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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P2P 금융 스타트업 렌딧

금리에 멍든 대출자, 수익에 불만인 투자자
투명한 정보 공개로 윈윈 플랫폼 구축

배미정,문정빈 | 267호 (2019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개인 신용 전문 P2P 금융 1위 스타트업 렌딧(LENDIT)이 기존 금융회사들이 외면한 중신용 대출자들을 포용하는 혁신을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1. 자체 개발한 개인신용정보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함으로써 투자자와 대출자 양쪽의 편의성이 높아지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2. ‘투명성’을 원칙으로 삼고 정보 공개를 확대해 투자자 신뢰를 확보했다. ‘대출자가 아낀 이자’라는 새로운 지표를 통해 플랫폼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했다.
3. 규제가 불분명한 시장에서 정부 가이드라인보다 훨씬 강력한 자율규제안을 만들고 실천하면서 업계의 자정을 주도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지우(서강대 경영학과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렌딧 대출로 절약한 이자 100억2000만 원’

P2P(Peer to Peer) 금융 스타트업 렌딧(LENDIT)은 창업 이후 3년 3개월간 누적된 성과를 발표하면서 ‘대출자가 아낀 이자’라는 다른 금융회사에서 보기 힘든, 이례적인 지표를 내세웠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이 저축은행, 카드론, 캐피털 같은 제2금융권 대신 렌딧 플랫폼을 통해 대출을 받고 100억 원이 넘는 이자를 아꼈다는 의미다. 렌딧은 은행 대출이 어려운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을 크게 줄인 성과를 인정받아 2018년 11월 P2P 업계 최초로 70억 원의 임팩트 투자를 받았다. 1 임팩트 투자는 경제 및 재무성과와 동시에 사회적 혁신 성과를 도모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일컫는다. 렌딧에 투자한 옐로우독의 제현주 대표는 “렌딧은 탁월한 기술력으로 중간 등급의 신용 수준을 가진, 은행에 접근하지 못하는 대출자들에게 이자를 아껴줬다. 특히 비즈니스의 사회적 임팩트를 가시적으로 수량화해서 보여줬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임팩트 투자 대상”이라고 말했다. 렌딧이 보여준 혁신의 잠재력은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2015년 3월 창업한 이래 렌딧이 유치한 투자금은 총 243억5000만 원으로 국내 P2P 금융기업 중 최대 규모다.

작은 스타트업이 기존 금융회사들이 외면한 중신용 대출자들을 포용하는 혁신을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렌딧은 자금이 필요한 대출자(Peer)와 여유자금이 있는 투자자(Peer)를 연결하는 P2P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자체 개발한 개인신용평가시스템(Credit Score System, CSS)을 통해 제2금융권에서 최고 24%의 고금리 대출을 받았던 대출자에게 연 10%대 중금리로 갈아탐으로써 이자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다른 한편, 중금리 대출채권 투자자들에게는 수수료와 부실률을 제외하고도 세전 평균 7% 안팎의 실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 대출자는 이자 절감을, 투자자는 예금이자 이상의 대체 수익을 누릴 수 있는 온라인 양면 플랫폼을 구축한 것이다.

대출과 투자 서비스는 더 이상 오프라인 금융회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렌딧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2018년 말 기준 누적 대출액 1600억 원을 기록하며 P2P 개인신용대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시장 규모만 따지면 270조 원에 달하는 우리나라 전체 개인신용대출 잔액 중에서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금융회사 라이선스도 없는 스타트업이 대출자와 투자자를 온라인 플랫폼에 자발적으로 모이게 하고, 이들이 상호 윈윈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2015년 태동한 국내 P2P 금융시장은 새로운 대출 시장을 개척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신규 시장의 미비한 규제를 틈타 200여 개 업체가 난립하면서 사건 사고도 발생했다. 부실 대출로 부도나는 회사가 나오는가 하면 일부 업체의 비리까지 적발되면서 투자자 피해가 커지고 업계 전체의 평판이 추락했다. 렌딧은 이 같은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개인신용대출의 절반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지켜나가고 있다. 정부가 나서기 전부터 강력한 자율 규제안을 만들어 스스로 시장의 룰을 구축하고 있다. 김성준 렌딧 대표는 미국 최초의 P2P 금융기업 프로스퍼의 론 수버 회장의 말을 인용해 “대출 수요, 투자 수요, 규제 이 3가지가 P2P 금융이라는 의자를 지탱하는 다리”라며 “어느 한쪽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DBR이 렌딧 창업자인 김성준 대표를 인터뷰하고 혁신적인 금융시장 플랫폼을 구축한 렌딧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규제 따지기보다 문제 해결이 시급했다”
미국에서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중퇴하고 패션 스타트업 ‘스타일세즈(Stylesays)’를 4년째 운영하던 김성준 대표는 2014년 말 사업자금이 필요해 국내 은행에 대출 3000만 원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미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신용등급이 떨어진 탓이었다. 할 수 없이 찾은 저축은행은 1500만 원밖에 대출이 안 되는 데다 이자를 무려 17%나 내라고 했다. 은행에서 빌리면 5% 이하 금리를 받을 수 있는데 제2금융권에서 금리가 무려 20%포인트 이상 뛰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금리의 높은 벽에 실제로 부딪힌 순간이었다. 이튿날 때마침 미국의 P2P 금융기업 렌딩클럽(Lending Club)이 나스닥에 상장했다는 뉴스가 떴다. 김 대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으로 렌딩클럽 웹사이트에 접속해 대출을 신청해봤다. 대출 신청 버튼을 클릭하고 1분이 채 걸렸을까. 렌딩클럽은 3만 달러를 연 7.8%에 대출해주겠다는 결과를 내놨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7.8%가 왜 미국에서는 가능한 걸까?” 지금의 렌딧을 만든 최초의 질문이었다.

김성준 대표는 즉시 자료 조사에 돌입했다. 국내 금융권에 있는 지인들도 P2P 금융을 잘 알지 못했다. P2P 금융은 국내에는 굉장히 생소하지만 영미권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미국의 렌딩클럽과 온데크가 상장한 데 이어 중국의 이렌다이(YRD)도 미국에서 상장할 정도로 시장에서는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비록 중퇴했지만 스탠퍼드대 e메일 주소를 갖고 있던 김 대표는 미국 P2P 회사에서 일하는 스탠퍼드대 출신 동문들에게 e메일을 뿌려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국내 금융시장의 ‘금리 장벽’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솔루션인 P2P 금융이 국내에 도입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성준 대표가 은행 대출에 실패하고 2015년 3월 렌딧을 설립하기까지는 불과 100일이 채 안 걸렸다. 국내에서 P2P 금융이란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였다. 법적 근거도 없어 임시방편으로 대부업체로 등록해야 대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렌딧도 대부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렌딧소셜대부’를 대부업체로 등록했다. 대부업체의 고금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작한 회사지만 대부업체라는 굴레를 쓰고 시작부터 고금리 사채업자라는 세간의 부정적 인식을 무릅써야 했다.

수익성이 어느 정도 될지, 리스크는 뭐가 있는지,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등을 먼저 따졌다면 창업하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규제를 따지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은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었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이미 8년 전에 창업한 렌딩클럽 같은 사례들이 P2P 대출이 급격한 금리 단층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인 솔루션임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의 강점인 빠른 의사결정과 추진력을 십분 발휘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면 렌딧은 업계에서 ‘퍼스트무버’가 갖는 선점 효과를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2014년 말 8퍼센트가 첫 서비스를 출시한 데 이어 테라펀딩, 피플펀드 같은 P2P 업체들이 렌딧과 비슷한 시기에 우후죽순 등장했다.


“우리는 기술 기반 기업” 개인신용대출에만 선택과 집중
P2P 대출 플랫폼의 핵심 경쟁력은 자동화된 대출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에게 개인별로 차등화된 금리를 제공하는 데서 발휘된다. 대출자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대출자에게 다른 금융권보다 유리한 금리를 제공하는 한편 투자자의 손실 리스크는 최소화할 수 있는 CSS 인프라를 완비해야 했다. 렌딧이 법인 설립 전에 가장 공들인 부분도 바로 독자적인 CSS모델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김성준 대표와 스탠퍼드대 대학원 동기로 삼성화재 보험계리 부문에서 일했던 박성용 이사가 창업에 합류해 CSS모델 구축을 전담했다.

렌딧은 개인화된 적정 금리를 제공하기 위해 현재 시점의 금융 정보뿐 아니라 최근 1년간 금융정보의 변화 추이를 반영하는 CSS모델을 설계했다. 같은 신용등급이더라도 카드 한도 소진율 등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등급 책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예컨대 매달 꾸준히 150만 원씩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과 한 달은 50만 원, 다음 달은 300만 원을 쓰는 등 소비 패턴이 들쑥날쑥한 사람을 비교하면 후자의 상환 가능성을 더 예측하기 어렵다. 신용평가사에서 같은 신용등급을 받은 A 씨와 B 씨도 렌딧에서는 서로 다른 금리가 책정되는 이유”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더라도 실효성을 판단하려면 데이터로 검증돼야 한다. 렌딧은 우선 미국 렌딩클럽이 공개해놓은 데이터 샘플로 CSS모델을 테스트하고 결과를 비교했다. 또 전 국민 신용 데이터를 보유한 나이스신용평가를 통해 모델의 변별력을 테스트했다. 가상 데이터로 검증을 마친 후에 본격적으로 실제 고객을 대상으로 테스트에 착수했다.

시장 테스트에 들어가기 전부터 완벽하게 플랫폼의 양면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지는 않았다. 니즈가 완전히 다른 대출자와 투자자 모델을 동시에 테스트하는 것은 무리였다. 2015년 5월 렌딧은 시드 투자금 15억 원을 기반으로 대출 서비스부터 론칭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모델을 만드는 데 시간을 끌기보다 대출 서비스를 통해 핵심 역량인 CSS모델을 우선 테스트한 후 시장 반응을 살펴보며 개선하기로 했다. 일종의 린(Lean)스타트업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CSS모델이 실제로 우량한 중신용자를 걸러내는 데 성공하면 투자자를 모으기도 훨씬 쉬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개개인의 대출 상환이 완료될 때까지 수개월을 넋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렌딧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산투자 포트폴리오 상품을 개발했다. 투자자가 수십에서 수백 개의 채권에 분산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상품을 설계한 것이다. 대출 서비스를 출시한 지 2개월 만인 7월, 투자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분산 투자를 의무화했다.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함으로써 플랫폼 신뢰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투자자가 모일 것으로 기대했다. 김성준 대표는 “내가 10만 원을 투자하면서 5명한테 빌려주지 않고 100명한테 빌려주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줄어드는 분산투자의 효과가 발생한다”며 “투자자의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약 1년반가량 분산 투자를 강제하면서 CSS 시스템을 고도화해나갔다”고 설명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의 기본 원칙을 P2P 대출에 결합해 기대수익을 높일 수 있는 차별화된 상품을 만든 것이다.

렌딧 투자자는 1인당 평균 178개의 채권에 분산투자하고 있다. 분산투자의 실제 효과는 데이터로 입증되고 있다. 렌딧 투자자의 3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많은 채권에, 고르게 분산 투자할수록 원금손실 가능성이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개 이하의 채권에 분산한 경우 원금손실 가능성은 2.8%인 데 반해 200개를 초과하는 경우 원금손실 가능성은 0.1%에 불과했다. 또 분산투자한 채권이 100개를 초과하더라도 1개의 채권에 투자금의 4%를 초과해 몰방 투자한 경우에 원금손실 가능성이 2%인 데 반해 모든 채권에 1% 이하로 고르게 분산투자한 경우 원금손실 가능성은 0%였다.

김성준 대표는 렌딧이 ‘기술 기반’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렌딧이 업계에서 유일하게 개인신용대출에만 집중하는 이유는 P2P 금융이 경쟁력을 발휘하기에 가장 유리한 자산이 신용대출채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P2P 금융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선진 기술로 기존 금융회사의 오프라인 거래를 자동화해 고객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데서 발휘된다. 부동산 담보대출은 거래 규모가 커서 단기간 내 수익을 내기는 유리할지 몰라도 담보물 확인, 각종 서류 작업 같은 오프라인 활동을 완전히 자동화하는 데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렌딧은 이 부문에서는 오랫동안 오프라인 거점 중심으로 영업해온 금융회사들의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개인신용은 상대적으로 데이터 분석을 통한 평가가 정확성이 높은 데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시스템을 정교화하기가 유리했다. 그래서 렌딧은 다른 P2P 업체와 달리 처음부터 부동산 대출을 취급하지 않고 개인신용대출만 고집했다. 기술 고도화와 100%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인별 적정금리를 산출함으로써 급격한 금리 격차를 계단식으로 세분화해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성과 역시 데이터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2016년 렌딧 대출자 중 신용등급 5∼7등급 비중은 32%에 머물렀지만 2017년에는 52.4%로 20.4%포인트나 증가했다. 제2금융권 대신 렌딧을 이용해 이자를 절약하는 중신용자들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렌딧은 꾸준한 기술 개발을 통해 신용대출 과정을 완전히 자동화하는 게 목표다. 김성준 대표는 “신분증 자동인식 기술 등을 개선해 자동화 수준을 높이고 있지만 아직 대출 계약 체결에 필요한 녹취 과정 등은 사람이 개입하고 있다. 모든 과정이 100% 자동화되기까지 고객 경험을 개선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핵심 고객 가치는 ‘투명성’” 정보 공유 확대해 투자자 신뢰 확보
P2P 금융이 비즈니스가 되려면 일단 스타트업의 생소한 플랫폼에 사용자들이 올라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부업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면서 대출자와 투자자 모두의 신뢰를 확보해야 했다. 렌딧은 창업 초기부터 일관되게 경영의 ‘투명성’을 원칙으로 삼았다. 렌딧은 사용자가 궁금해할 만한, 굉장히 다양한 정보를 홈페이지 첫 화면에 공개했다. 세전 수익률뿐 아니라 재투자율, 연도별 대출 잔액, 연체율과 부실률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P2P 금융이 처음인 사람도 렌딧 플랫폼에서 얼마를 대출 혹은 투자하면 이자 혹은 수익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쉽게 확인 가능하다. 김성준 대표는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공시 의무를 부여하기 전부터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공개하자는 원칙을 세웠다”며 “그 덕분에 빠른 속도로 사용자들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대출자가 아낀 이자’는 다른 금융사에는 없는, 렌딧이 강조하는 특별한 지표다. 렌딧 대출자의 절반가량이 제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렌딧 대출로 갚은 대환대출자인데 이들이 대환을 통해 절약한 이자를 계산한 것이다. 렌딧에서 신규 대출을 받은 대출자가 제2금융권이 아닌 렌딧 대출로 절약한 이자도 계산해 공개하고 있다. 대출자는 이 수치를 보고 렌딧을 이용하면 제2금융권보다 유리한 대출을 받을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 투자자는 렌딧 플랫폼을 통해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가계부채 문제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하게 된다는 플랫폼의 순기능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새로운 지표 하나가 대출자와 투자자 모두의 플랫폼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투자자에게 대출자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현재 렌딧의 전체 채권 운용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한 점도 눈에 띈다. 렌딧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분기별 대출자금 운용·관리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연도별로 상환 완료된 채권과 부실 여부에 따라 정상, 연체, 부실로 분류한 채권의 비중을 공개한다. 렌딧 자체 신용등급별 연체와 부실 채권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도 함께 공개해 투자자들이 분산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참고할 수 있다.

최근에는 3년가량 축적한 데이터 분석 자료를 기반으로 실시간 투자 분석 및 시뮬레이션 기능을 개발해 선보였다. 투자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정보는 내 수익률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 얼마나 되는지, 과연 내 투자 선택이 적정한지 여부다. 렌딧은 투자자 본인의 수익률이 렌딧 투자자 전체 수익률 분포 그래프 속에서 어느 지점에 분포돼 있는지를 매일 업데이트해 보여준다. 투자자들은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본인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을 점검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이런 채권에 추가 분산 투자하라고 추천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재투자도 독려한다. 렌딧 투자자의 재투자율은 73%에 달한다. 렌딧은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정보 공개 수준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감으로써 사용자들의 플랫폼 경험을 개선하고 있다.

그렇다면 플랫폼은 어떻게 수익을 낼까. 김성준 대표는 “대출자와 투자자가 서비스 가치를 얻어야 비로소 플랫폼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대출자와 투자자 한쪽 부담이 너무 커지면 플랫폼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기에 양쪽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수수료는 대출자에게 제2금융권보다 낮은 적정 금리, 투자자에게는 은행 이자보다 높은 6∼7%의 기대 수익률을 제공할 수 있는 수준에서 탄력적으로 책정하고 있다. 대출자 혹은 투자자 모두에게 일괄 적용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예컨대, 투자자 수수료는 이자율에 비례 적용하고 투자 원금 대비 평균 1.5% 수준을 유지한다는 큰 원칙만 정해놓고 있다. 김 대표는 “부실과 수수료를 제한 실수익률 지표가 평균 7% 수준을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 수수료도 최대 3.5%지만 심사 결과와 기간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옥석 가려 업계 자정 나서야” 정부 가이드라인보다 강력한 자율 규제
2015년 국내 P2P 시장이 태동하기 시작한 지 4년이 넘었지만 P2P 금융회사의 법적 근거를 명시한 법령은 아직도 부재하다. 국내 법률은 허용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뒤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방식의 포지티브 규제를 채택하고 있다. P2P 금융을 규정하는 법령이 따로 없었기에 렌딧을 포함한 P2P 업체들은 말 그대로 무법지대에서 출발한 거나 다름없었다. 회사들은 임시방편으로 정부의 유권해석을 받아 대부업체로 등록해 비즈니스를 시작했는데 공시 의무나 대출채권 관리 등 통일된 규정이 없어 업체들마다 비즈니스 방식이 제각각이었다.

P2P 금융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대출자와 투자자에게 이전에 없던 새로운 고객 가치와 경험을 제공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15년 말 373억 원에 불과하던 대출 잔액은 2016년 말 6289억 원으로 1년 만에 17배가량 불어났다. 업체 수도 2015년 말 27개에서 1년 만에 125개로 5배나 늘었다. 2 1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모르던 상품이 가장 유망한 투자처로 급부상했다.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업체 간 공통의 룰을 만들 필요성이 커졌고, 2016년 6월 렌딧을 포함한 22개 P2P 업체들이 모여 ‘P2P금융협회’를 공식 출범했다. 비슷한 시기에 금융위원회도 P2P 대출시장에 관한 규제 필요성을 인지하고 TF팀을 구성해 ‘P2P 대출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돌입했고, 2017년 2월 가이드라인 최종안을 내놨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모범 규준에 불과했으며 강제성이 없었다. 대부업체는 인허가 대상이 아닌 지방자치체가 관할하는 등록제로 운영된다. 무늬만 ‘대부업체’인 P2P 회사들은 여전히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규제의 부재 속에서 P2P 시장은 가속 성장의 페달을 멈추지 않았다. 렌딧의 개인신용대출 누적 잔액은 2017년 말 기준 846억 원으로 전년 말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 P2P 시장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진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P2P 업체들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는데다 2017년 금융권에서 강화된 부동산 대출 규제의 풍선 효과로 P2P 부동산 담보대출 수요가 크게 늘었다. 2017년 말에 이르면 P2P 업체 수는 183개, 대출 잔액은 2조34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배나 증가했다. 3 선진국 P2P 시장이 개인신용대출을 중심으로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한국적인 현상이었다.

김성준 대표는 P2P금융협회를 통해 정부 가이드라인 작업에 참여했지만 국회에서 법이 제정되기까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특히 정부 가이드라인 최종안은 대출자산 건전성 규제가 빠져 있다는 심각한 한계가 있었다. 김 대표는 “다른 금융회사와 마찬가지로 P2P 업체도 자금을 조달해 대출하는 여신전문회사이기 때문에 대출자산 건전성 기준을 갖추는 게 업의 본질”이라며 “대출자산 건전성이 유지돼야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이 빠진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출자산 건전성 규제를 포함한 더 강력한 자율규제안이 업계에 필요하다고 판단, 2018년 4월 P2P금융협회를 탈퇴하고 5월 새로운 디지털금융협의회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기존 협회는 너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업체들이 모여 있어 추진력 있게 자율규제를 실행해나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뜻이 같은 업체들이 모여 강력한 자율규제안을 도입해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협의회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김성준 렌딧 대표가 준비위원장을 맡고,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팝펀딩, 8퍼센트 등 3개사가 함께 자율규제안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자율규제안의 핵심은 ▲P2P 금융 대출자산의 신탁화 ▲PF 대출을 포함한 위험자산 대출 취급 제한 ▲투자자 예치금과 대출자 상환금의 완전한 절연 ▲회원 자격 유지를 위한 외부 감사 기준 강화 등으로 정부 가이드라인에도 없는 강도 높은 조치였다.


DBR mini box I
P2P의 본질은 플랫폼 마켓플레이스
“개인 간 거래는 잘못된 번역, 금융회사 투자까지 확대돼야”

P2P 시장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인 P2P 산업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P2P 플랫폼을 통해 중금리 대출시장이 확대되고 있으며 여전히 고금리 문제가 심각한 만큼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미국에서는 P2P 금융이 전체 개인신용대출 시장 800조 원 중 약 4.5%에 해당하는 36조 원을 커버하고 있다.

김성준 대표는 최근 P2P 대신 ‘마켓플레이스금융’이란 새로운 용어를 국내에 소개, 전파하면서 업계의 턴어라운드를 주도하고 있다. 2019년 1월 디지털금융협의회의 이름도 ‘마켓플레이스금융협의회(이하 마플)’로 변경했다. 김 대표는 P2P 금융에 대한 세간의 가장 큰 오해로 ‘개인 간 거래’라는 번역을 꼽았다. 개인 간 거래(Person to Person)는 P2P(Peer to Peer)의 잘못된 번역어다. 김 대표는 “P2P에서 Peer는 개인뿐 아니라 기관투자가, 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될 수 있는데 개인 간 거래로 번역되면서 업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미국, 호주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P2P 대신 ‘마켓플레이스 렌딩(Marketplace Lending)’이라는 용어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P2P 금융이 국내에 처음 도입될 때 편의상 개인 간 거래로 번역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투자자들의 참여가 저해되고 규제의 관심도 투자 한도 제한 같은 개인투자자 보호 쪽으로 쏠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렌딧은 법제화와 더불어 기관투자가들의 P2P 투자 참여가 활발해지면 P2P 시장이 훨씬 더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외 P2P 대출시장에서는 개인보다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비중이 훨씬 높다. 렌딩클럽은 일반 법인과 금융회사의 투자 비율이 전체 대출 중 80%가 넘는다. 영국의 브리티시비즈니스뱅크(British Business Bank)는 영국의 펀딩서클(Funding Circle)에 2013∼2017년 1억 파운드를 소상공인 대출에 투자했다. 김성준 대표는 “금융회사는 자체 보유한 전문 리스크 관리팀이 해당 P2P 업체의 운영 프로세스와 자산 관리 현황을 면밀히 검토한 후 투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개인투자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 장기적으로 P2P 업체도 투자자로 참여해 자기자본대출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P2P 회사는 투자자로 참여할 수 없어 투자금을 모두 모집한 후에야 대출금을 지급할 수 있게 돼 있다. 김성준 대표는 “자기자본대출을 하지 못할 경우 대출자들이 투자금 모집이 되는 기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고금리 대출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며 “P2P 업체들 역시 금융회사이자 투자자로 참여하는 것이 전 세계 마켓플레이스 금융의 일반적인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급격히 늘어난 P2P 부동산 PF 대출의 부실 위험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P2P 금융사의 대출 자산 중 PF 자산 비중을 30%로 제한한다는 내용은 기존 금융회사 관련 법령에 버금가는 강도 높은 자산 규제다. 김 대표는 “조사해보니 현행 P2P 금융산업의 PF 대출자산 취급 비율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직전의 저축은행 대출자산 취급 비율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었다. 부동산 쏠림현상이 경기 불황기 수익성 및 건전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교훈은 이미 저축은행 사태에서 배웠다. 금융위가 2010년 상호저축은행법 감독 규정 개정으로 PF 등 업종별 여신한도를 총여신의 30%로 제한한 것을 참고해 자산 규제 기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라도 자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업계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절박한 문제의식도 강력한 자율규제안을 만드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됐다. 모두가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부동산 PF 전문 P2P 업체인 헤라펀딩이 부동산 대출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부도 처리됐다. 2018년 7월에는 P2P 업체 ‘아나리츠’의 임원 3명이 투자금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같은 해 9월 업계 3위 업체인 ‘루프펀딩’의 대표마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2018년 뒤늦은 금융감독원 실태 조사 결과 20여 개 P2P 업체에서 사기·횡령 혐의가 적발되면서 수만 명의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일부 P2P 업체의 불법 행위가 P2P 업계 전반에 불신의 기운을 퍼뜨렸다.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법제화는커녕 업계 전체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2018년 10월 렌딧은 8퍼센트, 팝펀딩과 함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산하의 디지털금융협의회를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초대 운영위원장은 준비에 앞장섰던 김성준 렌딧 대표가 맡았다. 김성준 대표는 “산업의 성장에 발맞춰 법 개정을 통해 빠르게 규제가 강화됐다면 P2P 산업이 더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규제 강화와 법제화 과정에서 책임감과 대표성을 갖고 산업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P2P 대출과 관련해 정부안과 5개 의원입법안 등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마켓플레이스협의회 4 에는 협회가 마련한 자율규제안의 조건을 충족하는 회사만 회원사로 가입할 수 있다. 협회가 자체 심사 기능을 통해 업체들의 옥석 가리기에 나선 것이다. 2018년 11월 펀다가 심사를 통과해 네 번째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이 밖에도 5개사가 가입신청을 해 심사를 받고 있다. 김성준 대표는 “협회의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위험자산 취급 비율 규제 등을 적용함으로써 P2P 금융 산업을 건전하게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확고한 회사들과 힘을 모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렌딧의 성공 요인 분석
1. 경제학적 거래비용이론 관점에서 본 비즈니스 가치
영문법에서 정관사 ‘the+형용사’는 ‘∼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빅토르 위고의 걸작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문자 그대로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영어로 표현하면 ‘the miserable’이다. 이런 식의 표현 중에 21세기의 레미제라블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른바 ‘은행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영어로 표현하면 ‘the unbanked’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에 계좌를 틀 수 없고 따라서 신용거래, 대출, 이자를 받는 저축 등이 모두 불가능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정상적인 금융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겪는 고통을 상상하기 어렵다. 월급통장이 없어서 급여는 현금으로 받아서 보관해야 한다. 또 신용카드가 없으니 소비도 전부 현금으로 해야 한다. 이자를 받으며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저축은 꿈도 꿀 수 없다. 결국 자산 축적이 불가능한 이들은 불안정한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빈곤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미국에서 이 같은 the unbanked는 2003년 예금보험공사(FDIC,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추산 1000만 가구, 전체 인구의 9%였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증해 2011년 12%에 달했다가 2017년 현재 기준 7%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the unbanked는 흔히 신용불량자로 불리지만 공식 용어로는 채무불이행자라고 지칭되며 15세 이상 인구의 약 5% 정도로 추산된다. 5 대출을 받으려면 최고 연이율 24%를 감당해야 하는 이들은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고위험 고객으로 분류돼서 전형적인 역선택 상황에 해당되는 집단이다. 6 연체 및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기 때문에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높은 대출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역으로 그만큼 높은 이자율을 감당하고도 대출을 받으려는 고객이라면 더더욱 연체 및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은 이들일 것이다. 이런 역선택이 발생하는 시장은 거래 비용이 높은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코즈(Ronald Coase) 7 가 제창했고,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 8 이 정교화한 거래비용이론에 따르면 거래 비용에는 탐색 비용, 정보 비용, 협상 비용, 이행강제 비용 등이 있는데 거래 비용이 높을수록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낮고 시장이 비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플랫폼 비즈니스의 사업 모델은 거래 비용을 줄임으로써 거래를 활성화하고 기존에 사업화하지 못했던 영역에 진출하는 것이다. 첫째, 많은 참가자를 끌어들임으로써 원하는 거래당사자를 찾는 탐색 비용을 줄인다. 둘째, 표준화된 정보를 거래 상대방에게 제공함으로써 정보 비용을 줄인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분석 및 평판 메커니즘 등을 활용해 바람직하지 않은 거래 상대를 만날 가능성을 줄임으로써 협상 비용 및 이행강제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거래 비용을 줄인다. 렌딧도 기술을 이용해 거래 비용을 성공적으로 낮춘 플랫폼 비즈니스의 전형적인 사례다. 렌딧의 최초 3년간 운영 통계를 보면 투자자 1명당 평균 투자금액은 339만 원, 투자자 1명이 투자한 채권 수 평균은 178개로 채권 1개당 2만 원 미만의 소액 분산투자가 행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정보기술과 금융기법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라면 소액의 투자금을 100명이 넘는 대출 희망자에게 분산 대출하는 것은 높은 거래 비용으로 인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산화와 금융기법의 발달로 거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됐고, 김성준 대표는 개인신용대출이야말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업화하기에 적합한 분야임을 꿰뚫어 봤다.

2. 비시장 전략 측면에서 본 렌딧의 자율규제 전략
자율규제란 기업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동 행동을 취하는 행위를 통틀어 일컫는 용어다. 일반적으로 자율규제는 기업의 실정에 더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부에 의한 강제적 규제의 대안적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수많은 기업이 나타나고, 또 사라지는 벤처생태계에서는 자율규제가 또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다. 혁신적인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시장참가자가 존재하게 된다. 그중에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시장의 안정적 성장과 평판 관리를 추구하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장기적인 비전 없이 단기적인 이익만을 노리고 여차하면 시장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소위 ‘먹튀’ 참가자도 분명 존재한다. 시장 참가자 서로가 어떤 타입인지 알 수 없는 혼잡한 상황에서 자율규제는 장기적 비전을 가진 참가자를 먹튀 참가자로부터 구별해 내는 일종의 신호(signal) 기능을 할 수 있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고객에게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의도적이라면 명백한 불법행위이므로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의도치 않더라도 제품의 오작동, 불완전한 이해에 근거한 금융상품 판매 등으로 고객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제조물책임법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으며 금융소비자보호법 또한 논의 중에 있다. 여기서 고객에게 법에서 규정하는 배상책임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법인격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조건이 존재한다. 주주의 유한책임을 인정하는 주식회사 체제에서 소멸한 기업에 배상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에게 배상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큰 동시에 수익성도 높은 사업모델과 소비자에게 배상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낮지만 수익성도 낮은 사업모델 중에 전자를 선호할 유인이 존재한다. 이는 기업이 직면한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따른 수익이 콜옵션 형태를 띠는 데에서 기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 비전을 가진 참가자는 미래에 발생할 배상책임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는 반면 먹튀 참가자는 배상책임이 발생하면 사업을 접고 배상책임을 면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벤처생태계에 먹튀 참가자가 늘어나게 되면 그 생태계가 신뢰를 잃고 몰락할 가능성 또한 당연히 높아진다. 이때 장기적 비전을 가진 벤처와 먹튀 벤처를 구분하는 것은 정보 비대칭성의 문제 때문에 쉽지 않은데 생태계 구성원들이 합의한 자율규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본인이 장기적 비전을 가진 기업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는(signal) 좋은 방법이다. 금융업은 대표적으로 소비자 보호가 중요한 산업이며 렌딧이 대출자산 건전성 규제를 포함한 더 강력한 자율규제안을 도입하기 위해 마켓플레이스금융협의회를 출범한 것은 장기적 비전을 가진 업체들을 모아 P2P 금융업계의 건전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시도라고 평가된다.

3. 롤스의 정의론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
최근 기업이 창조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과거 기업의 사명은 오직 이윤의 추구이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풍부한 자원과 지식을 집적해온 기업에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의 당연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는 방법은 네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9 첫째, 기업이 정부 대신 공공재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공원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해 제공하거나 산업 표준과 같은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둘째, 환경오염과 같은 부정적 외부성을 줄이거나 교육, 숲 조성 등 긍정적 외부성을 가져오는 부문에 투자하는 방식이 있다. 이 두 가지 방식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조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마이클 포터가 주창한 공유가치 창출(CSV) 방식에서 논의되는 사회적 가치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셋째, 칸트적 윤리의 관점에서 자유, 생명, 행복추구권 등 본질적인 기본권을 신장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성별이나 인종에 따른 차별을 없애는 기업의 채용 정책은 이 같은 방식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롤스적 정의론의 관점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권익을 신장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데 장애인들에게 고용 기회를 제공하는 베어.베터.(BEAR.BETTER.)나 저개발국 시민들에게 보다 편리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다폰(Vodafone)의 엠페사(M-Pesa) 프로그램 같은 사례를 들 수 있다. 렌딧은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나은 대출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롤스적 정의론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는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창업 이후 대출자가 아낀 이자 100.2억 원이라는 수치는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보여주는 좋은 지표다.


DBR mini box II:
우리는 오버커뮤니케이션(Over-Communication)을 장려한다!


잘나가는 스타트업의 고민 중 하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창업 초기의 끈끈한 결속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직원이 10여 명에 불과할 때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서로를 잘 알아서 소통하기 쉽지만 수십 명이 되면 대화는커녕 동료가 누구인지 이름조차 기억하기 어렵다. 소통이 단절되고 직원들이 자기 일에만 몰두하면 조직은 성장을 멈추고 분열하기 쉽다.

렌딧 이전에 이미 두 차례나 창업 경험이 있는 김성준 대표는 이런 스타트업의 고질병을 잘 알았다. 렌딧도 2018년 말 구성원이 90여 명으로 불과 1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김 대표는 직원이 늘어나더라도 경력, 직급,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서로의 발전을 촉발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고 있다. 직함 대신 영어 별명으로 수평적 호칭을 쓰는 등 직원들 간 ‘오버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하는 다양한 실험을 펼치고 있다.

2주일에 한 번,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SJ(김성준 대표의 닉네임)를 포함한 전 직원이 모여 한 가지 주제를 정해 심층 토론을 벌이는 ‘올핸즈미팅’이 열린다. 사전에 익명 설문 조사를 실시해 SJ를 포함해 직원들이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질문하는 시간을 갖는다. 업무 관련 내용뿐 아니라 헤어스타일이 바뀐 이유같이 서로 궁금했던 질문과 대답을 자유롭게 주고받는다. ‘칭찬합시다’란 서브 코너에서는 칭찬받은 ‘렌딧맨’이 선물을 추첨하는 이벤트도 열린다. 렌딧은 동료의 이름과 칭찬 사유(“우리 팀을 너무 웃게 해줘요.” “커피를 흘렸는데 치워줬어요.”)를 적어 넣는 우편함을 운영하는데 올핸즈미팅에서 선물 추첨 이벤트를 열어 더 많은 칭찬을 독려하고 있다. 스타벅스 쿠폰, 에어팟뿐 아니라 최근에는 제주도 여행권 당첨자까지 나와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이벤트는 올핸즈미팅을 딱딱한 업무 회의 방식에서 탈피해 서로에 대한 관심과 대화가 촉발되는 자리로 만든다.

‘팀 런치’와 ‘랜덤 커피’는 현업 단위를 벗어나 렌딧맨들이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격주에 한 번씩 5∼6명이 팀을 구성해 점심을 먹고, 한 달에 한 번씩 2명이 만나 커피를 마시는 이벤트인데 매칭이 모두 랜덤으로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최근에는 공용 게시판에 전 세계 주요 도시 이름을 적고 ‘여행 가고 싶은 도시’를 투표해 같은 도시에 투표한 직원들끼리 런치팀을 구성했다. 서로 업무가 다르더라도 관심사나 취향이 비슷한 직원들끼리 만나니 어색함 없이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렌딧은 랜덤 커피를 위해 매달 1만 원이 충전된 스타벅스 카드를 전 직원에게 지원한다. 이 상품권으로 커피를 마시는 렌딧맨들은 매장에서 하나같이 ‘투자는 렌딧’ 고객님으로 불린다. 홍보 효과까지 노린 김성준 대표의 아이디어가 디테일하다.

렌딧 전 직원에게 제공되는 무제한 ‘개인 법카’는 복지 혜택일 뿐 아니라 동료들 간 자유로운 소통을 유도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다. 개인 법카는 점심과 저녁 식사에 한도에 제한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데 별도로 회사에 영수증을 제출하거나 사유를 보고할 필요도 없다. 직원들이 비용 부담 없이 자유롭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소통하라는 의미다. 이 밖에도 아침 간식, 무제한 라면, 300원 음료수 자판기 등은 렌딧맨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렌딧맨은 자기계발을 위한 도서 구입이나 세미나, 콘퍼런스 참가비를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지원받을 수 있다.

렌딧은 공간을 디자인할 때도 소통에 초점을 맞췄다. 일례로 2019년 위워크(wework)로 사무실을 확장 이동했는데 공동 휴게 공간을 층의 한가운데로 배치했다. 직원들이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치고, 중간에 자연스럽게 앉아서 대화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도록 의도한 것이다. 김성준 대표는 “업무 효율성만 따지면 휴게 공간은 층의 입구에 따로 두는 게 더 유리하겠지만 사무 공간 내에서도 직원들 간 편안한 소통을 독려하기 위해 일부러 사무 공간의 가운데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김성준 대표는 “수평적인 조직문화, 자유로우면서도 심도 깊은 토론 문화 속에서 파괴적 혁신,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현실 왜곡(reality distortion)’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렌딧이 실천하는 오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장치들은 조직문화를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필자소개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문정빈 고려대 경영대 교수 jonjmoon@korea.ac.kr
문정빈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에서 경제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교통대를 거쳐 고려대에서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비시장 전략, 글로벌 전략,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이다.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Production and Operations Management』 『Journal of Business Ethics』 『경영학연구』 등 다수의 국내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다
  • 배미정 배미정 |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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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정빈 문정빈 |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교통대를 거쳐 고려대에 재직 중이며 연구 분야는 비시장 전략, 글로벌 전략, ESG와 지속가능 경영 등이다.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경영학 연구』 『전략경영연구』 등 다수의 국내외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전략경영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jonjmoon@kore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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