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결정 다시보기

우리 슈퍼히어로들만 등장한다면… 어, 만화 스토리가 게임·영화로 이어지네

201호 (2016년 5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1998년 주가가 1달러까지 곤두박질치며 부도 위기에 몰렸던 마블은 스파이더맨의 성공으로 완벽한 재기에 성공한다. 특히 마블은트랜스 미디어전략을 택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트랜스 미디어 전략은 TV, 영화, 만화, , 게임 등의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해 서로 다른 스토리를 제작하되 서로의 이야기가 연결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아이언맨 3’의 스토리는아이언맨 2’가 아니라 어벤져스로부터 이어진다. 어벤져스를 중심으로 모든 스토리가 이어지지만 각각의 캐릭터와 스토리는 영화, TV, 만화책 등의 미디어 플랫폼을 적절하게 활용해 전달된다. 이전의 스토리를 알지 못한다 해도 영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캐릭터를 이해하면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재미가 배가 되기 때문에 팬들은 어벤져스의 등장인물과 관계된 TV, 만화책 등의 콘텐츠를 나중에라도 찾아보게 된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서 참고할 만한 전략이다. 

 

편집자주

지금은 분명해 보이는 것도 시간을 되돌려 고민하던 때로 돌아가면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시간 차이가 주는 묘미입니다. 흥미로운 기업 사례들을 선정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의사결정을 되짚어봤습니다. 전략적 선택의 순간에 놓였던 기업들의 과거 결정과 현재의 결과를 대비해 시간 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행착오와 배울 점을 분석했습니다. 연재하는 사례들이 전략적 의사결정 연습을 위한 충실한 해설서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 원고는 저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미래의창, 2014)>의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 현황이 덧붙여져 작성됐습니다.

 

‘헬로키티’가 고양이가 아니라고? 2014년 여름, 전 세계의 헬로키티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귀여운 고양이인 줄 알았던 캐릭터가 사람이라니! 논란이 일자 헬로키티 제작사인 일본 캐릭터 업체산리오는 공식 인터뷰를 통해헬로키티는 고양이를 의인화해서 만든 사람 캐릭터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산리오 대변인은헬로키티의 실제 이름은키티 화이트이고, 1974 111일 영국 잉글랜드 남부에서 태어났으며 혈액형은 A형이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한 박물관에서 열린 헬로키티 40주년 기념 전시회를 통해 밝혀진 이 같은 탄생의 비밀 덕분에 헬로키티는 화제몰이에 성공하며 캐릭터로서 생명연장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헬로키티는 40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캐릭터지만 성장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산리오는 영업이익이 3분의 1로 줄어들고 당기순이익은 적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에 봉착했다. 산리오의 행보는 성공하는 캐릭터를 만들기도 어렵고, 히트를 치더라도 지속성을 갖기가 쉽지 않은 캐릭터 산업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듯했다. 그러나 헬로키티는 주저앉지 않았다. 전략을 수정하며 부활의 점프를 시도했다. 다국적 기업이나 유통업체들에 라이선스를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로열티를 거두는 모델인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문구류뿐만 아니라 의류, 가전, 도넛, 보험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롭게 변신한 헬로키티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산리오의 선택은 주효했을까? 경영 성과는 헬로키티가 성공적으로 부활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산리오와 라이선스를 체결한 기업의 수는 3배가량 늘었고, 영업이익도 위기에 빠지기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영업이익률은 25% 수준으로 올라섰다. 성과는 산리오가 직면한 한계도 함께 드러냈다. 여러 지표들이 개선됐지만 2013∼2015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캐릭터를 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헬로키티라는 하나의 캐릭터만으로는 성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시대에 맞게 변하지 못하면 2000년대 중반처럼 언제든 추락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캐릭터 회사로서 산리오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슈퍼 히어로 캐릭터로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는마블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마블은 1939년 설립돼 슈퍼 히어로 코믹스 장르를 개척하면서 ‘DC 코믹스와 함께 미국 만화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회사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토르, 헐크를 포함해 무려 5000여 개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캐릭터 비즈니스를 통해 산전수전 다 겪은 마블도 한때 산리오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캐릭터 부자 마블의 배 아픈 고민

 

2004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년간 최고의 성과를 낸 주식으로 마블을 선정했다. 2002년에 출시한스파이더맨의 대히트가 마블의 성장을 견인했다. 1998년 주가가 1달러까지 곤두박질치며 부도 위기에 몰렸던 마블은 스파이더맨의 성공으로 2003년에 시가총액 20억 달러( 24000억 원), 매출 3억 달러( 3600억 원), 영업이익 17000억 달러( 2040억 원)을 기록했다. 완벽한 재기를 한 셈이다. 주가도 20달러로 급상승했다.

 

성공의 비결은 라이선스에 있었다. 2001∼2004년 동안 마블의 캐릭터들은 8개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장난감, 비디오 게임, 패션, 음식, 파티 아이템 등의 다양한 상품에 라이선스를 제공하게 됐다. 마블의 라이선스 부문은 회사에 큰 수익을 안겨줬다. 라이선스 사업에서 성과가 나타나자 마블의 최고경영자(CEO) 알렌 립슨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알렌 립슨은 마블이 인기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라이선스 비즈니스가 영화 제작이나 제품 생산 등을 위한 대규모 자본 투자 없이도 돈을 긁어 모을 수 있는 훌륭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블의 역할을적합한 라이선스 파트너를 찾는 것으로 한정 지었다.

 

 

물론 마블은 라이선스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었다. 스파이더맨을 통해 소니픽처스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뒀다. 세계적으로 박스오피스를 통해 82000만 달러( 9840억 원), DVD 판매를 통해 700만 달러( 84억 원)를 벌어들였다. 반면 마블은 소니픽처스로부터 라이선스 로열티 2500만 달러( 300억 원)를 받는 데 그쳤다. 후속작인스파이더맨2’의 경우도 비슷했다.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갔지만 마블이 소니픽처스로부터 영화 개봉 전 받은 금액은 1000만 달러( 120억 원)에 그쳤다.

 

자본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은 라이선스 사업의 분명한 장점이었다. 그러나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놓치는 기회 역시 자명했다. 라이선스 중심의 전략을 수정할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블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스파이더맨 이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캐릭터를 띄울 수 있어야 하는데 마블이 그런 역량을 갖췄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마블을 최고의 주식으로 선정했던 <월스트리트저널>도 이 부분에 대해 걱정했다.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블은 라이선스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탈피해야 할까? 자본 투자가 필요하고 리스크가 높은 영화 제작·배급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할까?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기존에 성공한 캐릭터 외에 새로운 캐릭터를 히트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배 아플 안정보다 배고플 위험이 낫다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고민의 종류도 달라진다. 마블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당장 생존이 고민이었지만 사업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자 다른 고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블은 영화 제작·배급 영역으로의 사업 확장을 통해 인기 있는 캐릭터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캐릭터를 육성해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다. 작지만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택할 것인지, 리스크가 있지만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택할 것인지 선택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당면한 두 고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고, 또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에 마블은 시간차를 두고 이슈에 접근했다.

 

우선 2005년 마블은 영화 제작에 투자를 본격화하며 제작·배급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소니픽처스와 20세기폭스 등 다른 회사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이 마블로 하여금 사업 확장을 유도했다. 스파이더맨이 소니픽처스에 돈뭉치를 안겨주고, 엑스맨이 20세기폭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초능력을 보일 때마다 마블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던 것이다. 재주는 마블이 부렸는데 돈은 영화제작사가 버는 것을 구경하는 상황은 마블에 배 아픈 일이었다. 영화제작사들이 큰돈을 버는 모습을 보면서 마블은 자연스레 영화 제작·배급에 뛰어들게 됐다.

 

마블이 자체 제작을 선언하고 처음으로 선보인 영화는 2008년 출시된아이언맨이다. 아이언맨은 58500만 달러( 7020억 원)의 성적을 내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연이어 개봉한 두 번째 작품인크레터블 헐크도 괴력을 발휘하며 흥행가도를 달렸다. 영화 흥행은 자연스레 캐릭터 상품 판매로도 연결됐다. 주머니가 두둑해지자 거칠 것이 없었다.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2010년에는아이언맨2’, 2011년에는토르퍼스트 어벤져: 캡틴아메리카를 개봉했다. 스크린에 등장한 슈퍼 히어로들은 각자의 초능력을 자랑하며 성공적인 흥행 스코어로 마블에 보답했다.

 

 

영화 제작·배급으로의 진출은 수익 극대화와 함께 새로운 캐릭터 육성 차원에서도 당위성을 지닌 것이었다. 덜 알려진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서는 만화뿐만 아니라 영화, 방송 등에 출연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체 제작·배급 기능 없이 신규 캐릭터를 소개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작사나 배급사는 대중적인 인기 캐릭터를 상품화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낯선 캐릭터에 투자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가 스크린에 출연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다른 회사에 의존할 수 없다면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화 제작·배급 사업으로의 진출은 현재의 수익을 극대화하면서 미래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동시에 아우르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뭉쳐야 살고, 흩어져도 산다

 

마블이 자체 제작해 6번째로 선보인 영화가 2012년에 출시된어벤져스. 어벤져스의 개봉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토르, 퍼스트 어벤져: 캡틴아메리카는 모두 어벤져스를 위한 예고편이 된 셈이었다. 그동안 스크린에 이름을 알렸던 슈퍼 히어로 외에도블랙 위도우’ ‘호크 아이를 추가로 등장시켰다. 6명의 어벤져스 주인공들은 지구를 지켜야 하는 특명을 부여받고, 여느 영화에서처럼 갈등과 난관을 겪지만 결국엔 조화롭게 지구를 지켜낸다. 화려한 액션에 넋 놓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정신을 차리게 되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아무리 마블의 캐릭터라고 하지만 어떻게 여러 슈퍼 히어로들이 한 영화에 함께 출연할 수 있는 것일까?’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스토리를 탄생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슈퍼 히어로들의 종합세트 어벤져스가 갖는 전략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마블 유니버스(Marvel Universe)’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마블의 캐릭터들은 각각의 개성이 있고 스토리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세계관 아래에서 활동한다. 각 캐릭터와 스토리들이 별개인 것처럼 보여도 모든 작품들은 배경, 인물, 설정 등을 공유하며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슈퍼 히어로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미국 드라마프렌즈’ ‘섹스 앤드 더 시티등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드라마에서 각 주인공들은 동일한 배경과 설정 속에서 스토리를 펼쳐나간다. 각 회별로 조명을 받는 주인공과 그로 인한 이야기가 다를 수 있어도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엮여 있다. 그래서 특정 시점이나 조건에서 등장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마블 유니버스 아래에서 제작한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등이 제목이 달라 완전히 별개의 영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의 세계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영화의 시리즈라고 보면 된다. ‘마블 코믹스 1, 아이언맨’, ‘마블 코믹스 2, 인크레더블 헐크’, ‘마블 코믹스 6, 어벤져스로 바꿔 생각하면 어벤져스에 슈퍼 히어로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각자의 개성이 강해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슈퍼 히어로들을 굳이 한자리에 모을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언뜻 보기에 무모한 듯한 마블의 도전에는 전략적 의미가 숨어 있다. 어벤져스는 단순히 마블에서 영화의 라인업을 늘리기 위해 제작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 한 편을 개봉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마블이 어벤져스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전략적 목적을 파악하기 위해선 SM엔터테인먼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1995년 설립된 연예 기획사로 원조 아이돌 그룹인 H.O.T를 시작으로 S.E.S, 신화,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EXO 등 시대를 주름잡는 아이돌 스타를 배출했다. 각 아이돌이 개별 콘서트를 열기도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아티스트들이 총집합하는 ‘SM 타운 콘서트도 개최한다. SM 타운 콘서트는 해외에서 더 빛을 발한다. 한류 열풍이 뜨겁다고 해도 국내 콘서트 공연장보다 몇 배나 큰 해외 콘서트 공연장을 가득 채우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합동 콘서트를 열면 관객 동원이 수월해질 수 있다. 인기 그룹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더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SM 타운 콘서트는 관객 동원 차원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단순히 각 그룹 팬들의 합으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 한자리에 모인 팬들의 집합체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역할도 한다. 합동 공연을 보며 관객들은 원래 응원하던 아티스트 외의 그룹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고, 그들의 퍼포먼스에 따라 새롭게 팬이 될 수도 있다. 아이돌 그룹 올스타전은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대규모 팬 집합체에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즉 이런 대규모 공연 자체가 마케팅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어벤져스에서 슈퍼 히어로들을 한데 모은 것도 같은 이유다. 개별 슈퍼 히어로들은 국내에서 500만 명의 관객을 넘지 못했다. 최고 흥행작이었던스파이더맨3’ 459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슈퍼 히어로 장르에서 500만 명은넘지 못할 벽이라는 공감대가 있을 정도였다. 이 벽을 6명의 슈퍼 히어로들이 모여서 깼다. 707만 명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이며 뭉쳐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마케팅 플랫폼으로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냈다. 어벤져스에서 각 슈퍼 히어로들의 매력에 빠진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오면서 슈퍼 히어로들의 차기작에 기대를 갖게 됐다.

 

기대는 흥행으로 이어졌다. 어벤져스 이후아이언맨3’ 90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어벤져스에 힘입어 전작에 비해 2배 이상의 흥행을 올린 것이다. 토르와 캡틴아메리카의 후속작인토르 다크월드’ ‘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져에 대한 관심도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전작에 비해 토르는 2, 캡틴 아메리카는 8배 가까이 관객 수가 증가했으니 어벤져스의 홍보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할 수 있다. 어벤져스를 통해 슈퍼 히어로들은 흩어져도 살 수 있는 자생력을 구축한 셈이다. 자생력을 갖춘 슈퍼 히어로들이 다시 모이자 위력은 더 커졌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1000만 관객의 벽을 넘어서며 슈퍼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런 의미에서 어벤져스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챙기는 영화, 그 이상이다.

 

 

오래된 미래를 새로운 현재로

 

어벤져스의 캐릭터들은 이제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하지만 마블이 언제까지 이들에게 의존할 수는 없다. 어벤져스에 등장했던 각 캐릭터가 아무리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속편이 세 편 이상 나오면 흥행의 탄성을 잃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블은 어벤져스의 성공에 심취해 있기보다 영화를 통해 얻은 자금, 인기, 자신감을 바탕으로 덜 알려진 캐릭터를 띄워야 했다.

 

마블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제작하며 주인공 구성에 변화를 줬다. 기존의 잘 알려진 슈퍼 히어로 외에 덜 알려진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것이다. 어벤져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캐릭터들은 어벤져스의 팬층에 노출되며 이름을 알렸고, 다음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마블은 또앤트맨’ ‘데드풀등 기존 캐릭터들의 속편이 아니라 새로운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작품도 내놨다. 특히 앤트맨은 어벤져스 출시 전에 제작 발표를 한 영화로 이는 마블이 새로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미리 기획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블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캐릭터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디즈니의 역할도 있었다. 2009년 디즈니는 주식 한 주당 29%의 프리미엄을 붙일 정도로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마블을 전격 인수했다. 디즈니 입장에서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을 통해 기존의 디즈니가 흡수하지 못했던 젊은 남성팬 층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마블 입장에서도 전략적으로 도움이 되는 거래였다. TV 채널, 테마파크 등 다방면으로 고객 접점을 확대하며 성장한 디즈니의 노하우와 인프라에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를 등에 업고 있는 마블의 다음 행보는 예상 가능하다. 인기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어가고, 기존 캐릭터가 식상해질 것을 대비해 새로운 캐릭터를 육성하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벤져스 같은 올스타전 시리즈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주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올스타전도 재미가 없거나 개연성이 없으면 파괴력을 갖기 어렵다. 그렇게 때문에 올스타전 역시 새로운 기획과 스토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외계인 침공과 같은 뻔한 스토리 말고도 슈퍼 히어로들을 집합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마블은 지구방위대라는 전형적인 설정에서 벗어날 만큼의 상상력을 갖고 있다. ‘시빌워(Civil War)’라는 만화를 통해 더 많은 슈퍼 히어로들을 하나의 이야기 안에 담아냈다. 시빌워는 외계인과의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초인등록법안을 놓고 아이언맨을 중심으로 한 찬성파와 캡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시빌워는 슈퍼 히어로들 간의 대결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에 사회적 이슈까지 풀어낸 명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마블은 어벤져스의 세 번째 속편을 영화로 제작하는 데 앞서캡틴아메리카: 시빌워를 다음 올스타전 시리즈 카드로 꺼내들었다. 이 영화는 캡틴아메리카의 속편으로 포장돼 있지만 초인등록법안 찬반을 놓고 여러 슈퍼 히어로들이 스크린에 가득 등장하는 올스타전에 더 가깝다. 계속되는 외계 침공 스토리에 관객들이 지루해하기 전에 변화를 준 것이다.

 

독과점 이슈 때문에 DC코믹스를 인수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DC코믹스와의 제휴를 통해 DC코믹스 소속의 슈퍼 히어로들과 대결하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미 어벤져스의 성공에 자극받은 DC코믹스는 소속 캐릭터들의 올스타전인저스티스 리그의 영화 제작에 나섰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을 그린 저스티스 리그는 등장 캐릭터들만으로도 흥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란 예측이 주를 이룬다. 이 두 캐릭터 회사가 손잡고 함께 고민한다면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슈퍼맨, 배트맨 등 두 영웅 집단의 한판 승부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홍익인간을 꿈꾸는 슈퍼 히어로

 

슈퍼 히어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 후반이다. 당시 슈퍼 히어로들의 존재 이유는 외계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외계인에 대한 콘셉트가 1953우주전쟁이라는 영화에서 구체화된 것을 감안하면 슈퍼 히어로들의 등장은 외계인과는 거리가 멀다. 무질서와 혼돈으로부터 인간을 구하고자 한 것이 슈퍼 히어로의 탄생 배경이다. 1930년대 미국은 사회 안전망이 취약했다. 정부와 경찰이 시민을 온전히 지켜줄 수 없었다. 마피아 등의 조직으로 인해 불의가 만연하던 암흑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시민들은 불의에 맞서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슈퍼 히어로들을 통해 울분을 해소했던 것이다.

 

그래서 슈퍼 히어로들은 인간과 다른 능력을 가졌지만 신의 모습이 아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슈퍼 히어로들이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이 꿈꾸는 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기 때문에 팬들은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다. 슈퍼 히어로들이 70년 넘게 장수하는 것을 보면 시대가 바뀌었어도 불의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 여전히 사회는 정의를 필요로 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의 상상력이 확장되면서 슈퍼 히어로들의 존재 이유가 외계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역할로까지 늘어났을 뿐이다.

 

 

이 시대에도 휴머니즘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돈이 중심이 되고, 돈으로 인해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고 정의가 바탕이 되는 그런 사회를 갈구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면서 인간이 중심이 됐다면 지금은 사람의 모습을 한 슈퍼 히어로들에게 기대며 인간성을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블이 인기 캐릭터로 다양한 스토리를 개발하고, 신규 캐릭터를 히트시켜 지속적인 성장을 하길 바라는 이유다. 슈퍼 히어로들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한 마블의 손익계산서 또한 주주들을 널리 이롭게 할 것이다.

 

다시 보기: 마블 유니버스에 기반한 ‘트랜스미디어(Transmedia) 전략

 

마블의 사례는 산리오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속해 있는 다른 기업들에도 유용한 팁을 제공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양한 채널과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트랜스미디어전략이다.

 

트랜스미디어 전략이란 MIT의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교수가 <컨버전스 컬처(Convergence Culture)>라는 책에서 언급한 개념이다. 이 전략은 하나의 공통된 세계관을 만들고 그 세계관 속에서 캐릭터 등의 지적재산(Intellectual Property)을 바탕으로 한다. TV, 영화, 만화, , 게임 등의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해 서로 다른 스토리를 제작하되 서로의 이야기가 연결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스토리를 복수의 플랫폼을 통해 전달하는 원소스멀티유즈(OSMU·One Source Multi Use)보다 진일보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매트릭스, 해리포터, 스타워즈, 어벤져스 등이 트랜스미디어 전략의 대표적 사례다.

 

마블의 작품을 분석해보면 트랜스미디어 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이언맨 3’의 스토리는아이언맨 2’가 아니라 어벤져스로부터 이어진다.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블랙 위도우나 호크 아이의 이야기는 영화가 아닌 만화책의 내용과 연결된다. 어벤져스 작전을 주도하는에이전트 오브 쉴드에 대한 스토리는 미국 ABC에서 드라마로 볼 수 있다. 어벤져스를 중심으로 모든 스토리가 이어지지만 각각의 캐릭터와 스토리는 영화, TV, 만화책 등의 미디어 플랫폼을 적절하게 활용해 전달하는 것이다.

 

설령 등장인물 중 일부를 모른다고 해도, 혹은 이전의 스토리를 알지 못한다 해도 영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캐릭터를 이해하면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재미가 배가 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특히 팬들은 어벤져스의 등장인물과 관계된 TV, 만화책 등의 콘텐츠를 나중에라도 찾아보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스토리는 확장되고 콘텐츠를 전달하는 미디어 플랫폼도 다양해진다.

 

정리하자면 트랜스미디어 전략을 통해 전편과 속편 사이의 스토리를 만화책이나 TV 드라마, 게임 등으로 전개하며 콘텐츠의 라이프사이클을 연장시키고 스토리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OSMU 전략이 단기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트랜스미디어 전략은 단기적 수익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트랜스미디어 전략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생명 연장의 꿈을 도와주는 반가운 전략이다.

 

 

이동진 트래블 코드 대표 zerotohero@naver.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Oliver Wyman CJ E&M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여행의 가치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여행사트래블 코드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