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제약 산업은 재무적 성과와 가치 창출 면에서 리더 자리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최근 주식시장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런 과거 역사를 지속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제약 산업의 건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실제 2000년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제약업계 상위 15개 기업의 주주가치는 대략 8500억 달러가 증발했고 주가 수익 비율은 평균 32배에서 13배로 하락했다.
(제약업계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상실한 원인에 대한 일반적 설명은 △가격에 대한 압력 △규제 요건 △각종 법률 소송 △복제약(generics)의 시장 잠식 △R&D 생산성 감소 등과 같이 잘 알려진 트렌드가 만들어낸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때문이라는 것이다. 퍼펙트 스톰으로 인해 제약업계의 비용은 엄청나게 높아졌고, 수입과 이익은 감소했다. 나는 이런 모든 트렌드가 제약업계의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골치 아픈 문제라는 점에 확실히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업계의 침체를 불러온 핵심 원인은 R&D 생산성 감소라고 생각한다.
일부 비평가는 소위 말하는 거대 제약회사(Big Pharma)가 R&D엔진을 고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들은 바이오테크 분야에서처럼 민첩한 신생 기업들이 육중한 공룡 같은 거대 기업들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이런 예상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규모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대형 제약회사는 글로벌 임상 개발 및 중요 기술 기반 획득에 필요한 ‘임계 규모(critical mass)’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 제약회사를 소형 회사로 쪼개는 것이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R&D부서를 해당 분야의 리더가 이끄는 작은 전문 그룹으로 재편해 과학자들에게 실권을 돌려주는 것이 해결책이다. 기업 내부나 외부에 있는 최고 기술을 찾는 것도 해결책이다. 단절된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최고를 향한 열정과 결과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는 강력한 혁신 문화를 조장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초 연구 분야에서 ‘임계 규모’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뇌 크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현대 R&D의 기본 철학은 대형화에서 소형화로 변하고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에서 우리는 2000년 이후 R&D부서의 리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이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런 노력을 막 시작할 당시 마지막 개발 단계에 있던 상품은 2개에 불과했다. 과거 10년간 R&D에 많은 지출을 했으나 업계에서 가장 적은 수준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리서치 업체인 코헨(Cohen)에 따르면 오늘날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34개 약품과 백신이 개발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이는 업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또 ‘CMR 인터내셔널’(유명 제약R&D 벤치마킹 회사)은 8개 거대 제약회사를 핵심 R&D 지표에 따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이제 우리의 생산성은 경쟁 기업 평균치보다 두세 배는 더 높다.
지난 8년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만이 실행에 옮긴 대책들은 이미 그 가치를 증명했다. 가장 중요한 정책은 과거 매머드 R&D 조직을 질병 계통에 따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작은 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다른 변화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미 개발된 약품들에서 최고의 약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을 활용, 혁신적 치료법을 찾으려고 노력한 점은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이다.
본 논문은 제약업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얻은 교훈이 전체는 아니더라도 상당수는 단순한 점진적 개선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혁신적 발견을 이루며 장기적 생존이 좌우되는 다른 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개발된 약품 종류에서 최고의 약을 개발하는 데 쓰인 방법을 통해 혁신적 치료법을 찾으려한 노력이 가장 두드러진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