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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By Map(4)

경영, 정치에서 배워라

송규봉 | 119호 (2012년 12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거나 혁신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는 ‘Management by Map’ 코너를 연재합니다. 지도 위의 거리든, 매장 내의 진열대든,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든 공간을 시각화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정보가 보입니다. 지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20년 만이다. 한국과 미국이 동시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 말이다. 미국은 이미 다음 대통령을 정했고 한국은 정해가는 중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신문 정치면의 기사가 넘쳐 경제면이 줄어들 정도란다. 미국 대선이 끝나자<타임>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오바마의 재선비결로마이크로타깃팅을 꼽았다. 궁금하다. 기업경영에서나 쓰일 법한마이크로타깃팅(microtargeting)’이 정치 분야 그것도 선거전략에 전면적으로 활용됐기 때문이었다.

 

어느 경영학자에게 오바마 선거캠프의마이크로타깃팅에 대해 물었다. 미국 선거에서 상식이 된 지 오래라고 한다. ‘한국에서 오바마 선거캠프만큼이라도 소비자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기업은 정말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로부터 경영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제안은 낯설다. 정치로부터 경영적 메시지와 성공사례를 찾아 현장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1

199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발언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행정은 3, 정치는 4, 기업경영은 2류의 나라로 보면 된다.” 이 회장은 세계화, 규제완화, 국가비전, 직접 정치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한 답변까지 상당히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했다.2 그러나 앞뒤는 사라지고 ‘2·3·4라는 자극적인 표현만 알려지면서 국내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집권 여당의 중진 정치인은그 발언을 한 사람이야말로 5라고 응수했다.

 

1995년 한국의 재계와 정계가 설전을 벌이고 있을 때 미국 텍사스에서는 특별한 미팅이 진행되고 있었다.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된 조지 W 부시(George W. Bush)와 전략담당 칼로브(Karl Rove)가 미국지도를 펴놓고 마주 앉았다. 텍사스 주지사 재선 후 대권에 도전할 전략을 논의한다. 칼로브는 조지 부시에게만 1994·1998년 주지사 선거와 2000·2004년 대선 등 4차례의 선거 승리를 안겨주었다.

 

 

 

부시와 오마바의 전략지도

 

조지 W 부시의 책사 칼로브는 20년 동안 회사를 운영한 경영자 출신이다. 정치전략가가 운영한 회사는 무슨 일을 했을까? 미리 선별한 타깃 주소지에 홍보용 우편물을 보내는 일이다. 바로 DM(Direct Mail) 전문회사다. 1981년에칼로브컴퍼니를 창업해서 1999년 부시 선거캠프의 상근직책을 맡을 때까지 20년 가까이 직접 경영했다. 이 기간 동안 칼로브는 많은 선거에 참여했는데 41개 주에서 벌어진 다양한 선거에서 34번 승리하는 놀라운 승률을 자랑한다3

 

 

미국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칼로브가 조지 W 부시에게 보여준 지도는 무엇이었을까? 미국 전역이 그려진 커다란 종이지도였을까? 아니다. 칼로브가 보여준 것은 GIS(지리정보시스템) 지도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정치 블로그를 담당하고 있는 사샤 아이센버그(Sasha Issenberg)가 두 번째로 집필한 책이 최근 국내에 번역됐다. <빅토리랩 - 대중의 심리를 조종하는 선거 캠프의 비밀>에는 칼로브가 어떻게 GIS 데이터와 지도를 이용해 선거전략을 짰는지 취재파일을 보여준다.

 

미국 인구조사국(Census Bureau) 1990년부터 미국의 인구, 가구, 주택, 기업체 정보 등 250여 세부정보를 GIS 데이터로 전면 공개해왔다. 미국 전역을 약 800만 조사구로 정밀하게 쪼갠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칼로브의 선거전략은 데이터 기반으로 급속히 이동했다. GIS 세부 데이터는 미국에서 경영 분야의 마케팅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 GIS 지도에 담긴 상세한 인구통계가 시장조사와 마케팅의 기반이 된 것처럼 정치 분야에서도 새로운 전략수립의 바탕이 됐다.

 

공화당 진영의 GIS 데이터 기반 타깃팅 기법에 패배를 거듭한 민주당 진영은 2008년 오바마 선거부터 공화당을 뛰어넘으려 치열하게 노력한다. 배울 것이 있다면 적장에게서도 기꺼이 배우려 한 것이다. 단지 경쟁자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보다 더 탁월하고 효과적인 새로운 승리방안을 연구한다. 2008년 오바마 캠프는 단지 과거의 정보를 담고 있는 GIS 통계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버스노선 지도 등 살아 움직이는 유권자 데이터를 분석해 전략지도로 이용한다.

 

오마바 이전의 대선캠프에서는 이동 중인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을 대상으로 홍보전을 수행한 바가 거의 없었다. TV와 케이블 광고에 대부분의 선거자금을 쏟아부었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캠프의 데이터 분석가는 유권자들의 개별 데이터를 분석하던 중에 대중교통이야말로 유권자와 가장 밀착해서 정치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위스콘신주에서 오바마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주민들이 모여 사는 선거구 지도를 만들고 여기에 시내버스 노선도를 대조해 집중 광고 대상으로 삼을 만한 선거구를 찾아내 광고를 시작했다. 10개 도시의 버스 노선에 내건 광고는 예상 밖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유권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해 새로운 소통방식을 과감하게 수용함으로써 오바마 선거 캠프는 작고 섬세한 타깃팅의 진가를 새롭게 발견했다.

 

 

 

오바마의 비밀병기

 

미국 대선에서는 270표를 얻으면 승리한다. 오바마는 이번에 332표를 얻었다. 오바마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10개의 경합주 가운데 8곳을 석권하며 68표의 큰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다. 2008년에 이어 오바마는 실전 경험이 많은 소수의 선거전략가들의 노련함보다 방대한 데이터 분석의 치밀함에 운명을 걸기로 했다. 2008년 오바마 캠프의 총책임을 맡은 짐 메시나(Jim Messina) 2012년 대선에서 빅데이터 활용으로 승부수를 준비했다. 그는 “미국에서 2012년 이전의 모든 선거운동은 석기시대의 것이라 단언했다.

 

2008년 대선이 끝난 직후, 오바마 캠프는 시카고의 비밀사무실에 빅데이터 수집·분석·전략을 전담하는비밀동굴팀(The Cave)’을 조직했다. 이들은선거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것을 측정한다는 모토를 걸고 선거캠프의 데이터분석팀의 규모를 2008년에 비해 5배나 키웠다. 그리고 데이터마이닝 전문가 레이드 가니(Rayid Ghani)비밀동굴팀의 최고책임자로 영입해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레이드 가니는 경영컨설팅 회사의 데이터 분석가 출신이다.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자 행동의 패턴을 찾아 개인화된 마케팅 전략수립을 돕는 CRM 분야의 데이터마이닝 및 분석 전문가였다. 그는 2010년 데이터마이닝에 관한 전문서적를 출간했으며 50여 편의 관련 논문을 작성한 바 있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데이터마이닝을 전공한 후 엑센츄어 시카고 테크놀로지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오바마 캠프에 영입됐다. 그가 엑센츄어에서 수행한 프로젝트 중에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6만 가지가 넘는 상품의 판매 데이터와 고객 데이터를 연계해 551가지 제품군에 대한 판매향상 통계모형을 만든 것도 있다. 그가 만든 통계모형의 알고리즘에는기회민감지수(Opportunistic Index)’라는 것이 있는데 이 지수는 쇼핑객이 얼마나 가격에 민감하며 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구매하려는 의지가 강한지를 나타낸다. ‘식품사재기그룹처럼 특정 제품의 가격이 낮으면 몽땅 구매해서 창고에 쌓아두길 좋아하는 고객군도 있다. 이렇게 무엇을 제공하면 구매를 늘릴 수 있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 어떤 가격을 제시할 때 오렌지쥬스의 브랜드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지도 분석했다. 가니는 소비자분석에서 확보한 노하우를 오바마 캠프에서 유권자분석에 적용했다. ‘설득가능점수(Persuadability Score)’를 만들어 후보자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데 적용한 것이다.

 

오바마 캠프는 한 명의 유권자를 알기 위해 어디까지 접근했을까? 2008년의 오바마 캠프 역시 인터넷과 SNS에 집중하며 꽤 많은 유권자 정보를 모았지만비밀동굴팀의 정보력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들은 프로젝트 시작과 함께 2008년에 사용한 데이터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고 오바마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페이스북과 인터넷 사용기록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만약 어느 유권자가 페이스북의 오바마 캠프 페이지에좋아요(like)’ 버튼을 누르게 되면 그와 동시에 캠프는 유권자의 페이스북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떤 성향의 언론에 우호적인지, 어느 분야에 종사하며 어떤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모두 집계한다. 뿐만 아니라 친구관계에 있는 회원의 정보도 수집해 이 유권자에 대한 입체적 성향을 파악한다. 유권자가 오바마 캠프의 e메일 수신자 그룹에 가입하고 홍보 웹페이지에 접속하게 되면 웹페이지 마우스가 클릭하는 기록을 모두 저장하기 시작한다. 어떤 정책내용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지를 비롯해 인터넷에서 옮겨 다닌 이동경로의 흔적을 최대한 데이터로 수집한다. 심지어 개인별 맞춤형 정책내용을 알려주는 페이지의 경우 유권자가 본인과 가족의 여러 사항을 직접 입력하게 해 아주 세세한 정보까지 취득할 수 있다.4

 

 

1500가지의 소통방식

 

2012 3, 대통령 선거를 8개월 앞두고 전직 언론학 교수 대니얼 싱커(Daniel Sinker) 부부에게 오바마 캠프의 줄리아나 스무트(Julianna Smoot)로부터 e메일이 도착하면서비밀동굴팀의 섬세한 전략이 세상에 조금씩 드러나게 됐다. 같은 날 같은 집에 사는 남편과 부인에게 날아온 e메일은 똑같은 발신자로부터 도착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남편에게는 오바마의 웹사이트에 관한 내용만 짧게 언급한 대신 부인에겐 영부인과의 저녁식사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여기에 호기심을 갖게 된 대니얼 싱커 교수와 심층분석전문 언론사인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트위터와 구글을 통해 오바마 캠프의 줄리아나 스무트가 발신한 약 2만 통의 메일을 모아 서로 어떤 내용이 다른지를 비교했다. 그 결과 2만 여 통의 e메일에서만 800개의 메시지와 1500가지의 개인별 변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e메일에 응답하게 되면 그 내용이 즉각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분석팀은 e메일 내용에 클릭 한번으로 소액의 선거자금을 낼 수 있는빠른 기부(quick donation)’ 버튼을 넣었는데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적은 금액에서 많은 금액까지 다르게 요청한다. 2달러의 기부요청에 응답하면 다음 e메일에는 5달러를 제안하고 첫 번째 기부로 100달러를 낸 사람에게는 250달러를 요청하는 식이다. 그 결과비밀동굴팀 e메일 발송만으로 1조 규모의 선거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또한 오바마 캠프는 롬니 캠프에 비해 훨씬 빈번하게 e메일을 발송했다. <프로퍼블리카>의 기자 한 명이 일부러 롬니와 오바마 양쪽에 온라인회원으로 가입했다. 가입일로부터 투표일까지 롬니 캠프가 445통의 e메일을 보내는 동안 오바마 캠프에서는 무려 4배에 가까운 1651통을 발송해왔다.5 오바마 캠프는 유권자별로설득가능점수(Persuadability Score)’를 매겨 이에 따라 개인화된 설득용 e메일을 발송했다.

 

전화통화로 유권자의 마음을 돌린 경우 그 지속기간이 불과 3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화보다 더 꾸준하게 유권자와 접촉할 수 있는 온라인 매체를 더욱 빈번하게 활용한 것이다. 그렇게 오바마 캠프는 유권자의 개인성향에 맞춰 개를 좋아하는 유권자에게는 오바마가 키우는 개의 근황을 알려주고 환경문제에 관심이 높은 유권자에게는 오바마의 풍력산업 정책에 대한 e메일을 보낸 것이다.

 

 

1%에 집중해서 승리를 거머쥐다

 

개인맞춤형 편지를 대량으로 발송하는 것이비밀동굴팀전략의 전부는 아니었다. 2008년 오바마 캠프의 총책임자 마샬 간즈는 EBS와의 인터뷰에서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었지만 이들을 조직해 투표소로 이끌지는 못했다고 말하며 온라인 홍보의 한계를 지적했다.6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오바마 캠프는 온라인 홍보와 오프라인 선거운동 사이의 의미 있는 접점을 고안했다. 그것은 바로 유권자의 상세한 신상정보와 지리정보를 결합한 것이었다.

 

오바마 캠프의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할 때에는 자택위치를 드러내는 우편번호(zip code)를 반드시 입력하게 되는데 시스템은 이 위치정보를 바탕으로 해당 유권자와 가장 유사한 지지자들이 참가하는 모임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육아를 고민하는 부모모임’ ‘IT 정책에 관심 많은 개발자 모임’ ‘오바마를 지지하는 아시아인과 같은 것인데 이러한 모임에 참여하면서 후보의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지지자들의 커뮤니티지도(community map)를 그려 강력한 결속과 자원봉사를 이끌어냈다.

 

 

선거를 한 달 앞둔 103일 벌어진 1 TV 토론 직후 대다수의 여론은 롬니의 준비와 발언에 더 후한 점수를 줬으며 오하이오주를 포함한 대다수의 경합주에서 롬니 후보의 지지율이 오바마의 지지율을 따라잡거나 추월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하이오주는 지난 12번의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자를 짚어낸 지역인 만큼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비밀동굴팀’은 오하이오주에 유권자의 1%에 해당하는 29000명의 샘플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TV 토론 이후 오바마 지지를 철회하고 부동층이 되거나 경쟁자인 롬니를 지지한 유권자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들은 매일 밤 66000가지의 시나리오 모델을 돌려 매일 아침마다 오바마에게 전략 방향을 직보했다고 한다. 당시 어떤 특성을 가진 그룹이 지지를 옮기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던 1% 유권자 분석이야말로 박빙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수립의 요체가 됐다고 캠프의 한 고위관계자가 말했다.7

 

오바마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치열하게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전략을 수립했기에 가능했다. ‘마케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최근 국내 강연에서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두고빅데이터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활용한 결과라 평했다.8 또 다른 인터뷰에서 필립 코틀러는조지 W 부시는 미국 대통령 중에서 최초로 MBA 학위를 가진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보여준 마케팅 전략이야말로 그가 완벽한 MBA의 실천가임을 보여줬다고 격찬한 바 있다.9

 

 

정치, 경영에서 배우다

 

미국 대통령 선거캠프는 경영 분야에서 확인된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다. 적극적인 정도를 넘어 사활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의 여론조사 책임자였던 매튜 도드(Matthew Dowd)의 아버지는 자동차 제조기업 크라이슬러의 브랜드 닷지(Dodge)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다. 도드는 성장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자동차 회사에서 잠재고객에 대한 수백 가지 정보를 어떻게 분석하는지를 여러 차례 전해 들었다. 고객의 취향과 취미를 기준으로 여러 집단으로 나누고 그룹별로 마케팅을 수행했던 기법을 정치 분야에 적용한 것이다.

 

선거에서 유권자가 어디에 사는지, 나이는 몇인지, 성별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미국 공화당은 소비자데이터와 공화당 유권자 파일을 결합해 별도의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유권자의 생활양식과 신념에 나타나는 패턴을 바탕으로 유권자를 25개 그룹으로 나누기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했다.10

 

미국 선거자금 감시단체인책임정치센터(CRP)’의 분석에 따르면 2012년 미국 대선에 들어간 선거비용은 26억 달러(28184억 원)이었다. 미국에서 4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에 사용하는 마케팅 비용은 프록터앤갬블(P&G)이 매년 비누를 광고하는 데 쓰는 돈보다 적다. 미국 선거캠프에서는 기업경영에서 수많은 투자와 실험에 의해 검증된최상의 마케팅 기법을 선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경영 분야의 성과를 자신들의 분야에 적용하는 영민함을 발휘하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오마바 재선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보여줬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는 수많은 정치홍보회사와 정치전략컨설팅 전문가가 있다. 2012년 미국 대선은 경험만을 강조하는 선거전문가들의 퇴장을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모델링과 컴퓨터 전문가들의 득세를 알리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통찰을 건져 올리는 새로운 전문가들의 등장을 알리는 전주곡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 줌인(Zoom-in)

 

 

이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국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국내에서 인구통계를 들여다볼 현미경은 있을까? 영어교육 전문기업에서 전략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P 팀장은 0∼4세를 대상으로 신규 브랜드를 기획 중이다. ‘요즘 시내를 다닐 때는 유모차와 젊은 엄마들만 눈에 보인다고 한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엄마들에게 마케팅을 진행할 30개의 신규 학습홍보관을 출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P 팀장은 시장조사를 끝내고 홍보관 입지를 정한 후 젊은 엄마들에게 구체적인 마케팅 계획을 수립해서 예산집행까지 챙겨야 한다.

 

<지도3>은 서울시의 0∼4세 유아인구의 분포를 표시한 GIS 지도이다. 서울에 0∼4세에 해당하는 인구는 397500명이다.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지도3>에서 연록색에서 진청색으로 갈수록 해당 인구가 많다. 중앙의 회색지대는 한강이며 가장 굵은 흑색선은 행정구, 중간 굵기의 흑색선은 행정동, 얇은 회색선은 통계청 집계구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서울시에는 25개 행정구과 424개 행정동이 있다. 서울시 면적(605)을 행정동 수로 나누면 평균 면적은 1.4㎢다. 여의도 면적(강변의 고수부지 제외한 제방안쪽 면적, 2.9)의 절반 크기이다.

 

최근까지 시장분석의 최소단위는 행정동 기준이었다. 예를 들어, 서울을 분석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평균 크기가 여의도 면적의 절반 크기라는 뜻이다. 2010년부터 통계청은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집계구 단위로 제공하고 있다. 사용신청서를 제출하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서울시의 통계청 집계구는 16471개다. 행정동보다 약 40배 정교하다. 통계청 집계구는 주거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더 잘게 쪼개진다. 통계조사원이 보름간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정적 면적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과거 행정동 단위로 시장을 분석한 것을 돋보기 수준이라고 한다면 통계청 집계구 단위로 지역을 분석하는 것은 현미경 수준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서울을 16471개로 미세하게 세분화한 블록마다 성별, 연령별, 가구특성별(1인가구 등), 주택유형, 점유형태(자가, 전세, 월세 등) 등의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다. P 팀장은 <지도3>에 노란색 사각점으로 표시한 경쟁점 매장의 위치를 면밀하게 살펴 경쟁기업이 놓치고 있지만 유망한 지역을 찾아내고 있다.

 

 

빅데이터(Big Data) 스몰맵(Small Map)

 

 

누구에게 DM을 보내야 하나? 패션 브랜드 마케팅팀장의 고민이다. 지난달 서울의 테스트 매장에서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DM 마케팅으로 상당한 매출 증가를 확인했다. 이번달 테스트 매장을 더 늘려 지방에서도 유사한 타깃팅을 수행하기 위해 GIS 분석팀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공동 프로젝트에는 마케팅팀, CRM, 영업팀, 매장 매니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지도4>는 패션점 T의 전북 군산시 매장 위치를 담고 있다. 연청색의 농도가 진할수록 매출액이 높다. 최근 2년 동안 매장에서 상품을 구매한 고객들의 주소와 구매액를 모두 GIS에 입력했다. 이 매장의 전체 매출의 65%가 검정선으로 둘러쌓인 지역에서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A·B·D지역의 매출 비중이 매우 높다. <지도4>는 패션점 T의 경영성과를 지도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매장이 새로 고객을 유치하려면 어느 지역을 주목해야 하는가? <지도5>는 패션점 T의 매출 70%를 구성하고 있는 40∼50대의 주거인구 밀집도를 표현한 것이다. E·F·G지역에 높은 밀도가 형성됐다.

 

<지도5>는 영어학습 브랜드에서 소개한 <지도3>과 기초 데이터가 동일하다. 전국을 85413개로 세분화한 통계청 집계구 GIS 데이터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지도를 자세히 보면 500m 간격으로 동심원이 그려져 있다. 매장으로부터의 거리다. D지역과 E지역을 번갈아 살펴보자. 패션점 T의 매출분포를 보면 D지역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D지역은 매장으로부터 1.5㎞ 떨어져 있다. 그렇다면 매장과 같은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깃 고객들이 훨씬 더 많이 밀집해 있는 E지역의 매출은 왜 저조한 것일까?

 

더 흥미로운 것은 F지역이다. <지도6>의 작은 원형표시는 아파트 동별 세대 수를 표현하고 있다. 원형이 클수록 아파트 세대 수가 많다. F지역은 매장에서 불과 700m 떨어져 있고 <지도6>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분석대상지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매출로 연결된 고객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개선의 여지를 찾기 위한 진단지도이자 계획수립 기초지도로 쓰이고 있다.

 

이제 공동 프로젝트팀은 이미 고객데이터에 등록돼 있지만 최근 6개월 동안 구매실적이 없는미실적 고객을 지도상에서 선별하고 있다. 그냥 마우스로 선택하면 자동으로 고객리스트가 뜬다. 동시에 아파트 중에서 DM을 보낼 동호수를 정하고 싶을 때 평형대별로, 기준시가 가격대별로, 매장과의 거리구간별로 조건을 걸어 원하는 대상 주소만을 별도로 추출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전국 1050만 세대의 아파트, 연립, 다세대에 관한 빅데이터가 작고 섬세한 분석에 활용되고 있는 실례다.

 

 

작은 것이 더 크다

 

오바마의 컴퓨터는 미국인 1억 명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리해 패턴과 상관관계를 찾아냈다. 그 과정에서 선거캠프 직원들은 정치전략뿐 아니라 마케팅과 선거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 그래서 19세기식의 지역 가르기와 20세기식의 언론홍보 중심의 선거운동 관행을 없애고 유권자 개개인을 의미 있는 개별 단위로 다루는 21세기형 분석법에 따라 선거의 새 지평을 열었다.11 거대한 데이터 속에 숨어 있는 중요한 무늬와 패턴을 작게 작게 짚어낸 것이다.

 

“오바마는 끔찍할 정도로 유능한 사람들을 뽑아 2가지의 특별한 전략을 구사했는데 그것이 바로 하이테크(High Tech) 하이터치(High Touch)였다. 하이터치는 매우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을 말하는데 그는 희망에 대해 호소한다. 하이테크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적절한 대상에게,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데 이는 데이터를 구축하고 깊이 연구한 결과다.” 필립 코틀러의 진단이다.12 그러면서 오바마가 선거에서 보여준 유능함을 행정에서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덕담을 남겼다.

 

<포지셔닝> <마케팅불변의 법칙> <경영자 vs 마케터> 등으로 유명한 알 리즈(Al Ries)는 오늘날 수많은 기업이 오로지더 크게라는 전략만을 사용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이는 마케팅 전략이 될 수 없다고 충고했다. 생산라인 확장, 합병, 인수, 다양한 가격 등은 분명 기업의 판매량을 키우기 위해 고안된 테크닉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테크닉은 소비자의 머릿속에 있는 해당 브랜드의 위치에 어떤 영향을 줄까? 아쉽지만 의도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될 수 있다. 세스 고딘(Seth Godin)이 던진 역설법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대형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커다란 소리보다 친구나 가족들의 수다 속에서 의사결정의 자극을 더 많이 받게 될 때가 있다. 마이크로타깃팅이란 작은 것들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또한 조직이 작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자극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브랜드 스토리를 전달하는 마이크로콘텐츠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13

 

정말 커지고 싶다면 작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는 플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영부인이었지만 미국의 탁월한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녀가 작은 것에 관해 1958 UN에서 남긴 명연설이 있다. “어디에서부터 심오한 변화가 일어나는가? 아주 작은 장소, 당신이 머물고 있는 집 가까이, 너무 작아서 지도에서는 볼 수 없는 곳, 한 명 한 명 개인이 모여 만든 세계, 당신이 거니는 이웃, 당신이 다니는 학교, 당신이 일하는 공장이나 사무실, 바로 그곳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중요한 변화는 처음에는 너무 작아서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 지도 전체를 바꾼다.

 

 

 

송규봉GIS United 대표 mapinsite@gisutd.com

송규봉 대표는 ㈜GIS United 대표를 맡고 있으며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GIS를 전공했으며 와튼경영대학원과 하버드대에서 GIS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미국 인터넷산업의 지도> <비즈니스 GIS> <지도,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 등이 있다.

 

박용재GIS United 연구원yongjae.park@gisutd.com

박용재 연구원은 ㈜GIS United에 재직 중이며 연세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다양한 공간정보의 시각화, 도시건축의 변화, 유통·부동산 개발환경분석을 맡아 신개념의 유통망, 프랜차이즈 입지전략, 대형 복합시설 프로그램 기획, 지자체의 공간변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 송규봉 송규봉 | - (주)GIS United 대표
    -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겸임교수
    - 와튼경영대학원, 하버드대 GIS연구원
    mapinsite@gisut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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