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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TaaS 3.0 시대의 전략

출퇴근 승용차가 화물차로도 변신
편리한 대형 플랫폼이 승부 가른다

고태봉 | 298호 (2020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사람과 물류의 이동을 아우르는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 완전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기차(EV) 플랫폼이 개발되면 차체를 자유롭게 탈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동일 플랫폼을 가지고 사람이 집중되는 시간에는 승용차로, 물류가 집중되는 시간에는 화물차로 그때그때 차체만 바꿔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플랫폼의 활용도와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모빌리티 산업은 사람의 이동 관점에서 보는 MaaS(Mobility as a Service, 서비스형 모빌리티)나 물류 이동 관점에서 보는 LaaS(Logistics as a Service, 서비스형 물류)보다 상위의 개념인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서비스형 운송)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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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기술의 방향이 디지털을 중심으로 변하면서 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탈 것’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기존 자동차 산업을 변화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도록 압박하고 있다. 과장이 아니다. 이미 소비자들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연동되지 않는 차는 구매목록에서 제외시키고 있고, 고속도로주행보조(Highway Driving Assist, HDA) 같은 세미 자율주행 기능이 없으면 장시간 운전에 피로를 느낀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우버나 디디추싱, 그랩, 올라, 카림 등으로 자동차를 호출하고 라임, 빔, 윈드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micro mobility) 서비스로 라스트 마일(last mile) 이동을 해결한다. 마이크로 모빌리티부터 대중교통까지 모든 것을 통합한 멀티모달(multi-modal) 서비스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기차만 생산하는 미국의 테슬라도 숱한 고비를 넘기고 SEXY(모델 S, 3, X, Y)1 를 모두 공개하거나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사이버 트럭(Cyber Truck)까지 선보인 테슬라는 중국 생산공장 가동에도 돌입했다. 오랜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면서 100년 전통의 GM과 포드의 시가총액을 차례로 넘어섰을 뿐 아니라 이제는 이 두 업체 시가총액의 합마저 두 배 가까이 추월할 기세다.

자동차의 디지털 혁신 - CASE

자동차의 혁신이 기존 내연기관 부품 3만여 개 중 1만1000개를 없애버리는 전동화(Electrification)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연결(Connectivity), 자율주행(Autonomous), 공유(Sharing)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다 보니 대부분 자동차 기업이 대응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에 없던 신기술에 대응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각각의 변화마다 새로운 이종 산업 경쟁자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최근 CES 2020에서 퀄컴이 저전력 고사양의 자율주행 플랫폼인 스냅드래곤 라이드(Snapdragon Ride)를 선보인 것이나 소니가 마그나(Magna)의 도움으로 비전-S(Vision-S)라는 완성도 높은 콘셉트카를 출품한 것, 중국에서 신에너지차(New Energy Vehicle, NEV) 정책의 보조금 수령을 위해 등록한 전기차 업체만 480여 개에 달한다는 사실만 봐도 엄청난 수의 경쟁업체가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 경쟁 심화는 더욱 확산될 것이란 데 있다.

자동차 산업은 3만여 개에 달하는 부품 공급망관리(SCM) 능력과 연구개발(R&D) 능력, 막대한 자본지출(CAPEX)과 고도의 조립기술, 글로벌 딜러망 및 AS 네트워크, 제품 하자로 인한 사고 대비 엄청난 충당금이 필요한 산업으로 진입장벽이 정말 높았다. 하지만 이제 다양한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ICT 기업과 플랫폼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업체들이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진입자들에게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산정해주면서 자금 부담까지 낮춰주고 있다. 이런 환경의 급속한 변화 때문에 기존 업체를 멸종을 앞둔 공룡으로, 새로운 경쟁자들을 운석이나 포유류로 비유하기도 한다.

필자가 중요한 관찰 포인트로 여기는 것은 여기에 더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특성으로 인한 ‘공간의 변화’다. 전기차는 (면적과 무게를 가장 많이 차지할 뿐 아니라 기술장벽이 가장 높은) 동력생성 장치인 엔진과 동력 전달 장치인 트랜스미션이 불필요하다. 테슬라 전기차의 보닛을 열면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놓여 있어야 할 공간에 텅 빈 트렁크룸만 있다. 배터리는 차 바닥에 넓게 깔리고, 주행 관련 부품들은 바퀴 부근으로 집중된다. 따라서 앞으로 전기차 플랫폼은 배터리와 구동, 조향, 완충, 제동의 4대 기능을 담당하는 휠모듈(wheel module)이 일체형으로 제작될 것이다. 현재의 변화를 종합해볼 때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기차(EV) 플랫폼(예: 폴크스바겐 MEB 플랫폼, 도요타 e-TNGA 플랫폼, 리비안 EV 플랫폼 등)은 별도로 판매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림 1)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가의 배터리 셀 가격을 고려하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위해 생산 수량을 크게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은 얼마든지 성능 좋은 전기차 플랫폼을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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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역시 Level 5의 완전자율주행이 현실화되면 인간-기계의 인터페이스로 차내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해 왔던 조종석(Cockpit)이 사라지는 대신 카메라, 초음파센서, 레이더,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조명 감지 및 범위 지정) 등으로 구성된 센서 모듈과 자율주행 연산 플랫폼(AV Computing Platform), 모뎀,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이 장착돼 인간의 인지-판단-제어를 대신할 것이다. 이렇게 본격적인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하면 현재의 복잡한 구조는 두께가 매우 얇고 심플한 센서 퓨전 시스템으로 통합되고, 기존의 전력/신호용 배선(wiring harness) 다발은 기성형된 회로로 쉽게 부착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시스템이 진보하면 로봇에 의한 자동 생산 공정이 가능해 대량 생산에 적합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능이 동시에 구현되면 엔진룸과 조종석이 사라지게 된다. 지금처럼 보닛과 트렁크를 확보해 적극적으로 충돌을 회피하려는 충돌 안전 설계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는 차량의 공간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껏 4인이 탑승하던 자동차의 공간은 8∼12명이 탈 수 있도록 넓어질 것이고, 1톤 트럭에 필적하는 탑재 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버풀(Uber pool)같이 합승 시 요금이 할인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현재의 우버나 택시보다 월등히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CASE(Connectivity, Autonomous, Sharing, Electrification) 4가지 변화는 각기 기술 기반과 성질이 다르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며 결국엔 하나의 완성차에 다 녹아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술들로 인해 변화된 공간과 용도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서비스 형태를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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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aS 3.0의 시대

많은 기업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만드는 공간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자동차 공간의 대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면 승객과 화물을 모두 획기적으로 많이 실을 수 있다. 구조상 완전자율주행의 기능을 가진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기차 플랫폼은 차체(body), 즉 승객이나 화물이 들어갈 공간을 자유롭게 탈착(脫着)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은 출•퇴근 시 승객 위주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상품의 배송에 필요한 1톤 트럭 정도의 적재량을 가진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천후로 자율주행 차량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고가의 자율주행차량을 가진 사업주 관점에서 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피로도를 느끼는 사람에 비해 인공지능(AI)에 의한 자율주행은 충전 문제만 해결된다면 24시간 끊임없이 달릴 수 있다. 사람이 집중되는 시간에는 승용차 같은 모빌리티(mobility)로, 물류가 집중되는 시간에는 화물차 같은 로지스틱스(logistics, 화물차)로 활용해 다양한 기능(multi-function)으로 쓸 수 있다. 이는 플랫폼의 활용도와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마도 전기 충전이 진행되는 시간에 용도 변경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해본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우버의 매출액은 전체 이용 요금에서 77%를 자동차 소유주 겸 운전자에게 지불하고, 23%만 순매출로 인식하는 구조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로 변모하면 이용 요금 전부를 회사가 수취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모빌리티 플랫폼 수익구조는 자율주행 기술의 본격화와 더불어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의 모빌리티 산업은 사람의 이동 관점에서 보는 MaaS(Mobility as a Service, 서비스형 모빌리티)와 물류의 이동 관점에서 보는 LaaS(Logistic as a Service, 서비스형 물류) 관점을 합쳐 상위의 개념인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 서비스형 운송)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TaaS는 지난 2017년 토니 세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발표한 ‘리싱크 X(Rethink X)’ 보고서를 통해 알려진 개념이다. 세바 교수는 차량 공유가 자율 주행과 힘을 합치게 되면 모빌리티 체계에 큰 변화가 올 것이며, 주문형 자율주행 전기차가 등장하면 차량 판매에 의존하는 기존 자동차 산업은 붕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비용 효율성 때문에 미국인의 95%가 10년 안에 차량을 소유하는 대신 기업이 소유한 자동차를 필요할 때마다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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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aS는 기술 수준에 따라 몇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TaaS 1.0은 소위 ‘우버형 서비스’로 콜택시나 카카오택시 등 전통적인 서비스와 큰 차이가 없다. TaaS 1.5는 방향이 같은 승객끼리 합승하는 모델로 우버풀(Uber pool)을 생각하면 된다. TaaS 2.0부터 자율주행 개념이 포함되는데, 차량이 스스로 이동은 하지만 운전석에는 사람이 필요한 단계다. 마지막으로 TaaS 3.0은 100% 완전 무인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되는 단계다. CASE 4대 기술이 모두 녹아 있는 완성체로 모빌리티와 로지스틱스를 동시에 담당하는 로보택시(robotaxi)가 등장하는 시기다.

TaaS 3.0의 시대에는 자동차가 전동화, 자율주행화되는 것뿐 아니라 같은 기반 기술로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1인용 이동수단(personal mobility), 전기 수직 이착륙기(e-vtol), 배송 로봇(delivery robot) 등 다양한 디바이스의 출현이 예상된다. 이는 완성차 산업 비즈니스 모델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자율주행의 인지-판단-제어 알고리즘이 로봇을 움직이고 무인 드론을 조종한다. 전기차를 구성하는 초강력 모터와 인버터, 배터리 등이 e-vtol을 공중에 띄워 날게 한다. 이 같은 디바이스들이 모빌리티 플랫폼하에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서비스의 입체성을 더 부각시킬 수 있다. 서비스뿐 아니라 하드웨어로서의 시장이 굉장히 커질 것으로 보는 이유기도 하다. (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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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경쟁구도가 지금의 자동차 회사들로 국한될 리 없다. 자동차회사들뿐 아니라 거대 유통회사들, 기술 기업들, 앞서 언급한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들이 모두 경쟁할 수밖에 없다. 아마존은 스카우트(Scout) 같은 배송용 AI 로봇뿐 아니라 배달용 드론도 개발했고 전기차 업체인 리비안(Rivian)에 7000억 원이 넘는 투자까지 집행했다. 중국의 알리바바 역시 전기차 샤오펑(Xpeng) 지분을 대거 확보하고 있으며, 자회사 차이냐오(Cainiao)에서 배송 로봇과 무인 트럭을 생산할 예정이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는 엄청난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플랫폼 업체로 언제든 모빌리티에 뛰어들 자금과 기술이 준비돼 있다. 세계 최대의 테크기업이자 동시에 플랫폼 기업인 구글은 웨이모(Waymo)를 앞세워 자율주행 시장을 석권할 꿈을 꾸고 있다. 우버도 ATG(Advanced Technology Group)를 통해 자율주행 기술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며 본격적인 로보택시 시대를 주도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미 우버는 물류와 음식 배달, 도심항공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 UAM)로까지 영역을 확대하며 TaaS 시대의 주역이 되고자 하고 있다. 우버는 비행 택시 우버에어(Uber Air)를 통해 2023년에 미국 LA와 댈러스, 호주 멜버른에서 UAM을 상용화한다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도요타가 이끄는 모넷테크놀로지(Monet Technology)의 경우 TaaS의 청사진을 더 구체적이고 집단적으로 그리고 있다. 자율주행기술과 전기차 플랫폼을 많은 일본 자동차업체와 나누는 것은 물론이고, 적극적인 모빌리티 서비스로 이동 약자를 찾아가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도시에서 규제로 발목이 잡혔지만 지방의 경우 고령화와 인구공동화에 따라 각종 서비스를 자율주행차에 장착해 직접 이동하는 가동산(可動産, 이동하는 不動産의 개념. 병원, 매점, 서점, 호텔, 실험실 등 이동 약자들이 찾아가기 힘든 부동산을 이동시켜 서비스를 제공)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 CES 2020에서 도요타는 자율주행차량과 배송 로봇, UAM, 헬스케어 등을 결합한 스마트시티인 우븐시티(Woven city 조감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현대차그룹도 최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Smart Mobility Solution Provider)이 되겠다는 전략을 발표하고 S-Hub(모빌리티 환승 거점), S-A1(개인용 비행체), S-Link(목적 기반 모빌리티)로 구성된 솔루션을 선보였다. 부족한 차량 공유 부분에서는 LA에서 모션랩(Mocean Lab)을 통해 승차 공유 솔루션과 빅데이터 취합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로봇 분야는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필두로 미국의 리얼타임로보틱스에 투자하는 등 잰 걸음을 떼기도 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자동차 50%, UAM 30%, 로봇 20%로 가져가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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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TaaS 3.0 시대를 대비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언급하기 힘들 만큼 많다. TaaS 3.0 시대에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이 누가 될 것인가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e커머스(e-Commerce)의 아마존처럼 우버, 디디추싱, 그랩과 같은 모빌리티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모빌리티 플랫폼은 수요와 공급을 연결할 뿐 아니라 과금(payment) 시스템도 가지고 있다. 사람과 물건을 실을 수 있는 다목적 자율주행차, 라스트 마일을 책임질 마이크로 모빌리티, 배송을 담당할 라스트 마일 배송 로봇(Wheel type/Leg type/Wheel-Leg type), 심지어 UAM의 대부분을 차지할 e-vtol까지 정말 다양한 이동 수단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며 대형 모빌리티 플랫폼 아래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사용자들은 앱 하나로 가장 빠르고 저렴하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찾게 마련이다. 그 플랫폼이 대부분의 모빌리티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 마치 아마존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며 유통시장을 장악한 것과 같다. 플랫폼 경제의 특성상 다양한 유사 플랫폼이 공존하기 어렵다. 가장 크고 편리하고 서비스가 집중된 플랫폼이 공룡화될 가능성이 크다. 각종 교통정보의 빅데이터가 집결되는 곳 역시 플랫폼이다. 차량에 부착된 다양한 센서와 AI를 통해 모이고 계산된 정보는 5G 네트워크를 통해 플랫폼에 축적되고, 이를 통해 초고정밀 지도, 실시간 지도도 생성될 것이다. 차량의 시의적절한 배차, 향후엔 출퇴근 시간엔 승객을, 나머지 시간엔 화물을 운반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 역시 플랫폼이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기술의 변화는 TaaS의 시대가 생각보다 빠르게 도래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초기엔 미래 모습에 이견이 많았지만 최근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면 점점 수렴해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사람은 모빌리티를 떠나 살 수 없다. 이동은 본능에 가깝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모빌리티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우버가 초창기부터 글로벌 마케팅을 통해 다수의 나라를 선점하고 있고, 디디추싱이 중국의 90% 이상을 장악했으며, 그랩이 8개 동남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등 클러스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1등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플랫폼의 특성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그 중심엔 천문학적 투자로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 지형을 바꿔버린 소프트뱅크가 있다. 한국은 카카오나 쏘카 모두 글로벌 기업에 비해선 너무 영세하다. 시가총액 역시 상대가 되질 않는다. 지금의 금액이면 언제든 글로벌 자본이 적은 돈으로 한국의 모빌리티 기업을 통째로 인수할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각국의 모빌리티 상황, 통신, 지도, 기술표준, 법률, 도로 여건 등이 같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같이 독점기업이 세계를 완벽히 다 지배할 수는 없는 분야가 모빌리티다. 한국은 규모가 작은 시장이지만 서울, 인천, 경기의 수도권은 인구와 차량의 대부분이 몰려 있는 메가시티다. 모빌리티 시장으로 따지면 세계적으로도 황금어장에 해당한다. 해외 플랫폼 기업이 한국의 모빌리티를 지배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모빌리티 산업은 자율주행, 전기차, UAM, 차량사물통신(Vehicle to Everything, V2X), 여객, 여행, 항공, 물류, 로봇 등 다양한 산업이 융합된 초대형 산업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또 스마트시티의 근간 사회간접자본(SOC)이 될 수밖에 없다. 미래를 내다보고 모빌리티 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해야 한다. 이는 대형 포털이 부재한 유럽이 구글의 실질적 지배를 받고 있는 모습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네이버나 카카오가 한국 시장에 버티고 있듯 모빌리티도 시장은 작지만 똑똑하고 강한 국내 기업이 글로벌 플랫폼으로부터 시장을 지켜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첫째, 정부가 빨리 산업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해외 모빌리티 산업의 힘은 강해지고, 기술 수준이 높아질 것이란 점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국내 주체들이 해외에 비해 많은 차별을 받는 것도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정부 때문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로보택시의 시대가 도래하면 현재의 제도와 규제는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나 쏘카(타다), KST모빌리티 등 국내 주체들이 빨리 성장하고 글로벌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정부가 막고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택시도 플랫폼에 편입돼 경쟁력을 유지하고 향후 로보택시로 완전히 대체될 때까지 국가가 지원책을 병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둘째, 국내 주체들 간 비전 공유와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플랫폼, 인프라, 법•제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체가 같을 순 없다. 각각의 주체가 그리는 미래 모빌리티의 그림이 다르고 지향점이 다르다면 준비 과정에서 혼선은 불가피하다.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모넷테크놀로지나 LA 시정부가 주도하는 도시 교통체계 협의체 ‘어반 무브먼트 랩스(Urban Movement Labs, UML)’는 이와 관련해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모넷테크놀로지의 경우 소프트뱅크가 그린 큰 그림 위에 도요타, 혼다, 마쓰다, 스즈키 등 대기업과 400여 개 중소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상생 구도로 구성돼 있다. 고령화, 인구공동화가 나타나는 일본의 지방 이동 약자를 대상으로 먼저 시범 서비스가 실시되는데다 연합의 규모가 매우 커서 일본 현지 사정에 익숙지 않은 해외 업체가 섣불리 덤벼들어 경쟁하기가 처음부터 힘든 구조다. UML의 경우 LA 시정부가 모빌리티 관련 빅데이터 수집과 분석뿐 아니라 협의체 구성에 앞장서고 있다. 시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만큼 규제나 인프라에서 협조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런 환경이라면 구글의 웨이모와 우버에어 같은 매력적인 서비스 주체들이 앞장서 LA의 비전 실현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기업이 됐든 정부가 됐든, 가장 자신 있는 주체가 앞장서야 한다. 더 이상 경계심만 가지고 있어선 안 된다. 누군가 치고 나와야 한다.

셋째,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인 플랫폼에 있어 우버나 디디추싱 같은 해외 업체가 주도권을 잡도록 절대 허용해선 안 된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고 서비스 확장성이 뛰어난 해외 모빌리티 플랫폼의 한국 내 확산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모빌리티 주권은 통신, 가스, 전력 인프라만큼이나 중요하게 지켜야 한다. 한국은 이미 2400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카카오모빌리티와 580만 명을 확보한 쏘카의 양강 구도가 갖춰져 있다.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 효과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고객 확보가 이미 이뤄진 상태다. 그럼에도 두 업체의 기업가치는 해외 기업에 비해 형편없이 낮다. 언제든 글로벌 자본이 최대주주로 등극할 수 있는 영세한 사이즈다. 강력한 규제로 매출 성장이 불가능한 기업들이 주가매출비율(Price Sales Ratio, PSR) 기준의 가치평가(valuation)로 높은 기업가치를 받을 리 만무하다. 더 이상 국내 모빌리티 기업에 대한 억압이 계속돼선 안 된다. 모든 인적, 물적 이동을 자율주행으로 아우르는 TaaS 3.0이라는 큰 그림에 공감대를 이루고 세부적인 전략하에 국내 모빌리티 플랫폼을 육성해야 한다. 높은 성장성이 보이면 자본시장은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마련이다. 즉, 정부가 규제로 해외 기업에 벽을 만드는 게 아닌 자본시장에서 쌓은 기업의 시가총액이 경쟁업체의 침입을 막는 벽 역할을 해야 한다.

넷째, 국내 주체들 위주로 시스템이 구축되면 곧바로 해외 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글로벌 얼라이언스 및 해외 확장 전략으로 모드를 전환해야 한다. 한국은 작은 시장이지만 향후 글로벌 TaaS 3.0 시장은 엄청난 사이즈가 될 것이다. 한국이라는 테스트베드에서 성공 경험을 가진 요소기술을 해외로 진출시키기 위해선 구매력을 가진 해외 플랫폼과의 제휴가 필수적이다.2 더 경쟁력 있는 로보택시, 더 경쟁력 있는 인프라, 기반 기술을 수출할 수 있으려면 국내 모빌리티 산업의 성공이 선행돼야 한다. 물류와 전자상거래 역시 마찬가지다. 쿠팡의 경우 소프트뱅크의 집중적인 자본 투입에도 토종 물류 기업들이 완강히 버티고 있어 성장이 더디다. 바꿔 얘기하면 토종 물류 기업들의 경쟁력이 워낙 강하다는 의미다. 이 경쟁력을 모빌리티와 접목해 TaaS 3.0의 세계적 성공 사례를 만들어 시스템을 수출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모빌리티 산업은 생태계의 확장폭이 매우 크다. 마이크로 모빌리티에서 로보택시, 하늘을 나는 UAM까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하드웨어를 전부 포함한다. 생태계를 아우르는 스마트시티까지 확장하면 국가의 부가가치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거대한 기회의 산업이다. 전통적인 중후장대산업, 아날로그 경제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모빌리티 같은 대규모 산업에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도 이 산업의 확장 가능성과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면밀히 연구하고 참여 업체들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수명이 짧은 작은 그림이 아닌, 미래까지 고려한 큰 그림에 초점을 맞춘 계획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coolbong@hi-ib.com
필자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1999년 대우증권에 입사하며 증권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그룹장을 지냈고 2011년 하이투자증권에 합류하며 리서치센터 기업분석팀을 이끌다 2018년부터 리서치본부장을 맡고 있다. 조선일보, 한국경제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주요 언론사로부터 자동차•타이어 분야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수차례 선정된 바 있다. 최근에는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에 대한 보고서 작성과 대기업, 협회, 정부기관 특강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KAMI) 명예 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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