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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오디오 플랫폼 ‘스푼라디오’의 성장 전략

“연결되고 싶지만 노출되고 싶진 않아”
목소리로 토닥토닥, Z세대 사로잡다

최한나 | 274호 (2019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오디오 플랫폼 스푼라디오는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해 3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800만 건, 월 이용자 수(MAU) 130만 명에 달하는 기록을 세우며 Z세대들의 두터운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며 양방형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Z세대를 겨냥해 이들의 입맛에 맞는 기능들을 선보이면서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인 결과다. 스푼라디오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Z세대향 비즈니스 마인드
최첨단 기술에 능숙하면서도 정서적 결핍에 예민한 Z세대에게 음성으로 소통하는 플랫폼을 선보여 감성에 어필
2.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토대로 한 실험주의
유저들의 행동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해 무의식을 포착하고 그 결과를 끊임없이 경영에반영하는 실험주의 정신
3. 초자율시대에 걸맞은 임파워먼트 경영
판을 깔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율과 권한을 부여해 창의를 꽃피우는 방임적 리더십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홍지선(경희대 호텔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사례 1 2019년 5월의 어느 잠이 오지 않는 밤 11시, 앱을 켰다. 그 시각 개설된 방은 모두 3000여 개. 그중 ‘매력적인 목소리’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방에 들어갔다. “초롱초롱 님, 어서 오세요∼” 들어가자마자 BJ가 내 닉네임을 부르며 환영했다. BJ는 그날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소개하면서 방에 모인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올리는 댓글을 하나하나 읽으며 반응하고,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며, 틈틈이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반겼다. ‘목소리가 너무 예뻐요∼’ 하고 글을 올렸더니 BJ는 바로 “초롱초롱 님, 감사합니다”라며 웃었다. 방에 모인 사람은 200명이 넘었지만 BJ와 일대일로 소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례 2 2017년 12월 어느 날,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스푼라디오 사무실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1년간 활발히 활동한 BJ 가운데 인기 BJ를 선정해 시상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 스푼라디오 직원들은 하트나 스푼을 많이 받은 BJ 20명을 선정해 상금을 수여하기로 하고 플래카드를 걸고 다과 등을 준비했다. 하지만 행사시간이 한참 넘도록 현장에 도착한 BJ는 서너 명에 불과했다. 일부 BJ들은 대리 수령자를 보내기도 했다. 현장에는 스푼라디오 직원들만 가득했다. 나중에 이유를 물으니 다수의 BJ는 시상식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청취자들의 상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연결되고 싶지만 노출되고 싶지는 않은 Z세대의 심리를 잘 간파해 이들 세대의 두터운 지지를 얻고 있는 오디오 플랫폼이 있다.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해 3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800만 건, 월 이용자 수(MAU) 130만 명에 달하는 스푼라디오가 그 주인공이다. 매일 개설되는 방 개수는 3만 개. 피크타임인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는 3000∼4000개의 방이 열린다. 방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만 명 단위의 사람들이 모여 B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일상을 나눈다.

비디오 시대가 열리며 라디오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되던 시절이 있었다. 예상을 뒤엎고 라디오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주파수를 맞추고 D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팟캐스트나 팟빵처럼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오디오들이 가득한 플랫폼도 성업 중이다. 다만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며 양방형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Z세대는 한층 진화된 형태로 라디오 방송을 소비하고 있다. ‘오디오계의 유튜브’로 불리는 스푼라디오를 통해서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방송에 만족하지 못하는 Z세대 청취자들은 스푼라디오라는 쌍방향 플랫폼을 통해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즐기는 라디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DBR이 스푼라디오의 성장 스토리를 취재했다.





목소리로 위로받는 플랫폼 만들다

스푼라디오를 운영하는 마이쿤(Mykoon) 최혁재 대표가 처음 시도한 창업 아이템은 ‘스마트폰 배터리 충전 및 교환 서비스’였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고 스마트폰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들이 늘면서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았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수요를 노려 최 대표는 외출 중 배터리를 어디서 충전할 수 있는지 가능한 좌표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나아가 주요 지역에 위치한 가맹점에서 누구나 쉽게 전력이 다 소모된 자신의 것을 반납하고 100% 충전된 같은 기종의 배터리로 교환해 갈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최 대표는 서비스 홍보를 위해 홍대나 강남역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을 돌며 전단지를 뿌리기도 하고, 리어카에 기종별 배터리를 수천 개씩 담고 다니며 직접 교환해 주기도 했다. 최 대표의 열정과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아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받았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 수십 개씩 교환소를 두고 있을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하지만 배터리가 분리되지 않는 일체형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사업은 순식간에 몰락했고 빚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무실에서 라면만 먹으며 버티는 날들이 이어졌다.

할 일 없이 출근만 하고 있던 어느 날, 마이쿤 창업을 함께했던 멤버 중 한 명이 오디오 플랫폼 아이디어를 냈다. 망한 처지가 되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이런저런 격려와 위로의 말들을 듣는데 딱딱한 활자보다는 따뜻한 목소리에서 받는 위안이 더 크더라며 상심하거나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목소리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던 멤버들에게 와 닿는 아이디어였다. 당시 비디오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었다. 오디오는 상대적으로 플레이어가 적고, 서버의 유지 및 관리 비용 면에서 부담이 적었다. 최 대표를 비롯한 창업 멤버들은 오디오 플랫폼을 개설해 운영해보기로 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선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오디오 플랫폼이 없으므로 일단 단순하게라도 서비스를 시작하고 이후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나가자고 생각했다.” 최 대표의 말이다. 이들은 간단한 버전을 만들어 2016년 3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1. 실시간 라이브 방송 통해 사용자 폭발적 증가

처음에는 음성 녹음을 올려 공유할 수 있는 형태의 플랫폼이었다. 예컨대 누군가 ‘이러저러한 고민이 있다’고 녹음해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그것을 듣고 위로하거나 공감하는 내용의 댓글을 목소리로 달아주는 식이었다. 처음부터 ‘라디오’와 같은 형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월○일, ○○의 ○○라디오’라고 제목을 붙여 올리거나, ‘○○라디오 지금 시작합니다∼’로 녹음을 시작하거나, 전날 녹음에 달린 댓글을 듣고 그것을 소개하는 내용을 녹음해 다시 올리는 사용자들이 늘었다. 사용자들이 플랫폼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더라는 것. 그뿐만 아니라 앱스토어 등의 사용자 리뷰 란에도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최 대표를 비롯한 개발자들은 라이브 기능을 추가하기로 하고 약 3개월 동안 밤낮없이 몰두해 현재 스푼라디오의 핵심 기능인 ‘라이브’를 개설했다.

라이브 기능이 추가되면서 사용자층 증가에 한층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1020세대의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누구보다도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는 일에 익숙한 세대였다. 특히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자기 채널을 운영하며 구독자를 늘려가고 싶은 욕구를 가진 이들에게 비주얼에 신경 쓰지 않고 목소리로만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스푼라디오는 매력적인 대체재였다. 노래에 자신 있는 이는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부르는 음악 방송을, 고민 상담에 자신 있는 이는 고민을 받아 그것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는 방송을, 일상 공유에 관심 있는 이는 소통을 키워드로 유저들과 대화하는 방송을 진행하며 청취자를 불려나갔다. 이를 통해 진행자와 유저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모이는 사람들이 늘면서 스푼라디오는 목소리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쌍방향 플랫폼으로 이름을 얻어갔다.



2. “재미만큼 후원” 유저 니즈 맞춰 ‘스푼 결제’ 추가

이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BJ에게 금전적으로 선물을 할 수 있는 ‘스푼 후원하기’ 기능이 더해졌다. 플랫폼에서 스푼을 구매한 후 방송 중 BJ에게 쏘는 방식이다. 아프리카TV에서 BJ에게 별풍선을 쏘는 것과 같다. 그러면 BJ는 이를 현금으로 교환해 수익을 취할 수 있다. 스푼라디오에서 통용되는 화폐 단위인 스푼(=100원)을 구입해 1000원에서 33만 원까지 가격대가 다양한 스티커를 구입하고 이를 BJ에게 선물로 보내는 구조다. 유저들이 BJ에게 보낸 스푼 금액은 스푼라디오와 BJ가 사전에 정해진 비율대로 나눠 갖는다. 10대, 20대들이 몇천 원씩 결제하는 것이 무슨 수익 모델이냐, 라디오 듣다가 결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의구심이 안팎에 적지 않았지만 최 대표는 도입을 망설이지 않았다. 이유는 한 가지다. 유저들의 니즈다. 최 대표는 “Z세대는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자신이 잘 활용하는 서비스에는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BJ가 나를 즐겁게 해주고 내가 그 방송을 통해 재미를 얻고 있으니 그에게 ‘뭔가 해주고 싶다’ 내지는 ‘당연히 뭔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거금을 들여 스푼을 쐈을 때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감탄하며 환호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다.” 최 대표의 말이다. 결제 서비스가 시작된 첫 달, 유저들의 스푼 결제를 통해 200만 원의 매출이 기록됐다. 이후 결제 금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금은 매일 약 1억 원씩 결제가 일어난다. 한 달에 수백만, 수천만 원씩 스푼을 결제하는 20대들도 적지 않다. 2018년 연매출 230억 원이 여기서 나왔다.



스푼으로 후원받는 기능이 추가되자 이에 연동해 BJ들의 수입도 늘기 시작했다. 현재 톱10 안에 들어가는 BJ들은 연간 억 단위 규모의 돈을 번다. 지난해 가장 많이 번 BJ는 4억 원의 수입을 거뒀다. 이렇게 되자 전문적으로 BJ를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목소리만으로 진행되는 방송인데도 매일 아이디어를 내서 구성을 달리하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진행 방식을 고민해 팬덤을 불려나간다. 스푼라디오에서 진행하는 정규 방송 외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추가적으로 팬들을 관리하며 자체적으로 대규모 팬미팅을 기획하기도 한다. BJ들끼리 커뮤니티를 조성해 공동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이들도 있다. BJ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스푼라디오에서 제작에 참여하는 사용자 비율은 전체 사용자의 10%대로 올라섰다. 유튜브 등 비디오 플랫폼에서 단순 공유나 시청이 아닌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비율이 2%대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스푼라디오에 대한 유저들의 참여도가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라이브 기능과 스푼 결제 등을 포함해 서비스 출시 이후 1년 동안 총 54회의 업데이트가 있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업데이트를 한 셈이다. 이는 최 대표의 경영 철학과 통한다. 최 대표는 뭐든 일단 해보고 이후 보완해가자는 주의다. 그는 “업데이트 54번 중에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라이브와 스푼 결제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소 박한 자평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잘 활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유저들로부터 외면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대부분이 그렇다고 했다. “실패가 디폴트(default)다. 성공이 특이 케이스다. 원래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고 가정해놓고 어떻게 하면 가급적 실패를 줄일 수 있을까를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최 대표의 말이다.


DBR mini box I: 스푼라디오의 주요 기능

라이브(Live): 전체 방송 중 90% 이상을 차지한다. 매일 밤 4000개에 육박하는 방들이 만들어진다. 누구나 버튼 하나만 누르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수 있다. 방에 참여하면 오픈채팅을 통해 BJ와 대화할 수 있다. 대화 중 스푼을 쏘면 BJ에게 금전적인 수익을 안겨줄 수 있다.

캐스트(Cast): 무엇이든 녹음해서 올려놓을 수 있다. 노래를 불러 음성파일을 올리기도 하고 특정인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릴레이로 녹음해서 올려두기도 한다.

톡(Talk): 드라마나 영화 대사, 노래의 한 단락 등 지정된 문구를 짧게 녹음해 올리는 코너다. 릴레이처럼 전 사람에 이어 다음 사람이 짤막한 자신의 음성 녹음을 올린다. 각 방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해당 문구를 읽어 올린 녹음을 연달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데이터를 가장 신뢰한다. ‘데이터 말고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데이터를 보면서 전략을 다듬고 수정한다.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앱스토어 등에 올라오는 사용자 리뷰다. 운영팀에서 매주 취합해 주제별로 분류한 후 내부에 공유한다. 개발팀이나 마케팅팀과 협의해 운영에 반영한다. 유료 데이터 분석 툴도 많이 쓴다. 툴 값으로만 매달 수천만 원씩 나간다. 플랫폼을 통해 얻는 여러 수치를 다양한 잣대로 분석하고 파악해, 보고 또 본다.

여러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가며 최 대표가 찾는 것은 ‘골든 넘버(golden number)’다. 예컨대, 트위터는 사용자가 팔로잉을 20명 이상 하면 탈퇴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더라, 페이스북은 5명 이상의 친구와 연결되면 사용이 유지되더라는 식의 사용자 행태 분석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특이점이다. 스푼라디오도 여러 가지 골든 넘버를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새로 가입한 사용자가 방송을 5개 이상 들으면 앱을 삭제하지 않고 계속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결과다. 무수히 많은 데이터(raw data)를 돌리고 분석해 얻어낸 숫자다. 이를 반영해 스푼라디오는 가입자가 앱을 설치한 후 끄기 전까지 최소 5개의 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너지(nudge)를 설치했다.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채팅 형식으로 말을 걸어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거나 인기 있는 방송 리스트를 전면에 노출해 흥미를 유발하는 식이다.

AB 테스트도 매일 한다. 최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미친 듯이 한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를 따른다. 새롭게 적용하고 싶은 기능의 A버전과 B버전을 사용자 중 일부에게 먼저 도입해본다. 이 중 더 좋은 반응을 얻은 버전과 C버전을 또 사용해보도록 한다. 이런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해 마침내 살아남은 최종 버전을 전체 사용자에게 적용한다. 마치 이상형 월드컵을 진행하듯 일대일로 여러 버전을 붙여 최종 살아남는 버전을 가려내는 식이다. 최 대표는 “직원들에게도 말로 설명하지 말고 숫자를 가져오라고 많이 요구한다. 사용자들의 행동과 특성, 결제 방식,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는 물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가 모두 데이터에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스푼라디오 유저 중 70% 이상이 18∼25세다. 스푼라디오가 진행하는 디지털 마케팅과 제공하는 기능들은 대부분 이 연령대를 타기팅한다. 처음부터 10대와 20대를 타기팅한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3040을 위한 시사 또는 지식 콘텐츠도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세바시)’과 협력을 맺고 세바시에서 제작하는 콘텐츠를 끌어와 음성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인기 웹툰 ‘우리 집에 사는 남자’와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을 각색해 전문 성우가 목소리로 연기해 올려두는 ‘오디오툰’ 코너도 있었다. 책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과 비슷한 기능인 셈이다. 하지만 10∼20대가 라이브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용도로 스푼라디오를 많이 찾으면서 이들 위주로 기능이 재편됐고 지금은 시사 콘텐츠 제공은 물론 오디오툰 기능이 모두 종료된 상태다. 이 역시 신규 유저 추이, 앱 삭제 추이, 재방문율, 유저별 기능 활용률과 머무는 시간 추이 등 여러 가지 숫자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다. 최 대표는 “연령에 제한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서비스를 가장 활발하게 즐기며 소비하는 세대가 10∼20대로 나타난 만큼 그 결과에 맞춰 점차 이들을 주요 타깃으로 보며 서비스를 운영하게 됐다”며 “스푼라디오가 나아가는 전략적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사용자들”이라고 말했다.


마케팅팀에 최대한의 자율과 권한 부여

창업 초기, 최 대표는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 10∼20대 유저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이 많이 모이는 방에 자주 들어갔다. 직접 방을 만들어 운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방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깔깔거리며 웃을 때 자신은 하나도 웃기지 않거나 사람들이 왜 웃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빈발했다. 개설한 방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때도 많았다. 이런 상황은 마케팅팀과의 회의에서도 자주 발생했다. 전원 20대로 구성된 마케팅팀은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문구를 작성해 마케팅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이들과 같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다들 깔깔거리며 박장대소하는 상황에 최 대표 혼자 웃지 못한다거나 팀원들이 이른바 ‘급식체’를 사용해 작성한 문구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지금은 유저들의 대화 또는 마케팅팀에서 작성한 문구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저들은 저렇게 즐기는구나, 저들은 저런 상황에 지갑을 여는구나를 알아갈 뿐이다. “과거 우리 아버지 세대가 서태지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를 보고 이런 노래를 도대체 왜 좋아하냐, 이게 노래냐고 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세대를 일부러 노력해서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들의 특성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해 그에 맞는 서비스를 구현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데이터를 많이 활용한다.” 최 대표의 말이다.

마케팅을 직접 컨트롤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는 예산 배정만 결정할 뿐 마케팅의 A부터 Z까지 마케팅 팀원들이 개인별로 결정하고 진행한다. 스푼라디오의 지난해 마케팅 비용은 120억 원. 연 매출이 230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공격적인 마케팅이다. 올해는 더욱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패는 사용자층의 압도적인 확보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요 사용자층을 대상으로 마케팅 메시지를 지겨울 정도로 반복 노출해 그들의 머릿속에 스푼라디오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목표다. 사용자들이 원해서 추가한 ‘스푼 후원하기’ 기능 외에 별다른 수익 모델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충분한 사용자층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상황에 광고 등 다른 수익 모델을 섣부르게 추가했다가는 사용자들의 이탈이나 관심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용자층을 두텁게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게 최 대표의 생각이다.

마케팅에 개입하지 않는 대신 마케팅 팀원들을 구성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다. 경력이나 학력은 보지 않는다. 오로지 열정만 본다. 스타트업인 데다 새롭게 시도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만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우선으로 본다. 뽑힌 마케팅 직원들은 3개월간 수습 기간을 거친다. 하루에 몇만 원 정도의 예산을 받아 직접 디지털 마케팅을 시도해보도록 한다. 각자 맡는 플랫폼은 정해져 있지만 마케팅 문구나 형식, 기간 등은 스스로 정할 수 있다. 디지털 마케팅의 특성상 해당 마케팅을 통한 사용자 수 증감이나 스푼 결제 내역 등이 바로바로 체크된다. 실시간으로 성적표를 받아보는 셈이다. 그 결과에 따라 개인별 마케팅 예산의 증감이 달라진다. 예컨대 같은 10만 원의 예산을 받아 A는 20만 원을 벌었고, B는 5만 원밖에 벌지 못했다면 A에게는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을 늘려주고 B에게 배정된 예산은 삭감하는 식이다. 3개월 수습 기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한 팀원은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정직원이 된 마케팅팀 직원들에게는 보다 넓은 범위의 권한이 주어진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 개인별로 맡는 채널만 정해져 있을 뿐 들어가는 문구와 노출 방식, 노출 기간, 타깃 설정, 수정 여부 및 방법 등은 모두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다만 성과에 따라 배정받는 예산 규모가 달라질 뿐 아니라 성과급의 유무 및 금액도 달라지므로 상당한 책임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광고 문구를 검토해 달라며 대표에게 들고 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절차가 없다. 오직 결과를 놓고 평가받을 뿐이다. 최 대표는 “광고 문구라고 들고 오는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오글거린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뭐든 일단 해보라고 한다”며 “가급적 다양한 방식으로 광고를 시도해보고 그중 좋은 성과를 낸 광고에 예산을 추가 배정하는 것만 내 몫”이라고 말했다.



DBR mini box II: 스푼라디오 광고 문구들

늘 혼자인 게 좋다고 말했다. 늘 혼자인 게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누군가와 소통하길 바란다.


편하게 들으면서 주무시면 돼요. 제가 재워드릴게요.


내 개취는 라디오를 타고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들만의 라디오


너의 숨은 재능을 스푼에서 보여줘


잠이 안 올 땐 스푼라디오(듣다 주무셔도 좋습니다)



창업부터 해외 진출 염두… 동남아, 일본, 중동으로

최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뒀다. 비디오와 달리 라디오는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 “국내 지상파 3사 라디오를 합쳐도 총 3000억 원이 안 되는 시장이다. 물론 기존 시장으로 단정하면 안 되겠지만 참고할 만한 수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국내가 100억 원 규모밖에 안 된다고 해도 이를 병렬식으로 펼쳐 세계에서 50개, 100개 시장을 키우면 될 것 아닌가.” 최 대표의 말이다.

처음 진출한 국가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었다. 동남아시아는 전체 인구가 많고 그중에서도 젊은 인구 비중이 높다. 또한 SNS 사용이 매우 활발하다.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모바일을 활용해 하루 평균 3.6시간 인터넷을 쓰는데 이는 중국(3시간), 영국(2시간), 일본(1시간)보다 많다. 필리핀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주요국들의 하루 인터넷 사용시간 및 소셜미디어 사용시간은 세계 상위권이다. 1

인건비가 저렴해 운영비가 적게 든다는 점도 동남아시아 선정의 이유가 됐다. 스푼라디오는 국내에서 서비스를 출시한 지 1년 만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도 동일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운로드나 가입자 수를 꾸준히 불려나갔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매출 성장은 더뎠다. 스푼 후원하기가 생각보다 활발하지 않았다. 결제 단위도 한국에 비해 훨씬 작았다. 최 대표는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주휴락(衣食住休樂) 중 스푼라디오 서비스는 휴(休)와 락(樂)에 해당하는데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희와 락에 소비되는 금액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음 지역은 무조건 소비 수준이 높은 곳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진출 지역은 일본이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다. 그다음은 오일머니가 풍부한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인구는 한국보다 적지만 소비력이 강한 덕분에 인당 인앱(In-App) 결제 금액이 세계 톱 수준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얻은 교훈을 적용한 후발 지역에서의 매출 성장은 가파른 편이다. 일본과 중동 모두 유저 숫자는 물론 스푼 결제 금액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해외에서도 마케팅 원칙은 동일하다. 팀원들 각자가 최대한 많은 권한을 가지고 문구와 기간, 방식 등을 결정한다. 현지인의 감성을 이해하고 제대로 파고들기 위해 스푼라디오는 처음부터 해외 지역의 담당자들을 모두 현지인으로 뽑았다. 지사를 설립해 아예 현지에서 인력을 채용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제외하고 일본과 중동 지역의 경우 한국에 살고 있는 현지인을 뽑아 함께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현지인을 채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기업 아닌 스타트업에서, 기존에 없는 낯선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직군으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최 대표는 반드시 현지인으로 팀을 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케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규모를 더욱 키워나가겠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이라도 ‘갑분싸’ ‘TMI’ ‘인싸’와 같은 말을 이해하고 적절히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1020세대를 겨냥하는 마케터 일을 하려면 반드시 현지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 대표의 말이다.

최 대표는 여기서도 권한 위임 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지역별로 팀장을 공들여 뽑고 팀원들의 채용 및 관리를 팀장에게 일임하는 방식이다. 팀장의 경우 어느 지역 출신이나 영어를 잘해 최 대표와 막힘없는 소통이 가능하다. 팀장들이 각 팀으로 돌아가서는 팀원들과 현지어로 소통하며 일을 진행한다.

마이쿤을 창업한 지 올해로 6년 차, 스푼라디오 서비스를 시작한 지는 만 3년이 됐다. 지금은 앱의 누적 다운로드 숫자가 800만에 육박할 만큼 인기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동안 겪은 어려움도 작지 않았다. 사업 초기에는 유저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 스스로 신조어를 찾아 공부하기도 하고 매일 밤 인기 있는 BJ 방을 찾아 들어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관찰도 많이 했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점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그들의 행태와 심리를 반영한 데이터를 파고들 뿐이다. “여성 속옷을 만드는 회사의 남자 CEO가 자사 제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경영을 잘할 수 없을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내 경우가 그렇다. 나는 Z세대가 아니고 그들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이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재미와 편리를 고안해 한 번이라도 더 찾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최 대표의 말이다.

유저 수가 단시간에 급증하면서 서버가 다운되거나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은 적도 수차례 발생했다. BJ를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니 CS센터를 통한 항의는 물론 회사를 찾아와 삿대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020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한 광고를 공격적으로 내보내다 보니 문구가 너무 느끼하다거나 지나치게 반복돼 거슬린다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통해 잘 먹힐 것이라고 예상하고 출시한 기능이 유저들의 외면을 받는 경우다. 애청하는 BJ의 방송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알람 기능이나 자동으로 방송을 틀어줘 아침 기상 알람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등이 있으면 좋겠다는 유저들의 의견을 듣고 수십 차례의 AB 테스트를 거쳐 출시했지만 막상 적용한 후에는 잘 사용되지 않아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유저들도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할 때가 많고 설문에서는 Yes라고 답해놓고 실제로는 No인 경우가 너무 많다. 계속 실험하고 시도하면서 수치로 나타나는 실제 사용률을 리뷰해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최 대표의 말이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DBR mini box III : ‘스푼라디오’의 성공 비결
초자율시대… 판만 깔아주고 스스로 진화하게

스푼라디오의 성공은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율을 기반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쉽게 예측이 어려울 정도다. 강한 실험정신을 가지고, 사용자 데이터를 중심으로 미지의 세계에서 묘수를 찾아가는 도전이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스푼라디오 사례는 미래 기업의 생존을 위한 다양한 키워드를 제공한다. 현생 인류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하지만 미래 생존을 위해 기업에 가장 중요한 Z세대와 함께 진화하고 있는 브랜드라서 그렇다. ‘젊게, 빠르게, 가볍게, 다양하게’라는 키워드를 ‘Z세대 지향 비즈니스’와 연결하며 그 시사점을 찾아보자.


Z세대향 비즈니스 마인드
많은 사람에게 미래는 불확실하다.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기술 환경에 허덕이는 사람일수록 미래는 두렵게 느껴진다. 디지털 네이티브, 즉 태어날 때부터 첨단 기술과 함께 자라며 짧은 동영상 한 편으로 필요한 지식을 간단히 습득해버리는 신인류에게 미래는 어떻게 보일까? 불확실성을 일상으로 받아들여 지내온 Z세대에게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만한 변화일지 모른다. Z세대는 조용히 진화하면서 미래 환경에 스스로를 가장 잘 최적화하는 세대다. 미래를 대비하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Z세대 중심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가장 진화된 소비자를 상대해야 오랫동안 영업을 할 수 있고, 가장 진화한 직원들과 함께 일해야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스푼라디오는 내·외부적으로 업의 중심을 Z세대에게 맞춰 미래지향형으로 진화해가는 기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
TV를 넘어 AR, VR과 함께 AI 시대로 가고 있는 현시점에 라디오라니, 놀랄 일이다. 그것도 가장 디지털화한 Z세대가 사용자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라디오 플랫폼이라니,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환경적, 심리적 특성을 깊이 있게 조망해보면 이 같은 의외의 역발상이 통하는 한 수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진다. 화려한 영상에 지친 그들에게 목소리는 위안이 된다. 저성장의 그늘 아래 최고 수준의 경쟁에 내몰리며 ‘실패’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그들은 항상 위로에 목마르다. 감성은 아날로그적으로 전달될 때 그 효과가 최고로 치닫는다. ‘위로 결핍 세대’에게 따뜻한 감성적 말 한마디는 자기 확신성을 끌어올리며 공감대를 극대화한다.

스푼라디오는 BJ, 청취자를 가릴 것 없이 남 앞에 설 수 있는 자신감을 충족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비주얼에 신경 쓰지 않고 진솔하게 소통하면서 존재감을 찾아갈 수 있는 통로다. 영상 만능 시대, 능력 배틀 시대에 ‘나와 다르지 않구나, 나 혼자가 아니구나, 문제없다’는 느낌을 주는 따뜻한 목소리는 큰 힘을 가진다. 가장 첨단의 세대인 Z세대가 가지는 이러한 결핍과 그를 채우는 충족의 키워드는 세대를 뛰어넘어 미래를 겨냥하는 비즈니스에 핵심이 될 것이다.


2. 자유롭게 그러나 공정하게
스푼라디오의 마케팅팀은 주된 소비자층과 같은 Z세대로 구성돼 있다. 진화하는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마케팅 인적자원의 채용과 관리는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경영의 다른 영역에 비해 관리보다 창의가 우선인 마케팅의 성격상 젊은 세대, 특히 Z세대를 적극 기용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다. 마케팅은 이미 검증된 경력직을 뽑는다는 관행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관리 시대가 아니라 파괴 시대로 불리는 현대에 안정된 관리의 달인보다는 파괴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세워야 한다. 최근 부활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구찌 등의 기업이 이런 구조를 앞세워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Z세대는 전 세대에 걸쳐 가장 공정성에 민감한 세대다. 자유는 얻되 성과로 보상받는다는 의식이 강하다. 가장 합리적이며 실용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예외나 관행, 인정주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 만큼 처벌받거나 보상받는 것을 중요시하는 공정성 세대다. 그렇다 보니 이런 성향의 직원들은 자율과 성과라는 플랫폼에서 자아실현을 해 나간다. 스푼라디오의 마케팅팀은 매출의 절반이 넘는 예산을 가지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에 따른 처벌과 보상은 명확하다. 미래로 갈수록 더 파괴하고 더 공개하는 비즈니스 환경이 펼쳐질 것이다. 자유롭게, 그러나 공정하게 실행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과학과 예술의 조화
마케팅은 과학과 예술의 조화라고들 말한다. 딱딱한 과학만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감에 의존하는 상상만 있어서도 안 된다. 스푼라디오 성공의 이면에는 데이터 중심의 과학적 접근과 예술 같은 실험주의적 접근이 공존한다. 머리는 차갑되 가슴은 따뜻해야 그 조화 속에서 그동안 없던 차별적 결과물이 나온다.

1. 사용자 행동 데이터 중심의 전략 수립
기업이 직관에만 의존하면 한두 번은 성공할 수 있으나 지속성을 보장받기 힘들다. 결국 마케팅의 핵심은 사용자이며 사용자의 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보이는 행동, 그것에서 비롯된 데이터다. 데이터는 사실 기반이다. 과거의 정보 비대칭, 비공개 시대에는 감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마케팅이 통했다. 하지만 초연결, 초공개, 초저장 시대에 인간의 행동 데이터는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저장, 추출되고 분석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초데이터 시대로 가고 있는 만큼 마케터에게 데이터의 자유도는 무한으로 이어지면서 기회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누가 데이터를 잘 다루느냐가 경쟁의 핵심인 시대다. 마치 요리사가 글로벌 시대에 무한히 널려 있는 식재료 중 어떤 것을 선택해 어떤 레서피로 요리하느냐에 따라 평가받는 것과 같다. 감으로 마케팅하는 시대는 저물고 데이터 기반의 사실 마케팅이 통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데이터 시대를 살았고 팩트 기반의 결정에 익숙한 공정성 세대에게는 더욱 중요한 가치다.

여기서 하나 주의할 것은 말과 행동의 구분이다. 의식적 상황에서 표출되는 말은 사실 기반이라고 보기 힘들다. 얼마든지 자기 의지로 만들어내고 왜곡할 수 있다. 의식적 상황에서 행하는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데이터라고는 할 수 있지만 사실 기반의 완전 데이터라고는 보기 힘든 이유다. 이 때문에 이런 자료들에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되며 보조적 자료로만 활용해야 한다. 행동은 좀 다르다. 대부분의 말은 의식에서 오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행동은 무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행동 데이터는 무의식적으로 흘린 인간 본연의 흔적이며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마케팅학자들 사이에도 의식 상황에서 행하는 설문조사와 인터뷰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세계 유수 저널에서는 필드에서의 행동 데이터 증명을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기술 발전과 지식의 공개 및 공유로 인해 이제는 행동 데이터 분석도 학자의 영역에서 실무자 영역으로 넓혀지는 추세다. 앞서는 기업이라면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케터가 많아야 한다. 마케팅이 크리에이티브와 동일시됐던 것이 과거라면 이제는 행동 데이터가 기반이며 그 위에 크리에이티브가 더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


2. 실패를 당연시하는 예술적 실험주의 정신
스푼라디오 사례를 보면 대단한 실험주의적 정신을 접하게 된다. ‘일단 시도해보자’는 앞으로 더욱 요구되는 가치일 것이다. 시도해보면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덤을 얻는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어 나가려는 주의는 옛날식 접근이다. 젊게, 빠르게, 가볍게, 다양하게 가야 살아남는 환경에는 실험주의 접근이 중요하다. 주야장천으로 지긋이 오래가는 시대는 저물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 팝업적 시도가 비즈니스의 핵심이 돼야 한다.

실험주의를 위해서는 예술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 나오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습작이 필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예술적 정신은 비즈니스 세계에도 요구된다. 기왕이면 남들이 하지 않는 혁명적 시도, 즉 아방가르드한 성격의 것이면 더욱 좋다. 신인류, 미래 인류에게 각광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살펴본 사용자 행동 데이터 중심의 실험이어야 한다.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험에 옮기면서 끊임없는 테스트와 도전 정신으로 진화해가는 것이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초자율시대에 대비한 믿음과 과감한 임파워먼트
많은 기업에 이런 말을 던지고 싶다. ‘잘 모르면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좋다.’ 스푼라디오가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직원들의 업무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과감히 맡긴 데서 찾을 수 있다.

초자율시대다. 모바일 인터넷 환경의 도래와 함께 사람은 이미 자율시대에 최적화돼 가고 있다. 혼자 생활하는 사람이 늘고 혼자 소비하는 비중이 커진 것은 자율시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사물인터넷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의 자율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알아서 움직이는 시대라는 의미다.

판을 깔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다. 조직 관리 차원에서 이 점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Z세대를 비롯한 젊은 세대가 주역이 되고 있는 상황에 뒷방 늙은이, 이른바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권한을 과감히 이양하고 다른 유효한 역할을 찾아 나서야 한다. 통제와 관리의 시대는 끝났다. 자율과 창의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기업의 시스템과 의사결정 과정, 조직 운영 등 모든 분야에 임파워먼트가 일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제는 각각의 조직원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시대다. 모두 다 프로페셔널이다. 자체 조달이 어려우면 외부에서 얼마든지 조달해 전문가 수준의 과업을 해낼 수 있다. 맡겨놓으면 알아서 다 할 수 있는 시대라는 의미다. 믿고 맡겨보라.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겠으나 진화하고 발전해서 분명 궤도에 올라올 것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회복탄력성이 높다. 과감하게 믿는 경영, 믿고 맡기는 경영이 차별화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런 경영으로 조직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 또한 중요한 요소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marnia@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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