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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구름 위에서 기회를 보라

김현진 | 280호 (2019년 9월 Issue 1)
얼마 전 서랍 정리를 하다 대학 새내기 시절 썼던 플로피디스크를 발견하고 잠시 마음속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검은색 3.5인치 디스크 위에 단정하게 붙은 견출지에는 학번이며 이름도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파일 상태는 멀쩡했지만 내용을 확인할 드라이버가 없어 안타까워하다 추억 여행은 몇 분 만에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엔 모두 짐작하시다시피 CD, USB 메모리 카드의 시대를 차례로 경험했습니다.

비즈니스용 데이터 저장 장치의 진화 과정에 있어 현재진행형이자 당분간은 대세로 군림할 기술은 클라우드입니다. 영어 단어 구름(cloud)을 본떠 만든 터라 뭔가 낭만적인 기술 용어로 느껴지지만 사실상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들이 총성 없는 싸움을 펼치는 치열한 전장입니다. 디지털 혁신 시대의 핵심 테마인 만큼 이 기술이 낳을 경제적 효과가 상상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클라우드라는 기술이 처음 소개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전인 1965년, 미국의 컴퓨터학자 존 매카시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컴퓨터 자원 역시 전기나 수도 같은 공공재처럼 쓰고 사용한 만큼 돈을 내게 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 예측은 현실이 됐습니다.

IT 업계에선 디팩토스탠더드(de facto standards), 즉 ‘사실상의 표준’을 장악한 기업이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떤 제품이 최초로 개발되면 그것이 곧 모든 네트워크에 광범위하게 파급되기 때문입니다. 시장 조사 기관 가트너의 2019년 6월 발표에 따르면, 글로벌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에서 지금까지 압도적인 승자는 ‘디팩토스탠더드’를 이룬 아마존웹서비스(AWS)이며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그 뒤를 알리바바클라우드, 오라클, IBM이 추격하며 틈새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인생 전체를 저장하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하늘 위 ‘구름’을 글로벌 IT 공룡 기업들이 이미 장악한 셈입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볼까요. 네이버가 ‘데이터 주권’을 내세우며 새롭게 지을 제2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에 최근 지자체와 민간 사업자들이 대거 참여해 9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필두로 하는 첨단 데이터 기술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은 국내에서도 이미 상당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국내 10인 이상 기업의 클라우드 이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27위 수준에 불과합니다. 기대감과 실제 이용률 사이에 아직은 간극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글로벌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의 ‘3강’을 추격하는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변화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엽공호룡(葉公好龍)’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용을 좋아하기에 온 집안을 용으로 꾸민 엽공이란 자가 정작 용이 나타나자 무서워 도망쳤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핵심 중 하나인 클라우드 역시 변화를 주저한다면 영원히 손에 닿을 수 없는 하늘 위 구름에 불과합니다. 플로피디스크를 쓰던 시절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하늘 위 저장 장치’가 다시 한번 진화될 하늘 너머 미래를 위해서도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이번 호 DBR에는 한일 무역 갈등과 맞물려 시급하게 점검에 나서야 할 글로벌 공급망 관리 전략과 함께 경쟁력 강화에 나선 국내 기업이 참고할 만한 일본의 첨단 부품·소재 산업을 집중 분석한 이슈 하이라이트 코너도 긴급 편성했습니다. 하이테크 시장이 세계 정치 지형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글로벌 패권 싸움의 전쟁터로 번지면서 안보, 외교 이슈가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리스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기치 못한 외부 충격 속에서 더욱 복잡해진 글로벌 공급 사슬 파괴의 충격파를 줄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염두에 둬야 할지 참고해보시길 바랍니다. 글로벌 공급망 관련 리스크 경감 전략 가운데 클라우드 기술이 ‘구원투수’ 중 하나로 꼽힌다는 점 역시 신선한 학습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김현진 편집장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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