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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로 보는 경영

한때 유행? 그래도 무시하면 죽는다

하정민 | 154호 (2014년 6월 Issue 1)

“트위터, 블로그, 온라인, 조이 반스는 유행이고 패션일 뿐이야. 이 따위 시시껄렁한 것들 때문에 일주일에 80시간씩 일하는 게 아니라고!” (미드하우스 오브 카드중 톰 해머슈밋의 대사)

 

인간의 추악함과 정치의 천박함을 소름 끼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 전 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킨 드라마하우스 오브 카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중국 권력 서열 6위인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등 세계 정계의 유력 인사가 즐겨 본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이 작품에는 미디어 산업 재편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도 등장한다.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의 내연녀인 조이 반스는 <워싱턴포스트>를 암시하는 <워싱턴헤럴드>의 젊고 야심만만한 기자다.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인 언더우드가 흘려준 정보로 연일 대형 특종을 터뜨리며 스타가 된 반스는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편집국장 톰 해머슈밋과 연일 부딪힌다.

 

반스와 설전을 벌이다 화를 이기지 못한 해머슈밋은 그에게창녀(cunt)’라는 비속어를 사용하고 만다. 반스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즉각 이 장면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다. 이 여파로 둘의 충돌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결국 사주가 해머슈밋을 호출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사주가 반스의 편을 들자 화가 난 해머슈밋은 사주에게아직 진지하고 무거운 뉴스를 원하는 독자들이 많다. 나를 믿어 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사주는 그를 해고한다.

 

이 사건 후 조이 반스도 회사를 떠난다. 그가 새로 취직한 곳은 <허핑턴포스트>를 암시하는 온라인 매체 <슬러그라인>. 젊은 여사주는 반스에게나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을 필요 없어. 너 스스로 좋은 뉴스라고 생각하면 바로 올려라고 말한다. 해머슈밋이 중년 백인 남성, <슬러그라인>의 사주는 젊은 흑인 여성이라는 점도 대조적이다.

 

미국 유력지의 편집국장으로 절대 권력을 휘두르다 신출내기 기자와의 대립으로 쫓겨난 해머슈밋의 일화는 많은 기업과 최고경영자(CEO)에게 교훈을 준다. 인쇄 매체의 쇠락 속에서 언론과 언론인의 사명을 지킨다고 자부하던 그에게 특종 좀 했다고 TV 출연, 소셜미디어 등으로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반스 같은 기자는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해버리고 싶은 대상일지도 모른다. 전통 저널리즘 관점에서 <허핑턴포스트>에 올라오는 가십성 기사가 하찮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스크에게 기사를 넘기면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전통 매체 기자와 달리 <허핑턴포스트> 기자들은 5분마다 한 번씩 제목과 리드를 바꾸고 밤새도록 각종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기사를 부지런히 퍼 나른다. 한때의 유행이라고 하기에 소셜미디어의 파워는 너무 커졌다. ‘진지하고 무거운 뉴스를 원하는 독자보다재미있고 가벼운 뉴스를 원하는 독자가 훨씬 더 많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중세 시대를 주름잡았던 기사 집단이 결정적으로 몰락한 계기는 백년전쟁(1337∼1453)이다. 중무장한 갑옷을 입고 말을 타던 기사들이 주력이었던 프랑스군과 달리 영국군의 핵심은 장궁(長弓) 보병 부대였다. 멀리서 우박처럼 쏟아지는 화살 앞에 중무장한 기사들은무거운 고철을 입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프랑스군은 무거운 갑옷을 벗을 생각은 하지 않고 화살이 뚫지 못하게 한답시고 갑옷을 더 무겁게 만드는 실수를 범했다. 쏟아지는 화살에 놀라 말에서 떨어진 프랑스군에게 40㎏에 육박한 갑옷은 걸어서 도망치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족쇄였다.

 

코닥, 노키아, 소니굳이 백년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현실에 안주하다 쇠퇴한 기업의 예는 많다. 급변하는 환경은 미디어 산업의 사례처럼 많은 갈등과 충돌을 유발하지만 변화에 적응하는 일부 조직에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국정책대학원(KDI)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2005∼2007년 여기자 최초로 뉴욕특파원을 지냈다. 저서로 스포츠와 기업 경영의 공통점을 분석한 <건곤일척: 모든 것을 걸어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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