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 럭셔리 산업의 미래는 소비자 가치 변화를 통해 전망할 수 있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포스트모던 성향의 소비자가 늘어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포스트모던 소비자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환상이 없고, ‘진정성 있는’ 럭셔리를 추구하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추구한다. 또한 금전적인 요소나 야망보다 행복을 더 중시하는 ‘자기개발’적 성향을 띤다. 이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업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럭셔리 브랜드 및 유통 관리에 있어 오프라인 및 아날로그 정서의 힘을 무시해선 안 된다. 로열티가 높은 럭셔리 고객의 상당수가 원하는 방식과 감성이 아직도 오프라인에 남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럭셔리와 4차 산업혁명은 언뜻 보면 결이 맞지 않는다. 전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오랜 전통, 장인정신, 스토리 등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면 후자는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디지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질적인 두 소재는 동시대라는 운명을 타고 접점을 찾고 있다. 럭셔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도 소비자는 변하기에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광고 문구이기도 했던 ‘모든 것은 변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는 명제 역시 다시 한번 고찰해야 할 주제가 됐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2017년 12월6일, ‘동아비즈니스포럼’의 조인트 세션으로 열린 ‘동아럭셔리포럼 2017’은 시대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럭셔리 마케터들의 학습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동아럭셔리포럼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마케팅의 아버지,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 교수와 미래학자인 앤디 하인스 휴스턴대 교수, 페이스북에서 전자상거래, 리테일, 관광,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담당하고 있는 조영준 페이스북코리아 상무가 청중들과 혜안을 나눈 ‘4차 산업혁명 시대, 럭셔리 산업의 도전과 미래’를 지상 중계한다.
소비자 가치 변화, 럭셔리 시장 어떻게 재편시키나- 앤디 하인스 휴스턴대 교수 미시간대가 100개 이상 국가에서 5년마다 진행 중인 소비자 가치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의 태도와 가치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면밀히 지켜본 바 있다. 앞으로는 또 소비자 지형이 어떻게 달라질지와 관련해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럭셔리 산업에서도 이런 소비자 가치 변화는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변화를 알아야 선제적으로 대응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림 1]의 모델을 살펴보자.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 모델의 첫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그리고 생존이 담보된다면 그다음 단계로 소속감, 지위, 주위로부터의 인정 욕구가 충족돼야 할 것이다. 3단계로 생겨나는 욕구가 바로 자아실현이다. 어떻게 하면 최고의 내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단계다.
생존 욕구는 빈곤국가나 빈곤층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사회들에선 전통적 가치를 견지할 확률이 높다. 지위,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경제 신흥국이나 경제 발전의 중간 단계쯤 있는 중진국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런 사회는 ‘모던(modern)’한 가치 체계를 견지한다. 그다음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사회는 주로 부유한 국가에서 발견된다. 이 사회에서의 가치 시스템 근간은 ‘포스트모던(postmodern)’이다.
[그림 2]의 데이터는 국제조사 전문 기관인 월드밸류서베이(World Value Survey, 사회과학자들의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80개국 이상, 전 세계 85%의 인구를 대상으로 각종 조사를 행하는 단체)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전통적인 가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주어진 길을, 규칙을 어기지 않고 잘 지키려는 규범적인 사람들이 많은 사회다.
그다음 단계가 경제, 문화적으로 발전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선 사람들도 다른 가치 시스템을 갖게 된다. ‘열심히 일하면, 내 지위를 바꿀 수 있을까’ ‘현재 위치보다 더 올라가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모던’의 단계다. 그다음이 ‘포스트모던’인데 이 단계에선 부를 많이 축적하고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목격된다. 그래서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포스트모던 사회를 사는 소비자들은 자신의 주변, 지역사회, 환경, 사회에 관심을 갖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사회별로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르기에 각 사회 구성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한국은 포스트모던 국가에 속할 것 같지만 흥미롭게도 아직은 ‘모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여전히 전통적 가치가 혼재돼 있기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한 가치를 구성원들이 전체적으로 띠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월드밸류서베이를 시작한 로널드 앙글하트에게 어떤 기준으로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이동하는지 물어보니 꼭 절대적인 소득 규모 때문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안전하게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답했다.
전통적 가치를 탈피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얼마나 ‘안전’할까가 사회의 발전 단계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즉 안전이 담보돼야 전통사회에서 모던 사회, 포스트모던 사회로 이전할 수 있다.
모던한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 ‘럭셔리’다. 소속감, 지위가 중요한 모던 사회에서 럭셔리는 내 위치, 내가 노력해 성공한 모습 등을 대변해줄 수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다르다. 포스트 모던한 가치 시스템에서는 ‘심플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미 내 삶을 통해 많은 것을 이뤘고, 이것을 굳이 물건을 통해 남에게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사람들의 가치, 즉 소비자 가치가 이전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과정에 있는 것 같다.
포스트모던 소비자의 특성포스트모던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돈도 많이 벌고, 소비도 많이 하는데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진정 나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답을 찾는 것에서부터 럭셔리 산업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던한 사회에서는 기존 제도와 권위에 거부감을 느낀다. 서비스와 상품을 이용할 때 과거에는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면 이제 SNS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현대차에서 나온 새로운 차 타봤어? 어땠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포스트모던한 가치를 갖고 있는 소비자들은 기존의 제도, 권위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들의 두 번째 특징은 과학기술에 대해 환상이 없다는 점이다. 모던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술을 좋아하고, 더 많은 기술을 원했다. 하지만 이보다 성숙한 포스트모던 소비자들은 과연 이런 기술이 나의 삶을 얼마나 개선시킬 것이며 단순하게 만들어줄지 따져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포스트모던 가치에 부합하는 브랜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렌터카 공유기업인 집카(Zipcar)는 자기가 필요할 때만 차량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삶의 단순화를 꾀하면서 포스트모던 가치를 실현한다. 최근 아마존이 인수한 유기농 식품 전문 유통업체 ‘홀푸드’는 진정성을 무기로 내 건강을 지켜준다는 긍정적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앞으로 럭셔리 경영가들은 이런 가치 변화에 맞춰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맞춤식으로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 맞춘 첫 번째 럭셔리 콘셉트는 ‘진정성 있는 럭셔리(Authentic luxury)’다. 럭셔리 경험도 사실 과잉으로 가면 오히려 반감을 얻게 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고, 독특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의 럭셔리한 경험을 포스트모던 시대 소비자들은 점점 원하게 된다. 아직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는 루틴하게 소비자에게 바싹 엎드려 ‘당신의 요구를 모두 맞춰주겠다’는 정신을 견지하는 곳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는 좀 더 진정성 있는 럭셔리가 부상하리라 생각한다. 내 변호사 친구 중 하나는 은퇴 후 갈라파고스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지구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천연자원이 보존된 지역인데 소형 경비행기도 사야 했고, 많이 걷기도 해야 했다. 그런데 내 친구는 이렇게 불편한 점을 기꺼이 감수했다. 실제로는 돈도 많이 들었지만 오염되지 않은, 그리고 ‘과잉’이 없는 곳을 실제 체험해보는 ‘진정성 있는’ 럭셔리 경험을 원했던 것이다.
럭셔리 분야에서는 이처럼 앞으로 인공적이지 않고, 과잉이 없는 ‘담백한’ 제품과 상품 경험 제공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럭셔리 산업에 있어 두 번째 특성은 바로 ‘퍼포먼스(Performance) 럭셔리’다. 포스트모던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럭셔리다. 즉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서비스가 필요한 시대다. 예컨대 누군가 요가에 관심이 있다면 집 밖 요가학원에 가서 단체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요가를 배울 수도 있겠지만 인도의 한 외딴 지역에서 최고의 강사와 함께 트레이닝을 받는 호사도 경험해보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취미에 맞는 특별한 경험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겠다는 소비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내가 스스로 찾기 어려운 서비스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받기를 원한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럭셔리 브랜드도 소비자들에게 ‘파트너’나 ‘코치’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하인처럼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이를 ‘퍼포먼스 럭셔리’라 부른다. 또한 단순히 오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퍼포먼스 럭셔리에 속한다.
그다음, 포스트모던 시대에 바람직한 럭셔리의 특성을 꼽자면 ‘저스트인타임(Just-in-time) 럭셔리’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돈보다 시간을 중시한다. 시간을 통제하길 원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본인이 진정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가 과연 ‘저스트인타임’, 즉 적시에 서비스 상품을 제공해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사실 럭셔리 소비자들이 부족한 것은 돈보다는 시간이다. 따라서 럭셔리 브랜드는 어떻게 하면 제품과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컵케이크 자동판매기(ATM)가 있다. 밤늦게라도 컵케이크를 이 판매기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