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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근면은 다르다

이치억 | 221호 (2017년 3월 Issue 2)

기업에서든, 학교에서든 성실성은 중요한 덕목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성실한 직원을 채용하고 싶은 기업은 없고, 불성실한 학생에게 좋은 학점을 줄 교수도 없다. 단순 비교는 무리이기는 하지만 재주가 뛰어난 인재와 성실한 사람 중 택일해야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성실한 자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세상에 성실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없다. 성공한 사람은 한결같이 그 비결을 ‘성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딴 데 한눈팔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부지런히, 꾸준히,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을 성실하다고 한다. 지각이나 결석 없이 출석을 잘하는 학생, 딴짓 하지 않고 업무에 충실하며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 직장인, 피나는 연습을 거르지 않고 반복하는 운동선수를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성실하다고 말한다. 비록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실’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담기에는 부족하다. 이는 성실이라기보다는 ‘근면’에 가까운 내용이다.

성실(誠實)은 사전적 의미로만 봐도 단순히 부지런함의 의미를 넘어서는 ‘정성스럽고 참됨’이다. 성(誠)은 정성스럽고 순수하고 참되다는 의미이고, 실(實) 역시 알차고 진실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성실은 사실 근면함보다는 충(忠)이나 신(信)의 의미에 더 가깝다.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 충성(忠誠)이라는 말이 나라나 임금에게 종속돼 몸과 마음을 바치는 의미로 왜곡됐지만 거짓 없이 진실되게 내 본마음을 다한다는 것이 충성의 본래 의미이다.

유학(儒學) 고전에서는 성(誠)은 사람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가리킨다. 일례로 <중용(中庸)>에서는 “성(誠)은 하늘의 도(道)이고, 그것을 체득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고 했고 후대의 학자들은 성(誠)을 ‘진실무망(眞實無妄)’이라고 해석했다. 한 치의 거짓됨 없이 진실 그 자체인 것, 그것이 이 우주와 대자연이 운행하는 원리인 것이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작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사실 거짓되고 왜곡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한 포기의 풀도 나름대로의 존재원리를 가지고 나고, 자라고, 죽어가는 것이다. 만일 거짓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는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의 삶은 곧은 것이다. 왜곡되게 살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산 것이 아니라 단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본래적 의미에서 사람이 성실하다는 것은 어떤 것을 가리킬까? 물론 거기에 근면은 당연히 포함된다. 대자연이 쉼 없이 운행되는 것처럼 사람이 부지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밖으로 표출되는 부지런한 모습만으로는 그 성실함을 판단할 수는 없다. 부지런히 일하는 동기, 일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 일을 해나가는 과정, 그 결과의 진실성까지, 이 모든 것이 진실무망한 것이어야만 비로소 그 사람을 성실하다고 할 수 있다. 남을 물리치고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 나의 공을 뽐내기 위해서, 수당을 더 받기 위해서 일을 열심히 하고, 학점을 잘 받고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다는 동기로만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그것은 근면은 될 수 있지만 성실은 될 수 없다. 모든 일에 진실되고 순수한 마음이 담겨야 비로소 성실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곳에나 성실한 사람은 보물과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실한 사람을 얻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성실한 사람은 그들끼리 공명하게 돼 있다. 성실한 사람을 알아보고 그와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방법은 단 하나, 내가 성실해지는 길뿐이다.



이치억 성균관대 초빙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교학상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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