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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전략

“꼴찌해서 죄송” LG의 진심, 야구팬을 녹이다

박애리 | 136호 (2013년 9월 Issue 1)

 

 

최근 기업들은 소비자와의감성적 유대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합리성에 호소하던 기존 관행을 넘어 고객의 영혼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통합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특히진정성(authenticity)’이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버즈워드(buzzword)로 떠오르고 있다. 상품을 파는 것이 기본 목적인 기업에 광고는 가장 대표적인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창구다. 광고에서도 당연히 진정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어떤 광고는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반면 같은 활동, 같은 얘기를 해도 어떤 광고는 그렇지 못하다. 이 차이는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기업이 진정성을 인정받는 방법은 무엇일까?

 

진정성, 새로운 구매기준이 되다

 

로서 리브스(Rosser Reeves)가 마케팅 어휘사전에 USP(Unique Selling Point)를 추가한 이래 차별화 전략(differentiation strategy)은 성공적인 마케팅과 세일즈를 위한 비법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기술이 진보하고 빠른 정보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가격 경쟁력이나 상품의 질 혹은 서비스의 차별화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최고의 제품, 남다른 브랜드를 외치던 마케터들은 브랜드 전략의 대안을 찾아 헤매게 됐고 많은 이들이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 쪽으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비자와 브랜드 간 정서적 유대감 형성을 위한 방법론이 모색됐고 유대감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진정성에 이목이 집중됐다. 오늘날 기업들은 ‘different’를 넘어 ‘authentic’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진정성이라는, 영적 가치를 추구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CRM의 대가 폴 그린버그(Paul Greenberg)는 향후 비즈니스 모델이 진정성과 투명성으로 규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성과 투명성이 단지 기업이 추구해야 할 모범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비즈니스 감각(Business Sense)’이라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이 시대 커뮤니케이션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고 이 혁명은 기업은 물론 정부와 공공기관 등 모든 조직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인터넷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혁명이다. 사람들은 찰나의 순간에 무한량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친구나 동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 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조직과 프로세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어떤 조직보다도 기업이 이 같은 변화의 정중앙에 서 있다. 그린버그는 21세기에 기업을 차별화시키는 방법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의 가시성이며 무엇보다도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인 소비자와의 진정성 있는 관계라고 주장한다. 결국 기업이 간절히 바라는 차별화의 핵심은 소비자와의 진정성 있는 관계이며 커뮤니케이션인 셈이다.

 

비즈니스에서 진정성과 투명성을 실현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자신이 구매하는 브랜드 혹은 그것을 만든 기업이 진정성을 갖고 있기를 원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진실하지 않은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는 없다. 심지어 하버드대의 제임스 H. 길모어(James H. Gilmore) B. J. 파인(Pine) 교수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상품의 가용성이나 가격, 질이 아니라 상품 혹은 기업의 진정성을 구매 기준으로 삼는다고 지적하면서진정성 있는 제품이나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은 쇼핑하며 느끼는 죄의식까지도 상쇄한다고 말한다. 또한 기업이 경쟁사를 멀리 따돌리려면 기술 우위를 내세우며 쫓고 쫓기는 게임에 머무르는 대신 브랜드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일에 매우 심도 있게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진정성은 영속가능성에 대한 기준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는 사람에게 두 가지 자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 느끼는 내적 자아와 남들에게 보이는 외적 자아가 그것이다. 개인에게 진정성이란 이 두 가지 자아가 괴리 없이 진솔하게 일치하는 상태다. 기업의 진정성에도 이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업 차원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진정성을 규정할 수 있는데 기업의 경제적 산출물 자체의 진정성과 이를 소비자에게 표현하는 기업 활동의 진정성이 그것이다. 기업 산출물의 진정성은 기업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충실한가라는 자기 지향적 관점이며, 기업 활동의 진정성은 기업이 스스로를 어떻게 소비자에게 표현하느냐에 해당하는 타자 지향적 관점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이 일치할 때, 즉 실체와 표현이 일치할 때, 비로소 기업은 소비자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을 일치하게 만드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둘 중 하나만 실천할 때가 많다. 가장 불행한 것은 자기 진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광고 등을 통해 진정성을 표현하려고 할 때다. 소비자가 이 기업 혹은 상품을 경험한 후 기대했던 가치가 충족되지 않으면 이 기업 혹은 상품에별로다가 아닌거짓이다라는 평가를 내린다. 인식과 다른 실제를 접했을 때 소비자가 느끼는 실망의 강도는 진정성을 얘기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크다. 기업에진정성의 소구는 해당 비즈니스를 지속하기에 적합하다고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소통과 검증의 과정인 것이다.

 

사례를 통해 진정성을 확보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알아보자.

 

 

표현이 실체와 같지 않으면 진정성을 얻지 못한다. 2006년 말, 짐과 로라라는 중산층 부부가 캠핑카를 빌려서 미국 전역의 월마트(Walmart) 매장을 방문해 그곳에서의 경험을 ‘Wal-Marting Across America’라는 블로그에 연재했다. 블로그에 실린 짐과 로라의 월마트 방문 경험담은 매장 직원들과 소비자들이 입을 모아 월마트를 칭찬하는 말로 가득했다. 네티즌 사이에서 이들의 얘기에 대한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심지어 <비즈니스위크> <워싱턴포스트> 등 미디어들도 이 공방에 가세했다. 결국 이 사건은 짐과 로라의 발상에서 시작하고 세계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가 협찬하면서 만들어진 사기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로 언론에 오르내리며 회사 이미지가 추락한 월마트가 두 사람의 불순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캠핑카를 비롯한 여행 경비 전체를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월마트는 사례비까지 지불해가며 거짓으로 reality blog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후 블로그가 폐쇄됐지만 분개한 소비자들의 성토로 월마트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내려앉았고 가짜를 지어내는 진정성 없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오랜 기간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다.

 

 

소통을 닫으면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 또 다른 사례를 알아보자. 세계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네슬레에 팜유를 공급하는 회사가 인도네시아의 원시림을 파괴해서 지역 주민의 삶을 해치고 오랑우탄이 서식지를 잃어 죽어가고 있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여러 매체에 게재했다. 그린피스는 오랑우탄 분장을 하고 영국 네슬레 본사 앞에서 시위도 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았다. 네슬레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곧이어 그린피스는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고 동영상은 SNS를 타고 빠르게 퍼졌다. 네슬레는 공식적으로 아무 대응을 하지 않고 다만 해당 동영상을 삭제했다. 사람들의 반감에 불이 붙었다. 네슬레 페이스북에는 네슬레를 비난하는 소비자 댓글이 수천 개 넘게 달렸다. 파장이 확산되자 네슬레는 법원에서 가처분 명령을 받아 관련 동영상을 삭제하고 자사 페이스북에 올라온 부정적인 포스팅과 댓글을 모두 지워버렸다. 영국 <가디언(Guardian)> 등 주요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하며 핫이슈로 부상했다. 네슬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증폭됐다. 결국 네슬레는 팜유 공급사를 바꿨지만 소비자에게 귀 기울일 줄 모르는, 진정성이 부족한 기업이라는 오명을 얻어야 했다. 수많은 안티 팬과 브랜드 이미지 추락, 매출액 감소라는 정성적, 정량적 손실도 함께였다.

 

소통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사례도 있다. 2008 LG트윈스가 그해 시즌을 마치고 신문에 사과 광고를 게재했다. 시즌에서는 패배했지만 응원에 감사하며 내년에는 더 열심히 뛰겠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1등이성원에 감사한다며 성과를 과시하는 유형의 광고는 많았지만 스포츠구단이 부진한 성적에 죄송하다며 광고한 적은 없었다. 제품 하자에 대한 리콜 공고에도 리콜 사실과 형식적인 사과 문구가 전부인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유구무언이라는 말만 남기고 인터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에 실망했던 사람들은 LG트윈스가 신문 전면에 내보낸 사과 광고를 보고 충격과 치유를 경험했다. 열성적으로 응원하던 팬들을 실망시켜 죄송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에 사람들은 1등의 감사 광고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고 팬심은 더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LG트윈스의 성적이 아닌 진심에 갈채를 보냈다.

 

진심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소통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진심이 담긴 소통은 브랜드를 드러나게 하고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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