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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경영

게임하듯 급변 환경서 최적의 전략 찾아
게임 유통 플랫폼 ‘STEAM’의 혁신

이경혁 | 251호 (2018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insert coin’, 즉 동전을 넣고 ‘게임할 기회’를 사는 방식에서 시작한 게임의 결제 방식은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가 인터넷의 보편화와 고속화로 인해 ‘게임 플랫폼 내 에서 계정과 권한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그중에서 독보적 1위 게임 플랫폼인 ‘스팀’은 그 이전까지 CD나 DVD를 구매해서 집 PC에 설치해야 했던 게임을 마치 전자책 구매와 독서처럼 간단한 다운로드와 플랫폼 내에서의 게임 구동을 통해 곧바로 즐길 수 있게 함으로써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었다. 게임 플레이 환경이 온라인 멀티플레이로 변화하고 또 자신의 플레이를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공개하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편리한 스트리밍 환경을 제공하며 ‘완벽한 생태계이자 플랫폼’이 되기 위해 트레이딩 시스템과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공을 들였다. 게임 분야에서의 이러한 성취는 게임 외에도 갈수록 디지털의 비중이 더해가는 여러 콘텐츠 산업 전반이 함께 참고하고 연구해야 할 사례다.

2017년, 오랜 시간 한국에서 ‘국민 게임’으로 군림해왔던 ‘스타크래프트’가 출시 20주년을 맞이해 전격적인 ‘리마스터’를 단행했다. 최신 사양의 컴퓨터에 맞게 고해상도 그래픽으로 게임을 새롭게 그려냈고, 세세한 불편함들을 개선해 돌아온 ‘스타크래프트’에 수많은 중장년 게이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출시에 맞춰 오랜만에 PC방을 방문한 이들은 의외의 복병 앞에 고전해야 했다. PC방 요금 내는 방식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요! 이거 결제 어떻게 하는 거에요?”

카드 결제를 먼저 하고 번호표를 받아 앉는 지금의 방식은 ‘아재’들이 과거에 게임하던 시절과는 다르다. 자리에 앉아 시작 버튼을 누르고, 사용 요금을 후불로 계산하던 과거의 방식에 비해 지금의 선결제 중심 PC방 요금제는 수익성이 고려된 방식이다. 시간 단위 선결제로 이른바 ‘먹튀’의 방지가 가능하고 1시간30분 이용할 유저도 2시간을 결제함으로써 30분의 낙전 수입이 발생한다. 여기에 회원제 할인 혜택을 얹으면서 단골 고객 유도까지도 고려된,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결제방식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출시 시점에서 고전적 PC방 결제 방식과 대비되며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게 해줬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PC방에만 그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게임 콘텐츠의 결제 또한 수많은 결제방식을 도입해 가며 길지 않은 역사 속에 적지 않은 변화들을 만들어 왔다. 이 글에서는 게임 콘텐츠의 소비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현재 게임 유통 플랫폼의 선두주자이자 대명사인 ‘스팀’ 사례를 살펴보면서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전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Insert coin’에서 시작된 게임 결제의 역사
‘Insert Coin’은 오락실을 대표하는 문구다. 동전을 넣으라는 이 문구는 게임 콘텐츠의 결제 방식으로 동전을 넣고 주어진 기회만큼 플레이하는 방식이 얼마나 보편적인가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동전을 넣고 무언가를 플레이하는 것이 비단 디지털 게임만의 결제 양식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미디어학자 에르키 후타모는 산업기계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놀이기계에 주목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주크박스(동전을 넣고 원하는 음악을 재생하는 기계)나 동전을 넣고 간단한 사진을 돌려보는 기계 등이 디지털 게임 이전에도 이미 술집과 살롱 등에서 성업 중이었다는 사실을 후타모는 지적한다. 동전을 넣고 특정한 콘텐츠를 사용하는 행위가 사람들에게 이미 일상적인 오락 행위였다는 것.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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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주크박스 1

초기의 디지털 게임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공장소에서 동전을 넣고 플레이하는 수익모델을 갖고 출시됐다. 초기 상업 게임으로 가장 유명한 ‘퐁’은 동전투입식 결제모델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유명한데, ‘퐁’을 설치한 술집에서 기계가 고장났다고 항의전화가 와 수리를 위해 방문한 직원들이 본 것은 동전상자가 가득 차고 넘쳐 더 이상 동전이 들어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최초로 등장한 디지털 게임이라는 생소한 오락거리를 사람들은 그리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동전함이 터져나갈 정도로 코인을 집어넣으며 새로운 시대의 엔터테인먼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전투입식 게임기는 공공장소에 비치됐고 또 보급됐다. 오락실이라는 전문 공간의 탄생 이전부터 목욕탕, 다방 등 시간 때우기가 필요한 공간에 먼저 이런 기기들이 배치됐고, 이후 본격적인 게임 전문 공간으로 오락실이 등장하면서 동전투입식 게임 플레이가 게임 콘텐츠의 최초 결제방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코인에서 구매로: 기기와 소프트웨어의 구매 시대
공공장소를 중심으로 동전투입 방식의 수익모델로 운영되던 디지털게임은 경제발전과 가정용 텔레비전 수상기의 보급과 함께 80년대 들어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아타리’, ‘닌텐도’ 등으로 대표되는 가정용 게임기의 출시와 흥행이 그것이다. 앞서 공공장소로서의 오락실이나 기타 공간에서의 게임 콘텐츠가 동전 투입을 통해 소비되던 것과 달리, 가정용 게임기 시대에는 기기 자체가 본인의 소유가 되면서 이제 게임 산업의 수익은 기기 판매와 더불어 기기에 사용하게 될 소프트웨어, 일반적으로 ‘롬팩’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콘텐츠 자체의 판매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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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투입 방식의 결제방식에서 콘텐츠의 가치는 플레이 기회에 있었다. 오락실 인기 게임이었던 ‘갤러그’를 생각해보면, 동전 하나에 약 세 대의 전투기를 제공받았다. 세 기가 모두 폭파되면 ‘게임 오버’가 되는 방식 안에서 동전 하나의 가치는 게임에 얼마나 익숙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그러나 가정용 게임기 시대부터는 게임 소프트웨어 자체를 플레이어가 구매해 소유함으로써 게임 팩 하나를 가지고 얼마나 오랫동안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게임의 경제적 가치가 변화했다.

기기 판매와 함께 이뤄진 소프트웨어 판매는 기존의 오락실 기기와는 또다른 수익창구를 게임 제작사에게 열어줬다. 동시에 엄청난 문제가 하나 발생해 제작사를 괴롭혔는데, 바로 불법복제다. 상대적으로 복제가 쉬운 플로피 디스크, CD-ROM등은 물론이고 롬팩 형태로 판매되는 게임들도 불법 복제를 통해 싼 가격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용산, 세운상가 등지에서 전문적으로 소프트웨어 복제가 이뤄지는 상황이었고, 소프트웨어의 정식 유통 채널이 갖춰지기 전부터 성행한 복제 프로그램의 범람은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소프트웨어라는 비물질 콘텐츠의 정상적인 유통관계를 정착시키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복제품이 당연하게 더 싼 값으로 돌아다니는 상황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왜 굳이 비싼 돈 내고 정품을 사지?’ 라는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스팀 시대의 도래: 디지털 콘텐츠는 실물이 아니다
인터넷의 보편화는 게임 콘텐츠 판매방식에 있어 크게 두 가지 변화를 불러왔다. 하나는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 범람의 가속화다. 비단 게임 콘텐츠에만 머무르지 않는 복제품의 범람은 영화, 애니메이션, 심지어 만화책 스캔본 등을 가리지 않고 문화콘텐츠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P2P기반의 자료공유 서비스, 웹하드 등을 통해 게임 소프트웨어는 무료에 가깝게 불법으로 퍼져나갔다. 개발사들도 각종 복사방지장치를 추가했지만, 전문적으로 이들의 복제방지를 풀어내는 해킹팀의 수준도 만만치 않아 완벽한 방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편화가 반드시 불법 소프트웨어의 범람에만 기여한 것은 아니다. 그 반대편의 측면에서 새롭게 나타난 게임 소프트웨어의 결제방식 또한 인터넷 기술에 기반한 것인데, 바로 ‘스팀’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다운로드 플랫폼이다.

2003년 처음 오픈한 밸브사(社)의 온라인 게임 다운로드 플랫폼 서비스 스팀은 온라인에서 손쉽게 게임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온라인 게임 플랫폼이기도 하다. 스팀에서는 2018년 현재 PC게임으로 출시되는 거의 모든 게임이 판매되고 있고, 1억 명이 넘는 게이머들이 이용하고 있다. 사실상 온라인 게임 시장을 독과점하다시피 휘어잡은 플랫폼이다. 블록버스터급 게임부터 인디 게임까지, 출시되는 PC게임의 거의 전부를 전세계 단위에서 소화하고 있다. (그림 3)

곧바로 이해가 안된다면, 전자책 플랫폼을 떠올리면 좀 더 이해가 쉽다. 교보문고 ebook이나 리디북스 등의 전자책 플랫폼에는 동일한 전자책을 팔지만, 다른 앱과 환경에서 구동된다. 리디북스에서 산 전자책은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 리디북스 앱이나 리더기를 통해서만 볼 수 있고, 교보문고 ebook 서점에서 산 전자책은 교보 ebook앱을 통해서 볼 수 있다. 같은 전자책이지만 애초에 어느 플랫폼에서 샀느냐에 따라 어디에서 읽을지도 달라진다. 스팀도 마찬가지다. 다른 게임 유통 플랫폼도 존재하지만, 스팀에서 게임을 사면 스팀 플랫폼 내에서 플레이해야 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혜택과 편의성을 제공하면서 사람들은 스팀을 떠나지 못하게 된다.

스팀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강점은 온라인 다운로드 활성화 이전의 게임 소프트웨어 구매가 가졌던 불편함의 해소에 있었다. CD-ROM이나 DVD 형태로 담긴 게임 패키지를 구매하던 기존 방식은 상점에 직접 방문한 뒤 구입해 집으로 가져와 설치해야 하거나 온라인 몰에서 주문결제 후 배송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소프트웨어는 데이터로 구성된 콘텐츠이므로, 굳이 CD-ROM같은 ‘실물’ 매체가 없어도 다운로드만으로도 작동이 가능하고 충분히 구매금액에 걸맞는 기능을 한다. 다라서 온라인에서 바로 결제하고 즉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고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들에게 무척 큰 장점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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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이 불필요하다는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은 또 다른 면에서도 빛을 발했는데, 대량의 게임들을 손쉽게 보유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박스 패키징을 통해 배포되는 게임들은 20~30개만 보유하더라도 보관 장소가 따로 필요할 정도의 부피가 되며, 혹여 CD-ROM이나 설치를 위해 필요한 시리얼 넘버가 적힌 매뉴얼을 분실하게 되면 게임을 다시 플레이할 수 없다. 특히 DVD나 CD-ROM등의 물리적 매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긁히거나 마모돼 플레이가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었는데, 스팀은 이를 온라인 서비스에 두고 설치 권한을 계정에 무제한으로 부여함으로써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한 번 결제하면 해당 게임을 삭제한 뒤 몇 년 뒤에라도 다시 다운받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은 온라인 시대에 걸맞는 편의성을 구현한 사례로 각광받았다.

이러한 장점에 덧붙여 스팀은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가장 넘기 힘든 장벽으로 여겨졌던 불법 소프트웨어의 범람에도 대항이 가능했다. 유료 서비스 플랫폼으로써 스팀은 제공하는 게임들의 안전하고 정확한 설치를 보장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혹시나 불법 다운로드 프로그램을 써본 사람이라면 경험했을 수 있는데, 이렇게 유통된 불법 프로그램은 애드웨어, 스파이웨어, 바이러스 같은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싸게 혹은 공짜로 게임하려다 컴퓨터 데이터 전체를 ‘날려먹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식 프로그램은 그만한 돈 값을 한다’는 인식이 어느덧 생겨났다. 공식적이고 안전한 다운로드와 플레이를 보장하는 스팀이 ‘정품 소프트웨어의 사용이 단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닌 안전성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다.

손쉬운 결제, 편리하고 안전한 소프트웨어의 보관과 활용을 통해 스팀은 순식간에 PC게임 유통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으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에 자극 받은 주요 게임사들 또한 각자의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온라인 콘텐츠 유통의 새로운 방식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게임사 블리자드는 자체적인 블리자드 스토어를 출시해 자사가 판매하는 게임들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구매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개편했고, 대형 게임유통사인 일렉트로닉 아츠 또한 스팀의 대항마로 키우기 위한 게임플랫폼 ‘오리진’을 출시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등 가정용 콘솔 게임기 분야에서도 온라인 스토어를 오픈하고 직접 결제 후 다운로드해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는 등 스팀으로 시작된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은 이제 인터넷 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유통환경으로 자리잡았다.

스팀의 전략 1: 확장전략의 적절한 선택으로 퍼스트 무버가 됐다
스팀이 처음부터 통합 게임 플랫폼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제작사인 밸브의 이름으로부터 파생된 스팀은 처음에는 자사의 온라인 게임인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온라인 상에서 자동으로 업데이트해주고 각종 설치 지원 등을 편리하게 제공하기 위한 기능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자사 게임의 설치와 플레이를 지원하던 서비스는 그러나 어차피 온라인에서 설치를 지원하는 방식이라면 타 제작사의 게임도 유료결제 후 손쉽게 설치해 주는 것 또한 큰 어려움 없이 제공 가능한 서비스라는 점에 착안했다. 본격 유료 결제 플랫폼으로의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스팀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의 온라인 서비스는 존재했다. 블리자드 사의 ‘배틀넷’ 은 상설 서버를 두고 개인별로 계정을 생성해 ‘디아블로’ 나 ‘스타크래프트’ 등의 온라인 플레이를 지원하고 있었고, 게임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면 접속자들의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갱신해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능이 게임 유료 결제 플랫폼으로도 동일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내고 실행에 옮긴 사례는 스팀이 최초였다.
퍼스트 무버로 스팀이 본격적인 게임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잡으면서 앞서 언급한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자, 뒤늦게 다른 게임사들도 새로운 가능성을 인지하면서 발빠르게 스팀의 전략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팀의 그 첫 한 발자국의 빠른 움직임이 만들어 낸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스팀의 전략 2: 사용자경험을 중심으로 한 지속적 확장
시장 선도자이자 선점자로서 스팀은 게임 유통 플랫폼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유료 결제와 다운로드만을 제공하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았다. 제공되는 모든 게임들의 스크린샷을 손쉽게 촬영할 수 있는 서비스가 추가됐고, 이는 곧 스팀 플랫폼 안에서 플레이하는 게임들의 영상을 자동으로 녹화하고 또 실시간으로 주요 인터넷 방송으로 송출할 수 있는 기능으로까지 확장됐다.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스팀 플랫폼 위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면 게임 이용자간의 채팅과 메시지 주고받기 기능 등을 쓸 수 있게 했다. 또 각 게임들을 구매할 때마다 따라오는 트레이딩 카드 시스템과 게임 업적 통합 관리 시스템 등 다양한 혜택과 부가서비스가 만들어졌다.

기능의 확장은 비단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스팀은 PC라는 하드웨어적 한계도 넘어서려는 시도에도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빅픽처’ 라는 이름의 신규 서비스는 영상 케이블로 PC와 텔레비전을 연결해 보다 큰 화면에서 PC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했다. 각종 게임을 사용자들이 직접 커스터마이즈해 플레이하는 게임 모딩도 스팀 안에서 보다 손쉽게 검색하고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경쟁사들 또한 각자의 플랫폼 확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선두 주자로서 발빠르게 움직이는 스팀의 아성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러한 확장은 철저하게 사용자 경험을 중심에 두고 진행됐기에 스팀의 경쟁 우위는 계속 유지됐다. 스팀은 매우 손쉽게 게임 결제와 설치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성공했다. 그러나 단지 결제와 설치만이 게이머들에게 제공되는 경험의 전부가 아님을 스팀은 잘 알고 있었다. 게임 플레이 환경이 온라인 멀티플레이로 변화하고 또 자신의 플레이를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공개하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편리한 스트리밍 환경을 제공했으며, 단순한 판매 플랫폼이 아닌 게이머들이 모여 게임의 경험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 되기 위해 트레이딩 시스템과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공을 들였다. 빠르고 유연한 행보를 통해 스팀은 퍼스트 무버로 시작한 그들의 혁신을 좀처럼 낡은 것으로 퇴화되도록 두지 않고자 했고, 지금까지도 이러한 전략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으며 순항 중이다.

스팀의 전략 3: 강력하고 적절한 할인정책
이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세 번째 포인트는 바로 스팀의 할인 정책이다. 게임 사용자들에게 이른바 ‘연쇄할인마’ 라는 별명까지 부여 받은 스팀에 대한 사용자들의 선호는 상당 부분 기존 유통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파격적인 가격 정책으로부터도 기인한 바 크다.

스팀의 할인은 정가 대비 50%도 심심찮게 나오는 편이고, 연말 / 블랙프라이데이 등의 시즌성 세일 기간에는 75% 이상의 대규모 할인가격도 대규모로 등장해 이용자들의 지갑을 자극한다. 기존 게임 유통에서는 상상도 어려웠을 이러한 할인폭은 100% 디지털로 제작되고 소비되는 게임 콘텐츠가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면서 가능해졌는데, 실물 물류유통을 타지 않으면서 사실상 유통에 필요한 비용이 0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서버와 회선 유지를 위한 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에 완전히 0이 될 수는 없지만, 실물 유통과 비할 바는 아니다.

단, 디지털 유통에 기반한 할인폭은 적절한 가격정책에 의해 통제된다. 최신작은 가급적 정가를 유지해 신작을 빨리 접하고 싶은 이용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제작사의 수익을 보장하고, 출시 후 시간이 지날수록 해당 게임의 할인폭을 높여 가는 방식을 쓴다. 이를 통해 스팀은 무분별한 할인으로 발생할 수 있는 콘텐츠 가치의 전반적 저하를 방지한다. 유통방식의 변화로부터 가능해진 할인폭을 적절한 정책으로 통제한 결과, 스팀은 강력한 할인을 사용해 전체적인 매출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게임 소비자와 제작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모두 만족케 하는 유통 플랫폼에게는 시장 지배자로서 갖게 되는 게임 플랫폼 전반에 대한 영향력이 주어졌고, 스팀은 이를 꾸준하게 유지해 오며 사실상 현대 디지털게임 유통 부문에서 전세계를 휘어잡는 1위 플랫폼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져 오고 있다.

가장 오래 된 디지털콘텐츠의 미래 유통전략에 주목하라
탄생 순간부터 명백히 실체가 없는 디지털 소프트웨어였던 게임이 온전하게 물리적 제약을 벗어난 유통망에서 소비자를 만나기까지는 거의 5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동전투입, 기기 구매, 소프트웨어 구매와 같은 다양한 발전단계를 거친 끝에 다다른 온라인 유통의 시대에 스팀이 보여준 성과와 가능성은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가 어떻게 새로운 유통에 효과적으로 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줬고, 동시에 비단 게임 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더 늘어날 물리적 한계 너머에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의 유통 전략에 적지 않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사례가 됐다.

실물이 없는 새로운 재화의 유통은 기존과 다른 사고와 전략을 요구한다. 스팀에서 소비자들은 게임을 구매하지만, 그 게임을 온전히 소유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 체제에서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콘텐츠를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팀은 구매한 콘텐츠에 대한 사용 권한만을 계정에 부여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영구임대, 장기 리스의 방식에 더 가까울 스팀 의 게임유통 방식은 그러나 소비자에겐 소유냐 아니냐의 의미로 다가가지 않는다. 온전한 소유 여부보다는 지불한 금액만큼의 게임 가치를 소비자가 온전히 느낀다는 점에서, 그리고 오히려 기존의 ‘소유’ 방식보다 더욱 편리해진 ‘이용’의 측면에 환호한다는 점에서 스팀은 소유냐 아니냐의 의미를 넘어선다. 디지털 콘텐츠라는 새로운 장 안에서 기존의 소유 개념은 무의미한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의 본질을 꿰뚫는 온라인 유통의 개척, 소비자 경험에 집중한 플랫폼 기능의 확장, 그리고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과감한 할인정책을 통한 윈-윈 전략의 정착까지 스팀이 걸어온 지금까지의 행보는 변화한 환경에서 빠르게 최적의 전략을 찾아내고 수행해 낸 훌륭한 사례다. 디지털 콘텐츠 중에서는 어떤 의미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고도 할 수 있는 게임 분야에서의 이러한 성취는 게임 외에도 갈수록 디지털의 비중이 더해가는 여러 콘텐츠산업 전반이 함께 참고하고 연구해야 할 사례일 것이다.


<필자 소개>
이경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등에서 일하다 퇴사한 후 현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게임문화 연구를 전공하고 있는 게임연구자다. 매체로서의 게임이 현대사회와 인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게임화’하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찾고 전파한다.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이라는 교양과목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로 출연 중이다. 저서로는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공저)』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8, 공저)』 등이 있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grolmarsh@gmail.com


<편집자 주>
현대사회에서 게임은 세계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자 많은 사람의 생활 공간이며, 동시에 첨단의 미디어이기도 합니다. 게임이 구성되는 원리, 스토리와 캐릭터에 반영되는 철학과 사람들의 행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또 하나의 게임판에서 생사를 건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경영자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국내 최고 게임컬럼니스트 이경혁 게임연구자가 ‘게임과 경영’을 연재합니다.

  • 이경혁 | 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게임문화 연구, 게임연구자
    현)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게임 관련 패널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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