수입한 부품을 가공해 미국과 중국으로 수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일본이며 한국은 일본의 가마우지에 불과하다는 어불성설이다. 가마우지 경제론을 추종하는 이들은 종종 이와 관련된 증거도 제시한다. 실제로 2018년 대일본 경상수지는 242억 달러 적자였고, 대중국 경상수지는 491억 달러 흑자였다. 이러한 단편적인 주장 또한 우리 정부가 수입선 다변화와 핵심 소재 개발을 연계한 리쇼어링을 하나의 대안으로 선정한 원인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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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적 현실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제조 역량, 특히 공정기술(process technology)의 축적은 일본의 반도체, 전자, 철강, 조선 산업에 큰 상처를 남겼다. 자동차 부문에서도 도요타와 혼다자동차를 제외한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현대•기아차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한마디로 가마우지가 어부의 손목을 물어 상처를 입힌 형국이다. 세계 시장을 선점했던 미국, 독일, 일본과 같은 전통적인 제조 강국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우리 제조 기업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금속활자, 고려청자, 거북선, 각궁과 같은 민족의 고유한 장인정신의 DNA가 현대에도 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진화를 거듭하는 시장 환경은 우리의 축적된 제조 역량과 손기술을 다시금 활용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리쇼어링이 어불성설은 아니다.

2. 리쇼어링의 제약 조건

다만 한국형 리쇼어링에는 몇 가지 제약 조건이 있다. 첫째,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애플(Apple), 인텔(Intel), 퀄컴(Qualcomm), 구글(Google), 아마존(Amazon) 같은 ‘게임 체인저’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는 여전히 미국의 기술 표준과 사회규범을 수용할 수 있는 기업이 게임의 법칙을 주도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이나 시스템을 개발하더라도 이들이 미국에서 표준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면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술력으로 앞서가던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이 각각 베타 방식의 VCR와 아날로그형 고화질 디스플레이 개발에 집중해 겪었던 과거의 고통, 중국형 5G 통신 기술을 표준화하려는 화웨이가 겪고 있는 지금의 고통은 미국이 정치•경제적 헤게모니와 더불어 기술 표준에 대한 기득권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간과한 결과다. 미터법 도량형이 국제 기준으로 채택된 이후에도 미국은 유일하게 야드-파운드법을 고수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은 야드-파운드법을 표준 시스템(The US Standard System)이라고 규정한다. 미국의 기술 표준은 글로벌을 지향하는 모든 기업에 가장 강력한 비관세 장벽이자 제약조건이다. 따라서 한국형 뉴딜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려면 첨단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의 국제화 및 미국 진출을 돕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부문에서 리쇼어링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둘째, 대기업의 해외 생산 시설을 단기간에 국내로 회귀시키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전략적으로 운영되는 글로벌 공급망과 생산 포트폴리오는 절세, 자원 조달, 시장 접근성, 노동비용, 물류비용과 같은 여러 가지 목적함수를 만족하는 균형점이다. 이러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협력업체들도 현지에 동반 진출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적절한 지원책 없이 정부 주도로 이들을 불러들이는 발상은 개별 기업의 특이성(idiosyncrasy)을 간과한 처사다.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해가 될 것이다. 해외로 진출한 대기업들이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 입안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제조업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장기적인 취지에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경제 정책과 함께 추진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전기요금 현실화, 법인세 인상과 같은 정책은 빈부격차를 줄이고 분배를 평등케 하자는 취지에는 부합하지만 제조업의 경영 환경 및 투자 환경 악화의 실질적인 요인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간과한 채 우리 기업들이 일본과의 무역전쟁에서 승기를 잡았고, 경제 보복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는 보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국내 제조 기반이 약화돼 미래가 불투명한 현시점에서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진출을 원하는 기업을 묶어둘 수는 없을 것이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한 대기업을 불러들일 수도 없는 사면초가와 같은 현 상황에서 리쇼어링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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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쇼어링 - 가능성의 발견

결론적으로 말하면 리쇼어링은 장기적으로 국내의 제조업, 특히 경공업의 부활을 알리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영민하고 미래지향적인 기업가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정부 정책 이전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벌써 작동하고 있다.

‘청년세대를 위한 미래 먹거리 제공’ ‘국부 축적을 통한 국력 신장’ 등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과제를 추진할지라도 소중한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경제 정책은 정교함이 요구된다. 같은 맥락에서 리쇼어링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어느 부분에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한 민관합동(民官合同)의 의사결정도 철저한 시장 분석과 시장 중심적 사고가 바탕이 돼야 한다. 교육, 인력 수급, 금융 지원, 세제 지원을 아우르는 정부의 장기적인 종합 대책도 필요하다. 리쇼어링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주안점들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1. 산업 다각화

수입망 다변화 외에 역대 정부가 간과했던 과제는 산업의 다각화다. 산업 다각화는 경제•경영 전문가들이 시대를 거쳐 여러 번 제기했던 문제지만 우리나라 제조업은 오히려 대기업 중심의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조선업으로 집중됐고, 산업 간 불균형이 더욱 심화됐다.

쉬운 예로 우리 제조업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수소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으나 국제 경쟁력을 가진 모터사이클이나 자전거도 생산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구조로 진화했다. LNG 선박 제조를 독점하다시피 하면서도 정작 레저용 요트조차 제대로 알려진 브랜드가 없다. 유튜브에서 ‘보이콧 재팬’ 콘텐츠가 쏟아지지만 카메라, 음향 장비 역시 일본산, 독일산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한류 콘텐츠가 세계로 확산될수록 연관 장비를 더더욱 수입해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다양성이 결여되고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 부족한 우리나라 제조업의 현주소다.

카메라, 모터사이클, 요트처럼 다품종 소량 생산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업 영역에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음을 독일과 대만의 기업들이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는 100조 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하나의 대기업보다 1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 100개를 육성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에 유리하다. 또한 산업 다각화를 통해 중견 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특정 산업의 경제력 집중으로 인해 발생하는 산업 변동성(Industrial Dynamics)과 경기 변동의 위험을 분산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따라서 리쇼어링이 제조 산업의 다각화와 궤를 같이할 때 성공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2. Code Name: Made in Korea

한때 일본이 제조업 중심의 무역을 기반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플라자합의3 이후 지속적인 엔화 가치 상승으로 일본은 직접 수출 중심의 경제 발전 정책 기조를 해외 자산 매입, 해외 직접 투자, 해외 생산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현지화 전략으로 인해 일본의 무역 비중은 국내총생산 대비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표 2) 아베 정부가 우리 기업에 대한 수출 규제를 공격적으로 감행했던 이유도 일본 경제가 수출량이 줄어 곧 경기가 침체되는 단계를 오래전에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의 선택은 일본과 달랐다. 여전히 독일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주도형 성장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고임금과 근로시간 단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노사분규를 줄이고 고부가가치 산업과 강소기업을 육성해 국부를 축적하고 있다. 일찍이 스마트 공장(smart factory)을 강조했던 독일의 제조업 육성책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시대에 인더스트리 4.0으로 진화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독일 제조업의 성공 방정식에는 ‘Made in Germany’라는 국가 브랜드의 가치가 한몫을 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Made in Germany는 제1차 산업혁명을 꽃피웠던 영국이 기술적으로 열등한 독일 제품에 부여한 주홍글씨였다. 영국인들은 저급한 독일 제품이 영국산으로 둔갑해 고가에 팔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데 독일 장인들의 품질에 대한 편집증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Made in Germany를 세계 정상의 반열에 올렸다. 독일 정부도 Made in Germany가 최고의 브랜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독일산은 곧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들의 연구개발 활동을 지속해서 지원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한창 자라나는 지구촌 신세대들에게 우리의 국가 브랜드 평판도가 그리 낮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기억 속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도 아니요, 한국 전쟁의 참화를 겪은 비운의 주인공도 아니다. 1970년대에 한국을 저임금 하도급의 나라로 여기며 가발이나 허리띠, 봉제 인형을 수입하러 청계천을 찾았던 고객 대부분은 저세상 사람이다. 한국산 제품을 선입견 때문에 업신여길 소비자들의 비율이 세계적으로 상당히 감소한 것이다. 더구나 Made in Korea의 허접했던 이미지는 중국 기업들이 대부분 가져갔으며 가전을 포함 전자산업이나 조선업 분야에서 Made in Korea는 월드 클래스의 영역으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경공업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저가 이미지를 탈피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리쇼어링 게임의 전략적 목표는 명료하다. Made in Korea가 Made in Germany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고부가가치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3. 수집의 시대와 경공업 전략

생활의 영역에서 소비와 수집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1970, 80년대에는 ‘단벌 신사’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았고, 평범한 직장인이 정장을 계절별로 여러 벌 구매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평균 소득이 늘어난 지금, 직장인의 옷장 안에는 수십 장의 셔츠와 수십 벌의 양복이 진열돼 있다. 보관할 옷의 숫자가 늘어나니 공간이 부족하고 어느덧 옷장은 드레싱룸(dressing room)으로 대체되고 있다.

신발이라고 다를까? 계절별로 한 켤레면 충분했던 신발이 구두, 운동화, 슬리퍼, 등산화, 워킹화 등 종류별로 숫자가 늘고 있다. 공을 차면 축구화를, 산을 오르면 등산화를, 해변에서는 샌들을, 작업 공간에서는 슬리퍼를, 정장에는 구두를 차려 신는다. 이들이 관련 업계의 주력 소비계층이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패션 트렌드로 인해 몇 번 신지 않은 신발들이 신발장에 가득 차고 있다.

도구적 역할에 충실하던 신발이 대중적인 기호품으로 변신한 계기는 아마도 1984년에 출시된 나이키(Nike)의 ‘에어 조던(Air Jordan)’일 것이다. 마이클 조던은 당대 최고의 신인이었지만 아디다스(Adidas)도, 컨버스(Converse)도 그에게 협찬을 꺼렸다. 아디다스에 농구란 미국으로 국한된 지엽적인 종목이었고, 컨버스는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이라는 걸출한 스타들을 후원하고 있었다. 나이키와 마이클 조던의 운명적인 컬래버레이션은 후발 기업인 나이키가 아디다스를 넘어 세계 정상으로 향하는 신호탄이었다. 1985년 미화 65달러에 출시된 에어 조던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이러한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나이키는 이듬해에 ‘에어 조던 Ⅱ’를 출시한다. 에어 조던 Ⅱ의 판매가는 100달러로 책정됐고, 이후에도 가격 인상은 거듭됐다.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이후에도 에어 조던은 미국 NBA를 상징하는 대표 상품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에 편승한 나이키도 해마다 새로운 에어 조던 시리즈를 출시하고 있다.

에어 조던의 등장은 신발 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일반인이 스포츠 종목의 특성에 맞는 전문가나 선수용 신발을 찾기 시작했고4 신발을 신기는커녕 수집의 대상으로 여기는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수집가들은 에어 조던을 마치 우표나 동전처럼 거래하며 고가의 운동화는 골동품처럼 투자의 대상으로 신분이 격상됐다. 기업들이 한정판 운동화를 등장시켜 시장의 규모를 키우자 더 많은 수집가가 시장에 참가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주식으로 ‘폭망’했던 투자자들 사이에 주식보다 신발에 대한 투자가 차라리 낫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회자할 정도였다. 최근까지 나이키가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도 이러한 판도 변화가 나이키 사업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며 여러 경공업 분야에서 비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명품 시계로 스위스의 시계 산업이 부활한 것처럼 명품 신발로 우리 신발 산업이 먹거리를 챙길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우산과 양산은 어떤가? 어떤 이에게 우산은 비 내리는 날 패션의 완성이다. 7000만 원짜리 우산이 팔리는 시대, 버버리(Burberry)와 같이 우산을 패션의 필수 아이템으로 광고하며 해마다 신상품을 출시하는 럭셔리 브랜드, 명품 우산을 수집하는 마니아들.5 전후 베이비붐세대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소비자 행동의 변화가 경공업 기업들에 OEM에서 ODM으로 거듭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일례로, 고급 수입차를 구매하면 화사한 디자인의 골프용 우산이 딸려온다. 명차의 소비자는 골프를 즐기며 캐디백의 필수품으로 우천 시를 대비해 우산을 챙긴다. 페라리와 같은 슈퍼 카 제조업체들은 고유한 디자인의 우산을 액세서리나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념품(메머러빌리어, memorabilia)으로 판매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기도 했다. 애초부터 페라리 우산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우산이란 비를 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페라리의 감성과 이미지를 공유케 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협립제작소를 중심으로 번창했던 대구의 우산 클러스터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패망의 길을 걸었다. 한때 600여 개를 웃돌던 국내 제조사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들이 암흑기로만 여겼던 시장이 환골탈태했고 시장의 변신은 토종 우산 제조업의 명맥을 이어온 ‘두색하늘’에 단비와도 같았다. 두색하늘은 주로 수입차 업체들 또는 패션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VIP 증정용 제품이나 판촉물을 생산 판매하는데 고객의 수와 주문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6 거의 독점 수준이다.

두색하늘 외에 시장의 가능성을 인지한 우산 제조•판매 신생(startup) 기업들이 출현하고 있다. 국산 수제 기타를 만드는 지우드(G-Wood), 자전거 수제 생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루키바이크(Rookey Bike)도 한민족이 지닌 손기술의 저력을 이어가는 기업들이다. 언젠가는 해당 기업들이 수익성이 개선된 기타와 자전거 산업에서 세계적인 강자로 발돋움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산업군에서 국내 생산을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들의 재등장과 재성장은 거의 사장될 뻔한 산업의 부활이자 실질적인 리쇼어링이며, 정부가 그리도 바라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구조의 건전성 제고에도 장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4. 시장의 선택과 우리의 접근법

욕심은 인간의 본능이고, 이 본능이 잘 드러나는 것이 수집이다. 수집은 필요성에 의한 구매가 아니라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구매 행위다. 우리 기업이 지향해야 할 시장 중심적 리쇼어링은 소비자가 필요로 여기는 제품과 수집을 원하는 제품의 생산을 병행하되 단기적으로는 생필품과 수집품을 차별화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독자 브랜드를 개발하고 수집품의 내재적 가치와 수익성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걸맞은 적합 업종의 선별 작업이 필요하다.

적합 업종의 선정 기준은 앞에서 암시한 것처럼 (1) 인류와 함께한 베스트셀러 상품을 목표로 하되 (2) 이들의 생산에 있어서 자본과 노동의 결합이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설비를 자동화하고 첨단 기술을 활용해도 노동비용을 절감할 수 없는 업종은 실질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제조 환경에 부적합하다. 따라서 이러한 업종이 리쇼어링의 대상에서 배제돼야 한다.

인류와 함께해온 베스트셀러 산업은 제공되는 파이가 충분히 크고 사양 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서 우리 제조 기업이 지속해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이족 보행의 인류에게 신발의 등장은 석기와 불의 사용처럼 인류의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교통수단이 전혀 없는 원시인에게 신발은 보다 멀리, 빨리, 안전하게 자신을 이동케 하는 필수 장비였을 것이고, 신발로 인해 인간은 확장된 영역에서 사냥할 수 있었다. 신발은 인류의 동반자였으며, 신발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우산도 마찬가지다. 피부가 얇고 방수형 체모가 결핍했던 인간이 온몸으로 비를 맞는 것은 곧 재앙이다. 감기는 인류와 늘 함께했던 질병이고, 무수한 인간이 독감으로 생명을 잃었다. 비 내리는 날의 우산은 버킹엄궁을 나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유치원을 퇴원하는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필요한 필수 보호 장비다. 베스트셀러인 것이다.

타이어는 또 어떨까? 우리가 이용하는 거의 모든 교통수단에 바퀴가 달려 있다. 특히 자동차는 승용차, 버스, 트럭처럼 형태가 다양하고, 휘발유, 디젤, 수소, LPG와 같이 각양각색의 연료를 태워서 구동되지만 원형의 합성고무 타이어를 공통으로 장착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의 등장은 자동차에 필요한 부품구성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예를 들어, 전기 차에는 내연기관이나 머플러가 아예 없다. 전기 차 중심으로 세상이 바뀌면 엔진과 머플러 제조사는 신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타이어가 없는 자동차란 상상의 영역을 초월하며 자동차가 존재하는 한 타이어는 인간의 영역에 항상 존재할 베스트셀러다. 타이어는 리쇼어링 정책의 대상이나 머플러는 그렇지 못한 이유다.

자본이 결합한 노동집약적 생산 방식은 곧 인간 중심의 자동화를 뜻한다. 즉, 리쇼어링을 통해 재구축된 제조 시스템에서는 인간과 기계가 조화롭게 어울려야 하고, 자동화 기술의 활용이 인간이 지닌 손기술을 돕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것이 인더스트리 4.0의 시대적 정신이다. 2018년에 폴크스바겐이 완성한 람보르기니 우루스(Lamborghini Urus) 공장의 프로세스는 슈퍼 스포츠카 제조 과정에서 활용됐던 전통적인 노동집약적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이 공장에서는 근로자가 직접 처리했을 법한 다양한 공정에서 로봇과 자동화 기기들이 생산 보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기계와의 협업은 인간의 정교한 기술을 보전하면서도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을 안정화하는 등의 여러 장점이 있다. 공장 자동화는 많은 투자비용이 요구되므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시장 규모와 제품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리쇼어링을 고려하는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전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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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장이 선택한 리쇼어링 사례들

1. 신발 산업 - 부산 사상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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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는 스포츠 명품 회사 아디다스(Adidas), 농구화로 명성을 떨치던 컨버스(Converse), 에어로빅 신발로 시장을 평정했던 리복(Reebok)에 비해 초라한 신생 기업이었다. 리복은 1895년, 컨버스는 1908년, 아디다스는 1924년7 에 각각 설립됐으며 이들은 모두 신발 제조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아디다스와 컨버스는 설립 초기부터 스포츠용 신발을 전문적으로 개발해 기술을 축적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군화를 납품하며 성장을 하게 된 공통점이 있다.

1967년 나이키의 전신 ‘블루리본스포츠’를 설립한 필 나이트는 제조에는 문외한인 육상선수 출신이다. 블루리본스포츠는 일본의 ‘아식스(ASICS)’의 전신인 ‘오니추카 타이거(Onitsuka Tiger)’의 신발을 수입해 미국에 유통하던 수입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타이거와의 지속적인 갈등으로 인해 필 나이트는 1971년 독자 브랜드 나이키를 설립한다. 유통에 집중된 나이키의 전략은 변함없으며 나이키는 총매출액의 99.7%를 아웃소싱에 의존하고 있다.

나이키는 일본의 중소 신발 업체들이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리복과 아디다스에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굳이 타이거가 아니더라도 신발을 만들 곳이 넘쳐났다. 특히 리복은 미국과 영국에서 급상승하는 노동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빠르게 아웃소싱 비중을 늘렸는데 심지어 일본에서 제조된 신발이 품질도 더욱 우수했다. 하지만 일본 업체들도 지속적인 임금 인상으로 인해 근거리 부산에서 하도급을 찾기 시작했고 이것이 1970, 80년대 우리나라 경공업의 간판 스타, 신발 산업이 세계로 비상하는 계기가 됐다.

‘쇠젓가락 신공’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손기술의 잠재력은 일본의 물량을 빠르게 잠식했다. 설립 3년 만인 1974년, 나이키는 부산시에 소재한 ‘범표’ 삼화고무와 첫 계약을 맺는다. 에어 조던이 출시될 무렵에는 리복도, 나이키도 일본을 거치지 않고 ‘말표’ 태화고무, ‘왕자표’ 국제화학(국제상사 전신), ‘기차표’ 동양고무(화승 전신) 등과 협업을 시작했다. 한국은 리복과 나이키 물량의 80% 이상을 소화하는 거대 공룡이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신발 산업사의 분수령이다. 제5공화국의 강력한 통제 속에 극도로 위축됐던 노동운동은 1987년 6•29 민주화 선언과 올림픽으로 인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국제화된 근로자들의 눈높이에 비해 기업의 경영 방식은 낙후돼 있었다. 특히 경공업은 저렴한 노동력에 의존해 수익을 창출하는 1960, 70년대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기업은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로 대표되는 삼저(三低)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혜택이 분배되는 과정에서 근로 계층은 소외됐고, 불만은 노동쟁의와 파업으로 터져 나왔다.

나이키와 리복이 허망하게 한국을 떠난 것은 원가 상승에도 원인이 있었으나 노동쟁의로 인해 안정적인 공급이 어려워진 것도 한몫했다. 수십 년을 쌓아온 신발 강국의 아성이 한순간에 무너져간 시기였다. 고객들은 아시아로, 중남미로 빠르게 공급처를 전환했다. 1990, 2000년대 대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동반한 급격한 임금 상승 때문에 우리나라가 다시 신발산업의 중심에 설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을 떠난 뒤 품질 문제에 직면한 나이키가 한국과 대만의 신발 기업가들에게 역외생산을 위탁한 것이다. 경영은 한국과 대만의 기업이 맡았지만 생산은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이뤄졌다. 다시 시작된 한국의 신발 제조 기술과 나이키 브랜드의 공생 관계는 태광실업과 창신Inc 같은 OEM/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전문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태광과 창신은 나이키의 신발을 개발하고 제조하는 4대 주요 기업이다. 나이키의 매출이 급신장하고 고가의 신발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태광과 창신의 국내 활동도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생필품이었던 신발이 기호품 수집품으로 진화함에 따라 신발 산업의 수익구조가 개선됐으며, 고부가가치 상품의 제조가 가능해졌다. 시장의 변화는 부산의 사상공단이 다시 꿈틀거리는 계기가 됐다. 90년대 초반까지 부산 사상구는 신발 산업의 메카였다.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기업이 ‘트렉스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산의 신발 수출은 꾸준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2017년 수출액은 2억1600만 달러로 집계됐으며 내수 산업도 연평균 4∼7%의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부산의 신발 산업이 기술력을 중심으로 재도약하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는 신발 업종이 리쇼어링 정책의 적절한 대상임을 재확인시켜준다. 부산경제진흥원과 신발산업진흥센터와 같은 기관들도 과거의 OEM 수출 방식에서 경험한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국산 브랜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18년 부산진구 개금동에 개관한 ‘한국신발관(K-Shoes Center)’도 한국 신발업체의 기술적 우수성과 독자 브랜드들을 널리 홍보하려는 목적이 있다.

‘패션 포스트(Fashion Post)’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을 만들고자 2014년에 설립된 신생 기업 ‘올버드(Allbirds)’도 부산시의 노바인터내쇼널에 생산을 전량 위탁하고 있다.8 부산으로 신발 제조가 돌아온 것이다. 올버드는 양모와 캐스터 기름(Castor oil) 같은 친환경적인 천연소재에서 극세사를 추출해 신발을 제조하고 싶었으나 처음에 개발을 시도했던 이탈리아 ODM 기업은 18개월이 넘도록 시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이를 수개월 만에 완성한 노바인터내쇼널이야말로 한국 신발 제조업의 기술 수준과 위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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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이어 산업 - 넥센타이어 창녕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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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타이어는 1942년 일제강점기에 흥아고무공업으로 출발했다. 1956년 대한민국 최초로 자동차 전용 흥아타이어를 생산한 기업이다. 경쟁 업체인 금호타이어나 한국타이어와는 달리 넥센은 원풍산업, 국제그룹, 우성산업, 흥아타이어공업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변경을 겪으면서도 생존에 성공한 기업이다.

지난 20년간 넥센은 내수시장에서 경쟁사 대비 가장 빠른 성장을 이뤘으며, 세계적으로도 급성장한 기업이다. 경상남도 양산의 지역 기업으로 여겨졌던 우성타이어는 넥센으로 사명을 변경한 이후 공격적인 횡보를 거듭했다. 2004년에는 본사가 소재한 양산에 제2공장을 완공해 생산량을 대폭 늘렸다. 2008년에는 중국 칭다오 공장의 가동을 시작했다.

넥센의 다음 생산기지로 낙점을 받은 곳은 경상남도 창녕이었다. 하지만 2012년 이곳에 첨단 시설의 타이어 공장이 준공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선 주 고객인 현대•기아차와 경쟁 업체가 국내에서는 더 이상 생산 기지를 설립하거나 증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껄끄러웠다. 한국타이어는 중국(1999년), 헝가리(2008년), 미국(2017년) 공장을 차례로 준공하고, 2018년 독일의 프리미엄 타이어 유통사인 ‘라이펜-뮬러(Reifen-Müller)’를 인수하며 현지에서의 생산과 영업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금호타이어도 2003년 평택 공장을 준공한 이후에 중국 톈진(2006년), 창춘(2007년), 베트남(2007년), 미국(2016)에 연차적으로 생산 기지를 설립했다. 두 경쟁사 모두 현대•기아차의 그늘에서 벗어나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국내를 고려하지 않은 입지선정은 상식적인 선택이었다. 마찬가지로 넥센도 당시에 세계 시장으로의 도약을 꿈꿨다. 적어도 자동차 관련 기술에 있어서 미국, 중국, 독일을 연결하는 R&D 네트워크를 구축해 변화무쌍한 기술과 역동적인 시장의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넥센이 창녕에 자리 잡기까지 지자체의 숨은 노력이 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9 창녕군은 정성을 다해 지역의 우수성을 알리고 파격적인 지원책을 제시했으며,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 넥센은 창녕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내수 시장의 성장세에 발맞춰 공급을 꾸준히 확대하는 것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동시에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최첨단의 자동화 설비를 갖춰 인건비의 비율을 줄이면 국내 생산도 채산성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넥센이 공격적으로 내수 시장을 공략하던 와중에 금호타이어는 노사 갈등으로 인해 생산 차질을 종종 빚었다. 특히 2018년에는 노사분규와 더불어 법정 관리의 위기에 몰렸다. 넥센은 금호타이어의 경영 위기에서 발생한 반사이익을 얻은 직접적인 수혜자다. 1조5000억 원이 투입된 창녕 공장 건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2012년 3월에 생산이 시작됐다. 이후에도 창녕 공장은 증설을 거듭했다. 늘어난 일자리로 지역의 인구와 세수도 동반 성장했다.

공장 설립과 증설 과정에서 넥센이 세운 전술적 목표는 인간 중심의 자동화 설비 구축이다. 이는 노사 갈등이 국내 생산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며, 근로자의 신뢰와 복지가 우선돼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과거의 경험치가 반영된 결과다. 넥센의 창녕 공장이 주목받아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여타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확충해 일자리가 탈출하는 현실 속에서 국내의 인적 자원을 활용해 제품개발력과 품질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자동화 설비의 확대와 첨단 기술의 활용을 통해 국내 인력을 활용하기에 발생하는 인건비 부담을 완화했다는 점에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해외에서 이미 연착륙한 기업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것만이 리쇼어링은 아니다. 오늘내일 해외로 진출하려는 제조 기업들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국내 생산 기지 증설을 독려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광의의 리쇼어링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상공단의 성장과 넥센 공장의 유치를 이뤄낸 부산시와 창녕군의 정책을 벤치마크하는 중앙정부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중소기업은 해외 생산 기반이 전무했고 브랜드 이미지도 취약했던 대기업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는지 면밀하게 복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대기업도 사업 초기에는 내수시장에 주력하던 중소기업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고 상사들을 통해 추가적인 수출 길을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동시에 양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KOTRA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해외 곳곳의 제3세계 시장을 개척해 자사 브랜드 제품의 비중을 점차 확대했다. 이러한 성공 방정식이 제시하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광의의 리쇼어링 정책은 생산 기반을 국내에 머물게 하는 인센티브 메커니즘과 생산된 제품의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제조 강국이며, 한국형 뉴딜을 통한 첨단 기술기업의 세계 진출과 리쇼어링을 통한 한국형 경공업 기반의 부활은 충분히 병행 가능한 전략이다.


신호정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hojung_shin@korea.ac.kr
필자는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오하이오주립대(Fisher College of Business, the Ohio State University)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무역학사 취득 후에 금성사(현 LG전자) 수출영업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미국 노트르담대(University of Notre Dame) 조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경영대학 LSOM(Logistics, Service & Operations Management) 분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5호 New Era of Data Business 2020년 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